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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단 세 글자의 제목이 몹시도 비장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660페이지의 방대함이라니 새삼 읽을 거리가 많겠군...근데, 여자아이의 뒷모습이다. 저자가 한국이름인데 옮긴이가 따로 있네. 이민간 사람이었구나... <이책은> 리뷰어클럽 [다]조 지정 도서다.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작년에 본 영화 '포화속으로'가 생각나고 '전우'라는 드라마를 보며 전쟁은 이런거구나를 실감했던 시절이 있었다. 제복에 반하여 늠름하고 사내다운 기상이 느껴지는 군인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썼는데 답장을 받았을때의 그 기쁨이란...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보면서도 우리편인 군인아저씨들이 안 죽고 다쳐도 괜찮아지는 상황이면 안심하는 단순함만이 자리했었지. '생존'이란 단어가 이리도 처절한건지 이 책으로 처음 안 것 같다. 또 '생존'이 이렇게 음울하고 지독히도 고독한 거라면 굳이 아둥바둥 그렇게까지 살아야할까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관계 속에 산다는건 적어도 인간적이고 그 안에서 희노애락을 맛보는 것일진대 그저 답답했다.
준은 여자아이로 쌍둥이 동생을 데리고 피난 열차에 죽기살기로 매달렸다가 두 동생마저 잃는다. 피난열차에 오르기전에는 비교적 다복한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 준, 쌍둥이 동생과 함께 했다. 살면서 접하게 되는 인간관계에서 비교분석한 내 결론은 대부분이 첫째들은 모질지 못하고 독기도 덜하다. 첫째로 태어난 여자든 남자든 주는 사랑을 넘치게 받아서 내면은 풍부하고 눈치가 없다. 둘째로 태어난 사람은 거기서부터 생존본능이 싹튼다. 첫째와는 다른 그 무엇이 있거나, 그 무엇을 발휘해야만 관심을 받게 되는 상황. 그 상황에서 살아남다보니 두뇌회전력이 빠르고 눈치코치는 기본에다 도전적이고 추진력 또한 대단하다.
모임엄마중 둘째가 있는데 '세상의 성공한 사람들도 대개는 둘째요,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의 태반도 둘째'라는 통계를 봤다며...보통의 사람들이 보는 어떤 것들을 둘째들은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으며, 다른 이들이 못보는 어떤 걸 둘째들은 잘도 본다는 생각에서 아마도 우뇌를 사용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갑자기 둘째 타령을 하는건 '준' 이 기집애가 둘째인데 이런 독종은 처음이고 이런 여자 참으로 겁난다. 생존본능이 시켜서 하는 짓거리들이 오싹하다. 그녀의 마수에 걸려들까 소름끼친다. 그녀는 맘 먹으면 거의 99%는 해냈다. 다만, 통상적으로 대다수가 할 법한 것들에서 예외를 적용한다. 가령, 미혼모로 낳은 아들 니콜라스가 어릴때에 도둑질을 했는데 그걸 따끔하게 야단친게 아니고, 은근히 그걸 즐기는 엄마다. 미행도 하면서 상상해 보는 재미를 가진다. 아들이 뭘 훔쳐왔는지 몰래 살핀다. 물론, 아주 먼 훗날에는 그때 자신이 야단을 쳤더라면 이라는 일말의 후회를 하기도 한다.
