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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Downsizing Democracy)를 본 순간 도망자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 가 연상 되어졌다. 최근 읽은 《정치가 떠난 자리》에서 월린이 제시한 도망자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원래 민주주의가 의도했던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의 함의이며 민주주의의 본질인 참여 자체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도망자가 되었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이지만 , 이 책은 fugitive democracy 가 아닌, personal democracy 를 말한다. 그동안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참여 민주주의로 대중의 참여가 근간을 이루며 시민이 그 주체가 되는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 였다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대중에서 ‘다운사이징‘ 된 개인 personal 데모크라시(Downsizing Democracy)의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민주주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나라, 2세기가 넘는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포괄하고 있다.
현 미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조차 잃어버린 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개인주의자들로 넘치고 있다. 어쩌면 그 이면에는 시장지상주의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민을 ‘고객’이라고 칭하였던 미국의 전 부통령 엘 고어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는데 국민의 호칭이 시민에서 고객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시민이란 정부와 대등한 위치에서 정부를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대표되어 왔다.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정부였다면, 고객은 정부에게 서비스를 받는 입장일 뿐이다.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것을 구매하고 제공받는 위치라면 고객은 한 단계 강등한 말 그대로 ‘다운사이징’ 된 입장이다. 이런 시민의 ‘고객만들기’ 작업은 최근에 국영기업들이 속속들이 민영화되는 것과 아웃소싱제도, 바우처등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작업들이다. 미국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제도들이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국영기업들이 속속들이 민영화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세기의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시민계급이 변질되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미국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시민들에게 고민과 반성이라는 과제를 남겨준다. 과거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 또한 일부 엘리트들이 정치 동원 political mobilization 된 정치 행위였다. 정치 동원은 ,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내는 ’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의 핵심 기제 역할을 했던 시민의 정치 참여는 미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가상의 존재(virtual citizen)’가 되어 버린 것이 미국의 정치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다행이도 ‘시민’이 ‘고객’이라는 개념이 될 정도로 변질되지 않은 것이 차라리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하지만, 국영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민영화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에게도 시민이 아닌 ‘고객’으로 다운사이징 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것은 정치엘리트가 아닌 시민이어야 하며 시민이 형성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우리나라의 정치 거울이기도 하다. 정치이론가인 김만권은 《정치가 떠난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목격한 것들을 스스로 말하고 해석하고, 그런 자신의 말과 해석을 다른 시민들의 말과 해석과 공유하고, 나아가 그런 공유 속에서 권력을 찾아내는 시민의 형성'이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가는 첫 걸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로운 시민 게릴라'라고 부른다. 시민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오래지 않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일침을 꽂아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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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둘 입니다. 제목에 나와 있는 그대로 다운사이징(Downsizing)과 데모크라시(Democracy)입니다.
Downsizing은 주로 두 영역에서 많이 쓰입니다. 경영에선 기업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비대해진 조직을 소규모의 팀 형태로 개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혁명을 말합니다. 인원감축이나 구조조정의 어두운 일면도 있습니다. 한편 정보기술의 영역에서 보면 컴퓨터 어플리케이션의 전부 혹은 일부를 더 작은 컴퓨터 시스템이나 데스크 탑의 네트워크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Democracy,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의사결정시 시민권이 있는 대다수나 모두에게 열린 선거나 국민 정책투표를 이용하여 전체에 걸친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하는 사상이나 정치사회 체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합해진 책 제목은 그리 밝지 못한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부제는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입니다. 