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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내게 무엇인지, 일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만났다. 『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신작으로 한 남자의 일에 대한 현재 우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국영기업체인 통신회사에서 26년을 일한 남자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팀에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젊은 부장은 그를 호출해 희망퇴직 서류를 내민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희망퇴직 1순위에 들었다. 퇴직을 하지 않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 결과에 따라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직원들은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나이가 많은 그가 퇴직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내비친다. ![]()
그는 그만두지 못할 경제적 핑계를 댄다. 고등학생인 아들 준오의 학비, 재개발을 기대하고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값의 반을 대출로 구입한 다세대 건물의 대출금과 이자,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 그리고 매달 빠져나가는 공과금 들을 생각했다. 경제적인 이유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직장에서 쉬엄쉬엄 일해도 월급이 제대로 나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저 직장에 적을 두고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한 직장에서 26년을 일해 온 건 마치 충성을 맹세한 군인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70페이지) 그는 상품을 하나라도 판매해 보려고 공장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공유기를 교체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어떠한 일을 했었는지, 회사에 관련된 말도 금지 사항이었다. 그는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월급이 삭감되었고 그는 또 다른 지방 소도시로 발령이 났다. 그나마 그가 설치 팀에 있었다는 이유로 케이블 선을 끌어다 작업하는 일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에게 퇴직 권유가 시작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피해 다녔다. 사택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메모지로 해야 할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는 분기국사에서 황 여사와 같은 팀으로 일했다. 황 여사는 전화교환원으로 입사했다가 교환국 업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콜센터 부서에서 일했다고 했다. 30여 년간 상담 업무만으로 해온 황 여사에게 회사는 설치와 수리 업무를 주었던 것이다.
밀려날 대로 밀려난 사람들은 고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최나 권이라는 성으로 불릴 뿐이다. 새로운 발령지로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7형, 3식이, 그는 9번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 전에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은 호석이나, 상현, 한수, 종규로 불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으로 여겼기에 서로를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
문득 화순의 한 공원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하는 공원으로 온갖 국화와 함께 핑크뮬리까지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국화꽃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이 우뚝 서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 세워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설 속 상황에서처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자파가 쏟아질 테고 미관상에도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철탑을 세우는 기업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철탑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더군다나 노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살고 싶은 곳이라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그 또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는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했는가. 그는 무엇을 지켜내고자 했는가. 자신에게는 안식처와도 같았던 회사에서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거의 평생을 일해 왔던 곳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퇴직을 종용받는 건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커왔다고 여기는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그만두는 것과 쓸모를 다해 버림받는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가 자주 떠올리는 과거의 잔상은 행복했던 때의 한 순간이다. 그는 왜 아무것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여러 가능성을 다 흘려보냈다. 다른 삶의 방향을 꿈꾸지 못했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사람의 수평이 맞지 않은 빨랫줄을 손보고 균형이 맞지 않은 평상을 반듯이 맞춰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 갖은 수모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그는 왜 회사에 버티려 하는가. 가슴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은 듯 그렇게 답답했다. 이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어디선가는 이렇듯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업은 기업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지만 못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이란 무엇인지, 직장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예전과 달리 평생 직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일은 또다른 나의 자아다. 비록 경제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일을 하며 자아를 성장시킨다. 이름이 아닌 9번으로 불렸던 그는 비로소 자기 해야 할 일을 한다. 왜 진작 하지 못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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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외환위기와 국제금융 사태처럼 경제위기를 겪어온 사람들이라면 구조조정이라는 말에 익숙할 터이다. 사실 불경기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기업은 위기가 닥치면 우선 비용절감에 나선다. 가장 손쉽고 눈에 띄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인원감축이다. 대상자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고, 남은 사람들은 안도감도 잠시, 떠나간 사람들의 몫까지 고스란히 떠맡는다. 그만큼 일의 강도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다음엔 또 다시 남아있던 누군가가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살아야 한다는, 일을 해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 울분은 가슴을 벗어나지 못한다. 회사라는 실체가 보이지 않고 같이 일했던 동료나 상사가 마치 회사처럼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 와중에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간 수리, 설치, 보수업무를 하던 그는 그 해 여름 부장으로부터 권고사직 권유를 받는다. 이미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두 번의 재교육을 받고 세 번째 재교육을 받기 직전이었다. 노후준비를 하겠다며 몇 달 전 대출을 받아 변두리의 오래된 다세대주택을 매입했고, 아내는 마트에서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다. 매월 나가는 돈은 한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회사를 관두지 못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자그마하던 회사가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같이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자신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유를 선뜻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부장에게 재교육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3주간의 교육을 받는다. 재교육평가는 최하위였다. 다시금 권고사직을 거절한 그는 타 지역 상품판매 부서로 발령이 난다. 터미널 근처 거점 판매 센터는 그와 같은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정해준 지역에서 인터넷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지역이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산업단지임을 알고서 비로소 회사가 자신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그는 전신주에 광고지를 붙이고, 공장사람들의 일을 거들어주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를 보수해주며 지내다 두 달째 되던 무렵 박스공장 여자기숙사에 인터넷과 tv결합상품을 판매한다. 인터넷이 잘 안 된다는 말에 보수를 해주던 그는 경고를 받는다. 판매사원은 판매만하고 보수는 수리기사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업무 촉구서를 받은 그는 다시 떠밀리듯 지방 소도시 시설팀으로 발령이 난다.