모든 가족을 잃고서 전쟁고아로서 생존했다는 사실앞에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랴 싶은데, 그렇다고해서 준처럼 겁나는 고아는 드물지 싶다. 목사부부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먹고싶은 음식도 참아내는 인내력에 혀를 내두른다. 굶주림이 뭔지를 뼈저리게 아는 준이 말이다. 그만큼 목사부부의 입양대상자가 되고픈 욕망은 목사 아내 실비의 눈에 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당연한거고, 그녀의 사랑을 독점하고픈 집착이, 헥터를 미행관찰도 하고. 실비의 눈에는 들었으나 목사가 마뜩찮어하자 또다시 변신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준. 실비와 헥터가 불륜을 저지르는걸 어둠 속에 숨어서 다 보고 듣고 어린 마음에 질투도 하고. 실비의 사랑이 자신에게 머물지 않는걸 안타까워하는 어린애이면서 또 한편으론 상황이 어른으로 변모시킨 어떤 내면도 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허풍도 심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신체가 온전치 못하여 군대를 가지 못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줏어듣고 알게된 얄팍하지만은 않은 지식을 토대로 군인들에게 맥주도 돌리면서 격려와 위로도 하지만 늘 끝은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으로 분란을 조장시키는 재주가 있는 아버지 옆에는 헥터가 함께했다. 헥터을 대동하고 다니는걸 큰 자부심으로 여기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그날은 처음 거짓말을 하곤 미모의 전쟁미망인과 아침까지 밤을 지샌다. 돌아온 집에 아버지는 없고 익사체로 발견되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눈도 맞추지 않는 시간이 흐른다. 죄책감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던 헥터는 한국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군인자질이 충분했던 그는 분노를 표출하는 한 방편으로 싸움에도 임하고 실적도 올린다. 수많은 죽음과 부상자를 대하면서 어느새 염증을 느끼고 전사자 처리부대로 전출간다.
흘러,흘러 들어가게 된 산골의 고아원. 그 길목에서 초췌하고 다 죽어가는 말라깽이 소녀를 조우하는데 그게 바로 준. 준과의 그 만남이 운명이었다는걸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잘생긴 얼굴에 매우 다부진 체격.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장한 체격은 단순히 튼튼한 정도가 아닌 웬만한 상처는 자연치유가 되는 체질. 게다가 어지간히 술을 마셔도 끄덕없고 만 열두 살도 되기전 누나 친구 둘이 일러준 육체는 많은 여자들을 거쳤다. 타고난 성욕이 강했던 그에게도 맘에 들던 여자가 있었다. 위니는 미모도 출중했지만 성격이 까칠하고 거칠기로 소문이 자자한 여자였건만 헥터와 일주일을 밤낮으로 지내보고는 그를 찾아오다 폭우에 교통사고사한다. 그녀와 잘 지냈다면 그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고독했을까. 실비라는 목사 부인과의 불륜. 그에겐 단순히 육욕을 위한 대상이 아닌 숭고하고 아름답고 그러나 마약을 하는 몹시도 외로운 여자였다. 그 여자가 자신과 닮은 면이 있어서 그런면에서 더욱 보듬어주고 싶었던 인간적인 마음도 컸는데...
목사 부인 실비 태너. 그녀의 부모는 선교사 활동을 하며 주로 낙후하고 위험한 지역을 많이도 다녔다. 물론 실비를 데리고 말이다. 그렇다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태반을 지내게 되고, 가림막 하나 예의상 있는 방에서 부부와 딸이 지내기도 한다. 실비의 엄마는 아버지 위에 올라타서 적극적이고...그런걸 어릴때부터 훔쳐보기도 듣기도 느낌으로 감지한 그녀다 보니 일찍부터 발달한 건지. 자신의 과외샘을 유혹하여 일이 생길뻔도 하나, 과외샘의 분별력과 배려로 실패. 그런 과외샘이 공산당으로 일본장교에게 갖은 고문을 당하다 실비의 부모가 살해되고 실비마저 일본군이 겁탈하려하자 할 수 없이 자신의 동료들을 불고는 실비는 구해진다. 그런 실비가 제정신을 갖고 살기도 쉽지는 않은일. 젊은 여대생이 40살이나 먹은 성기가 없는 불구인 남자와 애무하며 밤을 지새우고 그 남자가 하던 마약을 조금씩 하면서 쾌락을 좇는데...
중략
660 페이지는 피난 열차에 타게 된 준으로 시작해, 헥터의 어린시절부터 그려진다. 그러다 실비의 어린시절이 나온다. 고아원이 나오면서 헥터와 준, 실비 부부가 등장하고, 다시 준의 현재가 나와서 말기암을 가진채 아들을 찾는다. 그 아들을 찾는 중에 헥터까지 찾게 되고, 헥터는 말야 살아있으되 죽었고, 죽었다치면 살아있는 기나긴 삶을 연명하며 청소부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중 삶의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헥터에게 도라는 삶의 희망이자 기쁨이 되어 난생 처음 자신을 말쑥하게 단장하고, 집을 치우게 되고, 무척 피곤하고 부담되는 일이지만 도라를 기쁘게 하고, 도라와 앞날을 설계하고픈 바람을 가지게 된다. 그게 과한 욕심이었던가. 난생 처음 가진 그 마음에 마가 끼었나. 준의 의뢰인의 차에 치어 절명하게 되는 도라. 생의 의욕을 잃은 헥터에게 준은 나타나고...
