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라는 단어는 어린시절 그야말로 나의 로망이었다. 위기에 빠진 이웃나라의 공주를 구출하고 그리고 그 공주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무 걱정 없이 무도회를 즐기며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멋지고 잘생긴 파란 눈의 금발의 멋진 청년을 상상하곤 했었다. 우리나라와 왕자는 웬지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왕자라함은 왕의 아들...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왕이 존재했고 그들의 아들이 바로 왕자였다. 왕자라는 말보다는 세자라는 말에 더 익숙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장손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왕실 그것도 적장자.. 그런데 수난기.. ??? 그리고 비운의 조선의 프.린.스 그야말로 호기심이 확 일어나는 책의 제목과 소재였다. 간간히 왕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왕자.. 그것도 적장자.. 그것도 만인이 부러워할 적장자의 수난기라니.. 그들의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애환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당연히 왕위는 적장자가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장자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생긴 것이고 그 이전 고려시대나 같은 시대의 명나라에서는 장자에 의한 계승 원칙을 되도록이면 지켰지만 적서차별보다는 엄격한 신분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물론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우선이었지만 그 장자가 "착하지 못한 경우" (너무 어리거나, 왕에게 자식이 없거나.. )에는 형제간 계승 , 그것도 연장자 순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조선의 개국과 함께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과 왕위의 정통성을 위해 태종은 자신의 후손들이 무난하게 왕위를 계승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적장자 계승이라는 제도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와는 다르게 조선의 27명의 왕 중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은 7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 명을 다할 때까지 정사를 제대로 펼칠 수 있었던 왕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고 한다. 서출이었던 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미묘한 열등감에 휩싸였고 정사를 펼치던 중 알게 모르게 적서차별과 관련된 문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적장자들중 가장 비운의 삶을 살았던 5명의 왕자가 소개 된다.
아버지가 거부한 아들.. 불노와 지운 불노와 지운은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그야말로 비운의 왕자들이었다. 이방원의 왕자의 난으로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오르게 된 정종.. 그는 왕위에는 욕심도 없었지만 이방원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나타난 그의 친아들 불노와 지운.,, 이방원의 계획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이 아님라 선포한다.
지나친 억압과 감시로 무너진 양녕대군.. 이방원의 맏아들로 태어난 양녕대군..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적장자로서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와 사랑은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예가 바로 양녕대군이 아닌가 한다. 적장자 승계원칙에 의해 그는 어린시절부터 왕이 되기 위한 엄격한 수업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그런 것이려니 했지만 점점 커 가면서 높은 담안에서 고루한 학자들과 함께하는 왕으로서의 길은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빼앗겨버린 삶이 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시작된 일탈.. 그가 폐위된 원인이 방탕한 생활때문이다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꾸민 일이다.. 말은 많지만 결과적으로 강압된 왕자로서의 삶과 앞으로 쥐게 될 권력때문에 미리 견제 받게된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정해진 운명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게된 비운의 프린스라는 생각이 든다..
성종과 뒤바뀐 운명, 월산대군과 제안대군 태종의 뒤를 이어 세종이 왕위에 오르고 세종의 적장자인 문종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단종이 즉위하면서 순탄하게 이어지던 적장자 왕위계승은 수양대군인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로 왕위에 오르면서 불안해 지기 시작한다. 세조의 적장자였던 의경세자가 일찍 요절하였고 그의 차남인 잘산대군이 성종으로 즉위하면서 의경세자의 적장자였던 월산대군과 세조 이후 예종의 적장자였던 제안대군은 적장자이면서도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왕위 계승의 우선권을 갖고 있던 이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모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슴 조이며 그야말로 평탄할수 없는 가시밭길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결코 왕이 될 수 없는 적장자. 영창대군 선조에게는 광해군이라는 세자가 있었다. 후궁의 소생이었고 장남도 아닌 광해군.. 그러던 중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린 계모 인목왕후에게서 적장자인 대군이 탄생하였다. 그가 바로 영창대군이었다. 왕세자가 될 수 없는 적장자의 탄생..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하는 탄생이었다. 태어나 탯줄의 피도 마르기 전 광해군의 적수가 되어버린 영창대군.. 당시 임진왜란등 대외적으로 시국이 어수선하였고 명나라에서도 광해군에대한 세자 책봉승인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 선조는 서둘러 계비를 두어 적장자를 보기를 원했다. 그러한 예기치 않은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된 선조 그리고 왕위에 오른 광해군.. 결국 영창대군은 모함으로 인해 강화에 위리안치 되고 다음해에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된다. 영창대군의 어머니였던 인목왕후는 죽음을 앞두고 "대대로 왕실과 혼인을 하지 말아라.."하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라고 하니 권력앞의 비정함에 또 한번 애통함을 느껴본다.