그곳에서 근근이 일을 이어가던 그는 휴가를 내고 죽은 친구의 노제에 다녀오지만 다음날 무단결근으로 처리되면서 출근부에서 아예 이름이 삭제된다. 노조에 가입하고 반년이 흐른 뒤에야 본사가 아닌 하청업체 소속으로 변두리 한 소읍의 78구역에 복직하면서 1조 9번이라는 소속과 이름을 부여받는다. 마을 뒷산에 통신탑을 설치하는 현장은 그것을 저지하려는 마을사람들과 대치중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9번이라는 이름으로 9번의 일을 시작한다. 마을사람들과의 대치는 끝이 날줄 몰랐고 노인들과 실갱이를 하다 폭행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치중이던 어느 날 저녁, 그는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인다. 로프로 트럭과 몸을 묶은 사람들을 미처 보지 못한 까닭에 이장이 다쳐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이내 숨을 거둔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퇴직을 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왔지만 한 달을 버티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저주하며 증오했고, 그는 그들과 접촉을 차단한 채 오로지 9번의 일에만 몰두한다. 그렇게 그곳에서 1년을 더 버텼고, 그 사이 철탑 5개가 세워졌다. 그가 그곳에서 한 일은 사람의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9번이라는 기계의 일이었다. 인사담당자는 계속 면담을 미루기만 하고.. 그가 비로소 회사의 실체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삼십년이 훌쩍 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권고사직 권유이다. 회사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온갖 설이 난무하게 되면 모두들 신경이 날카롭게 서있다. 대상자를 통보받고 며칠을 흘려보낸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난감하기만 하다. 기한이 다가오면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김차장, 저녁에 약속 있냐?’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그의 눈가가 떨리고 어깨가 처지는 것이 보인다. 저녁 내내 밥은 제쳐두고 술을 마신다. 내가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얘기를 들어주고 술친구가 되어줄 뿐이다. 김차장은 자신의 가족과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그가 어렵게 꺼낸 말은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거였다. 아무 말 하지 않던 나는 그 말은 안들은 걸로 하겠다며 자리를 일어난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권고사직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회사는 절대 너그럽지 못하다.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소설에서처럼 아예 일을 주지 않거나, 끊임없는 교육 속에 지각은 물론 교육태도마저 평가하는 것, 그것은 초기 얼마간의 일일 뿐이다. 결국은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온 지라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그 말 대신 차라리 독기를 품고서 나가기를 원했다. 남아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바라볼 용기가 나에겐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둘 다 독기 없이는 해내지 못할 일이지만, 결국 끝이 정해져 있다면 나라면 어떠할까 생각해본다.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는 소설 속 그를 읽으면서 그를 비난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가슴이 아플 뿐이다. 수많은 그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어느 회사, 어느 현장에선 또 다른 9번들이 그의 전철을 밟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 일이란 무엇이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소설 속 그는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이 진짜 일이 되어버리면 누구나가 변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 끝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너는 어떤 사람으로 변할 것이며, 어디까지 너의 변화를 감수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자신과 힘들게 싸우고 있을 수많은 9번들을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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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김혜진 작가의 글이 내 취향이랑 100프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윤대녕이나 김훈 혹은 박완서나 양귀자 신경숙 같이 섬세하거나 읽고 난 후의 문학적 풍성함이 담뿍 느껴지는 것인데... 김혜진 작가의 글은 '중앙역',''딸에 대하여' 모두...