미국으로 이민한 저자라서 그런가. 여기선 '성'에 관하여 자주 언급이 된다. 헥터도 실비도 너무나 일찍 성에 눈뜬다. 헥터는 직접 경험을 하고 실비는 느낌으로 다 감지한다. 자신의 몸이 끓어오르면 주체하기를 힘들어한다. 발정난다는게 그런게 아닐까 싶게 리얼하다. 준 역시 고아로 엄마의 정을 느끼는 것이라 치부하기엔-혹은 실비가 너무 아름다워서-레즈비언의 한 면을 보여준다. 실비는 자신의 엄마를 닮아선지 매우 자유분방한 여성이며 성적 갈구도 많은데 그 남편이 채워주질 못했다. 성에 관하여 몹시 왕성한 그녀를 만족시켰다면 사역활동을 함에도 그 부모처럼 찰떡궁합이었을텐데, 태너 목사는 그 소임이 컸던만치 자신의 아내를 만족시키는 건 잘 못했다. 더구나 젊은날 마약의 후유증인지 아이를 애타게 바랬건만 5번의 유산은 그녀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런 상실감이 나아가 그녀가 한때 좇았던 마약을 하게 되고, 그런 외로움을 알아본 헥터와 안되는줄 알면서 저지르게 되는 불륜. 이게 묘하게도 공감이 가더라는...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콜린 맥컬로우의 가시나무새가 생각났다. 종교적인 면에서 그랬는지. 암튼 내겐 그 책을 떠올리게 되더라. 이 책은 방대한 페이지답게 처음엔 음울한 얘기로 시작하는데다 한국전쟁의 참상이 회자되고...그다지 유쾌하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으면서 심심하지 않게 적나라하지는 않으나 성에 관하여 종종 나오고, 이 사람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고, 무지 궁금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니 언뜻 보면 산만하고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헥터라는 인물을 보건대 왜 사니 싶고, 준을 보건대 저런 섬뜩한 어린애는 너무 무서워 싶고, 실비는 애처럽고...그럼에도 삶은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구나 싶으면서 한순간 심오해지기도 한다. 저마다의 삶인데 저마다의 운명과 맞물려 제각기 반응하는 모습하며 큰 틀에서는 한 시대를 같이한 사람들의 애증과 인연의 실타래를 보면서 의미있는 책 한 권 잘 만났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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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어 보지 않는 나는 소설속에서 전쟁을 본다. 부모를 눈 앞에서 잃는 걸 보거나,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는 전쟁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피난민으로서 배고픔을 참고 견디는 법, 먹을 게 있으면, 있을 때 배를 채워두는 법, 무언가를 훔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의 세 인물을 통해 그들은 전쟁의 참상과 그들의 내면 속 영혼을 갈구하는 책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서 1953년의 한 고아원과 1986년의 미국에서의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전쟁을 겪은 그들, 전쟁고아 준, 미군 병사 헥터, 선교사의 아내 실비가 그들이다. 전쟁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또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어느 누구에게 선택을 하도록 해선 안 돼. (257페이지)
피난민 대열에 있는 준은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고 꽉 들어찬 기차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차 지붕에 딱 붙어 남쪽으로, 부산으로 가는 중이다. 준 자신도 어렸지만 어린 쌍둥이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후 아빠와 오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같이 피난을 떠났던 엄마와 언니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준은 동생들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했을 행동들을 그대로 동생들에게 해주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동생들마저 잃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밤이든 낮이든 생존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항상 주변을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31페이지)
전쟁을 싫어한 아버지로부터 절대 전쟁에 나가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듣고 자란 헥터. 별일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술집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갔을때 일어난 사고로 아버지가 죽자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군인으로 있던 헥터에게 처형하도록 인계받은 소년 병사때문에 그는 굉장히 견딜수 없어한다. 그뒤 전사자 처리 부대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잘 견디지 못해 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세계를 누비며 선교활동을 해온 실비는 전쟁속, 만주에서 부모를 비참하게 잃었다.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실비는 힘든 나날을 보내지만 시애틀에서 평생의 반려이자 선교사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들어와 부모가 했던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실비가 고아원으로 오게 되면서 헥터와 준은 서로 어쩔수 없이 서로 엮이게 된다. 그들의 운명과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6년의 미국에서의 준. 준은 아버지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 유럽으로 간 아들 니콜라스를 찾을 결심을 하고, 그에 앞서 헥터를 찾는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찾아 이탈리아로 가려고 가게를 정리하고, 집의 모든 물건들을 정리한다. 아주 싼 값에 넘기고, 신세를 진 사람에게는 그냥 주기도 한다. 그리고 헥터를 찾아 아프 몸을 이끌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몸을 하고서.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452페이지)
