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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서 일등을 해도 9천 위안을 내야 다닐 수 있는 '9천 반'. 들어가도 '갑, 을, 병, 정' 네 개 반으로 나눠진 '학교 안의 학교'. 무시무시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학생들. 때론 치열하고 때론 비열하다. 1년 전 방영한 스카이 캐슬이라는 유명 드라마의 OST, "We all lie~"가 절로 귓가에 들려오는 소설, 바로 상쉐타오의 『9천 반의 아이들』이다. 스카이캐슬을 보면서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인물은 혜나였다. 타고난 머리와 뛰어난 눈치로 다져진 강한 생존력. 그녀는 극 중 동갑인 친구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세상을 이용할 줄 아는 소녀로 나온다. 한마디로 "어른 찜쪄먹는 학생" - 그게 바로 혜나다. 그래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이 '혜나'라는 인물에 대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어린애답지 않게 너무 영악하다, 또는 불쌍하다로. 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어쩌다 이런 세상을 잘못 만나 저 어린아이가 저런 선택까지 할까, 왜 사회와 어른은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했나.' 안쓰러움이 분노가 되고, 그것이 드라마가 방영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상쉐타오의 『9천 반의 아이들』을 읽으며 또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사회는 그들을 인정해주지 못하나." 글의 서두를 어른 찜쪄먹는 혜나로 시작했지만 사실 『9천 반의 아이들』에 나오는 안더례와 리모는 그녀의 성격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천진난만 딱 그때의 장난기 많은 남학생들 같다. 이들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교실의 맨 뒤, 칠판이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같이 앉아 중학교 3년을 함께 보낸다. 처음에 리모는 안더례가 맘에 들지 않았다. 기름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안더례의 꾀죄죄한 몰골과 그에게서 풍겨오는 쿰쿰한 냄새에 그를 멀리하지만, 어느새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다가간다. 안더례 또한 마찬가지. 축구를 해도 무조건 리모에게 패스, 리모가 보지 않아도 리모에게 패스, 보이지 않으면 아예 밖으로 공을 보내버리는 한마디로 리모 덕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그들의 학창 시절과, 또 그 이후 리모가 마지막으로 안더례를 만나게 되는 날 까지를 담고 있다. 글의 부제를 "숨겨진,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정한 것은 순전히 안더례 때문이다. 앞서 스카이캐슬의 혜나를 가져온 것도 그 이유와 같다. 안더례는 9천 반의 괴짜다. 중학교 첫 수업 날, 쑨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린 이유로 3년 내내 교실의 맨 뒤에 앉아 책상에 낙서를 하는, 선생님들이 봤을 때 '꼴통'인 인물이다. 아이들의 생각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는데, 어느 날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상황이 생긴다. 안더례가 기가 막히게 선생님이 반으로 오는 타이밍을 아는 것이다. 안더례가 "쉿, 선생님 오신다."라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왔다. 신통방통한 그의 능력에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며 몰려가 물어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선생님의 안경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알아냈다고 답한다. 과학적 지식과 수학적인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할 일이다. 이렇게 똑똑한 안더례의 수학 성적은? 무려 100점 만점에 32점!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것을 풀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더 간단한 풀이 과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뒤에 남은 문제를 깡그리 잊고 몰두한 것이다. 그에겐 남들보다 높은 몰입도, 풍부한 호기심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끈기가 있다. 또한 후에 리모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어른들의 잘못을 주장할 줄 아는 힘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게 보인다. 아니, 아무도 그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 리모를 제외하고는. 리모 또한 현실에 치이자 그를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무엇이 안더례를 가려지게 만들었을까? 왜 사회는 그를 몰라볼까? 어딜 가나 주목받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특출난 인간형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규칙을 잘 따르며 사회가 정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치에 부합하는 사람들이어야만 그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획일화된 시스템 속에서 쳇바퀴 마냥 굴러가는 입시 경쟁의 고리를 겪어보지 않은 학생들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주변의 수많은 언니 오빠, 동생들이 그랬다. 여기에 뒤처지거나 순응하지 않는 학생들은 낙오자, 실패자로 찍힌다. 그들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9천 반의 아이들』은 이것에 대한 해답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해, 학교와 어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혜나는 테두리 안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회로부터 지켜지지 못했다. 안더례는 리모를 밀어 넣었지만 그 자신을 밀어 넣진 못했다.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들을 져버리게 만든 건 누구인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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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 솽쉐타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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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몰라. 난 답을 위해 살지 않았어. 그냥 살아갈 뿐이야. 그리고 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 살펴보고. 난 흘러가고 있어."
