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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현 선생님이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소개한 철학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저서를 끝내고 아리스토텔레스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첫 번째 책 <형이상학>이 너무 두꺼워서 몇 차례나 미루게 되었습니다. <형이상학>은 처음 읽는 것이지만, 이븐 루시드라고 하는 아랍철학자가 쓴 <형이상학>의 해설서인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읽은 바 있어서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시 <형이상학>은 어려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106권에 달하는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강의용 원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은 기원전 1세기 초엽에 아테네의 시민 아펠리콘의 손에 들어갔다가 그리스가 로마제국에 점령되었을 때 로마 장군 루쿨루스에 의하여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아온 아미소스의 티라니온에게 맡겼습니다. 티라니온의 제자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을 편집하여 출판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통일적인 구상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안드로니코스의 주제별 편집방침에 따라 구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앎을 원한다. 그 증거로는 감각지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23쪽)”라고 시작하는 <형이상학>은 후세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철학이라고 부릅니다.
모두 14권으로 구성된 <형이상학>에서 낱권에 제목이 붙어있는 것은 ‘철학 난문집’이라는 제목이 달린 제3권, ‘철학용어사전’이라는 제목이 달린 제5권, ‘실체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달린 제12권 뿐입니다. <형이상학>의 말미에는 누가 쓴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 생애 사상 저작’이라는 해설이 더해져있습니다. 해설자는 “형이상학을 ‘형태를 초월한 것, 형태가 없어서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 경험의 범주에서 벗어나 자연적 물리적 존재를 초월한, 감각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국어사전적 의미로 정의해 두겠다(459쪽)”라고 적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철학, 즉 형이상학의 주된 관심은 ‘실체’입니다. 그는 실체란 “그 자체 이외의 다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대치되는 학설입니다. 실체의 의미에 대하여 연구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의 대립 개념과 4원인설입니다. 대립 개념으로는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가 있고 네 가지 원인으로는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 등이 있습니다. 질료는 어떠한 개체를 구성하는 재료를 말하고 형상은 개체를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본질적 특징입니다. 가능태는 질료가 형상을 지니지 못한 상태이며 현실태는 질료가 형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인 사물의 운동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서구철학의 만들어낸 기본 틀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앎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철학적 탐구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용하는 것들은 요즈음의 앎으로 보면 타당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가 흙, 물, 불, 공기라는 4원소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이 타당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앞선 철학자들의 주장을 들어 조목조목 따져보는 자세는 바로 학문을 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근거를 들어 밝히고 있는 점도 중요한 것입니다.
철학용어집이나 철학 난문집처럼 공부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철학을 배우는 학도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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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31)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세상의 처음을 찾아가는 철학 여정
도서명 : 형이상학 글쓴이 : 아리스토텔레스 펴낸곳 : 동서문화사 쪽 수 : 558쪽 판 형 : 규격외 변형 (좀 크고 무거운 책) 동서문화사의 책은 벽돌책을 생산해내는 곳으로, 돈은 없지만 지적 탐구를 하고 싶어하는 가난한 독서인에게 매우 높은 가성비 도서를 제공해준다. (가령 요약본이 아닌 이상 모 출판사의 동일 저자, 다른 번역인 책은 36,000원을 훌쩍 넘어가지만, 동서문화사는 13,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양질의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그래서 나는 지적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두툼한 동서문화사 책들을 몇 권 소장하고 있다. ‘소장’이라고 쓴 이유는 언젠가 읽으리라,하는 욕심에 의한 도서 구입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꽂혀 있는 책들을 보노라면 언젠가는 쓰윽 꺼내 읽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러했다.
제목으로 보자면, 형이상학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매우 지적 수준이 높아 보이는 책인데, 책을 펼쳐들고 한두 줄 읽어나가다보면, 커다란 판형에 여백도 거의 없이 꽉 채워 넣은 활자들, 그리고 단어로는 뜻을 알지만, 문장으로 연결하면 뜻을 알 수 없는, 진짜 형이상학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 같은 내용이 가득하여, 한 장을 읽어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닫게 된다.