미국이 그럴진대 한국 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독일의 실천적 사회학자 페터 슈피겔은 그의 저서 [휴머노믹스](Humanomics, Human + Economics)에서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현시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미래의 성공요소는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제안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인간을 성공요소로 인식할 수 있는지, 이러한 인식을 경제와 학술교류 시스템에 얼마만큼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인간과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국가의 성장을 위해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뿐 아니라 개개인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에 실린 내용을 보느라면 깨우긴 깨우는데 겨우 잠든 사람 깨워서 수면제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됩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자주 눈에 띄는 용어 중 '정치 동원'(political mobilization)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저자들(2인)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입니다. 정치 동원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정치 행위입니다. 동원과 참여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저자들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평범한 시민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의 절정기가 가능했으며, 동원이 줄어들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운사이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정치 동원이 없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고 참여도 불가능했던 평범한 시민들은 점차 정치의 세계에서 사라져 갑니다.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이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합니다. 건국 초기 예외적일 만큼 인상적이었던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서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경쟁하는 엘리트들은 유권자 속에서 해결책을 구하기보다, 정책을 경쟁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장으로 옮겨 버리는 장치들인 소송이나 행정절차, 민영화나 바우처, 관료적 조정을 이용해 상대를 이기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자기편이 되어 달라며 도움을 요청받았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남게 됩니다. 어제의 주연배우들이 오늘은 관중이 되었으며, 시민이 아니라 구경꾼과 소비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개인민주주의의 많은 특성들은 데자뷰를 느낄 정도로 한국 정치에서도 발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옮긴이 서복경의 표현을 빌리면, '벨트웨이 안 이익 옹호 행위의 폭발과 벨트웨이 저편 침묵 간의 기묘한 결합'은 '여의도 안 이익 옹호 행위 폭발과 여의도 밖 침묵 간 결합'을, 시민의 정치 동원은 부재한 채 '워싱턴 안의 정당 갈등만 양극화 되는 현상'은 '여의도 안의 정당 갈등만 양국화 되는 현상'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사천년 오랜 세월을 두고
지금 백성은 무엔가 말하고 싶다
그들의 머리 우에서 한울과 태양을 가리지 말어라
인제사 그들의 역사가 시작하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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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모든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직간접적으로 국가를 다스리고 정책을 결정하여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제도이다. 여기가 가장 중요한 용어는 시민이라는 말이다.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내며 소수의 통치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었던 그리스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현대로 오면서 국가가 커지면서 시민들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은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원하지 않는다. 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세 시작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시민에서 고객으로, 주권자에서 자원 봉사자로,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이다.
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어떻게 정부가 평범한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나 집단적인 지지에 의지하자 않고 전쟁을 수행하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지, 어떻게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고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들을 주변화 하였고, 점차 소수의 관료들과 공공의 정치기관을 통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이러한 경향들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서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른다. 대중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적 직간접적 정치의 참여의 장이 있었지만 이제 개인민주주의는 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참여를 의도적으로 소외시킨다. 이것은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의 결정에 의해서 거대한 정치적 결정이 정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후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개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p.9