《9천 반의 아이들》은 총 10편의 단편소설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개중에는 흐름이 이어지는 소설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혀 별개의 인물들이 등장해 전개를 이끌었다. 각 단편들의 분위기는 차분하며, 어딘가 착- 가라앉아 있다. 또한 기묘하다. 지금으로부터 조금은 과거의 시간이라는 현실을 바탕으로 구성한 소설들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고 해야 하나. 비극 같은 희극, 희극 같은 비극으로 맺거나 열어둔 채 맺는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단편이라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고 호흡임에도 남기는 여운은 상당히 짙고 길어, 곱씹어 읽는다고 평소 책을 읽는 속도보다 좀 더 느리게 장을 넘겼다. 유독 좋았거나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읽고 넘긴 뒤에 다시 한 번 더 돌아가서 읽는 바람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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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 (事必歸正)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역시 책의 제목이자 처음을 장식하는 '9천 반의 아이들'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을 해도, 입학 시험에서 1등을 해도 9천 위안을 내야 다닐 수 있기 때문에 '9천 반'이라 불리게 된 학교를 배경으로 펼치는 이야기. 주인공인 '리모'가 화자인 이 소설은 주인공 보다는 그의 친구로 등장하는 '안더례 (안더순)'이 더 흥미롭게 묘사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리모가 보통과 평범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안더례는 여러 의미에서 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적으로나 인물적으로나 모로 보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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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만의 3점슛 성패 여부는 실존하는 인물에게도 허구의 인물에게도 흥미를 끄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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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는 9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당시 중학생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90년대 중국의 중학생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중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 솽쉐타오의 소설집 <9천 반의 아이들>에 그 힌트가 나온다. 표제작 <9천 반의 아이들>의 주인공 '리모'는 1997년 중국 둥베이 지역의 한 중학교에 진학한다. 당시 중학교 배정 방식은 이랬다. 명목상으로는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면 자동적으로 진학할 학교가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중학교에는 일반 학급과 구별되는 갑, 을, 병, 정 반이 따로 있었다. 갑, 을, 병, 정 반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보고 별도로 9천 위안의 입학금을 내야 했다. 돈 있고 교육열 높은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일반 학급이 아닌 갑, 을, 병, 정 반에 넣고 싶어 했다. 리모의 부모도 그랬다. 그 결과 리모는 시험을 보고 입학금을 치른 뒤 '정'반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리모와 같은 아이들을 '9천 반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정'반에 배치된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가 부유하고 공부도 곧잘 했다. '안더례'라는 아이만 예외였다. 안더례는 옷차림도 후줄근하고 학업 성적도 나빴다. 어떻게 안더례 같은 아이가 9천 위안을 내고 9천 반에 들어온 건지 다들 의아해했다. 안더례는 비록 성적은 나빠도 머리는 좋고 말싸움도 잘했다. 그런 안더례를 담임 교사는 대놓고 미워했다. 복도에 면해 한기가 들어오는 교실 뒷문 옆자리에 3년 내내 안더례를 앉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반에서 사고를 친 아이는 안더례의 옆자리에 앉혔다. 리모도 안더례의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학교에 가져오면 안 되는 <신조협려>, <슬램덩크>, <제3군단> 같은 책들을 학교에 가져왔다는 누명을 썼을 때의 일이다. 이어지는 <평원의 모세>라는 단편 역시 90년대 중국의 실상을 보여준다. 리페이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마다 옆집에 사는 좡수의 어머니 푸둥신이 리페이의 집으로 찾아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한다. 푸둥신은 리페이가 머리도 좋고 글도 잘 쓴다고 칭찬하면서, 리페이가 열심히 공부해 시험에 합격해도 9천 위안이 있어야 좋은 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리페이의 아버지는 지금 임시 해직된 상태라 돈을 낼 여유가 없으니 자신이 돈을 내주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때만 해도 푸둥신이 전직 대학교수의 딸이라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와 남편이 얽힌 비극적인 과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 밖에도 90년대 중국의 실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총 열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읽어도 좋고, 현재의 중국 상황과 대조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을 작가의 길로 이끈 스승들에 관해 쓴 작가 후기도 뭉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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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시간을 거슬러 중학교 2학년으로 돌아간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모두가 조금씩 낯설어 하는 그때 서슴지 않고 먼저 말을 걸어주던 한 친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특별한 아이였던 것 같다. 공부에는 큰 관심은 없어 보였던 그였지만 유독 영화에 관한 것이라면 말리지 않는 이상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녀석이었다. 특히 그는 홍콩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사실 그때 그 시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홍콩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홍콩 느와르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이란 마니아들에게는 여전하다. 그렇게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의 영향으로 나 또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10번, 20번을 보고 또 보는 습관 같은 취미는 그때부터 생긴 듯하다. 솽쉐타오. 중국의 신예 작가 중 한 명이다. 작가가 되기 전 그는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일하는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파트 계약금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응모했던 공모전에 당선되며 문단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작가로 밥을 먹고 살고 싶다.