부친의 견제로 시작된 비극. 소현세자.. 스물 여섯의 나이로 적국인 청나라의 볼모가 되어 청국으로 떠났던 소현세자.. 청나라와의 원활한 관계로 훗날 자신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 아버지 인조의 견제가 시작된다. 권력앞에서는 부정도 소용이 없는 것인지... 귀국 후 학질을 앓다가 의외의 침술로 치료를 받던중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비운의 왕세자였다. 소현세자의 경우 당시 주변 정세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조선의 사이에서의 처신이 참 힘겨워보였다. 하지만 그도 일단 뭔가를 하면 뒤도 안 보고 열심히 하는 성향이 있는 지라 오해도 불러일으키고 뜻하지 않은 결과들을 만들게 되기도 한다.
'왕위의 적장자계승, 적서차별원칙'은 당연히 어느 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원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왕권 축소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원래 적서차별과 장자계승의 생활규범은 당시 신흥사대부들의 일부일처제를 존중하기 위해 받아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구애받지 않던 왕과 왕실이 이제는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대부의 일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고 신흥사대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조선사회의 지배계급으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제도에는 간과했던 문제점이 있었다. 적장자라는 부동의 왕위 계승자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정치세력의 처리가 문제였고, 왕위계승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부왕의 끊임 없는 견제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지켜야할 의무만 있을 뿐 권한은 없는.. 해야할 일과 하지 많아야할 일이 너무 많은 운명적인 삶을 살아야했던 것이다 또한 왕세자가 끝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그 이후에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비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왕의 하루>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주요했던 사건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왕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면 이 책에서는 그야말로 비운의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우리의 왕자님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절대 권력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적장자들.. '왕자'라고 하는 화려함 뒤에 그들이 꿈꾸었을 평범한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절대권력자인 아버지, 적장자가 되지 못한 형제들과의 관계, 진실을 의심하게 되는 신하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맺어지게되는 외척들과 그 주변의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로운 삶을 살아갔을 그들이 꿈 꾸었을 평범한 삶을.. 위의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굴곡 있는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이기에 그들의 대략적인 삶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과 주변상황을 알게 되니 역사적인 결과물로 그들을 아는 것 보다 더욱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서도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그 왕세자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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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나라의 왕은 몇 명의 왕을 제외하고는 거의 적장자가 왕이 되었을거라 생각했다. 적장자 계승원칙에 따라 당연히 그렇게 되었을거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읽던 차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적장자 계승원칙을 따르려 했지만, 500년 조선 왕조 스물일곱 명의 왕 가운데 적자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임금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일곱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장자의 왕위계승은 아버지가 되는 기쁨을 제일 먼저 안겨준 자식에게 애틋하고 각별한 정을 느끼기 마련이며, 그런 장자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을것이고,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왕실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도 가장 무난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자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했고, 어떻게든 다음 왕위를 주려는 세자의 부덕한 행실로 인해 폐세자가 되기도 했다. 또한 역할이 너무 커버린 세자를 견제하기 위해 왕이 될수 없었다.
저자는 조선 시대의 왕자들, 특히 비극적인 운명을 살다간 왕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총 5장에 걸쳐 비운의 왕자들을 소개하는데 첫번째 장이 정종 이방과의 아들인 불노와 지운이고, 두번째 장에서는 태종의 아들인 양녕대군이다. 세번째 장은 세조의 아들인 의경세자의 적장자인 월산대군 이정과 예종의 적장자 제안대군 이현이며, 네번째 장은 선조의 적장자 영창대군, 다섯번째 장은 인조의 적장자 소현세자가 그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왕자중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양녕대군과 소현세자이다. 언젠가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대왕 세종'을 기억한다. 드라마에서는 양녕이 충녕에게 왕세자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미친척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고 나왔었다.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야사처럼 일부러 왕세자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서 양녕이 미친척했기보다는 어렸을때부터 왕재 교육을 받으며 억압된 생활과 감시로 인해 방탕한 생활을 해 태종으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병자호란후 배반하지 않을 것에 대한 아비의 맹세로 볼모로 청나라고 간 소현 세자의 이야기를 그린 김인숙 작가의 『소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들이되 임금의 적이 될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세자를 그린 책이라 참으로 안타까워 했었다. 또한 긴 세월동안 볼모생활을 하던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돌아왔을때도 이미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소현세자가 독살당했을수도 있었다는 것을 언급한 것도 다시금 마음이 아팠다.