이 책에서 분석하는 정치적 현실은 미국의 정치 지형의 변화이지만 지금 현국의 정치적 현실로 비슷하다. 이것은 정치적인 집단 뿐 아니라 NGO같은 비정부조직 같은데 에서도 민주적인 절차나 방법이 무시되고 일반 시민들의 참석이 제외되어 결정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점점 정치조직이나 비정부조직들이 비대해 지면서 자연스럽게 일반 시민이나 대중들은 주변화되고 원리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 참여가 축소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촛불시위같은 것은 이러한 자발적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아닌가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촛불시위같은 대규모 시민들의 정치적 행사는 실제로 정치적 현안이 될 수 없고 반영되지 않는 제외된 주권자들의 외침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소수 엘리트 정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정치 주권자들이 주변화 되는 것은 소수 엘리트 정치인들의 권력 독점현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려가 있음을 이 책은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유권자 개인 등록제를 실시함으로써 투표율을 낮추는 이상한 역행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정당의 성향에 맞는 미디어, 싱크 탱크, 이익집단, 종교단체들과 결탁함으로써 조정과 통제가 가능한 그들만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오히려 대중들의 정치참여를 밀어내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의 기획에 의해서 실시되는 여론조사는 이미 소수의 정치인들의 고안한 기획에 의해서 여론이 수집, 가공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모든 유권자들과 잠정적 정치 참여자들인 대중들을 기만하여 전체 여론을 조정가능하게 만드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정치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공공선을 위해 그리고 국가 공동체를 위해서 선하고 의미있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대중들이 주변화 된다는 것은 정치의 의도가 소수의 정치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의 이행은 비단 미국의 문제 뿐 아니라 거대화되고 소수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이끌려져가는 모든 나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이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시민권과 민주주의가 서있는 위치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대중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한과 참여를 충분히 감당할 때 소수 정치 엘리트에 의해서 개인민주주의로 역행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자각하고 그것을 찾아 참여할 때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로써의 기능을 하고 그러한 민주주의의 체제의 작동에 의해서 참된 정치는 실현되며 공공선은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시민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이 정치 경쟁의 조건을 만들었다. 관직과 영향력을 얻고자 경쟁하는 집단과 정당들은 시민을 조직하고 동원해야 했다. 대중의 지지는 권력의 원천이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집권 경쟁을 통해, 20세기 초까지 지속된 높은 참여율을 일궈냈다. 그러지 않았다면 대다수의 시민들, 특히 저학력, 고소득층 시민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한된 정보, 공적 문제에 대한 낮은 관심, 의사소통 기술의 미발달이 그들을 공적 삶의 변방에 남겨 두었을것이기 때문이다. 활발하게 경쟁했던 지도자들이 그들을 공공의 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그들은 활성화될 수 있었다. p.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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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란 유럽 고전고대(古典古代)의 도시국가와 중세의 도시에서 상당한 특권을 누리던 자, 근대 국가에서 주권에 참여하는 자 등을 의미한다. 시민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말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이다. 시민의 위상에 관한 중요 시사점을 제공해 준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에 의하면 근대적 구성 및 헌정을 탄생시킨 민주적 봉기의 핵심 이념은 평등 = 자유라는 혁명적 등식이다. 중요한 것은 이 등식이 인간 = 시민이라는 또 다른 혁명적 등식을 낳았다는 점이다. 시민 없는 미국 민주주의 또는 시민의 고객화 사태를 다룬‘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에 따르면 시민은 정부를 소유하는 존재였지만 고객은 정부로부터 쾌적한 서비스를 받는 존재일 뿐이다. 9, 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시민들에게 국가(國歌)를 부르고 애국적인 생각을 하며 쇼핑을 하라고 조언한 사실은 시민이 고객으로 강등(降等)된 실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민의 고객으로의 강등은 구체적으로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연계된 문제이다. 무관심이란 정치 현안(懸案)에 관한 이야기는 합의에 이르거나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 정치적 문제에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바뀔 것이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무관심을 계기로 대중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운데 엘리트들간의 갈등만 격화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일반 유권자들의 지지와 봉사 없이 권력 획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있는 듯 하다. 저자들은 정치 제도가 시민 사회의 산물인 만큼 시민 사회 역시 정치제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시민권의 쇠퇴는 곧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라는 인식이다. 저자들의 의도는 정치 제도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고객이 아닌 시민이 되도록 하는 유인(誘引)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 가능하다. 저자들은 자기중심적 이익 추구는 시민권과 항상 동반자 관계를 이루었다는 말로 정치 공동체가 좋은 시민을 고무(鼓舞)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당위를 일깨운다. 시민이 고객으로 강등된 사태는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기보다 소송, 연구, 여론조사, 기금 모금, 언론과의 관계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 이익집단의 경우와 일정 정도 관계가 있다. 저자들에 의하면 근대 국가의 핵심 요건은 행정, 징세, 군사적 자기 방어 능력, 투표권 등이다. 시민의 확대가 세원(稅源) 증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거니와 시민들은 행정에 참여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병역 의무를 수행하고 투표 참여를 통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정치에 기여했다. 그런데 세금 징수와 공채 조달을 위한 새로운 방식들이 점차 발전하면서 시민에 대한 정부의 재정 의존도는 줄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시민권도 축소되었다. 