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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스스로를 증명해내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존재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 생활을 통해 사회의 주류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간간이 '여기자'로 선을 그어버리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룰 안에서 사회적 한계를 피부로 느끼는 경험들 역시 적지 않았다. 시대적 분위기상 어느 정도는 체념적으로 견뎌왔던 시간이 있었다. 또한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이 되어야 하는 시절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한계를 다시 한 번 절감했고 소수로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현 사회의 이야기다. 자아를 찾는 글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자 기자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회적인 글과 남성 위주의 글, 그리고 결핍을 통해 쓰는 글쓰기를 통과하여 연대의 글쓰기에 이르는 목차로 책은 구성이 되어 있다. 자신의 존엄을 찾기 위한 과정이자 모두를 위한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삶과 글이 순환하고 연대하면서 모두들 조금씩 행복해지는 상상을 해본다. <크고 작은 모험이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든,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그 결과를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일이다. 바로 기록이다. 기록은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규정한다. 인생을 눌러 담아 쓰는 글에는 확장된 나의 세계가 담긴다. 꾸준한 성찰의 결과가 쌓이면서 내 삶의 반경이 넓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넓어진 시야 속에서 사고는 더욱 깊어지고, 글감은 더욱 풍부하게 발견된다. 결국 글은 삶으로, 삶은 글로 선순환된다.> p.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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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성의 글쓰기>>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여성의 글쓰기라.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단 ‘글쓰기’란 단어가 반가웠고, ‘여성의’라는 단어에서 소속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고 난 후엔 왠지 뭉클하고 비장하며 머리가 살짝 복잡해 진 그런 느낌이었다. 작가 이고은의 삶은 나의 삶과 그리고 지금 엄마들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삶을 직시하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이며, 계속 해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마주했다. 주어진 일상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나의 언어를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자아를 찾는 일이고 진실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진실을 찾는 주요한 방법이자 도구로 기능한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억압받는 여성의 삶 속에서 비교적 물리적으로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이며...그 동안의 역사 속에서 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해야만 했던 여성에게 나로부터 출발해 주변을 관찰하고, 공감하고, 흡수하고, 대화해가는 소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p.9).
자아를 찾기 위한 한 여성의 글쓰기는 그 여성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이야기를 담아내게 된다. 더 나아가 왜곡된 사회의 모습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는 때로 여성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위험한 일이 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나혜석과 버지니아 울프처럼. 작가는 ‘작가가 여성임을 자각하는 순간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의 질서와 마주하는 일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된다(p.145)’고 했다. 여성 작가들은 자신의 언어를 통해 여성의 세계를 드러내며,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때로 변화를 이끌어낸다. 또 작가는 변화는 언어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때로 아프고, 용기가 필요하며,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야 한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어야만 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 뿐 아니라 같은 일을 겪을 누군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또 더 이상 같은 일로 고통 받는 누군가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 일은 비단 여성에 한한 일이 아니다. 주변부와 비주류로 머무르는 다양한 소수자 누가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책 전체의 내용을 자아와 진실을 찾는 글쓰기에서 결핍과 충족, 사회, 연대의 글쓰기로 확장해서 풀어나간다.
여성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 전체의 의제가 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위해 모두가 고민하고 가장 좋은 접점을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을 위해서 여성은 정치적 글쓰기를 해야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여성의 글쓰기는 어떤 면에서 남성의 글쓰기로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어떤 누군가의 글쓰기도 될 수 있다. 자신을 자각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위해 노력하는 그 누구라도 이 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단락 소 제목처럼 누군가의 글쓰기는 '우리 모두의 존엄함을 찾아서' 쓰여지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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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살다 육아를 하며 경력단절여성이 된 이 땅의 흔한(?) 여성의 전형인 이고은 저자의 <여성의 글쓰기>. 스스로는 글 꽤나 쓰는 문장가도 아니고, 독서광도 아니라고 고백하면서도 이 책은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절실함에 나왔다고 합니다.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 여성의 글쓰기
기자 시절의 경험을 반추하며 그 시절의 글쓰기와 경력단절여성으로서의 글쓰기의 차이를 들려줍니다. 자존감이 바닥쳤던 시기에 글쓰기가 어떻게 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만한 힘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나를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글쓰기에 관한 확장까지 그 여정을 <여성의 글쓰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쓰기 노동자로서 살았던 기자 시절의 글쓰기와 달리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생생하게 깨닫는 과정은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이런 방식으로 발산시킬 수 있고, 그 결과는 꽤 놀랍다는 걸 알게 됩니다.
기자 시절엔 남성의 언어로 썼다면 이제는 '나의 언어'로 쓰고 있음에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태도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부터가 현실을 바로 마주하는 일입니다. 글을 통해 나의 삶을 직시, 수용하고 넘어서고자 한다면 먼저 나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들려줍니다.