보통 자식간에는 한없이 사랑으로 대할 관계도 정치적인 권력 관계에서는 숙적으로도 변할수도 있는 비정한 관계라는 걸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들도 궁궐 밖 평범한 일상들을 꿈꾸었을까? 아니면 진짜 권력을 탐하려고만 생각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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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의 일탈은 많은 책과 드라마에서 회자되었다. 과거에는 충녕을 위해 일부러 일탈했다는 야담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세자 자리에 대한 스트레스와 충녕과의 경쟁에서 온 일탈이라고 해석한다. 세자이기는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청소년 아닌가? 청소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으니 양녕대군을 비롯해서 유독 "세자"들에게 일탈이 많이 발생한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가짓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기만 하는 괴로운 생활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것이고,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감당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찌감치 왕세자를 책봉한 조선왕조의 경우, 단명으로 생을 마감한 왕세자가 유난히도 많았는데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강요받았던 고달픈 생활이 영향을 끼친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은 이전의 고려나 같은 시기의 명과 다르게 '왕위의 적장자 계승, 적서차별 원칙'을 도입했다. 신흥사대부를 끌어안기 위해 고심끝에 내놓은 중대한 회유책이자 결과적으로 왕권축소로 이어지는 양보인 것이다. 그 어떤 계급의 이데올로기에도 구애받지 않던 왕과 왕실이 이제는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대부의 일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신흥 사대부 입장에서보면, 여전히 기세 등등한 권문세가들을 제치고 이제 막 정치권에 등장한 자신들을 새 시대의 주역으로 인정해주겠다는 이야기였고 조선사회의 지배계급으로 격상됨을 의미했다. 또한 대의명분이란 면에서도 자신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정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제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적장자 계승원칙을 공공연하게 표방했지만 지키지 못한 채, 함량 미달의 왕재라는 한계를 떠안고 왕위에 올라야 했던 서출왕들은 국왕으로서의 정통성에 깊게 새겨진 상처를 곱씹으며 재위기간을 보내야만 했다. 국왕의 정통성이 자주 약해진다는 사실이 반대로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일 수도 있다. 조선왕실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하기만 하는 왕이었다면 언젠가는 왕실과 신하 가운데 어느 한쪽이 타도되어야 하는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겠지만 서출국왕이 적지 않게 보위에 올랐던 조선왕조는 타협만으로 충분히 신하 자신의 권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즉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가 된것이다.
조선왕조의 독특한 적장자 계승의 의미를 이야기 하고, 적장자이나 왕위 계승을 못한 정종의 불노, 양녕대군, 월산대군 제안대군, 영창대군, 소현세자들을 이야기 한다. 다른 왕세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의 알려진 해석들과 유사하다. 단 소현세자에 대한 해석이 최근 여러 저자들의 해석과 다르다. 소현세자의 심양에서의 행적에 대해 "소현세자는 앞뒤 분간을 못한 채 덮어 놓고 열심인 부류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인데 그의 이런 행동은 이후로도 그칠줄을 몰랐다." 라며 부정적이다. 여러책에서 소현세자는 근대인으로 묘사한다. 이덕일의 조선왕을 말한다에서 보면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이자 천문학자인 아담샬을 만나 사상의 큰 변화를 겪는다. 이때 소현세자는 성리학 이외에 서학이란 사상과 서양이란 문명세계의 실상을 처음 접하고, 성리학만이 조선이 나아갈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깨닫음을 얻었다." 하지만 저자는 소현세자의 이런 행적을 단순히 새로운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치부한다. 또 소현세자의 죽음을 이덕일에 책에서는 소현세자를 정적으로 의심한 인조의 독살이라고 단언하나, 이준호는 실록의 기록만 나열하면 애써 피하고 있다. 왜 저자는 소현세자에게만 유독 비판적일까? 궁금함이 생긴다.