정부 채권을 사고 파는 자금의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공개시장조작을 주도한 연방준비제도의 출범은 시민권 축소를 낳은 대표적 요인이다. 문제는 직업 관료제의 출현이다.(60 페이지) 저자들은 시민에 대한 정부의 의존이 약해진 것은 정부가 시민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조건에서 시민을 대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90 페이지) 이제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지하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하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 정당들(공화당, 민주당)은 유권자 동원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공화당의 경우 유권자가 확대되면 자당(自黨)에 우호적이지 않은 저소득층 및 소수민족 유권자들이 유입되지 않을까 우려한다.(102 페이지) 반면 민주당에게 그것은 자당(自黨)의 당직자들에게 실질적 위험을 의미할 수 있다. 신규 유권자들이 정당으로서 민주당에 충성심을 가진다 해도 민주당의 현 지도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103 페이지) 문제는 오늘날 정치 엘리트들이 과거와 달리 유권자 확대라는 어둠으로의 도약(跳躍)을 회피할 수단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은 유권자 개인 등록제 등을 시행함으로써 투표율을 낮추는 이상한 일을 벌이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정치의 축제적 성격을 무색케 하는 행동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사회 서비스 기관과 규제 기관, 지원금 경제로 엮인 비영리단체, 공공 기관 및 유사 공공 기관, 일군의 공익 단체와 뉴스 매체의 주요 부문에 진지(陣地)를 구축한 민주당과, 군사 및 국가 안보 관련 기관, 이와 관련한 민간 기업과 민간 부문 이익집단, 종교단체, 보수 성향의 신문, 잡지, 싱크 탱크 및 라디오 방송국을 포괄하는 대중매체 부문에 지지 기반을 건설한 공화당이 만들어내고 있는 체제는 유권자 동원이라는 방식을 일부 대체해 왔고 치열한 정단간 갈등과 낮은 유권자 참여라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공존을 낳고 있다.(162 페이지) 선거기간에만 집결하는, 정치 운동이랄 것도 없는 유권자들의 존재가 각종 이익단체 및 기관, 종교 단체와 대중매체 등에 의해 기반이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육성하고 있는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사회 정책 프로그램은 가장 중요한 공화당 지지 유권자 집단 가운데 하나를 새로운 후원 관계의 수혜자로 바꾸어 놓을 전망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수십만의 조직원, 각 주별 지부, 수백 명의 정규직 인력을 보유한, 종교적 우파로 알려진 이들은 낙태, 공적 윤리, 교회 - 국가 관계에 관련된 일이라면 언제든지 로비를 하고 소송을 걸며 연방의회 선거와 지방선거의 투표율을 낮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165 페이지) 대중이 정당의 부름과 호소를 받는 대상에서 점차 권리를 박탈당한 벌거벗은 존재 즉 호모 사케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폭로(暴露), 조사(調査), 기소(起訴) 등 정쟁의 전술이 한때 선거 동원이 차지했던 정치의 중심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181 페이지) 우려할 것은 정치 엘리트들의 기획에 의해 설문 조사로 제공되는 여론이 평범한 사람들과 공공 정책 결정자의 간극을 메우기보다 더 벌려 놓는 사태이다. 여론조사는 최소한 세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여론의 성격을 바꾼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과 깊이 고민한 사람의 의견이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을 저자들은 여론조사에서는 강한 의견을 가진 미국인의 목소리가 무관심한 대중의 중얼거림에 묻혀버린다고 표현한다.(191 페이지) 여론조사로만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를 대표한다는 정당의 주장은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없는 따라서 정부 행위에 특별한 제약을 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여론조사 결과가 정부가 실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을 무시하기 위한 변명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 지형을 입증하는 사례 중 하나는 로비스트가 치욕적인 용어였던 시절이 끝나버린 것이다. 로비스트란 치욕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는 대중의 수동적 면모와 명백히 대비된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가 알려주는 새로운 용어 가운데 하나로 신자유주의라는 말 만큼이나 특징적이고 시의성 강한 개념은 이익집단 자유주의란 개념이다. 사실 하나로 결집되는 대중 정치세력과 달리 이익집단들은 규모가 작은 무수히 많은 조직으로 존재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경쟁은 치열하고 그에 반비례해 대중은 정치에서 배제되거나 관심을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익집단의 득세를 이익 옹호 단체의 급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252 페이지) 저자들에 의하면 이익집단들은 후원자들 덕분에 회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영향력이다. 그리고 많은 시민단체들은 회원이 적다. 시민 단체들이 회원 없이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회원들은 소모품이 된다. 대중의 지지가 없는 권력은 소송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것은 이익집단, 정부기관 의회 위원회라는 철의 삼각 동맹 시대에 작동했던 고전적인 이익집단 정치 모델과 이익 기반의 정책 결정이, 전문가와 아이디어에 기초한 정책 형성으로 대체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해졌다.(267 페이지) 미국은 현재 법정 싸움, 관료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 내부자 이익집단 정치에 의존함으로써 서민들의 좀 더 근본적인 물질적 필요가 아니라 안락함과 지위, 심미적 만족이라는 부유한 엘리트들의 협소한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328 페이지) 환경 보호가 아닌 님비(NIMBY)로의 방향 전환은 그런 사태의 대표적 사례이다. 저자들은 국가가 집단 소송을 엄격 제한하고 규제법령에서 시민소송 규정을 수정하거나 아예 없앤다면 경쟁하는 이익집단들이 법정에서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려고 변호사를 고용하기보다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조직하도록 할 것이라 말한다.(344 페이지) 물론 저자들이 말했듯 원칙적으로 옳다고 해서 실제로 실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진정한 시민들은 집단적 정체성을 갖는다. 그런데 미국은 집단적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앞 부분에서 정치 제도가 시민 사회의 산물인 만큼 시민 사회 역시 정치제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 저자들은 자발적인 대중행동은 때때로 결정적이지만 대개 수명이 짧다고 말한다.