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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상당부분 지어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때로는 스스로도 매력을 느끼는 이야기구조를 만들어낸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매우 여러차례 대충대충 나오는대로 말을 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왜 아이는 이야기를 좋아할까? 나도 예전에 아빠가 형들이 들려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매우 즐겼음을 떠올리게 되고, 그것이 내 자신의 인격과 인성을 형성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AI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면서, 동시에 이미 시스템화된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 생산과정을 고려하면서 이야기의 생산은 한두 개인의 고민과 고안, 창작력에서만 도출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게 되고, 이는 확대하자면 기존의 고전들도 어쩌면 인간 문명사회에서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들의 역할은 무엇이며, 인간사회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그러니까 정보와 팩트의 전달이 아닌 이야기의 생산에 열을 올리게 될까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었다. 더구나 항상 그 해석에 있어서 의견이 분분한 역사를 두고 벌어지는 수많은 논의들... 이는 곧 이야기에 대한 논의의 연장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보고, 개인적으로 언젠가 시도해보겠다도 하는 AI Big History Production & Review 프로젝트도 생각해보면서 책을 잡아봤다. 뭐,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이런식의 생각이 이와 같은 방향으로 정리된 측면도 있음은 인정하자. 저자는 무엇보다 "예술을 유형이 허용하는 풍부한 추론에 대한 인간의 강렬한 욕구에 호소하는 인지 놀이로 보자고 제안"한다. 그 기능은 1) 인간의 인지에 중요한 양식들에 맞춰 우리의 정신을 다듬고 재조율하고, 2)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지위를 높이고, 3) 공동체의 조화와 협력을 높이며, 4) 개인적,사회적 수준에서 창조성을 키우는 것이라 정리한다. 예술의 기능론... 이라 단순히 말하면 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듯도 한데, 저자는 이러한 해석의 배경으로 '진화론'을 끌어들인다. 사실 이는 생각 못했던 접근이어서 매우 흥미롭게 읽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맥락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몇몇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진화를 통해 특유의 문화적 능력을 얻어낸 이유는 문화가 유전자보다 더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는 길로 안내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전적 변화가 인구에 확산되려면 보통 여러 세대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문화는 유리한 요소를 한 시대 안에서도 빠르게 확신시킬 수 있고 이후 세대에 전승시킬 수도 있다." 새로운 얘기는 아닐 수 있다고도 하겠다. 인간의 언어가 가지는 의사소통의 효율 등을 강조하는 이론들은 종종 접해봤던 듯 하니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진화론적 입장에서의 비용과 편익에 대해서 논의하는 건... 이 부분을 보면서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다시금 봤다.(그 이후로도 몇차례~) 저자는 영문과 교수라더라. '우리가 진화의 논리를 실천하는 방식은 의식적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논리가 실천되도록 설계된 우리의 감정에 따르는 것이다'라는 인용과 함께 유전자 맥락에서 진화의 작동기재를 말하는 영문학자. 반복하지만, 이런 논지의 소개가 새로운게 아니라 이 분야에서 이런 논의가 도입, 적용되는 것이 나름 신기했다고 해야겠다. 다시금 저자를 인용해보면 "1990년대 초에야 기능이 알려진 거울신경세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감정 표현을 보며 마치 내가 똑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느낄 때 작동한다. 거울신경세포 덕분에 우리는 일종의 자동화된 내적 모방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스스로 그 감정에 조율할 수 있다. ... 특정한 순간에 두 사람의 생리적 상태가 비슷할수록 서로 상대의 감정을 쉽게 느낄 수 있다 ... 서로 친밀한 사람들은 함께 창의성을 도모할 수 있고 효율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why 질문을 떠나서, 우리 생물은 이렇다는 이야기. 그리고 거울신경세포라는 유전자 수준의 기작이 좀 더 발달한 인간들은 이렇다는 이야기. 