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고전소설] 수레바퀴 밑에
"[고전소설] 수레바퀴 밑에" 내용보기
'수레바퀴 밑에'는 우리에게 '수레바퀴 아래서'로도 알려져 있는 고전소설이다. 나는 '고전소설'이란 시대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딱 그에 맞는 소설이었다. 저 먼 나라의 과거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소설 속엔 '주 시험'이 인생의 모든 목표이고 그 길에서 탈락하면 인생의 패배자처럼 생각하게 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고전소설] 수레바퀴 밑에" 내용보기


 

 

'수레바퀴 밑에'는 우리에게 '수레바퀴 아래서'로도 알려져 있는 고전소설이다. 나는 '고전소설'이란 시대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딱 그에 맞는 소설이었다. 저 먼 나라의 과거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소설 속엔 '주 시험'이 인생의 모든 목표이고 그 길에서 탈락하면 인생의 패배자처럼 생각하게 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수능'이 모든 학생들의 인생 목표고, 수능을 망치면 인생을 망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어른들이 있다. 내가 올라가기 위해 상대방이 더 틀려야 하는 상대평가로 아이들은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남을 밟아야 한다는 것부터 배운다. 내가 공부한 것을 친구에게 보여주지 않고, 내가 밤새워 공부한 것을 비밀로 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자라게 만드는 모습이 소설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분명 이 소설을 보며 자신의 과거 학창 시절이 떠올랐으리라 생각한다.

 

한스는 소설 속에서는 익사하지만, 읽는 모든 사람이 느꼈을 것이다. 그는 책의 첫 장을 펼칠 때부터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주변 어른들은 '기대감'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목을 졸랐고, 한스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목을 졸랐다. 육체는 살아있어도 정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고 혹은 자의적 선택이 아니었더라도 한스는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을 등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그런 삶'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왜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한스는 그렇게 삶을 버거워 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어른들이 주입한 생각인 한스만의 '특별함', '비범함' 때문이었다.

 

남을 열등한 존재로 의식하며 그들을 무시했던 한스, 그 위에 서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 한스. 그렇기 때문에 수레바퀴 아래로 내려왔을 때 한스는 그들과 자신이 결국 똑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수레바퀴에서 내려온 그 순간에도, 다른 친구들이 서있는 다른 땅으로 발을 디디면 살아남았을 그 순간에도 한스는 그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 땅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무시했던 곳이니까.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기 위해 남을 열등한 존재로 의식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자신이 떨어졌을 때 도저히 버텨낼 수 없게 만드는 것. 삶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그런 삶 속에서 이분법적으로 저 인생은 실패했고, 난 성공했다는 마인드로 살아간다면 나중에 내리막에 들어설 때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다. 요즘은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누구든 수레바퀴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버텨내려면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여전히 한스를 많이 만들어낸다. 내가 고등학교 교육을 받을 때도 여전했다. 아이들은 우울해하고, 수능 전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수능을 망치면 그냥 한강 물에 뛰어들겠다고 얘기한다. 이는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봐도 절대 정상적인 교육 환경이 아니다. 공부가 전부고, 등수를 위해서는 친구에게 시험범위를 숨기기도 하고 필기 내용을 안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자라게 만들어 놓고 어른이 되었으니 타인을 위해 배려하라고 한다면 하루아침에 배려하는 사회적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성적만이 그 아이의 인성과 성실함을 평가하는 잣대라는 것이 너무나도 비이성적이다. 심지어 십여 년의 공부를 고작 하루에 평가하는 시스템이라니 말이다. 이렇게 목을 조르면서도 한스처럼 못 견디는 아이들이 생기면 그 아이에게 말한다. '나약하기는.' 수능을 잘 보고, 공부를 잘하면 학교, 학원, 부모 덕이라고 하면서 아이가 지쳐서 뒤처지면 아이 탓을 한다. 정말 볼품없는 어른들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수레바퀴 위에서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달리지 않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인생을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 두 부류로 나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사랑받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던 세상임을 감안하면 아마 내가 사는 동안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지도 모르겠다. 괜스레 슬퍼지는 순간이다.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minute-/222962553990

