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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는 주자학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던 시대에 탈주자학의 길을 연 유학자다. 오규 소라이와 더불어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양대 사상가다. 이토 진사이의 학술적 사상을 가장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집대성한 저서가 바로 『동자문』(童子問)이다. 이토 진사이 사후에 그의 아들 도가이가 편찬한 ‘유학의 길’에 관한 문답서이다. 송나라의 구양수가 『역易 동자문』을 짓고, 보광이 『시전詩傳 동자문』을 지은 것처럼, 이토 진사이는 '공맹 동자문'을 지은 셈이다. 『논어』와 『맹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인(仁), 효(孝), 충(忠), 왕도(王道) 등의 유학 개념, 이학(理學)과 노불(老佛) 비판 등등에 관해 동자(어린아이)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토 진사이의 도학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토 진사이는 도쿠가와 막부의 관학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던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주자의 주석을 배제하고 직접 『논어』, 『맹자』의 본문을 해독해서 성인의 원뜻을 구하자고 주장한 ‘고의학’(古義學)의 창시자다. 이토 진사이는 주자학의 고원한 추상적 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유가의 도는 비천한 일상생활에 쓸모가 있는 실질적인 덕성의 함양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저자가 비판하는 성리학의 대의는 다음과 같다.
"인의예지는 모두 본성에 갖추어져 있으나 다만 기에 얽매이고 물에 가려져 신령스러움과 밝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힘써 덮은 것을 걷어 내고 막힌 것을 터서 처음을 회복하면, 마치 때를 닦아 내면 거울이 다시 빛나고 탁한 것을 깨끗하게 하면 물이 다시 맑아지는 것처럼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의의 덕은 다시 닦을 필요가 없을 것이며 확충하는 방법은 드디어 욕심을 없애는 가르침으로 변할 것이다."(12-3쪽)
이토 진사이가 보기에 주자학은 초월적인 리(理)를 강조하여 인간의 자연스런 관계 형성과 내면의 욕망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현실과 괴리된 주자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맹의 말을 직접 보고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토 진사이는 “모든 일을 오로지 리에 의지해 결단하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지지. 위의 덕(德)이 박절하면 아래에는 반드시 상처를 입어 사람들도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중권 65장)라며 ‘리’에 대한 편협한 강조를 경계한다.
"대개 말이 곧고 이치가 분명해 알기 쉽고 외우기 쉬운 글은 반드시 바른 진리란다. 말이 난해하고 이치가 아득해 알기 어렵고 외우기 어려운 글은 반드시 괴상한 말이지. 네가 이 사실을 가지고 찾아보면 온 세상 책 중 백에 한 권도 잘못 보지 않을 것이다."(27쪽)
주자와 달리, 저자에게 성인의 도(道)는 고원한 것이 아니라 비근한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다. 즉 도란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대우하며 처자 사이의 정이 좋고 뜻이 맞으며 형제간에 화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무릇 성인의 천 만가지 말은 성(性)·도(道)·교(敎) 이 세가지 범주로 총괄할 수 있다. 중용에 이르길,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름을 도라 하고, 도를 닦음을 교라 한다. 『논어』가 왜 본성의 선함을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이토 진사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논어』가 오로지 교만 말했지만 도가 그 안에 있고, 『맹자』는 오로지 도만 말했지만 교가 그 안에 있다. 이토 진사이는『논어고의』(論語古義)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천하에 존중해야 할 것이 두 가지다. 도와 교다. 도란 무엇인가. 인의이다. 교란 무엇인가. 학문이다. 『논어』는 오로지 교만 말했지만 도가 그 안에 있다. 『맹자』는 오로지 도만 말했지만 교가 그 안에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말해 본다. 도는 우주에 가득 차 있고 고금을 꿰고 흐르며 어디에도 있지 않은 곳이 없고 어느 때건 그렇지 않은 적이 없으니 지극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절로 선으로 가도록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성인이 이를 위해 바른 도리를 밝히고 인의를 외치며 시서예악으로 가르쳐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될 수 있도록 하였고 만세토록 태평할 수 있게 하였다. 모두 교의 효과이다. 그러므로 선생께서 오로지 교만 말씀하셨지만 도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맹자 시대에 이르러 성인은 멀어지고 도는 사라져 이단이 벌떼처럼 일어나 각자 자신의 도만을 말해 통일할 수 없었다. 때문에 맹자께서 이를 위해 인의 두 가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세에게 알려 주었다. …(중략)…『맹자』 일곱 편 안에는 곧바로 말하기도 하고 비껴 말하기도 해 그 말이 다른 것 같지만 하나도 인의의 뜻이 아닌 게 없으며 이른바 존양(存養)·확충(擴充)·거인유의(居仁由義)의 설명은 모두 교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오로지 도만 말씀하셨지만 교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46-7쪽)
선유들은 인(仁)을 논어의 요체로 보았고, 성선(性善)을 맹자의 요체로 보았고, 집중(執中)을 서경의 요체로 보았고, 시(時)를 역경의 요체로 보았다. 특히 공자의 가르침(敎)은 문·행·충·신 네 가지로 집약된다. 문(文)은 육예를, 행(行)은 효(孝)·제(悌)·예(禮)·양(讓)을 말한다.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고, 남에게 진실한 것이 신(信)이다. 이토 진사이는 "문으로 앎에 이르고, 행으로 선을 실천하며, 충으로 자신을 다하고, 신으로 만물에 응한다."고 설명한다. 증자는 공자의 일의관지의 도가 충서라고 했다. 충서는 인의 실천적 측면을 논한 것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도덕이라 하니 인도의 근본이다. 충신경서(忠信敬恕)를 실행이라 하니 저 도덕을 구해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을 말하려면 인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고, 실행을 논하려면 충을 요체로 삼아야 한다."(153쪽) 중용의 도를 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이단에 속한다. 중용의 도를 지나친 것이 노불(老佛)의 허무주의이고, 중용에 미치지 못한 것이 법가(신불해 한비자 상앙)의 공리주의다. 유가의 인의가 도가의 허무와 불가의 적멸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토 진사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릇 사람이 수양해야 할 것은 인륜뿐이고 사람이 힘써야 할 것은 인간의 일뿐이다. 천하에서 인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않고 의가 아니면 실천하지 않는 것이야. 그러므로 인륜을 벗어나서는 도가 없고 인의를 벗어나서는 가르침이 없지. 만세의 긴 세월과 사해의 넓은 세상에서 하루도 떠날 수 없단다. 그러므로 인에 살고 의를 따르면, 좌선하지 않고 면벽하지 않더라도 몸은 저절로 닦이고 집은 저절로 정돈되며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지고 천하는 저절로 평화로워져 어디를 가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지. 인에 살지 않고 의를 따르지 않으면 설사 그 마음이 맑은 거울 같고 잔잔한 물 같아 털끝만큼도 사사로운 인욕이 없더라도 아무런 보탬이 없다. 이것이 성인의 도가 제가백가보다 탁월해 우주에 홀로 존귀한 까닭이란다."(38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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