살짝 거친듯 하면서도, 어쩌면 너무 노골적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 하여, 문학적인 울림이 아닌, 마치 삶의 현장의 시사리포트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읽고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일단,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도 아니고, 쓸데없이 센티멘탈한 감성의 글도 아니고,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마 김혜진 작가 글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책을 사 읽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여, 읽었던 책이나 한 번 더 봐야지 했었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연말이 다가오다보니 임원인사, 조직 변경, 업무 변경, 성과 평가와 썩 좋지 않는 경제상황,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른 이런 저런 불안함 때문에, 책 한 권 사 읽을 마음의 여유와 지갑의 여유가 없기 때문. 회사는 애증의 관계이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도 하고... 박수 칠 때 떠나라지만, 가급적 서로 맞잡은 손을 어지간하면 오래오래 이어가고 싶은 심정의... 한 마디로 먹고사는 것과 직결되다보니, 이래 저래 가장 신경이 쓰이고, 영향을 많이 받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업무와 근무지가 변경이 되고, 월급이 줄어들고, 끝내 성격마저 변해가는 모습에 이 책을 읽는 많은 직장인들이 뜨~악 할 것이다. 너무나도 닮아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 혹은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의 동료들은 이름이 언급되고, 그 다음 근무지에서는 황여사, 최씨 등으로, 마지막 근무지에서는 3번 7번으로 등장되는 호칭 변경...아마 한 번 더 근무지를 변경하게 된다면, 마지막에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어떤 시절에는 회사가 전부였고, 동료는 가족과도 같았다고 하는데... 요즘 이런 말을 하면 코웃음을 친다. 회사나 동료들을 믿지만 믿을 수 없는 요즘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때에는 어찌 살아야하는건지...나는 사실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도 그 답은 없다. 그 답이 없어서... 느껴지는 이런 암울함 때문에, 이 책이 마음에 든다. 덧붙임. 올해, 김혜진 작가의 글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아주 당돌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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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어찌보면 길지도 않은 소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는 옛날이라면 우리네 아빠를, 지금은 남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일이 주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육아로 인해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지만, 만약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나는 회사라는 곳에서 어떤 위치가 되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주인공은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근속한 사람이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세 번째 재교육을 받기 직전이다. 그때 새로 온 부장이 그를 호출한다. 부장은 그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한다. 자신과 같이 일하던 동료들조차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라고, 평가 점수에 따라 다른 곳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만둘 수 없다. 그에게는 몇 달 전 변두리 오래된 다세대 건물을 매입(대출을 끼고)했고, 아직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2교대로 일하고 있지만 들어갈 돈이 너무 많다. 다세대 주택의 누수 수리비, 대출금과 이자, 자동차 할부금, 아이의 학비와 다양한 경조사비, 그리고 장인의 병원비와 노모 주택의 수리비까지.. 아직 들어가 갈 돈도 많고 어떤 미래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부장의 권고사직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타지역 거점 센터로 발령 난다. 그곳에서 그는 인터넷 상품 영업 일을 시작하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렇게 월급은 30% 삭감되고, 그는 깨닫게 된다. 회사는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도 시키지 않는다는 걸. 성과가 없으니 촉구서가 이어지고 그는 다시 지방 소도시 시설 1팀 ‘분기국사’로 발령 난다. 이곳에서 인터넷 수리와 설치 및 보수 업무를 하며 일상을 되찾으려 하지만 휴가를 내고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온 다음 날 무단결근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그는 노조에 가입하고 투쟁 끝에 본사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으로 변두리 소읍인 78구역으로 복직한다. 그는 이곳에서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치하게 되는데..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었을까? IMF이후로도 다양한 형태로 직급이 있는 사람들은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을 제안받는다.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버티는 사람이나 나가는 사람이나 힘든 건 다 마찬가지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고, 늙어가는 부모님이 있고, 많은 돈을 저축한 것도 아닌, 여기저기 나갈 돈만 수두룩한 우리네 남편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해야 하는 건 아닌지. 