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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미국 대학 내에 도대체 무슨 바람이 일어난 것인가? 학교에서 '안전'을 그리고 괴롭힘과 경쟁이 착종하는 것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가, 교육분야가 전문인 변호사와 심리학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조너선 하이트와 개인의 교육권을 위한 재단FIRE’ 대표 그레그 루키아노프가 함께 쓴 이 책<나쁜 교육>은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톺아본다. 조너선 하이트는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지를 밝히는 <바른 마음>(웅진씽크빅, 2014)에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가”그 원인을 톺아본다.
하이트는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 선상에서 왜 편협한 세대, 사회가 만들어졌는지를 묻는다. 아이들을 위해 길을 내줄 게 아니라 길을 갈 수 있게 아이들을 준비시키라는 속담처럼, 우리 사회도 함께하는 공동체, 배려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찮게 여기고, 나만이 잘났다고, 그래서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길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아는 ‘지극정성’은 이제는 좋은 의미가 아닌 ‘과보호’로 변했다. 긍정적 영역에서 부정적 영역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이 책에 codding(유난히 지극정성으로 돌봄)이라는 말을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실제 응석받이로 자라기 보다는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학업수행은 물론 방과 후 스펙쌓기로 엄청난 압박에 시달린다는 점, 여기서 괴롭힘과 모욕, 사회적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이 책은 4부 13장 체제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안전’ 2013년부터 수많은 대학에 등장한 안전이라는 새로운 문화와 인지행동치료가 어떻게 비판적인 사고를 향상해주는지, 한편으로 비진실을 막아주는지,
그리고 2부에서는 세 가지의 ‘대단한 비진실’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언성을 높여 말하는 것을 방해하고, 협박하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대학에서 연구는 어려워졌다. 아울러, 말도 폭력, 즉 언어폭력이라는 생각이 왜 인기를 끄는지, 왜 이런 식의 사고가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해로운지, 마녀사냥과 도덕적 공황 상태 등 대학을 혼란 속으로 몰아가는 여러 조건을 논한다.
제3부에서는 2013년에서 2017년 사이에 왜 수많은 대학에서 이상한 현상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지은이들은 정치적 양극화와 정당 간 적개심의 심화, 이것은 혐오범죄와 캠퍼스 내의 괴롭힘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두 번째로 십 대의 불안증과 우울증 수준의 증가한 것도 원인의 하나로 본다. 이런 원인으로 학생들이 더 많은 보호를 바라는 한편, 비진실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는 양육방식의 변화, 넷째 자유 놀이와 어른의 감시 없는 위험 감수 행동의 감소, 다섯째, 캠퍼스 관료주의의 성장과 학생 보호 의무의 확대, 여섯째 정의에 대한 고조된 열정 등의 추세가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4부에서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싣고 있다. 나쁜교육의 핵심, 눈에 넣어도 안 아플것 같은 자식에 관한 생각들, 부모(보호자)의 대리만족 도구인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보호와 배려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지만,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은 거기까지, 교육의 영역에서 간섭하는 것은 도(경계)를 넘는 지나친 행위, 초,중등학교에서 흔히 보였던 몬스터 페어렌트나 헬리콥터 페어렌트의 극성은 과잉보호다. 결코 부모가 자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과잉보호자,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행위(이와 관련 된 것들이 모두 나쁜 교육)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자는 것이다.
한석봉과 그 어머니이야기, 불을 끈 상태에서 석봉의 어머니는 떡을 균일하게 썰었는데, 석봉의 글은 난장판이니... 맹모삼천지교, 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 정성껏 보살피고 배려하되, 지나치면 자식의 장래를 말아먹는다는 함의가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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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라고 니체가 말했다는데,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구석이 많은 경구다.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런 생각들에 기꺼이 동의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느 개그맨이 말한 '젊은 시절 고생하면 늙어서 골병든다.'라는 우스갯소리나 '아픈 청춘'에 대한 김난도 교수의 위로에 '아프니까 무슨 청춘이란 말이냐, 아프면 병원 가야 한다'라고 맞받아치는 인터넷 댓글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고통'에도 강약의 차이가 있고, 죽을 만큼 세지 않더라도 견디기 힘든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고통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개인이 성장하기 위해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고통'은 그 수위가 적절하고 정밀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긍정심리학에서의 '몰입'의 조건과 비슷하다. 사람이 온전히 어떤 '과업'에 몰입할 때 강한 행복감을 느끼는데, 몰입을 일으키는 조건 중 하나가 과업의 난이도다.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게 되고, 너무 쉬우면 따분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능력보다 약간은 어려운 수준으로 과업이 설계되어야 몰입을 만들어낸다. 고통과 성장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 책 <나쁜 교육>에서는 땅콩 알레르기 예를 들면서, 아이를 보호하려고 땅콩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경우 아이의 면역력은 더 약해진다는 실험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간혹 눈에 띄는 신문 기사에는 잘못 먹은 음식이 알레르기를 일으켜 어린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례도 등장한다. 면역력 증진을 위해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삼는 부모는 세상에 없을 거다. 땅콩과의 접촉 기회를 늘리기 전에 특정 개인의 알레르기에 대한 반응성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식단의 영양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땅콩과의 접촉이나 면역력의 강화는 그다음이다.