아직도 하루만에 읽는 철학사, 같은 교양 철학 책으로 철학의 맛을 보는 수준인 내가, 이런 고등 철학을 읽어보겠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가성비 좋다고 사놓은 책을 버릴 순 없고, 그렇다고 평생 장식용으로만 놓아둘 수는 더더욱 없는 일. 언젠가는 읽으리라 생각하고 사둔 책이니 그 언젠가가 사실 지금이라고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35년도 더 오래된 과거 대학시절, 인문학도들이 바글바글한 동양철학을 신청해서 200명 수강생 중에 공대생이면서도 A+를 받은, 타인에게 자랑하기에는 심히 민망하지만, 속으로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의 한 축을 가지고 있는데, 솔직히 이번 책은 케케묵은 추억만으로 읽어내기에 심히 벅찼다. (굳이 이 알량한 자기자랑을 여기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 당시 기계공학도로서 인문학부에 가서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것은 이후 잊을 수 없는 학문의 동기부여 같은 것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형이상학’을 읽다보니 내가 이렇게 과도하고 무거운 책을 읽어내는 힘이 그때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이후 생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원인으로 여겨져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계보조차도 제대로 몰랐던 나, 하긴. 그래도 플라톤의 저작물 “소크라테스의 변명” “국가론” 같은 책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긴 했으니 철학초보 딱지는 뗀 셈이다. 그래서 “도전”이 이루어졌다. 사실 2018년도에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작년(2020년)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중도에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올해가 시작되면서 다시 재도전을 했고, 장장 4개월이 지나서야 완독의 꿈을 이루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으면서 플라톤과 다른 이론으로 각을 세우고 독립한 그리스 철학 계승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방법론과 철학의 문제를 종류별로 서술한 최초의 서양철학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기원을 철학적으로 탐구했고, 그의 철학적 신학은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등 중세 스콜라 철학자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세상의 시작을 탐구하는 이 책은, 서론격인 대문자 알파, 그리소 소문자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순으로 저작이 이어지는데, 제1권 대문자 알파에서는 앎의 즐거움, 지혜의 특징과 함께 원인에 대한 기존 철학자들의 네 가지 본질인 형상인,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因)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특히 그는 소크라테스 등 선대 철학자의 사상과 이론을 비판하는데, 직계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설에 대하여도 꽤 많은 분량으로 비판하고 있다. (23개나 비판의 촉을 내세운다.)
즉, 제1철학인 ‘형이상학’은 물질의 처음이 되는 ‘원인’에 대한 탐구이다. 원인 없이 물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의 물질이 필연적으로 그 다음 물질의 원인이다. 왜냐하면 이들 세 가지 중 어느 물질이 원인인가를 말하라고 하면 우리는 제1의 물질(최초의 물질)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설마 끝에 있는 물질이 그 원인일리는 없기 때문이며, 최종적인 물질은 다른 그 어떤 물질의 원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64쪽)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재 중의 천재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제1의 존재, 숫자 1에 대한 탐구 등은 실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깊이가 있다. 하나의 선, 하나의 점, 선들의 종합, 하나의 면, 이런 것은 수학적 개념인데, 실체를 탐구하면서 선, 점, 면 등이 튀어나온다. 모든 학문의 시작이 철학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수학도 시작은 철학이었다.
물체가 접촉하고 분할될 경우, 물체가 접촉하면 하나의 면이 생기고, 분할되면 두 개의 면이 생기는데, 그것은 그 접촉 또는 분할이 동시에 (생성 과정에서가 아니라 일거에)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물체가 아직 접합만 되었을 때에는 하나의 면은 존재하지 않고 소멸되어 있고, 한 물체가 분할되었을 때에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두 개의 면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또, 만약에 이들 면이 생성되거나 소멸되거나 한다면, 무엇으로부터 생성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마치 시간에 있어서의 ‘지금’과 같다. 즉, ‘지금’이라는 시간에는 (동시에)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이 있을 수가 없다. (형이상학, 92쪽)
존재는 부대적 존재, 참으로서의 존재, 술어 형태로서의 존재, 가능적 존재와 현실적 존재가 있다. 술어 형태로서의 존재 중 제1의적 존재는 실체이며 결국 존재의 연구는 실체에 대한 연구이다. 그는 실체가 본질이 될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탐구해나간다. 실체는 형상으로 존재하고, 형상은 소멸과 생성 과정이 있다. 질료는 생성의 원인이다. 실체는 하나의 원리이고 원인이지만 참다운 실체는 질료를 일정한 존재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원인이다.