왜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슬프고 아프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마을 주민과 대치해야 하는 남자는 그들과 똑같이 시골 어딘가에 부모님이 존재하고 부모님을 위해 효도하려고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아직 나갈 돈이 많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마을 주민에게는 나쁜 놈이지만 남자도 회사에서 하라고 하니까 할 수밖에 없다. 이걸 못하면 회사에서 짤리기 때문에..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252)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몸부림.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회사를 위해 욕을 먹으면 해야 할 일. 그런 일을 누군가의 아들이, 아빠가, 남편이, 친구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명의 혜택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 삶이 어그러진다. 만약 내 남편이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충고를 하게 될까? 힘들면 그만둬. 아니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그만두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이 회사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를 것 같으니까. 하지만 우리네 아빠나 남편들은 그걸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은 시작되는 건지도. 책을 읽는 내내 남자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팠다. 일에 대해, 그리고 중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내 남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잘해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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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어비>, <딸에 대하여>를 읽고 나면 후속 작품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되는 작가가 김혜진이다. 전작들의 울림과는 또다는 울림이 있는 작품. 9번의 일! 모두가 소소하고 달달한 이야기를 쓸 때 이 작가는 묵직한 주제를 들고 왔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지는 지점이다.
수많은 9번들처럼 나도 일을 하고 산다. 때로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그 일이 나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9번의 일에서 또한 그 일이 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왜? 라고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작가는 오늘 여기 당신의 일이 고단하지는 않느냐고, 가만가만 안부를 물어준다. 그런데 그 위로가 참 따숩고도 따숩다. 그리하여 독자는 내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지지받고 싶다면, 기꺼이 작가가 들려주는 응원에 귀 기울여보자. 가을, 깊어가는 밤이라면 그 응원의 목소리가 더욱 정겨울 것이다.
다 같이 즉어라 버티면 다 같이 죽자는 거지. 맞잖아요? 호석의 건들거리는 몸이 테이블 위의 유리커버을 쓰러뜨렸다. 숟가락과 젓가락, 플라스틱 그릇 같은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중략) 당혹스러움이 가셨고 돌료들에 대한 서운함도 옅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자신에 대한 의구심과 자괴감 따위의 감정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이런 원색적인 비난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성누함과 불편함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졌다. 그는 믿을 만한 동료들과 일했고 동료들은 그를 믿었다. 믿음은 하루가 가고, 계절이 앃이고, 서로의 표정과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버릇과 습관 같은 것들에 길들여지고, 그런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난 다음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토록 어렵게 생겨난 것들이 이처럼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P. 35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왜 망가지고 마는 것인가.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왜 이 일을 지속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매번 오기가 살아나고 끝장을 보려는 심정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점점 다른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P.169
왜그 일이라는 것이 자신을 점점 다른 사람처럼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인가.
다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래서 마침내 닿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만 이 기이한 집착과 이상한 오기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P. 244
왜 이렇듯 기이한 집착과 오기를 갖게 하는 것인가.