기자 생활을 통해 쌓아둔 사유와 고민은 진실을 찾는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핵심을 놓친 채로는 겉핥기 식으로만 끝나게 되니까요. 대표적인 사례로 남성의 일을 대신하는 특수한 여성인 것처럼 수식이 붙는 '여OO'에 대한 호칭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동안은 문제의식을 스스로도 가지지 못했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내면의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며 자조합니다.
훌륭하던 여성들이 결혼을 기점으로 진로를 달리하는 현실을 목격했고, 본인도 경력단절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고요. 남성의 질서를 고집하는 사회에서 여기자로 불리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에 씁쓸해하면서도 지금에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힘을 얻은 건 모두 글쓰기를 통해 나와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겪게 된 부당하고 유쾌하지 않은 일들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은 어리석은 착각 속에서 살아남고자 열망했던 시기였습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 건 엄마가 되고부터였습니다. 저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에 내몰린 상황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포기하게 된 겁니다.
노력과 성취라는 삶의 기본 작동 기제가 무의미해지며 혼란에 빠진 그 시절을 구한 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24시간 육아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부족했지만, 생각을 가다듬으며 머릿속의 상념들을 정리해나갑니다.
글에 몰두하면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 소홀해지지는 않았을까요? 글 생각을 하다가 놓쳐버린 가사와 육아의 공백에 스며드는 죄책감조차도 엄마의 몫임을 이고은 저자도 통감합니다. 희대의 명언인 버지니아 울프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의 인류사적 불평등을 응축해 건져낸 상징이지만, 변화는 글쎄요. 현대의 여성에게도 희망사항으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죠.
주말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KTX를 이용했는데요. 두 아이를 데리고 탄 젊은 엄마가 제 앞자리 앉았는데, 그 엄마는 얼마나 가시방석이었을까 싶더라고요. 목소리 높낮이 조절이 힘든 어린 두 아이가 얼떨결에 잠깐씩 내는 소리에도 맘충 취급을 받을까 수시로 주의를 주는 모습이 짠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엄마를 혐오하는 세태의 심각성에 대한 에피소드는 <여성의 글쓰기>에도 등장합니다. 세상을 향한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마음이 똬리를 틀고, 아이들과 함께라면 사회가 정한 '정상 성인'을 기준으로 하는 외출은 포기한 채 살기로 마음먹도록 만든 혐오가 만연한 사회. 극도의 긴장감을 안은 채 살아가고, 아이들조차 세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그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소외, 배제, 차별, 억압의 경험을 쌓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은 나를 드러내고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타오르게 하고, 스마트폰과 소설미디어 시대에서 고독한 개인이 아닌 연대하는 다수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밀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글 쓰는 여성의 힘을 불러내는 것으로 확장합니다. 세상을 흔든 엄마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줍니다.
"글을 쓰면서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쌓아 올린다. 세계를 규정하는 것은 언어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세계를 불러온다. 글 쓰는 여성의 힘은 결국 짓눌려 보이지 않던 여성의 세계를 세상 가운데로 불러내는 데서 비롯된다. (중략) 변화는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언어는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에 대해 쓰다 보면 스스로의 처지가 뚜렷해지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 여성의 글쓰기
소수이지만 남성들의 변화가 주는 희망과 여성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응원하며, 개인 서사가 지닌 사회적 파급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지 보여주는 책 <여성의 글쓰기>. 그저 나의 삶만을 개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법을 고민해봅니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늘 당사자들의 몫이었다는 말에 공감한다면 당신도 저자가 말하는 '글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존엄함을 지키고자 싸우는 다양한 삶들에 우리는 빚이 있다. 그 빚을 갚을 방법은 스스로 존엄한 인생을 찾는 노력뿐이다." - 여성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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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자지원사업 선정작'이라는 문구에 관심이 갔던 책이다. 차별적인 특별함이 흐를 거라는 믿음으로 펼쳤는데 역시나 많은 키워드가 넘치는 책 한 권이다. 어떤 글에서는 내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금 보고 있노라는 영상처럼 흐르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내의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주변에 있는 그 누군가의 엄마이며, 아내인 자리를 지키고 있는 30대 한국의 여성인 저자의 책은 전직 기자의 경험들과 현재는 정치하는 엄마들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여러 권의 책의 저자이기도 하며 강연도 하였던 경험들이 이 책에서도 소개된다.
글쓰기 강연에 참여하는 남녀 비율에 대해서도 책은 언급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간된 책임에는 분명하듯이 이 책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곤조곤 성실하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상세한 내용은 직접 책에서 확인하면 좋을 듯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가장 먼저 저자의 소개글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여성, 1981년생, 대구라는 보수적인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 반대로 진보 성향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 기혼, 유자녀, 육아로 인한 퇴사 등... 어떤 것은 태어나며 부여받았고,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28쪽) 자의든지 타의든지 기혼여성이면서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한 번쯤 고민하는 퇴사 문제는 주위에서도 많이 보게 되지만 영화, 책에서도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데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 어떤 대안이 없다 보니 결국 여성이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를 많이 지켜보게 된다. 덕분에 목소리가 힘이 되고 글이 힘이 되어서 '정치하는 엄마들'을 통해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대한 변화까지도 이끌었다는 것을 전해준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며 목소리가 되는 여성의 움직임 중의 하나가 여성의 글쓰기라는 사실을 함께 떠올려보면서 읽게 된다.