(410 페이지) 또한 같은 차원에서 시민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시민들이 책임을 간과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과거보다 시민에게 덜 의존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419 페이지) 그렇기에 저자들이 내린 다음의 처방은 새겨들을 만하다. 시민들이 집단정치에서 지속적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행동의 비용을 감소시키거나 참여 동기를 강화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들의 참여가 지원을 받거나 구조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411 페이지) 역사적으로 대중의 정치 참여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뒷받침은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시민의 정치 참여를 고무했던 정부(政府), 시민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을 얻기 위해 벌어진 경쟁이 그것이다.(411 페이지) 물론 저자들의 진단은 대중 또는 시민들에 대한 신뢰에 경도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집단정치에서 지속적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행동의 비용을 감소시키거나 참여 동기를 강화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들의 참여가 지원을 받거나 구조화되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대중을 수동적으로 본 결과 나온 처방은 아닐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저자들의 처방에 공감하면서도 계급 배반에 빠지거나 정치를 엔터테인먼트식으로 접근하는 대중의 행동에 호의적이지 못하다. 저자들이 말했듯 공적 대중이 없는 정치는 여러 명의 빅 브라더들이 자신들이 대표한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 위 저 높은 곳에서 정치 갈등에 몰입해 있다는 점만 빼면 조지 오웰식의 악몽 같은 모습일 수 있다.(425 페이지) 유권자의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으면 모든 경쟁의 결과를 무효화 한다는 내용의 선거 규정을 도입한다면 위험을 감수하려는 유인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저자들의 처방은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이런 무리한 규정을 논의하게 할 만큼 미국의 정치 현실은 문제적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어느 정도 다른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대중의 정치적 관심만은 최고 수준으로 보인다. 저자들의 처방에서 특별해 보이는 것은 정치 조직이나 정치 제도의 역할을 기대하고 촉구하는 당위적인 논리를 제시했지만 학자들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정치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촉구하는 만큼 대중을 수동적으로만 바라본 점이 아쉽지만 충분한 역작(力作)이고 들을만한 이야기임은 물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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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의 중요성 몇 년전부터 정치에 대해서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이 정치, 정치적 활동, 현실 정치 -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 등으로 인해 좋아지거나 나빠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들과 그들이 만드는 모습으로 인해 나라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술자리에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일행 중 한두명은 싫어한다. 더구나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싸우기라도 하게 되면 괜히 꺼냈다는 기분과 함께 술자리마저 가지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일상에서의 정치란 서로 다른 입장에 서서 이야기하고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여러 활동들이라 여기는데 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조차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들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으며, 정당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세계가 있었고 우리의 세계가 있었다. (1)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도리어 나는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불현듯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제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가 필요했고 몇 권의 책을 샀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책 읽을 시간이 없었고 나 스스로도 둔해졌다. 그러다가 올해 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구입한 지 2년 만이다. 2. 한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현재 현대 한국에서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강제된 것이다. 외침(外侵)에 의해 조선 왕조가 무너졌고 그 이후 식민지 시대를 거쳐, 미군정이 지나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정치 체제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정치적 모략과 술수, 암살 등을 거쳐 초대 대통령이, 그 이후 다양한 군사적 활동에 기반한 대통령들이 취임하고 바뀌었다. 불행하게도 진짜 민주주의 - 국민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 는 없었고 대통령들과 그의 무리들이 나라를 통치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주장하고 다수의 대중들이 동의하듯, 이 통치에는 일견 장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100점 만점에 50점짜리다. 경제를 어느 정도 발전시켰으나, 정치 체제를 발전시킬 기회를 잃어버렸다. 심지어 그 경제마저도 재벌 중심으로 만들어놓은 탓에, 재벌 기업 1-2개가 무너지면 나라가 휘청거릴 판이다. 그리고 그 재벌 기업들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하청기업에 머물러 있는 현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를 성장시켰다고? 수십 년 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으나, 겨우 이 정도 밖에 못 온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뒤쳐지고 있다. 