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끝내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2012년 '타이베이 문학상'을 시작으로 2014년 '백화 문학상', 2017년 '왕쩡치 중국어 소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신예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이 책은 그에게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을 비롯하여 그간 써온 단편들을 한데 묶어 놓은 소설집이다. 소설집의 첫 장을 여는 이야기는 <9천 반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다. 이야기는 90년대 말 중국 둥베이 지역의 조금은 특별했던 교육 제도를 배경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두 주인공의 조금은 특별한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과 달리 시험에서 1등을 하더라도 별도로 9000위안의 내야 입학이 가능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학교를 '9천 반'이라 불렀다. 그 당시 9000위안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려고 기를 썼다. 그 와중에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끌어모은 돈으로 입학한 주인공 리모와 안더례. 두 주인공의 만남은 특별했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던 안더례는 교탁 앞으로 불려 나온다. 담임 선생님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논리 정연함으로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안더례는 제일 뒤쪽 구석자리로 쫓겨나고 만다. 리모에게는 같은 반에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였는지 그녀가 알지 못하게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하여 그녀의 책상을 정리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등교한 그때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일로 인해 리모는 안더례의 짝꿍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나름의 주제와 메시지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이 책의 제목과 똑같은 <9천 반의 아이들>을 꼽고 싶다. 그 이유는 앞서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작품을 읽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두 주인공 특히 안더례의 모습에서 그때 그 시절 사회와 교육 제도의 부조리함을 빗대는 해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안더례의 국기 게양대의 연설이다. 우리로 치자면 국민학교 시절 조례 시간에 학생 대표로 연단에 서는 일이다. 보통의 아이들의 연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면 안더례는 그렇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안더례의 격려와 도움으로 리모는 시험에서 1등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 유학생으로 갈 기회가 생기지만 담임 선생님의 교묘함으로 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리모는 억울하지만 일개 학생 신분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안주하고 말지만 안더례는 대자보를 통해 교내에 공론화 시킨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국 리모는 싱가포르 유학생이 될 수 없었다. 작품을 읽고 난 후 두 주인공의 학창 시절과 그 이후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작금의 현대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소설 속 학교가 각종 제도로 점철된 사회를 대변한다면 생활화는 주인공은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안에서 한 명은 현실에 안주하고 틀에 맞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반면 다른 한 명은 틀을 벗어나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요즘 사회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미래 지향적인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안더례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면서 그를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다른 존재로 여긴다. 소외시킨다. 만약 안더례가 그를 진짜 알아봐 주는 환경에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어땠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소설의 엔딩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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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의 내밀한 현실을 개성 있고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로 조직해낸 중단편의 힘! 묵은 기억의 더께 속에서 발견된 불완전한 청춘의 초상과 생의 저변을 관통하는 쌉쌀한 정서의 이미지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물리적인 시간을 거슬러 끊임없이 과거를 향해 내달리는 존재들인 것 같다. 평온했던 내면을 거세게 뒤흔드는 과거의 어느 순간들, 어느 누가 툭 내뱉고 달아나버려 더 이상 진의를 알 수 없게 된 말들, 때때로 비겁했고 모른척하는 게 더 쉬웠던 낯부끄러운 일면들, 그 모든 것들에 기어코 다가가려하는 시도들을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는 일이 결코 기쁘지도, 그렇다고 바뀌지도 않을 거란 걸 잘 알지만, 우리는 그 시간으로 하여금 오늘이 안녕하고 또 내일이 더욱 안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비롯하여 지금은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모르나 어쩌다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모든 그대들이. 소설은 그리 말한다.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고. 어떤 식으로든.
지나간 시대 속에서 살아냈고, 또 살아나갈 사람들의 이야기
『9천 반의 아이들』은 2017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모옌과 함께 ‘왕쩡치 문학상’을 수상하며 중국 문단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신예 작가의 중·단편 대표작을 실은 소설집이다. 소설집에는 표제작 『9천 반의 아이들』과 백화 문학상 수상작인 『평원의 모세』를 포함해 열 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중국 근현대사와 오늘까지 이어지는 내밀한 현실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개성 있고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로 완성시킨 작품들이 두드러진다. 이야기의 구성은 대부분의 작품이 이삼십 대의 화자가 과거 십 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부모 세대가 겪었던 문화 혁명 시절의 잔상과 국영 기업의 몰락, 기나긴 경기 침체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가난, 과열된 입시 경쟁과 욕망, 충동과 분노로 비틀린 청년들의 자화상 등의 주제를 다루어 일종의 성장 소설이자 세태 소설에 가까운 느낌이다. 덕분에 시대적 배경과 중국이라는 사회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낯설지 않은 기시감과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쌉싸름한 뒷맛을 남긴다.