15년생 딸이 저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13년생 아들이 제 남편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 딸이 '미투'를 외치거나 제 아들이 '여성 혐오'를 외치길 원하지 않습니다. 189쪽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딸과 아들 모두가 우리 세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기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212쪽
저자는 기레기 기자들에 대해서, 승자 독식과 성과 지향하는 노동 시장에 대해서,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정확한 맥을 짚어주고 있는 글도 만나게 된다. 언론 신문을 진보와 보수 성향으로 나누어서 읽고 있는데 매일 읽다 보면 늘 놀라워하면서 읽게 된다. 주요 기사 내용들부터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도 똑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짚어준다. 실질적으로 편의점 점주의 생존을 위협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수료나 임대료, 카드 수수로 등 진짜 '갑'의 문제는 언론이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지목한다. 약자가 약자를 적으로 간주하도록 언론이 기사화하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렇게 최저임금에 대해 스스로 발목을 잡고 말았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려보면서 읽게 된 내용도 함께 떠올려보게 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어떤 노력들과 성찰, 통찰들이 깊게 자리 잡아야 하는지도 저자는 조목조목 짚어준다. 읽고 쓰는 일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까지도 저자는 언급해준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책 한 권이다. 정치, 사회, 노동, 여성 혐오, 남성 혐오, 페미니즘, 최저임금, 글쓰기 등에 대해서 정의롭고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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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이다. 억압받는 여성의 삶 속에서 비교적 물리적으로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인 까닭이다. 이는 여성의 한계 그리고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명제이기도 하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삼아 온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모든 여성은 언제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숙명에 놓인다." (이고은, <여성의 글쓰기>, 8-9쪽) 여성의 글쓰기와 남성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를까. 이고은의 책 <여성의 글쓰기>를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다. 저자 이고은은 경향신문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후에도 꾸준히 글을 써왔고,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에 함께하기도 했다. 현재는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에서 기사를 쓰고 있으며, 각종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책에는 저자가 경향신문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경력단절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고치고 발표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저자는 여성이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신문사에 입사해 남성 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할 때에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비슷한 학력, 비슷한 경력의 남성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비슷한 장래를 살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똑같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남성 기자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여성 기자는 일과 가정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결국 저자는 가정을 택했고, 힘들게 들어간 신문사에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다. 그제야 비로소 저자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식했다. 그동안 자신이 받아온 교육은 '남성의 교육'이고, 자신이 해온 글쓰기는 '남성의 글쓰기'임을 자각했다.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여성을 위해서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음을 반성했다. 그때부터 저자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상황은 물론 열악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다 보면 시간도 없고 체력도 딸렸다. 신문기자 시절처럼 글을 쓰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글을 썼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 글을 쓰기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을 시간이 없으면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쓴 글들이 조금씩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제야 글다운 글, 나다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필요하다. 사실 남성에게는 글쓰기가 필요 없다. 이미 세상이 남성 위주로 굴러가기 때문에 부러 사유하거나 힘들게 글까지 쓸 이유가 없다. 반면 여성에게는 글쓰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여성을 음해하고 왜곡하는 온갖 선동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여성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여성들과 공유해야 한다. 저자 역시 글쓰기를 통해 자기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깨달았고, 한국 사회에서 자신처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와 차별을 경험한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더 많은 여성들이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 각 장의 말미에 실린 글쓰기 팁이 그것이다. 저자는 글을 쓸 때 제목부터 정하는지 본문부터 쓰는지, 문장은 짧을수록 좋은지 길수록 좋은지, 퇴고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등 자세하고 구체적인 팁이 나와 유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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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기본값으로 삼아온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모든 여성은 언제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숙명에 놓인다. 글쓰기가 나로부터 출발해 주변을 관찰하고, 공감하고, 흡수하고, 대화해가는 소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여성에게 적합하다. 여성의 성찰은 실존적이지만 열려 있고 또 자유롭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이는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 사실 누구에게나 내재된 ‘소수자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변성과 비주류성을 발견하는 일, 그로 인해 눈길이 가닿게 되는 우리의 무수히 다른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 누구에게나 내재된 소수자성. 이점이 좀 더 잘 이해되고 공감되면 논의도 감성도 사회도 진화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외부에 ‘소수자’가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정체성으로서 살펴보는 일. 고유한 존재들은 모두 단 하나, 소수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의 언어는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에 대해 쓰다 보면 스스로의 처지가 뚜렷해지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여성은 삶에서 경험한 차별과 소외, 배제를 통해 사회의 부당한 질서를 인지하고 꿈꾸던 이상과의 격차를 느끼며 인지 부조화를 겪는다. 이를 견딜 수 없어 사회 변화를 추동해야 하는 당위를 얻고, 자신을 설득해서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여성의 글쓰기란 새로운 자신과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주문 의식과도 같다.”