잘 알려진 역사도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면 또 하나의 좋은 읽을 거리가 된다.
P.S. 왕세자이나 왕이 되지 못한 가장 화려한 이야기의 주인공 사도세자가 책에서 빠져있다. 소현세자의 경우를 보면 저자의 독특한 생각이 나올 듯한데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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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의 『비운의 조선 프린스』는 음식으로 치면 처음 차려진 식탁을 보면 익숙한 모양이되 맛을 보면 색다른, 뭔가 독특한 느낌을 입안 가득히 안겨주는 책이다. 조선 왕실의 암투와 임금들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조선 시대의 일상적인 내용들까지 포함해서 우리의 역사 인식이 다양해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 그것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니 역사에 관해 쓰는 저자들이 새로움을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이준호는 새로운 소재를 찾아냈다. 바로 조선의 왕자 이야기다. 그냥 왕자가 아니라 적장자(嫡長子)로서 임금이 되지 못했던 비운의 왕자 이야기다. 적장자로서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 대해서 인간적 연민을 느낄 수 있는데, 그 과정 속에 깃든 사회적 상황과 왕실 내의 암투 등은 더욱 재미를 느끼게 한다. 더욱이 몇 가지의 내용은, 저자가 맨 처음 제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시각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그 중 가장 핵심은 바로, 우리가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왕실의 ‘적장자(嫡長子)’라는 개념이다. 정식 왕후에게서 난 첫째 자식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적장자(嫡長子)라는 개념 자체가 조선에 와서야 새로이 발명(!)된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중국이나 고려조까지 왕실에서 적자(適者)와 서자(庶子)라는 구분이 없었다. 그런데 태종 이방원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묘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적장자(嫡長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의 임금이 사대부와 완벽히 구분되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제1의 사대부’라는 존재로 내려오는 타협안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조선 왕실에서 임금 자리에 대한 적지 않은 비극이 나오게 되었다. 실제로 적장자(嫡長子)로서 왕이 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태어날 때 이미 왕이 될 수 있는 왕자와 그렇지 못한 왕자로 결정되어 버리는 것은 비극을 이미 잉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준호는 실제로는 그렇게 적지 않은 조선의 임금들이 적장자(嫡長子)가 아니었기 때문에 권력의 균형이 맞춰지면서 500년이나 존속되었다고 보고 있다. 저자가 적장자(嫡長子)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정종이 아들이라는 것도 부인한 불노와 지운, 온갖 기행 끝에 폐세자가 되고, 아이러니하게 눈부신 세종 시대를 열게 한 양녕대군, 왕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고, 또 특별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한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과 예종의 적장자이자 성종의 사촌 동생인 제안대군, 선조의 탐욕에 의해 뒤늦게야 태어나고, 또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왕이 될 수 없었던 광해군의 막내동생 영창대군, 그리고 병자호란으로 청으로 끌려갔다 돌아와선 아버지인 인조의 냉대를 받은(아마도 독살당한) 소현세자. 그들이다. 우선, 불노와 지운은 그 존재도 잘 듣지 못했던 이들이다. 그만큼 정종의 입장에서도 잊혀지기를 바랬던 존재였던 것이다. 제안대군도 마찬가지로 절대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는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영창대군과 소현세자의 경우도 그렇다.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나눌 수 없는, 비열한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비극을 맞이했는지 모른다. 그런 비극의 배경을 이룬 왕이 바로 선조와 인조인데 광해군을 믿지 못해, 왕 자리를 넘겨주기 싫었던 선조나 자신의 자리를 넘본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인조가 모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임금의 체통을 있는 대로 구겼다는 점에서, 그 권력과 권위를 다른 방식으로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권력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적장자(嫡長子)라는 운명의 짐. 그게 조선에만 해당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독특하게 비극을 맞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 기존에 다른 곳에서 접했던 시각과 다른 것은 바로 소현세자에 대한 평가이다. 적지 않은 책에서 소현세자는 청에 볼모로 끌려갔으면서도 의연히 대처를 했고, 청의 무리한 요구를 협상을 통해 감면시켰고, 서양 문물을 들여오려는 등 어찌 보면 선각자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준호는 소현세자가 상황 판단이 미숙한, 그저 지나치게 열심히만 하는 철부지 왕자로 보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근신해야할 때 나서고, 오히려 청에 이용당하는 존재로, 어찌 보면 스스로 쿠데타를 통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아버지 인조이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시각이 옳은 것인지 지금 판단할 수는 없다. 