처음부터 이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런 무모한 싸움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에 이처럼 긴 시간과 노력을 쏟았어야 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자신은 처음부터 이런 싸움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고, 지금껏 자신이 한 일은 패색이 짙은 이 싸움은 끝없이 유예하면서 다만 지는 것을 미뤄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그는 아이를 생각했다. 몇년 뒤면 준오도 자신의 일을 갖게 될 거였다. 그러니가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알게 될 거였다.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P253
마지막장을 읽고 오래 책을 덮지 못했다. 강렬한 울림, 먹먹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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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어요. 누군가에게 추천받아서 읽고 있는 책인데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작가라서, 책을 쓰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 속에서 작가가 가진 독특한 시선을 많이 마주하게 되기를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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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과 나에 대해 절절히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 일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일과 나를 철저히 분리하겠다고. 물론 월요일이면 다시 일안으로 파고들어가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것인지 잊게 되지만, 어쨌든 퇴근은 할거니까, 일에서 빠져나와 내 자신으로 온전히 사는 시간을 만끽할 것이다. 소설 안의 '그'도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벗어나려 할 수록 더욱더 깊은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을 테지만. 사람은 모든지 잘 알고 있으면서 부지불식간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철탑을 박는 일도, 빼는 일도 다 그렇게 도덕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생각될지 알면서도 그렇게 실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만큼은 그렇게까지 가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보려고 한다. 같은 작가의 "딸에 대하여"도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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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로 들어서면서 정리해고는 이제 먼 나라 일이 아니다. 나라에서 해고를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자 회사는 직원들이 스스로 나가게끔 온갖 모욕을 주며 갖은 수를 모두 동원한다. 회사는 먼저 직원을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교육을 받게 하는 등 낙인으로 판정한다. 그 후 퇴직금의 몇 배를 주겠다고 말하며 명예퇴직을 하도록 회유한 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혀 기존 업무와 다른 부서로 배치하여 그 사람을 허수아비로 만든다. 그래도 살아남으려고 하는 노동자와 그를 내보내려고만 하는 회사의 조치 속에 그는 차츰 차츰 파괴되어 간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9번의 일'이라는 제목이 의아했다. 왜 9번이라고 했을까? 9번이 무슨 의미일까? 한 통신회사에서 설치 보수 업무를 26년 이상 하며 회사와 함께 한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했던 그가 저성과자로 분류되고 외딴 시골 영업부로 발령되고 또 다시 집과 더 멀어진 시골의 설치 보수 업무로 가게 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는 묵묵히 견뎌낸다. 점점 강해지는 회사의 인사이동은 그에게 이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잃게 하며 오로지 살아남기에 전전긍긍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에게 모욕을 주는 본사 직원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한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양심에 찔려도 회사의 방침에 의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경제적 문제 앞에 인간이 아닌 회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로 변해버린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본사 직원들에게 억울함을 느끼던 그가 나중에 통신탑을 세우기 위해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마을 노인들과 몸싸움을 벌인다. 마을 노인들이 그에게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라고 외칠 때 그는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이 회사 직원이고 회사가 시키면 합니다.뭐든 해요. 그게 잘못됐습니까?" 우직했던 그가, 회사와 함께 한 일을 자랑스러워했던 그가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이제 9번으로 불리운다. 자신의 이름을 잃어감에 따라 그의 인간성도 조금씩 조금씩 파괴되어 간다. 버티어 간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버티는 게 아닌 파괴되어 가는 것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산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파괴시킬 수 있는지 작가는 보여준다. 동료애가 파괴되고 자존감이 파괴되고 인격이 파괴되어간다. 나중에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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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마음은 나도 알 수 없다. 회사라는 틀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 할 뿐이다. 요즘 더더욱 그 마음이 간절해 졌다. 어둡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표지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밝지 않고 현실과 너무나 가까운 이야기. 마음은 아프지만 부정할 부분이 없었다. 부정하고 싶기보다는 회사라는 곳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지금은 잘 알기에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게 나의 마음이다. 