: 결핍이 동력이 되어 충족을 마련하는 글쓰기. 말하고 읽고 쓰고 변화하고. 더디지만 확실히.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들이 매주 마구 쏟아진다. 신간 소식들 읽어 보다 문득 바라 본 책장에 언제 도착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신간이! 역시 책은 읽는 것이라기 보단 일단 사는 것...인가. 새로운 세계를 들려주는 책이 좋다. 그런 책들이 없었으면 진작 호흡곤란이 왔을 터.
“과연 나의 삶만을 개선해서 될 일인가. 사회라는 거대한 그래프 속에서 나의 좌표를 좀 더 나은 지점으로 옮겨놓는다고 해서 나의 삶은 완전해질 수 있을까. (...) 개인의 노력이나 혹은 정신승리를 통해 애써 고통의 좌표에서 탈출했다고 느끼더라도 그것이 과연 진정한 해방일까. 내가 벗어난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서서 나와 똑같은 고통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행복은 온전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것이 아닌가.”
: 옆집이 굶으면 마음이 불편해야 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 배웠는데 나만 배부르면 된다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더 커서 놀랐다. 중요한 공감의 문제이다. 자신이 빠져 나온 지옥은 자신이 가장 잘 알 터, 그 자리에 들어 선 다른 이의 안위를 염려하지 못한다면 심각하게 망가진 인간일 밖에.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은 참 저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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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써야만 했다. - 여성의 글쓰기 - 십몇 년 이상의 집필 노동자 기자로서의 역할적 숙련된 글쓰기 노동을 거듭한 작가님의 서사가 모두 담긴 이 책은 그야말로 '여성의 글쓰기' 그 이상의 모든 내면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페미니즘이라는 화두가 거론되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 태어난 인간의 내면적 고통과 현실 순응 그 안에 숨겨진 날 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에. 때론 어떤 문장에서는 격렬한 통감을, 때론 애잔한 슬픔을, 그리곤 말미에 힘찬 응원과 진지한 각오마저도 못내 품어보게 되고 말았다. 단행본 한 권은 때로 사람에게 큰 위로와 단단한 연대를 선물해준다. '여성의 글쓰기' 가 나를 찾아와준 이 선물 같은 시간처럼.
여성의 글쓰기 저자 이고은 출판 생각의힘 발매 2019.11.25. 한때, 절실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사실 처음 책을 출간했을 유산 수술 그 전후의 시절도 그랬고, 이후 쌍둥이 출산 이후 지독한 산후 우울증을 통과하고 있던 그 시절이 그랬다. 출간된 책의 장르가 전혀 다른 쪽의 장르라서 나도 적잖은 곤경스러움을 느끼곤 했으나 어쨌든 누가 읽어주든 아니든 나는 쉼 없이 틈날 때마다 쓰곤 했었다. 아니 거의 '토해냈다'라는 동사가 더 맞는 표현일 정도로. 부끄러움은 없었다. 다만 빈곤한 현실, 피하고 싶은 나날들, 바닥으로 치솟는 감정과 괴물과 분투하려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작가님도 그러하셨을까, 돈 한 푼 되지 않는 글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 열의는 어쩌면 그런 '절실함'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직관적이고 솔직한 이유부터 말하자면, 내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절실함에서다. 돈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에 가치를 매기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한계 때문에 나를 존재케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싶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인생의 부침을 겪는다. 억압받는 여성의 삶 속에서 비료적 물리적으로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인 까닭이다. 쓰기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돈 한푼 되지 못해도 쓸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가 있으리라. 어쩌면 글쓰기라는 것은 외로움과 고통을 이겨내려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가 아닐까 싶다. 책으로 엮이지 않더라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쓰는 사람들은 분명 그러할 것이라고. 드러나지 않은 가면을 쓰고 적절히 주어진 역할극을 무사히 소화해내며 일상을 지내는 우리들의 내면 속에는 그늘진 외로움과 아픔이 있다고. 그 가려진 구석을 속 시원하게 긁어줄 순 없어도 최소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게 만들 수 있는 것, 내겐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곱씹을수록 고통과 불안의 강도는 잦아들었고, 삶을 개선하려면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 조금씩 알 듯했다. 혼란은 줄어들었고, 무엇을 어떻게 행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또 다른 과제가 남았다. 숙련된 글을 쓰고 싶으나 여전히 부족한 '나'를 발견한다. 지루하고 상투적인 문장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씀에도, 퇴고를 하다 보면 어쩔 도리 없이 좌절하고 말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오늘도 썼다'라는 어떤 안도감이 느껴지곤 한다. 글을 쓰고 싶은 순간들 중 가장 절실한 순간은 바로 '기대고' 싶을 때다. 단어에, 문장에, 그렇게 어떤 현상들의 적어내림으로 인한 감정의 토해냄, 적절한 묘사와 사실 기반의 관찰된 장면, 그것을 객관적으로 정제된 텍스트로 한 글자 한 문장 적어내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만다. 현재 '퇴사'를 앞두고 매일 써 내려가는 중인 에세이들은 알 수 없는 쾌감과 동시에 어떤 안도와 위안마저 선물해주곤 한다. 감사하다... 쓸 수 있어서. 못난 문장들과 장면일지라도, 나에겐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크고 작은 모험이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든,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그 결과를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일이다. 