아마 상황에 따라서, 그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따라서 소현세자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 것이리라. * 책을 받고, 저녁 퇴근길에 읽기 시작해서 대치동 어느 카페에서 밤늦게 다 읽었다. 단숨에 읽은 셈이다. 그만큼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조선의 역사를 얘기하고 있음에도 어려운 한자말들이 별로 없어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현대적 감각이다.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지만, 그 역사를 읽음에 읽는 재미가 없다면 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쉽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는 것이다. (2013.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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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조선 프린스>의 '들어가는 글'에 써 있는 저자의 글에 공감이 간다. " 이책을 집필하게 된 데에는 (....)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판한 역사책을 읽어보면 너무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내용 일색이라 전혀 와 닿지 않는다' (....) " (p. 8) 역사책에서도 이러하니,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 드라마나 역사 영화는 더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연출된다. 그래서 역사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 중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때론 그 장면이나 상황이 뇌리에 박혀서 그것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에 오류가 있음을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도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아 놓은 부분들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조선의 왕자들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많다. 2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르는 이방원,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내 주어야 했던 양녕대군, 광해군에 의해서 증살된 영창대군, 아버지에 의해서 뒤주 속에 갇혀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 인조의 견제 때문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되는 소현세자 등. 그런데, 이렇게 잘 알려진 왕자들의 이야기들 마저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잘못된 지식을 그대로 알고 있을 뻔한 사실들도 책 속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조선 왕실의 왕위 계승자 결정은 적서차별, 적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독자들은 적장자 우선이라는 것 조차도 일반적인 왕위계승 원칙이라고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조선 특유의 권력 세습 방법이고 이로 인하여 조선의 왕자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거나, 있는 듯 없는 듯이 살아야만 하는 가엾은 신세이기도 했다. 세자가 되지 못한 왕자들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재물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한량 신세였다. 왕이 된 왕자는 자신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넘 볼 것 같은 왕자나. 서자 왕자들을 경계해야만 했다. 그래서 왕자들 중에는 유배길에 오르거나, 반역이란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정종은 이방원으로부터 자신의 입지를 보장받기 위해서 불노와 지운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내치기도 했다. 한량으로 알려진 양녕대군도 세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은 하나, 워낙 불미스러운 일이 많다 보니 세자의 자리를 충녕대군(세종)에게 내 놓아야만 했다.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은 왕이 된 성종보다는 왕의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왕이 될 수 없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적장자는 영창대군이 아닐까 생각된다. 선조의 적장자였지만 이미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기에, 선조의 죽음은 영창대군의 앞날을 어둡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증살이라는 방법으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니, 조선시대의 적장자 중에 단종과 더불어 가장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왕자이다. 인조때 청나라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에 대한 내용은 다른 사학자가 쓴 책을 통해 소현세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분석을 한다. 인조가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심양주재 조선대사로 조선 국왕의 업무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는 모습은 인조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력한 정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왕자는 동화 속의 백마탄 왕자만은 아니었다. 왕은 항상 형제들을 자신의 왕좌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까지도 의심의 눈으로 보아야 했으니... 조선에는 27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중의 적장자는 7명 뿐이었다. 