j*****n 2022.12.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순응의 그늘 밑에
"순응의 그늘 밑에" 내용보기
순응의 그늘 밑에헤르만 헤세 저, '수레바퀴 밑에'를 다시 읽고재독의 힘은 초독 때 주변으로 밀려났던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로 발현된다. 또한 독자의 눈을 넘어 작가의 눈으로 읽는 텍스트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풍경 속으로 성큼 들어가 그것과 동화되어 이전보다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순응의 그늘 밑에" 내용보기

순응의 그늘 밑에


헤르만 헤세 저, '수레바퀴 밑에'를 다시 읽고


재독의 힘은 초독 때 주변으로 밀려났던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로 발현된다. 또한 독자의 눈을 넘어 작가의 눈으로 읽는 텍스트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풍경 속으로 성큼 들어가 그것과 동화되어 이전보다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7년 만에 다시 읽은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는 특히 그랬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을 나는 재독이 아닌 삼독을 했다. 중학생 시절에 가장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헤세를 찾았던 것 같다. 자아의 발견, 성찰, 성장, 성숙, 그리고 분열을 거치고 마침내 합일에 이르는 내면의 여정을 중심으로 한 숱한 이야기들이 내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뚜벅뚜벅 걷게 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준 게 아닌가 싶다.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헤세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운명처럼 그렇게 나는 헤세를 다시 만난다.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진 ‘수레바퀴 밑에’를 가장 먼저 고른 이유는 선집 읽기에 앞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의 운명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또한 재독의 고유한 맛이리라). 이 책을 다시 읽는 내가 이제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라서 그랬을까? 이번엔 억압의 상징인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음을 맞이했던 한스를 이해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한스의 아버지, 마을 목사, 학교 교장, 그리고 마울브론 신학교를 담당하는 교장을 비롯한 여러 선생들이 이루는 수레바퀴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희생자의 입장을 공감하는 차원을 넘어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수레바퀴를 돌리고 유지하고 있는지, 그들이 만들어낸 (혹은 답습한) 그들의 무의식적인 삶의 패턴이 후대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과연 그들은 인지라도 하고 있는지, 혹시 그들 역시 더 큰 의미에서 보면 피해자가 아닌지, 그렇다면 가해자는 도대체 누구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우선 구두장이 플라이크 아저씨를 제외한 나머지 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스를 자살로 몰아갔던 그 무거운 수레바퀴의 본질은 아마도 질서 유지를 위한 규율, 규범, 규칙 등으로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때 나는 그 답으로 권위자, 혹은, 좀 더 넓게는, 생각 없이 순응적으로 사는, 인간답지 못하고 인간스럽기만 한, 기성세대라고 답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고 씁쓸해졌다. 7년 전 읽었을 땐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성세대인, 한스의 아버지, 마을 목사, 학교 교장 등의 어른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들이 단순하게 비난할 대상이기보다 그들 역시 피해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수레바퀴의 중추를 담당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들의 주체성을 고려할 때 그들 중 그 누구도 주동자로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어떤 능동적이고 악한 의도로 한스를 파멸시키려고 애쓴 사람이 없었다. 또한 한스가 주검으로 변한 이후에도 구두장이 플라이크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한스의 죽음을 자살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주체를 상실한 채 무의식적으로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수레바퀴를 돌리는 자를 넘어 수레바퀴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로 보일 만큼.


순응. 나는 수레바퀴의 일부가 되어 수레바퀴를 돌리는 장본인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순응'이라는 단어를 고른다. 그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이기도 하며,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위해 애쓰는 선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 타이틀 뒤에 숨어 개성을 거세당한 채 그저 그 타이틀에 걸맞은 일을 해댈 뿐이었다. 마치 큰 기계의 부속품처럼, 마치 그것이 자기가 후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 속에 빠져 있으면서 말이다. 