5권 델타,는 철학 용어 사전으로 온갖 철학 용어가 가득하다. 그런데 단순한 사전이 아니다. 용어를 설명하면서 그의 철학이 가득 담긴다. 델타 6장은 ‘하나’를 소개하는 장이다. 헨(hen)이 하나이고, 폴라(polla)가 많다는 말이다. 그는 하나와 많다를 설명하면서 종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반해, 사물이 헤테라(다른 것이다. 또는 서로 틀리다)라는 말은, 이들의 종(種)이나 그 질료, 이 실체(본질)들의 설명 방식이 하나보다도 많이 있을 경우이다. … 디아포라(차별)란, 이들이 서로 다르면서도 그 어떤 점에서 조금이라도 같을 경우, 즉 수적으로는 동일하지 않으나, 그 종에 있어서, 그 유(類)에 있어서, 또는 유비에 의해서 같을 경우이다.” (형이상학, 148)
같거나 다르거나, 차별을 받는 것은 모두 숫자와 관련이 있다. 수가 많다는 것은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수가 적다는 것은 다름과 차별을 의미할 수 있다. 이미 고대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적 정의를 집대성한 것인데, 놀랍고도 소름끼친다.
델타 9장에서는, 타우타(tauta)가 같다는 뜻, 헤테라(hetera)가 다르다, 디아포라(diaphora)가 차별, 차이라는 뜻이며, 호모이아(homoia)가 동일 또는 유사하다는 말이고, 아노모이아(anomoia)가 유사하지 않다는 뜻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이런 사전이 있는가. 사전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보라.
“디나미스(dynamis, 능력, 가능성)는 어떤 사물의 운동이나 전화(轉化)의 원리(시동인)를 말한다. 이 디나미스는 이 사물과는 다른 사물 안에 존재하거나, 다른 사물로서 이 사물 자체 안에 존재하거나 한다.
예를 들어, 건축술은 하나의 능력이지만, 이것은 건축된 집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술도 마찬가지 능력이지만, 의술은 치료된 환자(환자의 능력) 안에 존재할 수 있다. …
소멸하는 사물도, 소멸하는 능력이 있는 사물이다. 소멸 가능적인 사물이며, 그런 소멸 능력이 없는 사물이었다면 소멸하지도 않았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153)
소멸도 능력이라는 그의 사전적 진단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0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소멸하는 것은 능력에 대한 결과이다. 개인은 하나도 귀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 빛 바랜 나뭇잎도 빛이 소멸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고, 힘이 다해 떨어지는 낙엽도 중력에 부응하는 힘을 사용하는 것이었고,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생명을 다하는 죽음도 모두 능력이었던 것이다. 아, 감사하고 아름답다. 철학이 이렇게 감동을 줄지는 미처 몰랐다.
제10권, ‘요타’로 들어가 하나, 일, 이라고 불리는 숫자 개념에서 탐구해나가는 그의 글들은 정말 감탄에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하나가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이렇게 깊어질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각 권에서 탐구를 이어가며 이데아론의 비판을 양념처럼 넣는다.
제14권은 ‘뉴’로 읽는데, 숫자가 사물의 원리로서 과연 쓸모가 있는지를 탐구하며 책을 마친다. 즉 수, 하나라는 것이 사물의 실체가 될 수 있는가, 사물의 구성요소인가 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지만, 막상 질문을 받아도 이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음을 알 수 있다.
너무 방대해서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어야 했다. 다행히 부록처럼 넣어준 뒷부분이 거의 100쪽이 넘는데 여기에서 다시 깔끔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정리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의 원인을 추구하면서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제1원인으로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의 험난한 철학 탐구 여정에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삼라만상 실체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철학적 탐구와 과학적 탐구가 다를 수 있겠으나 현대 과학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시작으로 수학, 자연학 등 방대한 학문을 탐구하고 집필하였다.
읽기는 힘들지만, 다 읽고나면 성취감과 함께 철학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정치학, 수사학을 이어볼까 하는 작고 무모한 마음은 뭘까.
(사족) 예전에 읽은 <후설과 하이데거>에서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현상학 창시자인 후설의 제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했다. 후설이 탐구하고자 했던 어떤 사물은 ‘존재자’이다. 이미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다. ‘존재’는 그 존재자들이 존재하게 되는 근거에 해당한다. 즉 존재는 존재자가 존재자이게끔 하는 그 무엇이다. 하이데거는 기존의 형이상학이 ‘존재’를 ‘존재자’처럼 다루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였다. 하이데거는 특히 인간에 주목했는데, 인간은 여타 존재자들과 다른 존재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탐구는 이미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원인이었다. 존재자, 사람은 엄밀히 따져보면 그의 탐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철학도 발전하는가 보다. 나는 존재되는 사물이 아니고, 존재자다.
(선한리뷰) 집요한 탐구였다.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탐구 정신은 본받고 싶다.
깊이 들어가자. 그러면 제1 원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자. 결코 쉽게 포기하지 말자. 내가 존재자로 살아가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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