일종의 정신적 면역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를 펼칠 수 있겠다. 대학에서 보수적인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하려다가 이를 알게 된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강의가 취소되곤 한다. 보수 인사의 주장을 학생들은 듣고 싶지 않으며, 강연으로 인해 정신적 안정감이 훼손된다는 논리다. 미국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인사의 강연을 보이콧하여 무산시킨 사례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격렬한 학생들의 반대로 예정된 강연을 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던 정치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와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둘 다 중도 또는 진보 성향으로 한 번도 공화당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지만, 진보적인 학생들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 학생들의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반대의 의견을 듣고 서로의 주장이 겨루어 이겨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안정감에 상처 입는다는 이유로 엄연히 존재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외면하는 것은 땅콩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해 면역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다. 부모의 양육방식, 스마트폰의 노출, 최근의 정치지형 등이 젊은 학생들의 이러한 경향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 번도 보수당에 투표한 적이 없는 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성 평등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적인 시민들 사이에서도 동의하지 받지 못하는 극단적인 여성주의야말로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찾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관계를 따져야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를 무조건 성 대결로 몰아붙여 상대편을 절대악으로 공격하는 행태들. 2차 가해로 몰아 아예 언급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제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극단에 치달으면 악덕이 되기 쉽다는 이 책에서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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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걸 알고 싶어 구입한 책이다.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이 책을 구입하기 전까지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되게 유명한 사람이라던데,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나의 인식의 폭이 좁은 탓일까? 교육자로서 늘 교육에 대해 생각한다. 교육에는 좋은 교육이 있고, 나쁜 교육이 있다. 이 책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교육의 나쁜 점을 부각하는 것일까? 교육, 그것은 의미있고도 어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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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근 몇 년 새 미국 사회에 두루 퍼져 나간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대단한 비진실에 대해 다룬다. 유약함의 비진실 :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비진실한 명제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대단한 비진실의 범주에 속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반드시 충족시켜야만 한다. 고대의 지혜와 모순 될 것. 진정한 삶의 다루는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와 모순될 것. 그 명제를 끌어안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해를 입힐 것... ...이 세 가지 대단한 비진실이 젊은이와 대학, 나아가 보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어떤 식으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지 이 책에서 보여줄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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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이라는 책을 몇 년전 다른 책에서 소개 하는 것을 보고 읽었었다. 사실 좀 어려울 수도 있는 책이지만 나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저자 이름이 반갑기도 하고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써 교육 방식에 대해 궁금하기도 해서 사서 읽었다. 과연 우리가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키우는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남편이랑 나랑 우스갯소리로 아이에게 너무나 풍족하게 해주면 안된다. 결핍이 욕망을 부르는 것이다. 한편 나는 또 아이가 과도하게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아무런 타격없이 자라는게 결코 올바른 양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엄마 중 한명이다. 미국이고 한국이고 간에 학업성취도와 입시 스펙을 쌓기 위해 치열한데 이런걸 보면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를 어떤 성인으로 자라기를 바라길래, 물론 아이가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수는 있지만,-과연 이게 도움인가 싶은지 의심스럽지만- 저렇게까지 하나 싶다.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대학가 분위기 조차도 바뀌고 있다는 것인데 다들 정치적으로도 양 극단으로 치우쳐 있고, 어떤 주제에 대한 찬반 토론 조차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수 있다는 이유로 막으며,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이유로 초청 강사에 반대하는 것들이었다. 아, 미국도 이런 분위기이구나. 뭔가 경쟁적으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본인을 성장시킬수 있는 곳 같아보였는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목적은 제대로 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으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마음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게 부모 된 도리겠지. |
도대체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 어떻게 자라길래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은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는다.