당연히 그렇다면, 이 방향을 촉진하는 무언가 생리적인 또는 생리외적인 기작이 진화적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첫째로 필수적인 요소는 관심의 공유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면, 서로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고 인지적 접착제에 해당하는 공통의 초점을 형성할 수 있다." 이 정도에서 언어와 그 대표적인 형성체인 이야기의 기능에 대해서는 진화론적으로 충분히 기능상의 설명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이야기'는 교훈적으로 각색된 교육용 자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난해하게는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임스 조이스도 있을 것이고, 햄릿과 리어왕도 있고, 서유기와 해리포터를 지나 각종 SF 및 코미디들도 많은 것 아닌가? 요약하자면, "예술로서의 이야기"의 기능은 어떻게 더 설명할 것인가? "예술은 창조성을 도모할 뿐 물질적으로 유용한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내고자 하지는 않는다. 인지적 자극, 사회적 단결, 개인적 지위가 예술의 출발점으로 이미 주어져 있지 않을 경우, '쓸모없는' 창조성만으로는 예술을 행동으로서 확립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개별적, 집단적 기능이 갖춰져 있을 경우, 전통이 덧쌓이고 계통이 확고해짐에 따라 예술이 가진 부가적인 창조성의 기능도 점차 발달한다." 어찌보면 전통적으로 교과서적인 예술의 장기적 기능에 대한 설명일 것도 같으나, 과학기술 또는 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저자는 이 창조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예술은 우리의 사회성을 다듬고 강화하며.... 개인과 집단의 차원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자신감을 북돋워준다." 좀 추상적인 논지로 흐르기에 종교의 기능과도 연결되는 것 같긴 하지만, 결국은 효율이다. 현대의 다양하고 막대한 규모의 예술기반의 경제활동을 제외하더라도(이는 과학기술의 지원의 역할로써 기능을 하고), 저자는 예술의 역할을 분명 힘있는 주장으로 정리하였다. 여기에 농담을 덧붙인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Tralfamador 인들에게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독특하게 생각하게 된 배경에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구상 생물계에서 진화된 유전자의 작동이 개입되어 있음을 설명해줄 수 있게 된 듯 하다. 좀 더 나아가보면... "정신은 미래를 발생시킨다. 정신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견해 행동을 이끈다.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매우 가변적이고 변화무쌍하고 탄력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사적 경험이나 전해들은 경험만이 아니라 가상놀이와 픽션의 사고 실험을 이용해 상황을 해석하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 행동, 대응을 시험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면 명백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와 같은 교육적 기능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초자연적 이야기는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 그러나 초자연적 이야기의 목표는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고 추정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정체를 밝히는 데 있다. ... 우리는 미래는커녕 현재의 진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설명을 좋아하며, 보이지 않는 행위자의 보이지 않는 원인을 추구한다."와 같이 추상적 기능의 효용도 이야기한다. 이는 분명 종교의 영역과 연결된다고 본다. 얄팍한 지식바탕에서도 원시종교는 원시예술과 분리되지 않았음은 들어봤으니까. 게다가 "과학은 과거를 픽션적 행위로 설명하는 방식을 크게 발달시켰다. 심지어 과학자들도 인과적 요소들을 의인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를 넘어 생각하는 인간의 지속적인 성향과 능력, 다시 말해 현실성이나 개연성에 제약되지 않고 가능성이나 비현실성도 탐구하는 행위자와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성향과 능력이 아니었다면 과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흠... 이런식의 예술지상주의가 있다니~ 덧붙여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된 두 가지 논점을 소개해보자면, 우선 범죄와 그의 처벌/응징에 대한 인간의 사고발전의 단면을 언급한 오딧세이에 대한 해석이 있다. 고생끝에 귀환한 오디세우스는 복수를 성공하면서 어떠한 처벌을 내렸을까? 그것은 과연 현대적 관점에서 정당한 수준일까? "오디세우스는 당연히 분노한다. 분노는 타인이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빼앗아가려 할 때 저항하도록 진화된 감적이다. 오디세우스의 세계에는 아직 공동체 전체가 범법 행위를 탐지하고 처벌을 부과하는 부담을 공유함으로써 징벌을 비인격화하는 제도가 없다. 그래서 오늘날의 소규모 사회들처럼 징벌이 사적 보복의 기반 위에서 행해진다. ....