바로 기록이다. 기록은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규정한다. 인생을 눌러 담아 쓰는 글에는 확장된 나의 세계가 담긴다. 꾸준한 성찰의 결과가 쌓이면서 내 삶의 반경이 넓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건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이유로 일터에서 내몰린 여성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예 취업 시장에서 배제된 여성이 얼마나 많았던가. 교육의 기회가 제한되거나, 타고난 기질을 억압받거나, 혹은 아예 세상에 태어나지조차 못했던 여성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글쓰기..그래서 쓰기.. '여성의 글쓰기'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다. 여성 그 자체, 몸의 서사, 그리고 주어진 역할. '엄마'라는 특유의 모성 감정과 동시에 사회가 정한 육아시장과 양육도 모의 현실, 주체적인 인간이어도 지원과 서포팅의 댁 내 '보조자' 역할을 거듭할 수밖에 없이 전락하고 마는 노동 현장의 실상. 유지하고 싶어도 유지되기 쉽지 않은 커리어, 일, 경력의 단절, 그 이후의 나날들까지도. 뭐하나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임에도 최소한 '여성' 으로서의 글은 그래도 더 힘이 깃든다. 변화하고 깨어나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토록 절실한 투쟁을 선언하듯 비로소 깨어나 세상 밖으로 목소리를 내 보내는 것처럼... 나의 존재는 그대로인데, 외피가 바꾸자 세상은 나를 다르게 대했다. 차별은 이미 구조적으로 면밀하게 설계된 사회 질서에 따라 작동했다. 내가 어떤 계층, 어떤 층위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세상이 나를 대하는 운영 체계가 자동으로 바뀌었다. 때로 연차가 높은 여기자 선배 중에는 성적 농담이 오가는 자리에서 남성들보다 더 강력하고 질펀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거꾸로 남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런 선배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 바닥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란 게, 불편한 현실 앞에 침묵하거나 혹은 스스로 명예 남성이 되는 길뿐일까 싶어 막막해지기도 했다. 나는 오늘도 이 서평을, 그리고 퇴사 D-7일의 서사를 기록하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이후 녹초가 되고 만 몸을 기어코 식탁으로 이끌어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그렇게 잠시 백지를 쳐다본다. 한 문장이 시작되면 그다음에는 그저 의식의 흐름 속은 시간의 순서대로 나만의 문장들이 기록된다. 제대로 쓸 수 없을 것 같은 피곤함이나 우울감, 어떤 결핍감과 슬픔에 휩싸일수록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글이 더 잘 써지곤 하는 모순을 경험하고 만다. 울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더라. 어쩔 수 없는 지금의 나인 듯싶다. 한때 '오늘의 이름이 나였으면 좋겠어'라는 여성 수필을 써 내려갔던 그 시절의 나처럼... 낮에 아이들을 돌보다가도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돈된 이야기나 에피소드는 소셜 미디어에 기록했다. 여러 상념이 모이고 모여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어지면 새벽녘에 노트북 앞에 앉아 집중해서 썼다. 그러다 잠결에 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다시 재우고 침대 한구석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쪼그려 누워 모바일에서 글쓰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플에 접속했다. 퇴고와 윤문 등 반복해 새롭게 읽는 작업이 필요할 때면 모바일이라는 여러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무척 유용하게 느껴졌다. 신이 있다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간절함을 가진 이에게 상상 이상으로 초인적인 집중력을 선물해주었을 것이다.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환경에서 무언가를 쓰려는 이는 오히려 순간 집중도와 몰입 능력이 급격하게 높아지기도 한다. 쓰는 건 고통스럽고 읽는 건 즐겁다. 그 두 개를 번갈아 유지할 수 있음에 그저 커다란 감사함을 느끼며 산다... 올해는 '퇴사'를 하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올해가 아니라 이번 달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위험이고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과거형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은 '현재형' 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론 어떤 알 수 없는 설렘에 휩싸인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전업'의 세계와, 그 전업 감사노동의 충실한 책무를 다하면서도 '나의 일'에 대한 끊임없는 생산자적 생각을 놓치지 않는 '나' 가 있다면, 나는 뭐라도 새로운 '일'을 향해 심신을 던질 각오 또한 되어 있다. 그러하니.... 이 위험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는 '나'는 더더욱 '글'을 포기하지 않을 것만 같다. 결국 집필노동이라 할지언정 나로선 현재로서의 최선은 '글쓰기' 다. 그러니 오늘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문장에 다가가려 한다. 더 굳건하게, 쓰겠노라는 그 열망적 믿음으로... 올해는 쓰기로 인한 '꽃' 같은 시간이 많아졌음 좋겠다... 꽃을 피워내고 싶다. 어떤 꽃이든... 향기로 점철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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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적 행위로 힘에 부치지 않았다. 혼자, 또는 같이 테이블 앞에 앉는 일이 이제는 체력을 요함을 부쩍 느낀다. 이전과 달리 특별히 노력해야 하는 일이 되고 나니 책을 고르는 일도 신중해지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독서보다는 선, 후 독서의 방향점이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형성되는 것 같다.