분명 그 때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탄탄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어떤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 때 우리가 너무 가난하고 너무 낙후되어 있었던 탓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높은 경제 성장율을 기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리곤 그 때의 놀라운 경제 성장이 몇 명 소수의 작품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성장했던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건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성장했던 경제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반성은 하지 못하는 걸까? 경제적 불평등은 심해졌고 곧 인구 절벽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젊은 세대를 위한 미래 따윈 없다. 경제 활동을 통해 창출한 부는 모두 자산 거품을 지탱하기 위해 소모된다. 즉 집값을 버티기 위해 사용된다는 말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아예 집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아무런 피해도 없다. 어차피 지금도 힘든데, 집값이 떨어진다고 더 힘들어질까. 미래를 위한다면 집값은 버려야 하지만, 이 말을 했다가는 절대로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3.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Downsizing Democracy 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학 서적이다. 일종의 분석서이고 연구서적이다. 정치적 견해가 담겨 있다기 보다는 정치 제도, 정치적 활동의 변화가 현재 미국 민주주의를 악화시켰는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대부분이다. 사회학적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 싶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민주주의 상황이 한국의 상황과 너무 유사하다는 데 있다. 2004년도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인데, 2015년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라면 ... 가령, 왜 정치엘리트들은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고 다양한 이익단체들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리더들과만 소통하게 되었는가,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도리어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참여율은 더 떨어지는가, 왜 가난의 문제를 더 심각해지고 해결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는가 등 현실 정치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어떤 계기로 생겼고 악화되어 가는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다. 너무 냉정해서 아주 비관적으로 읽히기까지 한다. 4. 고객Customer이 되어버린 시민Citizen 최근 수십 년 동안 평범한 미국인들은 시민에서 '고객customer'이라고 불리는 존재로 변해왔다. - 9쪽 책 서두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현재 정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시민이라고 하면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며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 고객은 행정가나 정치인들의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여기에 대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의 기획은 많은 시민들에게 현실 정치 참여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생긴다면 시민들의 의견을 보다 폭넓게 듣고 수용할 수 있으며 정책이나 정당의 정치적 활동에 반영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미국 민주주의 성숙과 다양한 민주적 제도의 신설과 운영은 미국인들을 시민에서 고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상황 변화를 면밀히 추적하며 기술하고 분석한다. 5. 탈물질주의, 그리고 가난 요즘 진보적인, 혹은 진보적인 척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양한 공익 활동이나 자선 활동을 하며 환경 운동이나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미국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주류 자유주의 최근 경향은 ‘탈물질주의’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을 인도하는 강력한 공적 이념과 짝을 이루는 민간의 이념이다. 탈물질주의는 특수 이익의 지저분한 난투극을 초월한 양, 허공에 붕 뜬 채로 삶의 질을 강화하는 데 시선을 둔다. 이때 많은 경우 경제적인 사안은 고려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고래와 야생동물 보호, 여성의 선택권 보장, 자존감의 형성, 에너지 보존, 정치 자금 제도 개혁에는 찬성하고,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근본주의적 불관용, 해양굴착, 동성애자 배척, 총기 사용 규제 완화 로비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지지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고상한 명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명분들은 대부분 ‘고상하다’. 하지만 그것은 풍족한 사람들의 명분이다. - 414쪽 약간 이상하지 않은가? 이 상황은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얼마 전 '동성애 행사'가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인권 문제도 나왔다. 환경 문제도 걸핏하면 등장하고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데, .... 탈물질주의는 가난을 비껴간 시민들의 신념이다. (…) 중도좌파가 공공정책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혜택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이들은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침묵하는 시민들(빈곤층 뿐만 아니라, 제조업이 쇠락하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더 이상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지 않는 경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노동계급 가정들)과도 멀어졌다. - 415쪽 진짜 한국을 절망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월급쟁이가 성실하게 돈을 모아 서울 시내 아파트를 살 수 있을까? 이제 절대 사지 못한다. 당연히 빚을 내면 살 수 있다. 그리고 빚에 짖눌려 살다가 죽을 것이다. 부모가 빚이 있으니, 대학생이 된 자녀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그 자녀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시작부터 갚지 못하는 빚을 안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인권? 