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에게 분노할 만한 강력한 사적 이유가 있지만, 그와 동시에 아들과 두 충직한 하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공동체의 분노라는 짐도 짊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전부를 대신한다 해도 징벌이 사적이기 때문에 사적인 복수라는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 유혈 사태의 순환을 끊기 위해 호메로스는 신들을 개입시켜야 했다" 이는 전형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사례일 수도 있으나, 이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드러나 다양한 인간이성의 발전 단면, 그것들을 이야기화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사회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죄와 벌에 대한 이성의 추상수준의 발전 정도가 제한적이었던 당시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법제도와 일반 도덕의식의 변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의 부조리는 지금 현재에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도덕개념에 부상할 때, 과거에는 용인되던 행위가 범죄화되면서 발생하게 된 다수의 범법자들의 정서, 그리고 도덕적 우위에 서게되는 이들이 고민하게 되는 적정 수준의 처벌에 대해서 여전히 수많은 혼란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한 고민의 단면이 오딧세이에서도 원형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런 범주의 이성이 복잡하게 발전됨에 따라 이야기의 직접적인 반영 역시 복잡해지고, 또한 그 변형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개인과 집단의 감정적 혼란도 이야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갑작스레, 현대문학의 다양한 난해한 형태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알것 같아지더라. 또 하나는 저자가 취하는 진화론의 도입, '진화비평'이라고 칭하는 방법론이 '구조/구성주의적 문학이론'에 대해 가지는 차별점에 대해 나름 인식하게 되었다. "진화비평은 이론적이면서도 경험적인 문학의 이론을 제공하면,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비추어 가설을 제시하고 검증한다. 진화비평은 훨씬 이전의 문학이론이나 비평과도 양립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문화구성주의나 구체적인 '인식변화'를 토대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인간 정신들이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입장은 거부한다.... 문학이론은 인간의 사고와 발생을 단지 언어, 관습,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봄으로써 문학과 삶을 분리시킨다. 그러고는 그런 분리를 상쇄하기 위해 문학은 항상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문학이론은 사고를 사실적 증거에 비추어 검증하는 경험로을 회피함으로써 문학과 연구도 분리시킨다." 문학이론에 대해 별달리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고, 딱히 매력을 느껴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비판에 대한 인상이 강렬한 것은 아니었으나, 구조가 환경이 개체와 작품을 규정한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매우 난해한 듯 하면서도 매력이 있는 이론들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인데... 그런 흐름의 폐해가 은근히 이해가 되더라. 저자는 이런 주장을 오딧세이의 해석에 대한 사례들이나 그 밖의 다른 문학들에 대해나 구조/구성주의적 접근의 한계들을 지적하면서 주장한다. 거칠게 맘대로 해석을 하자면, 그런 구조/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이라는 것도, 그 토대의 형성수준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그 역시 인간지성의 진화의 흐름을 따를 수 있다고도 보여지는데, 어쩌면 크레마뇽인 이후의 생물학적 진화의 수준은 이미/대체로 고정되어 있고 당시의 문화적 수준에 따라 인간의 지성활동(문학)이 규정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들더라. 발전이라는 것, 진화라는 것이 목적정을 가진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방향성은 항상 고려되어야 하고, 그걸 좀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진화비평이라는 접근도 꽤나 유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양한 이론적인 소개와 해석들이 있는 책이다. 이야기의 효용과 발전 배경에 대한 해석은 기본이고, 그런 해석들이 문명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났는지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저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을 통해서 Dr. Suess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나중에 기회를 한번 잡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