조선초기에 세워진 적장자 계승 원칙은 이로 인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왕자들의 기록이 담긴 사료을 통해 왕자들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전후 상황들 예리하게 분석하여 비극적인 왕자들의 기록을 유추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집필기간이 5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쉽게 써진 책은 결코 아니다. 그만큼 역사 속의 왕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결과물이다. 독자들은 흥미위주의 역사책, 역사 드라마, 역사 영화만을 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비운의 조선 프린스>같은 책들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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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세자비, 요양생활 10년 도쿄 | 서의동 특파원 <경향신문, 2013년 1월 9일>
*****왕실생활 스트레스에 따른 ‘적응장애’로 시작된 마사코(雅子·49) 일본 왕세자비의 요양생활이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중략>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마사코에게 전통 준수와 후계 생산을 강요해온 왕실은 ‘창살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궁내청은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자를 낳지 못하자 해외여행을 규제하려 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나루히토 왕세자가 2004년 5월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경력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폭탄발언’을 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중략> 아사히신문은 8일 마사코 왕세자비의 병세에 대해 “치료가 해를 넘어 계속된다면 적응장애이 아니라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적응장애보다 더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위 기사를 보았었다. ‘일본 왕실이 이랬었어?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왕족들인데 무슨 스트레스?’ 이 책<비운의 조선 프린스>를 들추니, 책머리는 일본천왕의 사촌동생 토모히토가 “일본 왕실은 거대한 스트레스 덩어리”라고 폭로한 얘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왕비나 왕자나, 배가 불러서는...’ 나처럼 <비운의 조선 프린스>라는 제목이 의아한 사람들은, 이 책의 첫 장을 읽거나 미리 이 기사를 읽었다면 왜 <비운>인지 좀 더 수긍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조선왕실 적장자 수난기. 이 책에는 왕이 되지 못한 적장자들이 실려 있다. ➊정종의 아들 불노와 지운(좀 생소하다.) ➋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➌추존 덕종의 아들 월산대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 ➍선조와 계비 사이에 난 아들 영창대군 ➎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그들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왕조를 이어왔다. 신라 시대엔 골품제가 있었고, 고려 시대엔 장자 계승 원칙이 있었지만 적서 차별은 없었다. 그런데 유독 조선 시대에만 적장자 왕위 계승원칙을 내세운 건 무엇 때문인가? 저자는 조선왕조 성립 때 태종 이방원이 정치적 계산의 방편으로 신진 사대부와의 흥정에 내민 카드가 “적장자 계승, 적서 차별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에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임금은 7명뿐이라고 한다. 아니, 왜? 그건 조선의 정치와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흥미롭게도 적장자 계승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조선왕조 500년이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 불노와 지운은 잘 알려지지 않은 왕자라 그렇다 쳐도, 양녕 대군, 소현 세자는 내가 알던 -왕위에 오르지 못한 불쌍한- 왕자가 아니었다. 실록과 역사서를 근거로 새롭게 구축한 저자의 ‘새로운 인물상’ 탄생이다. 영창 대군은 워낙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 죽었다 하니, 그런가보다 했고. 어쨌든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은 각각의 인생을 살다 갔고 저자의 글솜씨는 각 장마다 새로 만들어진 한 편의 사극을 보는 것 같이 왕자들의 성격과 인생을 생생히 그려주고 있다.
나는 사극을 잘 보지 않는다. 무슨 인물이 그렇게 많은지, 또 전하와 신하들은 얼마나 딱딱한 말들을 많이 하는지. 요즘은 퓨전 사극도 많고 여성이 주인공인 사극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 조금 흥미가 생기고 있는 중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국사는 너무나 간략했고, 인물들의 성격도 나와 있지 않으며 게다가 시험 때만 벼락치기로 외운 지식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간 지 오래다. 그러나 사극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하며 그 인물마다의 철학이 있다. 드라마 작가의 역사 해석에 따라 다른 철학 말이다. ‘내가 배운 인물이 저기 TV에 나와 움직이는 인물이 맞나?’ 할 정도로 파격적인 해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 많았다. ‘내가 잘못 배운 건가, 모르는 게 많은 건가.’ 사극을 보면서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었다. 애들 앞에서 내 무식이 탄로 나기 전에. 그래서 몇 년 전에 교양을 위해 신명호의 <조선왕비 실록>을 사서 읽었는데, 그 책을 사 두길 잘했지. 사극에 잘 나오는 임금의 옆에 항상 붙어 나오는 왕비들의 이야기여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편했고, 책 뒤의 연표는 사극 할 때마다 꺼내 찾아보는 참고자료가 되었다. ‘아하, 이번 사극은 이 시대의 이야기구나.’ <대장금>은 중종, <동이>는 숙종이었던가?