설 연휴 동안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 빠져 지냈더니 시선과 손길이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로 향한다. 읽는 내내 많이 부대끼고 기운 소모가 많았던 터라 당분간 이쪽 읽기는 자제할 계획이었는데 마음은 또 다른가보다.
이고은의 <여성의 글쓰기>는 이전에 이미 알고 있던 바를 제시하는데도 한 줄 한 줄 새롭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을수록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속 화자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고 상당부분 외부인으로 대했다는 통렬한 자각이 뒤따른다. 붉은 의상에 흰 머리가리개를 쓴 대리모는 표피적으로 한번 알아봄 직한 대상이지 나와 다르다며 의뭉스레 나란히 두지 못했다. 결정적인 소외와 배제와 차별이 독서에서 다시 자행된 것이다. 흑
그런 나의 자책과 후회마저 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절대적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자신도 미혼의 ‘여’기자로 살 때는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겠냐고 넌지시 유혹한다. 어디까지 내 생각이지만, 사십대 기혼 여성들이 어머니 세대의 희생으로 그래도 더 좋은 환경과 자유를 누렸다며 중간자적 입장을 취해오던 것을, 경우에 따라 혼자 뒤처짐으로 판독하여 우울해하던 것에서 벗어나 삼십대 기혼 여성들은 같이 뭉쳐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이십대 미혼 여성들은 눈앞에 펼쳐진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더는 묵과하거나 방조할 수 없다고 다급히 외친다.
운이 좋아 겪지 않고 덜 당하고 살아있을 뿐 남성 중심적 사회의 혐오와 왜곡된 논리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 머뭇거릴 틈 없이 실전이다. 물론 모든 일반의 이야기는 아니다. 헌데 우리는 서구에 비해 페미니즘 운동이 딱 오십년 늦게 불 붙어 그 격차를 줄이느라 숨 가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인의 삶을 이해관계와 경험이 다른 상대에게 말하고 이해받기란 새로 태어나지 않는 한 어렵다. 상대 남성의 인식 전환과 전반적인 시스템과 제도의 변화 없이 소수의 입과 발로 앞장서는 움직임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경쟁사회로 진출하여 ‘사회적’ 노동을 경험해도 특정 시기에 경력단절을 겪고 다시 ‘가사’ 노동으로 되돌려지는 악순환...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의 비중은 느는데 관리직 책임자의 위치까지 가는 길은 좁고 꽉 막혀 있다. 평등시민이 아닌 이 삼류 시민이자 “명예 남성” 연기와 위장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돌봄 노동을 재조명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노동‘력’에 대해 곰곰 고민하던 끝에 남아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들의 젠더 감수성과 평등의식이 새삼 중요해진다. 어머니들이라고 칭했으나 전체 양육자들의 마인드와 태도를 말한다.
인간답게 살도록 이끌겠다는 취지가 무색할 지경으로 성별과 성차를 기반으로 그동안 너무나 다른 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해온 것이다. 이제는 소통을 매개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거듭 만들어야한다. 남녀뿐 아니라 ‘세대’에 따른 차이와 인식 바꿈이 수반되어야지 두 손 놓고 있다간 공포정치로 치닫고, 폭력과 위압과 희생 강요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 몰이해와 닫힌 마음과 선긋기만큼 소외와 배제와 차별의 괴물 역사를 키우는 것도 없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바람은 그저 동일한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잘려나간 부분으로, 도구로 하대받길 원치 않는다. 기존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성’의 보호와 혜택, 존재감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저자의 고백 중에 <시녀 이야기>의 후유증과 잔상 파동으로 마음을 울렸던 부분을 소개한다. “나의 존재는 그대로인데, 외피가 바뀌자 세상은 나를 다르게 대했다(132).”