그 곳에서 버티고 또 버티는 그. 그 의 마음이 정확히 무엇이라고는 말 할 수는 없지만. "포기하기 쉽지 않지?" (책속) 라는 장인의 물음.. 그 물음이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쉽지 않다는거.... 포기라는게.. 참 어렵다는거.. 그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일했다. 저성과자로 분류되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회사라는 곳은 그런 곳이였다. 실적에 쪼이고, 그 실적으로 평가하고 혹은 상사들에게 얼마나 삭삭하게 잘하는지 팀원으로서 얼마나 봉사정신이 담겨져 있는지 하지만 묵묵히 일만 한다고 해서는 절대 인정 받을 수 없는 곳이다. 묵묵히 침묵을 보이면 다른사람들은 나를 웃음게 바라본다. 그냥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시키면 해야하는게 일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다 네 라며 부정도 긍정도 담기지 않은 대답을 하며 어느순간 업무분장에 한글 추가되어 있는 업무분장을 볼때마다 그래 머 크게 달라질거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 됬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에 자잘한 누군가는 해야하고 나는 싫고 누군가에게 이게 나의 업무요 라고 마하기로 그렇고 평가를 받을때도 크게 표시도 안나고 이걸 업무라고 근무평가서에 적어내는지 .. 한소리를 듣고나서 알았다. 아...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내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네 라는 대답을 하며 묵묵히 하고 있었고 그 일은 내가 아니라도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그들에게 갈 업무일 뿐이였다. 동전교환하기, 자판기 청소, 자판기에 종이컵 리필하기, 팩스정리, 가깝다고 여자라는 이유로 매일아침 컵 씻기, 물 떠오기 ... 번호표 띠띠 종이 없다고 울리면 달려가서 변호표에 종이 넣어주기 ... 등등 이런 사소한 일이 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이걸 내가 하지 않으면 눈총을 받는다. 나이도 어리면서 , 비정규직이면서 ... 일을 안하려고한다고. 이게 바로 정당한 일인가? "뭐가 겁나서" (책속)그렇다. 무엇이 겁나서 난 그렇게 했을까? 아니 그는 그렇게 했을까? 한때는 "그래 뭐,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책속) 라고 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가 점점 대수롭지 않은 일들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싫어 졌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보자 나에게 제대로 일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나에게 그냥 책봐, 그냥 하는거야, 누군가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 없어 하면서 난 일을 배우고 실수도 많이 했다. 정말 많은 실수를 하며 모욕적인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옆에 있던 직장동료?(솔직히 직장동료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 사람에게 내가 왜 너가 실수하고 잘못한일을 처리해야하냐며 , 야 라는 소리와 너 지금 이일 1년도 넘게 했으면서 그러냐고 무시란 무시를 다 받았고 난 참지못해 업무를 바꿔달라고했는데... 그 마저도 내 직장동료가 못 가게 했다. 자기 출장나가면 자기 일 대신 내가 해야하고, 자기는 업무가 많으니 내가 자신 보조역할을 계속해야한다고 말하며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난 더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업무를 바꿨지만 조건이 있었다. 내 옆 직원이 출장을 가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가서 그 일을 해야했다.(솔직히 미치는줄 알았다. 남아 있는 자존감조차 없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꿈에서 깨어나듯 현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구체적 형체와 모습을 띠고 차례로 그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 같았다"(책속) 집에 돌아오면 답답한 마음에 울었다. 이게 직장생활 사회생활이라는 것이구나 하면서 버텼다. 하지만 이젠 지쳤고, 더이상 그 사람을 만나지는 않지만 그런 회사가 난 싫다. 이젠 떠나고 싶다. "그런 핀잔이나 충고를 듣고 돌아설때면 온몸에 힘이 빠졌다. 갑자기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였다. 자신앞의 어딘가에 금이 가고 부스러기처럼 뭔가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점점 더 무능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자책에 사로 잡힐 때도 있었다."(책속) 정말 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불안감 낮아진 자존감으로 실수는 예전보다 더 많이 했다. 그래서 정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바보였나 싶었던 순간이였다. 내가 일하는 곳도 민원이 참 무서운 곳이였다. 표정, 말투하나에 불친절 민원이라며 항의하는 곳이였다. 거기엔 내가 없었다. 껍데기만 있었다.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와 업무를 보고 간 민원들의 뒷 모습 혹은 나가는 모습을 통해 조금이라도 민원의 표정이 좋지 않거나, 목소리가 좋지 않거나 표정이 좋지 않으면 두근거렸다. 내가 불친절했나?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내가 버틴이유는 ... "희한하지 일이라는 게 한번 손에 익고 나면 바꾸기가 쉽지 않고 어디 일하는게 일만 하는 법인가 사람도 만나고 세상도 배우고 하는거지.."(책속) 그래서 못 바꿨다. 손에 두고 있었다. 밀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게 바로 일이였고 회사였다. 내가 과연 지금 .. 나가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포기조차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가지 마음이 들끊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걸지도 몰랐다."(책속) 이젠 그동안 버텨웠던 잡았던 그 무엇을 내려놓을 필요가 충분하다. 궁금한 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두운 이야기, 하지만 이건 현실이였다. 다른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였다. 마음은 아프고 또 아프고 먹먹하지만 괜찮다. 무너트리고 다시 일어나 걸을 예정이다. |