환경? 성적 취향의 자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진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까먹고 있다. 그건 우리 코 앞에 닥친 가난의 문제다. 죽으라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시대가 이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2) 이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습게도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거의 유일하게 정치다. 6. 국가와 국민, 혹은 시스템과 개인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국가에게 묻지 말고 스스로 국가를 위해라고? 이게 가능한 소리인가? 아마 10년 전이라면 충분히 호소력 있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5년 전이라도 약간의 호소력은 가졌을 것이다. 100조원이 넘는 돈을 자원 외교랍시고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령 100조원으로 신혼부부들을 위한 아파트나 연립 주택을 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얼마나 씁쓸한 유머인가? 이 나라 국민들은 화가 나지도 않나? 100조원이면 천 만명에 천 만원씩 줄 수 있는 돈이다. 백만명이라면 일 억원씩. 그 돈을 공중분해시켰다) 그런데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고? 이제 그 누구도 국가를 앞세워 우리에게 호소하지 못하게 되었다. 세월호 이후 국가는 우리와 무관한 존재가 되었다. 국가를 위하라고? 이젠 예비군 훈련 가서도 죽는 판인데... 국가를 위하라니.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저 말을 한 것일까? 제대로 된 민주주의에서는 정말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저 말이, 엉망이 된 민주주의에서는 그 어떤 호소력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될 뿐이다. 국가와 시민의 관계는 공생의 관계다. 국가는 시민에게 군사력과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시민은 국가로부터 안전과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보장 받는다. 국가는 시민에게서 다양한 재화를 받기 위해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고 투자한다. 예전에는 정치적 모임이나 정당 차원에서 지원해주던 것을 개개인의 차원으로까지 낮추어 제공하기 시작했다. 개인민주주의는 집단적 공격으로만 돌파할 수 있었던 정치의 장벽을 낮춘다. 정보의 자유, 정보공개법, 공청회 의무화, 입법 예고제와 공개 설명회 규정, 위원회 등의 ‘시민’ 대표 할당제, 공공기관의 ‘전화상담서비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 등 이 모든 것과 기타 정책들은 시민들이 혼자서 정치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외견 상 시민 친화적으로 보이는 개인민주주의의 이런 장치들이 갖는 주된 효과는 미국에서 시민의 역할을 위축시켰다는 점이다. - 43쪽 쉽게 말해 국가가 제공해주는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면, 예전에는 지역구 사무실을 찾거나 다양한 모임을 통해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처리한다. 심지어 지역구 사무실, 다양한 모임을 통해 처리되지 않는 민원이 있다면, 청와대 신문고에 올려야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 이제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당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 필요없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미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시민들은 스스로 시민의 역할을 버리고 고객의 태도로 여러 공공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콜센터를 통해 접수한다. 의도치 않은 결과이긴 하지만. 애초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만든 것이지만, 도리어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고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으로 변형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을 지지하지도 정당 사무실을 나가 정치인을 만나지도, 사람들을 모아 시위를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대다수의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비슷하게 ‘정치엘리트들도 유권자를 동원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았다’. 이제 높은 투표율은 꿈과 같은 이야기가 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제 그걸 원하지 않고, 높은 투표율 없이도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정치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고객이 된 시민들도 이제 투표하지 않는다. 투표의 효과는 거의 없고 민원 게시판의 효과는 직접적이다. 그 효과가 더 큰 것은 소송이 될 것이다. 국가와 국민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시스템은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가난은 개인이 성실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시스템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취업도 마찬가지고 결혼도 연애도 다 개인의 잘못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정말 그렇다고 믿고 있는가? 7. 상상된 유권자와 여론조사 시민이 사라지고 모두 고객이 된 지금, 시민, 즉 유권자는 상상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향해 호소하고 여론은 투표권이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1970년대 ‘새로운 정치’에서, 그런 상상된 유권자 집단들은 공익단체라는 형태로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공익단체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이 단체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거에서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행정기관을 접촉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 모든 사람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명분 아래 공익단체는 특정한 누구와도 거리를 두었다. 그 결과 한정된 유권자 집단을 동원하지 않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 148쪽 ~ 149쪽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 집단을 상상적으로 구성한 것, 이것이 바로 공익단체다. 