일하던 엄마 워킹맘일 때는 몰랐던 ‘전락’과 무지막지한 박탈을 암시한다. 목소리가 지워진 공간에서 그들은 그림자 노동이자 ‘투명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여러 활동 제약과 방해 공작에도 자기 언어 찾기에 집중한다. 자신이 깨어 노력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아들과 딸의 삶에 드리울 그림자를 불 보듯이 알기 때문이다. 배우고 조직 구성원으로 살았던 경험을 마치 운 좋은 한시절의 꿈으로 한정지어선 안 된다. 존엄하게 생명체이자 노동자로 언제든 바로 서도록 사회가 지지해주어야 한다. 성별을 떠나.
“이 집안에서 유일한 나의 방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깊고 조용한 밤뿐(126)”이라는 절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시녀 이야기>에서도 화자의 밤의 회고와 기억이 너무나 중하다. 이 말이 밤의 낭만으로, 혹은 개인의 더 많은 노오력 요구로 읽혀서도 안 될 일이다.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소통과 연결감의 갈구로 아프게 공감하며 읽어야 마땅하다. 다행히도 SNS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여성들이 한정된 시공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내기 창구가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유지가 비이성적인 적의와 폭언 등의 배설로 더럽혀지고 버려질 위기에 처해있다. 가짜 뉴스와 헛소문이 판치며 사람의 멘털과 시간을 잡아먹고 소모시키는 세상에서, 개인의 리터리시 능력은 또 그만큼 소중하고 확실한 생존 무기가 된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젊은 남성들이 누리지 못한 가부장제의 달콤한 환상은 여성들이 끼어들어 훔쳐간 게 아니다. ‘가정의 천사’라는 19세기 여성을 가두던 도식이 가부장제 최전선에 놓인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에게 똑같이 씌워지고 옮아간 것일 뿐이다. 무슨 소리인가 난감할 텐데, <시녀 이야기>에서는 군인을 ‘천사’로 호명한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이며 누구를 겨누는지 알고 전장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협력하고 조율해 공생할 상대, 즉 삶의 파트너에 대해 질문하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게 맞다. 사랑하며 함께 꿈을 이루어갈 파트너(부수자 아님)를 만들고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할 시대이다.
글쓴이는 글의 마지막이 여운과 울림으로 갈무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강변에 그친 건 아닌지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성장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겪는 다양한 경험, 환경 변화, 자신의 선택에 따라 계속해서 무언가가 되어가는, 어딘가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우리의 존재는 운명적으로 맞이하는 역사 앞에서 어떤 삶, 세상을 지향할 것이냐에 따라 비로소 명료해진다(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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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고통] 글쓰기 책을 읽었다. 글이 술술 써지기는커녕 뭔가 보여줘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에,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쓴다. 지금도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다. 저자가 느꼈을 부담감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 테지만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좋은 책에 화답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오히려 글문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과한 욕심은 내려놓고 다시 꿋꿋이 글을 써보자. [나의 언어를 찾아서]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 일련의 과정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책읽기'가 목표였다. 그저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이 되려 했다. 허나 글 쓰는 맛을 알아버린 지금은 '책읽기'보다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책을 빛나는 주인공으로 연출하길 원했을 출판사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의 서평에서 책은 소품에 불과하다. 정물화를 그리듯 빛과 그림자 모두를 담아낸다. 그리고 주인공인 '삶'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킨다. 책이라는 글감으로 글 쓰는 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글쓰기 책과는 다른] 책「여성의 글쓰기」는 잘 쓰는 법을 쭉 열거하는, 흔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글로써 직접 보여준다. 어떠한 틀에 맞춰 천편일률적인 글을 쓰도록 강요하기 보다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찾아 자신만의 글을 쓰게끔 격려한다. 전자가 남성성이 강조된, 흔한 글쓰기 책이라면 후자는 여성성을 강조한 글쓰기 책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엇이 우월한 글쓰기인가를 따지는 책은 아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의 글쓰기를 세상 밖으로 꺼낸 하나의 목소리일 뿐이다. [여성의 삶을 말하다] 저자는 "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이다."(8쪽)라고 말한다. 억압적인 여성의 삶 속에서 그나마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아이에게, 가족에게 맞춰진 여성의 삶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와 저자를 포함한 다수의 여성들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가 될 수 있으니. 여성이 글쓰기 적합한 SNS 공간도 있겠다, 글쓰는 맛을 본 여성이라면 해방감을 주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글쓰기를 결코 중단할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을 말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의도치 않아도 여성의 소외를 말하게 된다. 엄마가 된 여성들에게 소외는 더 이상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일상이기에. 이전에 비하면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여성들은 소외로 고통받고 있다. 한편 저자는 소외의 경험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다. "이 경험들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입장에 서는 상상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몰랐을 것이다."