표제작 「9천 반의 아이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과 달리 시험에서 1등을 한다 해도 별도로 9000위안을 내야 입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9000반’이라 불리는 학교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당시 9000위안이란 돈이 결코 적지 않은 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이런 학교에 등록을 하고 싶어 했다.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아이들은 성적에 따라 갑, 을, 병, 정 네 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주인공인 ‘나’는 정 반에서 소위 문제아라 찍힌 안더례와 함께 교실 맨 뒷자리를 함께하게 된다. 안더례는 천재라 여겨질 정도로 이과 영역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 종종 아이들의 놀라움을 사지만, 선생님 앞에서 부득부득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전교생이 돌아가며 하는 연설에서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연설로 교장으로부터 공분을 사 학교 입장에서는 골칫거리 같은 아이였다. 하지만 유독 주인공인 ‘나’에게 만큼은 호의를 감추지 않아서, 성적이 떨어지고 있는 ‘나’를 부추겨 다시 한번 공부를 해보자고 한 것도, 정말로 1등을 하자 정작 본인보다 더 좋아해준 것도 그였다. 그러던 어느 날, 1등에게만 주어진다는 해외 연수 특전을 ‘나’가 아니라, 쑨 선생이 쑤이페이페이로 바꿔치기 하기 위해 점수까지 고친 것을 고발하기 위해 안더례가 스스로 교장실 앞에 대자보를 붙였고, 이 일로 안더례와 ‘나’의 부모님까지 총출동하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중학교 자격 시험에서는 역사와 정치를 안 봐. 역사와 정치 수업은 들러리야. 반 학기 수업만 듣고 나면 책은 팔아 버려도 돼. / 「9천 반의 아이들」 중에서 22p
우리 학년은 갑, 을, 병, 정 네 반으로 학생 수가 모두 합쳐 2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빼어나게 예쁜 여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 모두 돌아가며 게양대에 올랐고, 그중 몇 명은 이미 여러 차례 행사에 동원됐다. 교장은 예쁜 애들은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는지 2학년이 되자 자신이 직접 국기를 게양했다. 매주 월요일 우리는 그가 특별 제작한 흰색 제복을 입고 흰 장갑을 끼고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가 수고한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으며 건강하기를 희망한다는 표시로 박수를 쳤다. / 「9천 반의 아이들」 중에서 36p
분명 안더례는 여러 면에서 괴짜 같은 구석이 많지만, 시작부터 불공정한 경쟁의 시작을 부추기는 어른들과 사회의 관행을 꼬집으며 ‘진실의 목소리’를 대변할 줄 아는 유일한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경쟁과 부정으로 얼룩진 현실 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눈과 목소리로 이야기할 줄 아는 이 특별한 아이는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불순분자였고, 섞일 수 없으니 마땅히 배척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안더례가 교실 끝으로 내몰리고, 학교로부터 외면당함으로써 결국 사회 속에서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이유가 되었다. 「9천 반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아닌 이름 없이 자행되는 반칙에 기습을 날리는 단편 「기습」도 이와 유사한 결을 지닌 작품으로 등장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반칙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유저를 실제로 찾아가 응징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불공정한 경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타협이 없는 충동적이고 비틀린 청년들의 자화상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몇 년 동안 계속 집에서 낮에는 자고, 부모님이 잠이 든 후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기하와 전자석을 연구, 분석하고 또 몇 년은 우주 속 ‘반물질’이란 존재를 증명하면서 이러한 연구와 발견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알리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더더욱 사회에 나가 밥은 먹고살 수 있도록 야간 학교에 들어가거나 기술을 익힐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자기 부모가 돼지고기, 돼지갈비, 돼지 선지를 판매해 번 돈으로 먹고살았다. / 「9천 반의 아이들」 중에서 56p
지식인을 박해하고 무산만근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 다만 더 이상 적나라하게 떠벌리지 않고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내 생활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에 동의할 순 없었다. 나는 그가 말한 내용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대의 것으로, 여전히 사람들은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가 겪은 그런 종류의 고난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너무 작은 존재잖아. 시대의 흐름에 맞설 순 없어. 우리는 기대와 같은 방향을 봐야 해.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부터 반듯하게 서야 한다는 거지. / 「9천 반의 아이들」 중에서 58p
“반칙?” “난 그 앨 볼 수 없었고, 그 앤 날 볼 수 있었어. 가림막 두 겹 사이로 걔는 날 볼 수 있었다고. 걔가 먼저 내 다리를 때리고 나도 내 머리를 때렸어. 처음에는 내가 운이 안 좋은 줄 알았어. 걔가 날 맞혔고, 게임에서도 난 운이 안 좋구나, 싶었어. 그러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그런 소프트웨어가 있더라고. 몇 위안이면 살 수 있었어. 그래서 나도 샀어. 다른 사람 IP를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 그가 몇 호에 있는지 찾아냈어. 2039호였어.” / 「기습」 중에서 280p
시대적으로 타고난 불운한 가족의 역사와 절뚝발이처럼 기울어진 삶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들도 다수 등장한다. 이 중 「평원의 모세」는 택시 기사 다섯 명이 잇따라 죽은 사건을 파헤치던 경찰관이 의문의 사고를 당하게 된 경위를 쫓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여러 인물의 삶이 퍼즐처럼 흩어졌다가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마오 주석상의 주석 동상을 철거한 뒤 태양조가 설치되고, 또 그것이 철거되어 마오 주석 동상이 다시 세워지기까지 중국 인민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고, 또 과거의 과오들이 어떤 식으로 현재의 삶으로 대체되는지를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주어 소설집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라 손꼽을 만하다.