수레바퀴는 개성이 거세된 획일성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억압의 중추다. 놀라운 것은 아무도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고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수레바퀴는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의식적인 의도가 아닌 무의식적인 본성이 발휘된 실체,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생성된 유기체인 것이다. 또한 여기서 나는 한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한스는 수레바퀴라는 유기체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사고사도 자살도 아닌 타살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리는 것이다. 한스는 생각 없는 어른들의 순응이라는 수레바퀴가 낳은 범죄에 희생당한 셈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다.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다. 한스도 어른들도 아닌 수레바퀴 밑에서 순응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다. 이 아이들은 선택받은 모범생이라고도 불리고 엘리트라고도 불리게 된다. 그들은 그저 수레바퀴에 굴복하고 순응했을 뿐인데 주류라는 견고한 성역에 진입하게 되고 사회적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수레바퀴가 만드는 피의 피라미드 상층부로 올라가 더욱 거대한 수레바퀴를 이루는 주요 부속품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수레바퀴는 대를 거듭하며 점점 더 삶의 중추로 자리 잡게 된다. 수레바퀴가 생존하고 진화하는 기전이다. 생각 없는 어른들과,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자라 그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대체하게 될 생각 없는 아이들이 이루는 완벽한 조화가 빚어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획일성에 저항한다. 질서라는 멋들어진 용어 이면에 숨은 인간의 탐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생명의 가장 큰 신비를 다양성이라고 보는 나는 순응에 길들여진 모든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말 잘 듣는 착한 사람의 옷을 입고 행하는 행동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냐고. 당신에게 주어진 일과 삶을 아무 생각 없이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고. 그것이 남을 파괴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만 없을 뿐 남을 죽이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다른 사람을 죽일 의지가 있든 없든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는 것이라고. 죽일 의지 없이 행한 살인은 오히려 익명성이 보장될뿐더러 의도적인 살인보다 훨씬 쉽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게 아니었냐고. 당신의 그 생각 없는 순응이 비겁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냐고. 그리고 그것들이 이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수레바퀴가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그리고 나는 감히 순응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순응으로 말미암아 거세된 자신의 주체를 꼭 찾아 회복시켜 보라고 말이다. 그것도 가능한 이른 나이에. 자칫 교만의 구렁텅이로 빠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이 시도가 꼭 해볼 만한 과업이라고 믿는다. 교만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교만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거니와, 교만을 느껴보지도 않고서 겸손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동경하고 지향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응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를테면 개성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하고 성찰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애써 보길 권한다. 그래야 생각 없이 순응하지 않고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발적인 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도 모르게 돌리고 있는 수레바퀴의 참혹한 본질을 의심하여 알아채고, 나아가 고발하고 해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는 영혼이 더 이상 없는 세상, 우리 모두의 세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 헤세 다시 읽기

1. 수레바퀴 밑에: https://rtmodel.tistory.com/1898


* 헤세 처음 읽기

1. 수레바퀴 밑에: https://rtmodel.tistory.com/449

2. 싯다르타: https://rtmodel.tistory.com/453

3. 게르트루트: https://rtmodel.tistory.com/463

4. 페터 카멘친트: https://rtmodel.tistory.com/468

5. 황야의 늑대: https://rtmodel.tistory.com/488

6. 크눌프: https://rtmodel.tistory.com/499

7. 로스할데: https://rtmodel.tistory.com/529

8.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https://rtmodel.tistory.com/579

9. 데미안: https://rtmodel.tistory.com/469

10. 유리알 유희: https://rtmodel.tistory.com/708

11. 요양객: https://rtmodel.tistory.com/826

12.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https://rtmodel.tistory.com/1430

13. 헤세로 가는 길 (by 정여울): https://rtmodel.tistory.com/1552


#현대문학

#김영웅의책과일상

y***********m 2025.10.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