(133-134쪽)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시작한 개인의 글쓰기가 더 나은 삶을 외치는 사회적 글쓰기로 이어지는 것은 모든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일 테지만, 여성의 글쓰기는 보다 소외된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모두의 평등한 삶을 위한 외침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즉, 이 땅의 모든 아들들을 위해서도 여성의 글쓰기는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여성들이, 특히 엄마들이 이 책을 읽고 당장 글쓰기에 돌입하길 바란다. 하나 하나의 목소리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길 바란다. [글쓰기의 즐거움] '어떻게 쓸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들으려 했건만 되려 답을 해야만 했다. 이 책은 글쓰기의 고통을 덜어주기 보다 그 고통을 충분히 경험토록 한다. 분명 고개를 수도 없이 끄덕이며 읽었음에도 몇 날 며칠을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난 지금은 후련하다. 왠지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잘 쓴 글이든 아니든, 누군가가 읽든 읽지 않든, 존재의 가치를 증명했음에 만족한다. 고통 이후 찾아오는 이 쾌감에 중독된 것일까. 더 이상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언어를 찾아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글 쓰는 사람이라 하기 부끄럽지 않을 순간이 내게도 오지 않을까. #여성의글쓰기 #이고은 #생각의힘출판 #인문학 #글쓰기 #글쓰기책 #나만의언어 #여성의언어 #여성의삶 #여성의소외 #소외의경험 #사회적글쓰기 #나만의글 #글쓰기의고통 #글쓰기의즐거움 #엄마의글쓰기 #엄마추천도서 #서평 #책리뷰 #독후감 (원문 : https://m.blog.naver.com/counselor_woo/221754176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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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글쓰기> 는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결혼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서 퇴사를 한 "글쓰는 사람"의 책이다.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 라고 책의 표지에 쓰인 글처럼, 이 책은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는 법을 알려준다. 작가는 남성중직적 조직 사회에서 '여기자'로 일하며 기사를 쓴 경험을 토대로 책을 풀어나간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을 울리는 글과 좋은 글을 쓰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았다.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문단의 분량을 비슷하게 구성하여 균형을 맞춰야 하고 소리내어 읽어 어색한 점이 없어야 하고 계속 수정해야 하고,.. 사실 나는 신문도 잘 읽지 않고, 뉴스도 보지 않고 정치에도 관심 없고 책도 많이 읽지 않고, 누워서 영화나 보는 게으름 사람이다. 하루하루 낭비해온 시간이 아까워서 요즘 책도 읽고 서평도 쓰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여성의 글쓰기>를 읽으니 '그래, 모든 하면 되겠지, 처음부터 잘 되는 게 어디 있겠어'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여러번 읽으며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읽기, 책 읽기가 즐거운 이유는 우주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설령 낯설고 괴이한 글이라고 하더라도 읽는 이 역시 글쓴이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마음에 들어서 밑줄을 쳐놓았던 구절. 우주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그 사람에 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기자로 일해왔던 작가의 세계에 들어가서 함께 분노하고 질문하고 배우는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기레기' 라는 용어가 익숙해진 지금, 그런 와중에도 기사를 쓰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언론사 내부와 뉴스 유통 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또 알게 되었다. 1장의 '나를 확장하는 글쓰기' 에서 작가는 " 인생을 눌러 담아 쓰는 글에는 확장된 나의 세계가 담긴다" 라고 하였다. 사실 일기만 보아도 그렇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몇년 전의 나의 세계가 일기에 담겨있고, 읽어보면 그 시간이 눈앞에 펼쳐지듯 떠오른다. 쓰지 않으면 남지 않고 스쳐지나갈 세계이다. 2장 '질문하지 않는 사회' 에선 "정말 부끄러운 일이란 잘 모른다는 사실보다 잘 모르면서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 있다. 질문을 한다는 게 참 어렵다. 모르는 게 있어도, 손을 들고 물어보기 어렵고 남들은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거 아닐까? 멍청해보이지는 않을까? 별 생각이 들고 심장이 쿵쿵 뛴다. 하지만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내가 모르는 건 옆 친구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솔직한 질문이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든다는 작가의 말을 새겨, 나도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 개인으로서 훌륭하던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기점으로 승진 및 경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저자처럼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성기자는 결혼 후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드물고 언론계는 더욱 더 남성중심적인 구조를 띄게 된다. 이런 언론 조직 내 성별 불균형은 기사에서 반영되고 같은 사건이라도 주체의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로 평가되기도 하고 성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은 무뎌진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이야기 하는데 자신이 '더 큰 목소리를 냈었더라면' 이라고 말하는 구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게 저자의 책임일까, 주목받는 상황에서 지적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지적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책을 읽으며 배운 점도 많고 느낀 점도 많고 그만큼 밑줄 친 구절도 넘쳐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내가 썼던 글을 다시 보면 낯선 사람의 글처럼 낯설고 새롭고 또 부끄럽기도 하다. 이 글도 다시 보면 웃음만 나오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언어를 찾고 글을 꾸준히 써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쓰기#여성의글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