특히 푸둥신이 이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리페이에게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진심을 담아 열심히 생각하면 높은 산, 넓은 바다도 널 위해 길을 내줄 거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어”라며 책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씀으로써 소녀에게 생각하는 방식대로 읽고 쓰기를 독려하는 장면은 비록 현실은 비루하나 낙오하지 않고 스스로 골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드넓은 세상이 길을 내 줄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인상에 남는다. 소설 속에서 푸둥신은 일머리나 일손이 없어 책을 좋아하고 끝내 가정이 아니라 세상 밖에서 살기를 선택한 현실감 없는 인물처럼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이 고단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던 그녀에게서 우리는 더 큰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다. 해방 전에는 우리 시에 있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나는 철학에 문외한이다. 그녀의 아버지와 주변 인물들은 ‘반우파 투쟁’ 당시 유심론자로 몰려 타도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이 그녀 아버지의 책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다 아궁이에 태워버리거나 창문을 바르는 데 썼다고 한다. 게다가 문화 혁명 때는 신체적으로 가학 행위를 당해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혁명이 끝나도 복권 되었지만 더 이상 강단에 설 수 없었다. / 「평원의 모세」 중에서 65p
“옛일을 회상하는 거겠죠.” 그가 말했다. “아뇨, 현실이 자기들 생각 같지 않아서일 겁니다.” “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 일을 핑계로 개인적인 분풀이를 하고 있을 수도요.” 그가 말했다. “네?” 그가 말했다.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바닷물이 오염되니 돌고래가 해안으로 떠밀려 와 자살을 한다고 합디다. 뻣뻣하게 그렇게 널브러져 죽어 버렸다고.”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나약한 사람들도 모두 그래요. 사실 돌고래도 이가 있잖아요. 나이가 일흔이 넘었지만 칼 한 자루 들 힘은 있어요.” / 「평원의 모세」 중에서 102p
이 외에도 거리를 걸어가다 운이 없으면 유탄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던 시절, 헤어 나올 수 없는 궁핍한 삶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장기판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찾았던 아버지와 시절의 그림자를 동시에 어루만지는 「대사」, 말끝마다 “흥미롭지 않아?” “재미있지 않아?” 하며 기우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듯한 사내가 등장하는 「절뚝발이」, 이사를 갈 때마다 엄마가 지고 다닌 나무 상자 속에 실은 한 푼 값어치도 없는 흙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며 머물 데 없이 떠도는 불안정한 가족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본 「건달」이라는 작품도 인상에 남는다.
나는 내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와 생계를 위해 수없이 많은 일을 했다. 생계를 위한 일은 결코 고달프지 않다. 어떤 식의 사고를 습관화하고 그 습관에 따라 생활해 가는 것, 그것뿐이다. 힘든 건 이런 생활 속에 형성되는 좌표다. 위든 아래든, 좌측이든 우축이든,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생활이 모두 똑같다. 그래서 조금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계속 이렇게 생활하다가 어느 날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긴 잠」 중에서 217p
탄가루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진흙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아직 건장한 뼈가 아니라 힘껏 구르지 않는 한 그 위를 걸어갈 수 있었다. 석탄 산 하나를 넘자 탄을 캐는 지게차가 서 있었다. 발자국이 그중 하나를 타고 이어져 있었다. 라오라는 분명히 이 위에 잠시 앉아 있었을 거야. 나도 그 위로 올라갔다. 모든 것이 녹슬어 있었다. 바퀴는 이미 찌그러지고 지게차 안에는 빗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곳은 레닌그라드가 아니라 잊힌 세계였다. / 「그라드를 나오다」 중에서 318p
대체로 중·단편 소설집의 경우 표제작에 무게감이 실리다보니 여타 수록작에서는 힘이 쭉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9천 반의 아이들』은 끝까지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많아서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특히 중국 소설에 가지게 되는 일련의 기우들을 과감히 잊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작가인 만큼 앞으로 중국의 목소리를 담은 밀도 높은 소설을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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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평범함 사람들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들 중국 작가들의 소설들 중에서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작품들이 많다. <9천 반의 아이들>이 나에게는 딱 그러했다. 우리에게 이질적인 중국 문화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과의 정서가 비슷한 듯한 그들의 문화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서 공감, 희망, 좌절,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총 10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그 중 단연코 책의 첫 번째 소설 <9천 반의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중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리모의 시선에서 그러지는 중학생 시절이다. 안더례라는 독특한 친구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뇌가 너무 뛰어나 현실 세계가 받아 들이지 못하는 듯한 안더례의 천재성은 가히 놀랍다. 수학적 사고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축구에는 젬병인 안더례다. 안더례의 도움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한 리모에게 해외 유학의 기회가 찾아온다. 허나 선생은 불법 과외 중인 쑤이페이페이를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1등으로 만들어 해외 유학을 보내려 한다. 이를 눈치 챈 안더례는 리모를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간다. 60페이지 정도 되는 내용이지만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고 감정 이입이 되었다. 가장 낮은 시선에서 불의에 대항하고 투쟁하지만 거를 수 없는 모습이 중국 사회의 현 상황을 적절한 비유로 반영한 듯 싶었다. 사회 주의 아래 자본 주의 사항이 결합된 독특한 중국의 모습이 잘 투영되었다.