<비운의 조선 프린스>도 왕자 이야기이니 만큼 왕비가 꼭 나온다. <조선왕비 실록>, <비운의 조선 프린스>두 권을 나란히 두고 같이 읽으니 각 장에 나오는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한씨, 광해군과 영창대군의 이야기에 나오는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 김씨 등이 죽 나와서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이 책을 볼 때 기본적인 왕조 순서는 기억해 두어야 한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산-중-인-명-선-광해-인-효> 사극의 해설을 해 주듯이 조그조근 풀어 친근하게 설명해 주는 저자의 문장 실력이 가슴에 와닿았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과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나름 재미있었고, 과감했었다. 나같이 역사 전공이 아닌 사람도 왕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게 각 장의 말미에 가계도와 연표가 나와 있어서 이해하기 편했다. 다른 연표엔 잘 안 나와 있는 왕자들의 이름도 나와 있다. 조선왕조 전체 속에서의 왕자들의 위치를 보고 싶으면 <조선왕비 실록>의 연표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시 나의 처지를 잊고 왕자들의 삶에 푹 젖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나는 평민이고 호화로운 궁전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짐을 져야했던 “왕자”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혹시나 “공주”로 태어나면 모를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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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부자(父子)간에도 주고 받지 않을 만큼 냉혹한 세계이다.또한 권력을 일단 잡게 되면 세상을 다 거머쥔 듯 선량(善良)했던 지난 날의 포부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체제유지를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국정을 혼란케 하고 민심의 이반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정치권력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그러한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왕권 계승은 『훈요십조』에 의거하여 적장자(嫡長子)가 뒤를 이어야만 마땅한데 조선 왕조 27대 적장자가 왕위 계승을 한 것은 7명의 왕 밖에 없고(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 나머지는 상왕으로부터 이쁨을 받은 자가 왕의 바톤을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은 명,청 관계에서 힘의 논리,문명의 발달 정도,외교관계에서나 늘 조공을 하고 사대(事大)의 예를 갖추어야 했고,신권(臣權)이 강하다 보니 왕 혼자서 다음 왕을 전적으로 결정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또한 왕자들 가운데에서는 왕이 되고자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를테면 공신들,친인척들을 매몰차게 숙청 내지 유배를 보내야만 속이 시원했을 정도이다.게다가 왕으로서 자질이 뛰어나다 해도 왕의 귀에 들려오는 소문이나 평가가 좋지 않다면 후대를 위해 일도양단의 과단성을 보여야 할 때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거하고 조선사의 전문가들의 관심과 격려에 의해 세상에 나온 이 글은 조선왕조 가운데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상황,개인의 자질,왕과 왕비,친척간의 이권 다툼,부왕의 그릇된 판단 등에 의해 적장자로서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한 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자업자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 군주세습의 방편으로 적장자 계승 원칙은 고려,조선에서 만들어졌는데 중국에서는 아들들이 황권을 노리고 싸우는 꼴이 싫어 '밀건법(密建法)'을 사용하여 황제가 죽은 뒤 황세자 및 신하들이 황제가 점지한 봉투를 열어 황제를 선정했다는 것이다.조선에서도 밀건법이 있었다면 왕권 다툼으로 왕실 주위가 시끌시끌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명,청과의 왕의 책봉문제,왕과 왕비(정비,후궁)와의 관계,신료 및 주변 인물들의 입김 등으로 밀검법은 취지는 좋지만 조선 당대 상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불노,난언죄로 생을 마친 지운을 비롯하여 여색에 빠지고 세자로서 자질이 좋지 않았던 양녕대군,인수대비의 과한 교육열과 철저한 계산하에 잘산대군(성종)이 왕으로 임명되고 실제 적장자였던 제안대군과 정치적 자질이 부족했던 월산대군,계비에 의해 적장자로 태어났지만 모함에 의해 생을 마감했던 영창대군,볼모로 청국으로 끌려 갔던 소현세자가 귀국 후 급작스런 죽음(부왕의 암묵적인 지시에 의한 독살설) 등으로 왕이 되는 것이 당시의 관례이고 정석이었지만 부왕의 오판,왕와 왕비 간의 알력 및 세력 다툼 등으로 적장자로서 제 역할과 기능을 못하고 초야에 묻혀 버렸던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조선시대의 정치 상황과 현대 정치상황과 제도,시스템 면에서 판이하지만 '국리민복'을 제1의 과제로 삼아 차기 지도자를 선택하고 선진문물을 일찍이 수용해 나갔더라면 사색당파,천주교 탄압,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과거는 없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권력은 달콤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쓰여지느냐에 따라 사회의 명암이 판가름 난다는 것을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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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적장자의 수난기 비운의 조선 프린스 이준호著 역사의 아침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들의 이야기 역사 공부가 흥미롭다. 