이제 실제 유권자들이 모여 집단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 극히 드문 이벤트가 되었다. 대신 여러 단체에 속한 소수 인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할 뿐이다. 상상된 유권자라는 관념은 여론 조사로 옮겨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2억 5천만 미국인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설문조사는 겨우 무작위로 추출된 응답자 2~3천명의 인터뷰 결과일 뿐이다. 나머지는 통계적으로 또는 ‘가상적으로’ 대표된다. 그들은 인터뷰의 불편함조차 견딜 필요가 없는 것이다. - 190쪽 수학적으로 옳을 진 모르지만, 수학은 수학일 뿐, 우연이 지배하는 현실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라며,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 통계학자들은 여론 조사를 ‘참견하는 측정 obtrusive measure’이라고 부른다. 여론조사는 단순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의 연속성과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론조사는 개인의 의견을 모으는 방식을 정의한다. 예컨대 여론조사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의견 간에 비중의 차이가 없다. 또한 여론 조사자들은 여론이 판단해야 할 주제를 선택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설문 조사로 기록되는 데이터는 ‘순수한’ 여론이 아니라, 여론을 가진 사람과 여론조사자의 상호작용이다. 설문조사가 여론을 측정하는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189쪽 ~ 190쪽 여론조사는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들어주기 원하는 바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시민의 의견 가운데 듣고 싶은 것을 말해준다. 그 결과, 여론조사는 여론을 공표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설득하는 과정의 한 단계로 자리잡는다. 여론조사는 여론 관리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 195쪽 여론조사를 통해 너무도 신중하게 걸러진 이런 가상 시민들의 견해에는, 한때 여론을 중요한 정치적 현상으로 만들었던 특징들이 빠져 있다.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수의 무관심한 사람들 속에 묻혀 버린다. 집단과 집단성은 개체화되고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된다. 마침내 시민은 고객의 지위에 걸맞게, 의뢰자의 설득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여론 조사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 변방에 갇힌 이들 가상의 시민은 참여하도록 초대받지 못한 채 정치투쟁을 그저 구경만 할 수 있을 뿐이다. - 198쪽 어느새 우리들은 우리들의 정치적 견해를 여론 조사에 기대어 생각하고 판단내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다양한 여론 조사 활동을 하고 이를 보도 자료로 배포한다. 연예 가십 기사들과 경쟁하는 정치부 기자들은 보다 자극적인 여론 조사 결과를 기대하고 이를 부풀어 보도한다. 이제 상식적이고 건강한 정치적 견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 자체부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8. 민주주의와 한국 사회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개인적 차원으로 내려앉은 민주주의와 '정치동원political mobiliztion'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즉 개인민주주의로 인해 기존 정치 활동의 모습은 사라지고 건강한 민주주의 대신 정치 엘리트들과 이익단체 위주로 정치가 흘러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로 인해 '왜 미국 민주주의가 나빠졌는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물질적 필요가 너무 중요하고 절실해서 탈물질주의를 향유할 능력이 없는, 정당이 보내는 우편 목록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고, 투표하지 않아도 굳이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이익집단으로부터 초대받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표해 진행되는 집단소송의 원고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며, 그저 여론조사로 대표되는 가상적 시민virtual citizen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또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애국적 열정을 간직하고 있고, 이따금씩 역사에 나타나는 '열정의 순간'을 함께 하지만, 곧 부모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 역자 후기, 443쪽 민주주의에 대한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일 것이고 민주주의나 정치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들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라고 여긴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워진 것은 한국 정치 상황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걸 아는 이들은 이미 지쳐있고, 알려고 하는 이들에겐 끊임없이 그건 거짓말이라고 세뇌시킨다. 그러니, 가상적 시민으로만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는 자신들 탓으로 여길 것이다. 비만이 나쁜 환경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지력 박약으로 몰고 가듯, 한국 사회는 사회 자체의 문제점으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의 문제를, 그 개인의 불성실함, 그 개인의 잘못된 판단 탓으로 몰고 간다. * * 글을 적고 보니, 이 책에 대한 소개인지, 현재 한국에 대한 불만을 적은 것인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올렸는데, 너무 두서가 없어 다시 적었다. 그러나 수정해 적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레지스 드브레가 어느 인터뷰에선가, 테니스 선수처럼 매일 글쓰기를 해야 된다고 했는데, 날 두고 하는 소리같다. 일이 많아 요즘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그랬더니 서평 하나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렵게 여겨져서야 ... 큰 일이다. (어쩌면 내 스스로 정리가 덜 상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 정말 좋으니, 다들 사서 읽기를 바란다. 미주. (1) 한때 모든 것이 지금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 탓이라고 하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씁쓸하기만 하다. 2015년의 한국은 위에서부터 아래에까지 무책임함으로 똘똘 뭉쳐있다. (2) 첫 리뷰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강남 좌파에 대해서 언급했으나, 지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