눈썹 꼬리 부분의 사마귀로 인해 '깜장 털'이란 별명이 있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 같은 자리의 사마귀를 가진 똑 닮은 아들. 이 부자의와 장기의 이야기를 그린 '대사(大師)'는 읽는 내내 매우 흥미진진했다. 희대의 장기왕 아버지는 뛰어난 장기 실력자다. 대결에서 삼세판을 두며 2판을 이기고 1판을 져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결코 내기 장기를 하지 않으며 선물도 일체 받지 않는다. 이런 확고한 철학으로 장기를 두는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가 기력이 쇠하여 다시는 장기를 두지 않는다 한다. 아버지의 실력을 빼닮은 아들은 다리 한쪽이 없는 낯선 이와의 장기 대결에서 패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서게 된다. 장기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 갈 수 있음에 놀라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연과 필연이 겹치는 만남과 그 운명의 마지막 대결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왔다. '깜장 털'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그 간 얼마나 노력을 하며 장기 실력을 다져 왔을까 싶다. 짧게 이야기가 끝나는 것만 같아 아쉬웠다. 할아버지에게 밤새 옛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
굉장히 독특한 소설 '긴 잠'이다. 허무맹랑 하기도 하고 마치 꿈 속에 다녀온 듯하기도 하며 신화의 내용을 담기도 한 듯한 오묘한 스토리가 기억에 남는다. 샤오미는 전 애인이다. 샤오미와 바람난 랴오샤오는 시인이자 내 친구였다. 랴오샤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의 유언에 따라 나는 샤오미에게 가는 길이다. 그리고 랴오샤오가 삼킨 사과를 지키기 위해 총알이 난무하는 샤오미의 집에 있다. 소설 말미에 '긴 잠'이라는 시를 계속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서 알듯 말듯하면서도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시를 나는 계속 읽게 되었다. 엄청난 일을 겪은 와중에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업무와 회사를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여운을 길게 가져가고 싶다. * '9천 반의 아이들', '대사', '긴 잠' 이외에도 '평원의 모세', '절뚝발이', '건달', '기습', '큰길', '그라드를 나오다', '자유 낙하' 까지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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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4. 솽쉐타오 『9천 반의 아이들』 : 민음사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나’는 학창시절 오랜 친구인 ‘안더례’를 만난다. 다시 만난 안더례는 그날의 작은 사건으로 인해 ‘나’와 사뭇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삶의 노선이 휘어진 그를 보며 ‘나’는 학창시절을 회상한다. 치열한 입시를 통과해도 9천 위안(큰 돈)을 내야만 입학이 가능한 그들의 모교를 사람들은 ‘9천 반’이라 불렀다. 9천 반 입학 첫날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낙인이 찍힌 안더례는 교실의 맨 뒷줄 구석에 혼자 앉아야만 했다. 얼마 후 반에서 문제를 일으킨 ‘나’는 안더례의 옆자리를 차지한다. 교내 문제아로 낙인찍힌 ‘나’가 공부에 열의를 품게 된 것은 중간고사에서 1등한 학생에게 돌아갈 해외 연수 때문이었지만, 단짝 안더례의 응원과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소설 속 ‘나’와 ‘안더례’는 온전히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들을 기어코 해내고야 만다. 그러나 선생님의 부정으로 인해 ‘나’의 해외 연수는 무산된다. 분개한 안더례는 ‘나’의 일로 인해 1인 시위를 하고 교복을 벗는다. 상쉐타오의 소설집은 중단편인 <9천 반의 아이들>과 작가의 대표작인 중편 <평원의 모세>를 비롯해 열편의 중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9천 반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대사(大師)>, <건달>, <기습> 등 대부분의 단편들이 재독을 결심할 만큼이나 좋았지만, 특히 <평원의 모세>는 중단편에서 보기 힘든 압도적인 스케일과 단단한 플롯으로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9천 반의 아이들>과 <평원의 모세>는 기존에 읽었던 여느 단편 소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한 명작으로 이 두 작품만으로도 솽쉐타오의 소설집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확실히 신예 작가라 그런지 각 작품 마다 욕심을 낸 흔적이 보인다. 또한 소설집이라곤 하는데 소설마다 내포하는 바에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의욕이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의욕이 넘침에도 작가의 실력이 출중하니 재미와 의미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 솽쉐타오의 소설집 『9천 반의 아이들』에 실린 열편의 성장소설을 통해 느낀점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는 급변하는 세상 속 점차 사람 냄새를 잃어가는 중국의 현재 모습에서 이제는 잊혀져가는 중국 인민의 정서를 담아낸 것 같다. 어렴풋한 청춘의 기억을 상기하며 그가 담아낸 사람 냄새는 나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는 소설 속에 월등한 능력에도 스스로를 소외시킨 채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솽쉐타오는 의외로 제도권 밖의 삶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소설 속 낙오자들의 낙인은 과연 누가 찍는가. 결국 그들을 소외시킨 것은 ‘기준’일 것이다. 사회 보편적 기준은 그들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낸다. 그 원인이 <9천 반의 아이들>의 ‘안더례’처럼 부정한 것들로부터 정당하게 탈출하려는 시도일지라도.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9천 반의 아이들>의 안더례, <평원의 모세>의 리페이, <대사(大師)>의 아버지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와 다르지만, 같다.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 애잔하다. 어쩌면 내게 『9천 반의 아이들』을 완독 후 남은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서 ‘뫼르소’가 남은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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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한동안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책을 손에 잡은지는 한참 되었는데 활자를 읽지 못하고 지냈다. 