딸에 대하여(민음사)를 썼던 소설가 김혜진이 2년 만에 단행본을 냈다. 제목은 '9번의 일'. 출판사는 한겨레출판. 나는 책의 제목과 출판사를 보고 책의 주제를 짐작했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 통신회사에서 끊임없이 권고사직 요구를 받고 있는 한 50대 남성이다. 뉴스에서만 보던 퇴직, 구조조정, 지방발령 같은 단어들이 장면 하나하나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는 주변 동료들이 퇴직금을 받고 하나둘씩 떠날 때 끝까지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고 회사는 보란 듯이 그를 시의 변두리, 지방, 더 먼 지방 골짜기로 발령을 낸다. 원래 설치 기사였던 그가 담당하는 업무도 영업으로 바뀐다. 숨 막히는 그 과정에서도 배우는 것은 있다. 그것도 일종의 '일'이기 때문이다.그는 영업이라는 것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뭔가를 판매하려면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사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고 그동안 쌓인 시간과 신뢰할 만한 관계라는 것을. 그것이 그동안 자신이 보여준 친절과 호의에 대한 대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에게 발령을 통보하며 그를 사지로 몰아넣는 부장은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보통 성격파탄자나 절대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김혜진의 소설에서 그는 '그냥'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부장이 사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하는 것은 '그냥' 일일 뿐이다. 그 일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그냥' 하는 일이 된다.주인공은 회사 안에서 계속 자신의 일을 지키고 싶어 하고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소설 마지막에 그가 도달한 장소는 통신탑을 설치하려는 한 시골 마을이다. 그곳의 마을 사람들은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그는 회사의 지시를 따르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격하게 대립하고 필요하다면 폭력도 불사하면서 인간성의 끝을 보여준다. 일에 대한 그의 집착은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지경까지 간다.그런데 그가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걸까?아님 일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그는 일을 하는 도중 결코 자신의 모습이 아닐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그곳엔 자신 혼자뿐인 것 같았다. 아니, 이제껏 알 수 없던 내부의 자신들이 하나씩 빠져나와 그와 나란히 걷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돌리면 오래 전의 그이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이거나, 결코 자신의 모습이 아닐 거라 믿었던 자신이 물끄러미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만 충실한 삶. 그가 보는 건 그런 자신이 삶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차갑고 혹독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일지도 몰랐다. 나는 왜 계속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할까?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우면서 내가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이런 식으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지켜내고 있을까?그러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을 충동질하며 지나가는 그런 결단을 지금껏 미루면서 왜 계속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이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 이런 식으로 무엇을 얼마나 지켜내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고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한다면 그는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결국 주인공은 질문을 던지길 포기한다.그래야만 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그는 일을 포기하는 대신 그 일에 대한 질문을 포기한다.그 밤에 그는 모든 의심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회사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 시시때때로 자신을 짓누르는 걱정과 두려움을 떠안고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뭐든 믿어야 했고 믿고 싶었다. 그래야만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회사를 믿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그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포기하기가 쉽지 않지?한참만에 장인이 물었다.나는 화자에게 장인이 묻는 이 장면을 보고 '네.'라고 대답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왜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고 그것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끌고 갔던 적이 많았다.사람들은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자신을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한 일과 그 일을 하면서 한 선택들은 나를 바꾸는 그 어떤 것들이었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포기하기가 쉽지 않지?장인의 물음이 입 안에 계속 남아 맴돌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내가 이 곳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 '이유'내가 어떻게든 잃지 않고 지켜내려고 하는 '것'악착같이 포기하지 않고 이 삶을 지속하려고 하는 '이유'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면 소설 안에서 누가 그 이야기를 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녀가 왜 중년의 남성을 화자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남자를 통해서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사유와 감정들은 철학서를 읽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녀는 책의 마지막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이 글을 쓰면서 글 쓰는 일이 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생각했다.이 책 안에는 어떤 대상을 깊이 이해하고 파악해서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는 집요한 욕심이 있다. 당신이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일의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본인의 자아를 일깨우고 싶다면 9번의 일을 읽기를 추천한다.당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그 일이 나를 어떻게 바꾸는지 때로는 잊고 있을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