현 세대의 지배적이지만 잘못된 이데올로기는, 시련은 피하는 것이 좋은 것이며, 내 감정에 충실하고,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장이다. 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이런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배경으로, 지나친 양극화, 안전제일주의, 입시준비를 때문에 자율성의 박탈, SNS중독, 관료제, 뒤틀린 정의관념등을 꼽는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저라면서 자연스럽게 시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자기 생각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하며, 보다 포용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구체적으론 자율성을 주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단 이야기다. 그리고 이건 비단 미국의 교육/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언제부턴가 견제 세력이 없는 같은 시스템/이데올로기 하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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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이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거든요. 그래서 이 책도 망설임 없이 구입했습니다. 초장에 어떤 사례가 나오는데, 그 사례가 평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 선입관 등도 몇개 포함하고 있어서 놀랐어요. 저자가 본인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런 방식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이니 만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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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이서 우연히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고, 내용이 좋아서 그 분의 영상을 더 찾아봤어요 책 프레임의 저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분이 이번에 새책을 쓰셔서 홍보 차원에서 다른 분 유투브에 나오셨는데, 지나가는 말로 좋은 책이라며 추천 해주셨어요. 역시 서울대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 이라 좋긴 합니다 ㅋ 책 바로 사서 읽기를 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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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됩니다. 우리가 안전을 위해서 했던 많은 일들이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만들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함에 있어 주변 특히 매스컴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뉴스나 매체의 다양한 정보를 아무 생각없이 특별히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좋은 것만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닐수 있다는 걸 이해합니다. 우리 아이틀이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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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은 단지 학교 안의 교육 현실만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학 캠퍼스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 분노와 갈등의 문화,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세 가지 '대단한 비진실(Great Untruths)'을 중심으로, 현대 교육과 젊은 세대의 심리적 변화,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저자들은 현재의 교육과 문화가 개인을 강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고난이 우리를 단련시키기보다는 해친다고 믿는 유약함의 비진실, 감정은 진실이라는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인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이 캠퍼스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비진실들은 논쟁이 참화로 번지는 방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누군가의 발언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격렬한 비난이 이어지고, 당사자의 해명이나 반박조차 2차 가해로 간주되며, 점점 더 격한 부족주의 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그렇다. SNS에서는 이런 양상이 더욱 증폭되어, '우리'와 '그들' 간의 갈등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 저자들은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정서적 취약성과 사회적 단절, 감정 중심의 인식 구조를 꼽으며, 특히 i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가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분석한다. 2부에서는 이러한 '대단한 비진실'이 실제로 대학 캠퍼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말이 곧 폭력이 되는 "은밀한 개념 확장", 마녀사냥식 비난과 자기 진영 내에서의 극단주의 강화 현상은 교육의 장이라기보다 감정과 정체성의 전쟁터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제3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여섯 가지 구조적 원인을 제시한다: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십대 불안과 우울의 증가, 보호 중심 양육방식, 자유 놀이의 감소, 캠퍼스 관료주의의 팽창, 정의에 대한 고조된 열정이다. 특히 자유 놀이의 감소와 양육방식의 변화에 대한 분석은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들은 아동기의 자율성과 위험 감수 경험이 줄어들면서, 젊은 세대가 감정적으로 더 취약해졌고, 외부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이는 학업 스트레스와 입시 중심 교육으로 자유 시간을 잃어버린 한국의 청소년 현실과도 깊이 연결된다. 또한 스마트폰과 SNS 사용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과학적 통계와 연구를 바탕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문제만 제기하는 게 아니라, 실용적 대안을 제시한다. 교육자, 학부모, 정책 결정자 모두를 위한 실천 가능한 지침이 제시되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변화의 여지가 있다는 저자들의 신중한 낙관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쓰였지만,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분석틀과 해결책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나쁜 교육』은 단순한 교육 비판서가 아니라, 인간을 강하게 만들 교육, 건강한 토론과 공존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성찰의 도구라고 느꼈다. 감정과 정의,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시대의 교육과 사회는 이 책을 통해 반드시 돌아봐야 할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한줄평: 극단적 분열과 감정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교육과 사회에 던지는 날카롭고 따뜻한 처방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