책 한 장 넘기다가 다른 일이 있어서 우왕좌왕하고 병원에 쫓아다니는 일 또한 마음 한구석을 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고는 다시 내게 주어진 잠깐의 조용한 시간에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왜 그리 더디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던지.. 1983년 태생의 중국 작가 솽쉐타오 37정도의 나이면 젊은 작가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법학과를 나와 은행원이 되고 아파트 계약금을 치루기 위해서 상금을 겨냥한 소설을 3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어떻든 그의 작가입문 과정은 결코 문학적이거나 아름답지는 않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책을 가까이 하고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고 자신감이 없었을 뿐이지 그는 항상 작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중국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중국이나 일본을 같은 문화권이라 그런지 살아가는 모습이나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생활의 섬세한 부분은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 읽은 솽쉐타오의 작품집 <9천반의 아이들>에서 단연 돋보이는 소설은 <9천반의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외의 소설도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유독 이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입시현실과 학벌에 대한 부모들의 아낌없는 지원, 학교 내에서의 차별 등 우리나라의 현실과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들이 많아서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97년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나르이 70년대 상황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9천위안을 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학교안의 학교. 어찌어찌해서 부모가 마련한 9천위한으로 한 반에 모인 아이들. 그 중에 공부를 잘 하는 아이도 있고 집안이 좋은 아이도 있지만 돈도 없고 공부도 못하지만 9천위안을 낸 덕분에 들어온 아이들도 있다. 그 중에 첫날부터 선생님의 눈 밖에 난 꼬질꼬질한 아이 안더레와 나날이 성적이 떨어지고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골을 제외하면 중국도 자녀를 한둘만 낳아서 올인하는 스타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못지 않은 입시지옥을 경험하고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지원이 절정에 달하는 것 같다.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이들, 차별하는 교육현실도 적나나하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축구를 하면서 서로의 위안이 되었든 그들이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 안더레는 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중학교 때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그는 통제를 받았지만 가장 행복했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9천반의 아이들>을 시작으로 10개의 수록된 소설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가장 긴 소설인 <평원의 모세>는 화자에 따라 달라지는 시점이 독특했고 <대시>는 영화를 한 편 보는 듯, 짧은 소설인데도 장기를 두는 사람들의 모습, 마지막에 내기장기를 통해서 '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어보고자 한 사람 등등 극적인 요소가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현재 성인이 된 이도 있지만 모두 과거를 회상하고 성장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에 젊은 작가의 눈을 통해서 중국의 지금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중국의 현재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 저자의 필력이라면 다른 작품도 술술 읽힐 거 같다. 작품활동을 얼마하지 않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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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한 친구와의 만남, 그 친구와 만났던 학교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읽었다. 솽쉐티오 소설집《9천 반의 아이들》의 첫 번째 소설 <9천 반의 아이들>이었다. 입학시험을 보고 1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등록금을 9천 위안 내야 하는 학교다. 공부만을 잘해서가 아니라 적지 않은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 '9천 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주인공은 입학시험을 보고 '9천 반'에 들어갔으나, 그중에서 갑, 을, 병, 정 중 맨 마지막 정반에 들어간다. 같은 등록금을 내고 들어갔으나 다시 성적에 따라 구별된 반에 들어간 나는 아버지가 지어준 안더순이란 이름 대신 스스로 붙인 안더례라는 친구를 만난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9천 반에서 자신의 자리는 맨 끝자리라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성적은 더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하양 곡선을 그렸다. 부모님이 이곳저곳에서 모아 자신에게 투자한 9천 위안이란 무게가 벅찬 그는 축구를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성을 바라보기만 하며 주어진 현실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바빴다. "내 생활 전체가 빛이 바래면 다시 영웅이 될 거라는 망상에 빠졌다"라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마냥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돼. 넌 공부해야지. 우리 둘은 달라. 내가 말했다. 뭐가 달라, 공부 생각은 떨쳐 버린 지 오래야. 그가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우린 달라. 넌 희망이 있어. 다만 말을 잘 안 할 뿐이지. 그다음에 펼쳐진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안더례와 나의 만남은 한편의 영화 같았다. 마치 영화 <나의 소녀시대> 말미에 나오는 극적인 장면과 닮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9천 반 시절을 돌아보는 나의 시선에는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남다른 추억을 쌓아왔으나,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틈이 벌어졌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 화제는 중학교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안더례는 비록 꽉 채워진 완벽한 시간이 아니었고 많이 어그러지긴 했었지만, 그 시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솽쉐티오 소설은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친구와 관계, 아버지와 관계, 부모 간의 관계. 