준, 헥터, 준. 그들의 인생을 보자면 과거의 기억, 전쟁의 처참한 기억들을 빼놓을수 없었다. 상념에 잠기면 언제나 생각나는 그 아픈 순간들의 기억속으로 빠져들었다. 1986년의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그 고아원에서의 아픔들이 저절로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아픈 기억이었다. 부모를 일본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잃은 실비가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것 때문에 술에 의지하는 헥터,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과 성적인 것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가운데에 있었던 준. 이 세 사람의 그들이 품었던 그 모든 갈망과 모든 것을 잊고자 했던 살기 위한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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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플수 밖에 없다. 전쟁의 상흔을 오래도록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기억들을 지우고자 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엉켜버린 과거의 기억을 풀려는 준은 여행을 준비하고, 준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 헥터는 가시 박힌 아픈 손을 돌보듯 그렇게 준을 돌본다.
이 책 속에는 그들의 모든 아픔이 들어있다. 아플 수 밖에 없는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이 가슴아프도록 다가왔다. 그들의 아들을 찾아 이탈리아를 헤매는 그들. 그들이 진정으로 가고 싶어 했던 곳, 솔페리노에 도착한 그들이 맞은 그 무덤들. 솔페리노는 준의 이상향이었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이민가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인 이창래의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인 이창래의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의 전쟁을 겪은 한국인으로서의 아픔과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그린 작품이다. 아픔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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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라는 이 책의 제목은 꼭 서바이벌 다큐를 연상케 한다. 마치 《정글의 법칙》 이나 《MAN VS WILD》 같은.. 방송에서 각본에 의해 어느 정도 짜고 치는 다큐를 보며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의지를 부러워하고,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진짜 ‘생존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우리나라는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생존자’들이 이룩한 나라가 아닐까 지난 세기, 한국전쟁이라는 큰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생존한 사람들, 포화의 한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준은 달리면서 절단된 동생의 다리 부위를 꽉 움켜쥐었지만 한 손으로는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멈추어 서서 동생을 땅바닥에 눕힌 다음 양손으로 절단 부위를 꽉 움켜쥐었다. 기차는 천천히 남매를 스치고 남쪽으로 굴러갔다. 이제 그들의 뒤로는 기차의 3분의 1만 남아 있었다. 이 책엔 어떤 의미에서든 진정한 〈생존자〉가 세 명 등장한다. 한국전쟁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소녀 ‘준’ 도망치듯,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운명처럼 ‘준’을 만나게 되는 ‘헥터’ 전쟁 중 고아원을 운영하는 태너 목사의 부인 ‘실비’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던 ‘준’은 집 나간 아들 ‘니콜라스’를 찾기 위해 ‘헥터’에게 도움을 청한다. 헥터는 내키지는 않지만 ‘준’의 끈질긴 생존력에 감명을 받고 그녀의 아들, 어쩌면 그의 아들이기도 한 니콜라스를 찾기 위해 동행하게 된다. ‘준’은 생명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은 니콜라스를 찾아 길을 떠나면서 오래된 갈등과 아픔을 들추어내고, 이해하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준’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헥터를 만나 고아원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는 이 소설의 다른 한 축을 이룬다. 2차 대전 중 좋아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본 실비와 원초적인 고독을 갖고 태어난 헥터,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족을 잃고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준’. 세 사람은 저마다의 욕망을 숨긴 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연극을 하게 된다.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픈 현실이 읽는 내내 가슴을 누르고 매만져 좀처럼 책을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장에서 만나 살아남았지만, 실상은 서로의 지독한 운명으로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얼기설기 옭아맨 독한 인연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어릴 때 엄마가 내게 들려준 얘기가 있어요. 