때로는 전체를 통해 부분을 보고, 때로는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늠해보는 재미가 그것이다. 조선의 왕비, 공주, 참모를 통해 이미 조선왕조를 관조해보았다. 이 번에는 왕자를 통해 조선왕조를 들여다 보았다.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세운 적장자계승, 적서차별 원칙의 족쇄가 어떻게 조선시대 왕자들의 삶을 옭조였는지 아버지가 거부한 아들 불노와 지운, 지나친 억압과 감시로 무너진 양녕대군, 성종과 뒤바뀐 운명 월산대군과 제안대군, 결코 왕이 될 수 없는 적장자 영창대군, 부친의 견제로 불운을 맞이한 소현세자를 통해 살펴본다.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왕 가운데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임금은 일곱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 명을 다할 때까지 정사를 제대로 펼칠 수 있었던 왕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 적장자가 아니면서 즉위한 임금이 태조를 제외하고도 열아홉명이나 된다. 즉 허울뿐이 원칙인 셈이다. 그렇더라도 왕위에 올라 보지도 못한 성종의 아버지 덕종(의경세자), 인조의 아버지원종(정원군),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 헌종의 아버지 익종(효명세자)의 죽은 아버지께 존호명을 붙이려 했던 이유는 왕권의 정통성에 직결되는 문제 때문이었다. 겨울 네 살 나이에 아버지 예종을 여의고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로 내던져진 제안 대군이었지만 음모의 희생양이나 정치적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제안대군을 궁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 뿐 이었으며 그로 인한 부작용이었는지 제안대군은 한문을 깨치지 못한 까막눈이었다고 한다.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다가 괜한 소문날까 두려워 아예 글공부 선생조차 없었을 정도로 철저하게 숨기면 키운 결과였을 것이다.(P145)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니 하는 말들을 현재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왕자로서의 화려함만을 조명함이고 실제 이들의 삶은 권력투쟁의 삶으로 점철되어왔다. 권력 2인자로서 그들의 삶은 자의반 타의반 투쟁의 소용돌이 속을 휘말려 들어 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 책에는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을 위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위에서 울부짖는 사자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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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시간: 9시 45분 - 10시 40분 2. 읽은 페이지: 207-257 끝 3. 감상 인조반정 후 정권은 획득했지만 장악은 하지 못한 인조. 설상가상으로 정묘호란 후 금나라의 식민지국이 되고 만다.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 금으로 끌려간 소현 세자 딴으로는 조선을 위해 애썼으나 그의 근시안적 시각으로 조선 정부는 허울 좋은 무능력 정부가 되고 인조는 귀국길에 오른 소현 세자에게 시선이 고울리 없었다. 결국 인조의 정권 장악력의 부재와 소현 세자의 근시안으로 인해 소현세자는 원인모를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프린스가 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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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시간: 8시 45분 - 10시 50분 2. 읽은 페이지: 159 - 200 3. 감상 가끔 역사상 마음이 꼬인 왕들을 볼 때가 있다. 자신의 아들이면서 자신보다 용감하고 전쟁의 선봉에 나서 전두지휘했던이기에 광해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선조. 그도 이 중 한명. 자신이 전쟁 중 분조를 광해군에게 넘기고 자기 한 몸 살겠다고 의주로 피신하였던 선조는 그 창피함에 광해군을 누르고자 한다. 그 수단 중 하나로 새 왕비를 들여 적장자를 보는 것으로 영창대군이 태어나는데. 문제는 선조가 영창대군이 아기였을 때 타계했다는 것. 선조가 임종 전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걸 알고 광해군에게 왕위를 일임하면서 형제를 사랑하고 보살피라는 유서를 남기는데, 이를 인목왕후가 공공연히 전달한 탓에 광해군을 파렴치한 길로 유도하게 되고 폐모살제와 동생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영창대군 뿐 아니라 광해군도 비운의 조선 프린스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