지금과 다른 과거의 관계를 더듬은 기억에는 무모하리만치 무언가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일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할 뿐이다. 감정의 흐름에 맞춰 나아가는 건 아니지만, 글이 그려내는 바래진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진솔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을 준다. 대체 언제부터 이 기억들이 이처럼 또렷하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을까? 아니, 대체 이 기억 가운데 정말 일어났던 일들은 무엇일까? 어떤 기억들은 그저 기억의 파편을 내 멋대로 조합해 놓고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다. <9천 반의 아이들>이 주는 몰입감도 좋지만 이 소설집에서 <평원의 모세>와 <대사>도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평원의 모세>는 각 인물의 관점을 오가는 형태라 읽는 내내 기억의 파편들을 오가며 상황과 인물을 관찰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중국 소설이라 낯설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국경을 넘어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어른이 되어 지난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아릿함 그리고 씁쓸함이 주는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
![]() "중국소설추천, 9천 반의 아이들 (서평2019_78)" 처음 일본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이번에 읽은 중국 소설도 조금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동안 중국 소설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이 소설은 제가 그동안 읽었던 중국 소설과는 달리 에세이 같은 느낌의 단편소설이라 좀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답니다. 장편소설을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이번에 읽은 [9천 반의 아이들]은 총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3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들과 100페이지 정도 되는 [평원의 모세]가 있는 작품이랍니다. 이 소설의 메인인 [9천 반의 아이들]은 요즘 우리나라 수능 치는 시기와 맞물러 중국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입시전쟁으로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각 나라마다 다양한 대입전형이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서 참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중국의 학교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주의인 중국에서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9000위안'이라는 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는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 중국 소설을 읽다 보면 학생들이 국기 게양식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좀 색다르게 느꼈답니다. 우리는 직접 국기 게양을 하지는 않았지만 등교하는 길에 항상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으면 주번들에게 잡혀서 봉사활동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는 것도 아이들은 모르고 살아갈 것 같기는 하네요.
![]()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한 교실에 앉아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을 회상해 보면 마냥 행복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때는 지금과 달리 고입시험도 있었고 우리 동네는 정말 고입시험에서 175/200점을 받아야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이 마냥 행복하게 보낼 수는 없었던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몇 가지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속에는 당연히 친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기도 하네요.
10편의 단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인 [대사] 무능력해 보이는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자식에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몇 가지 삶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 같았어요. 절대 내기 장기를 두지 않는다는 초심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모습도 그렇고 아들에게 무심해 보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의 성장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조금 짠하게 느껴졌답니다.
![]() 외국소설을 읽다 보면 그 나라만의 특별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답니다. [건달]에 나왔던 삼손이라는 의미가 도둑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손이 세 개란 말이 아니라 좀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그 특별한 재주가 물건을 훔치는 기술인가 봐요. [건달]의 내용 중 엄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상자 속의 물건이 '흙'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 너무 궁금하답니다. 혼수품으로 가지고 온 붉은색 나무상자를 그렇게 애지중지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애지중지했을까요? 자신이 나고 태어난 고향에 대한 향수로 고향의 흙을 가지고 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고 우리와 정서가 맞지 않아서 그런지 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답니다. [긴잠]은 다른 소설과 달리 정말 꿈같은 내용이었어요. 다른 단편소설들이 에세이 느낌이 날 정도로 중국의 시대상을 반영해서 쓰인 것이라면 [긴잠]은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하네요. 주인공을 배신한 친구 라오샤오와 그의 전 애인이었던 샤오미는 왜 굳이 주인공에게 연락을 했을까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좀 어려운 내용이었답니다. 시인인 라오샤오처럼 [긴잠]의 내용으로 시적인 표현이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