그 때는 그게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할 것 같아요. 이 세상에는 필요 이상의 선행이 있다고 엄마가 그러셨어요. 사랑을 베푸는 일이죠. 과도한 선행도 분명히 문제가 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선생이 잘못 사용되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럴 경우에는 전혀 선행이 아니기 때문이죠.” (643쪽) 그들은 선한 마음이었을까? 서로가 서로를 탐하던 그 슬픈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때론 인간사의 윤리, 도덕을 무색하게 만들곤 한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잘 먹고 잘 살아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 반감과 함께 화가 난다. ‘이해’는 동일한 경험을 전제로 할 때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책 속 세 주인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작가 이창래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생존자》는 전쟁으로 시작된 비극이지만, 전쟁이 아닌 개인의 비극에 대해 더 깊이 있는 고민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준은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언젠가는 멈추게 될 테지만 아직은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필사적으로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 객차의 바퀴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내면서 섬광을 번쩍였다. 그것은 속도를 내면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기울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뒤쪽으로 세상이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누군가가 그녀를 끌어올려 품어주었다. 그녀는 지면에서 발을 뗐다. 살아남은 것이다. (6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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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600여 페이지의 기나긴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피난을 가는 그것을 왜 여행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동안 삶을 살아왔던 곳을 떠나는 것이라.. 이것도 떠남의 일종이라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전쟁' 전쟁은 평범했던 일상을 한순간에 흩트러 놓는다. 가족과 이별을 하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굶주리고, 인간들의 본성을 목격하게 되는 처참함을 겪게 한다. 또한 전쟁이 끝났다 하더라도 그러한 고통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은 평생을 그림자처럼 쫒아다니며 그들을 괴롭힌다. 그러한 고통속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 중 피난길에 고아가 된 준, 참전군인이었던 미군 헥터 그리고 전쟁후 한국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태너목사와 그의 아내 실비...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전쟁 자체의 참상이라기 보다는 남은자들의 참상을 그려낸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이다.
준에게 있어서의 전쟁은 그녀의 모든 가족을 빼앗가버린, 그래서 그녀를 이 세상에 오로지 혼자만 남게 한 원흉이었다. 교육자였던 아버지 다정했던 어머니 언니와 오빠 쌍동이 동생들.. 아버지는 눈앞에서 처형을 당하고 오빠는 강제 징집을 당했으며 어머니와 언니는 피난길에 폭파사고로 목숨을 잃고 .. 그렇게 남게 된 준은 동생들을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맘을 먹지만 피난 열차 사고로 두 동생마저 잃고 천애의 고아가 되어버린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미군을 따라 가게 된 고아원 그곳에서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고집스럽고 유별난 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목사 사모님이었던 실비의 사랑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지만 자신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줄로 믿었던 목사 부부가 자신을 데리고 떠나지 않자 더 깊은 상처를 안게 된다.
핵터에게 있어서의 전쟁은 도피처였다. 자신을 신뢰했던 아버지.. 참전 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던 아버지였다. 술을 좋아했고 과격했던 아버지였지만 그런 아버지에 대한 증오 만큼 사랑 또한 깊었던 헥터..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때문에 한국전쟁에 참전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비인간적인 인간들의 행태 그리고 죽음등을 목격하면서 번민과 혼란속에서 괴로워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아원에 남아 그곳에서 묵묵히 일을 해 나간다
실비에게 있어서의 전쟁은 배신이었다. 그녀가 겪는 전쟁은 한국전쟁의 이야기가 아닌 만주사변의 이야기였다. 어린시절부터 선교사였던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그녀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생각하고 나를 희생하면서 남들을 보살피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 조차도 전쟁의 총칼 앞에서 무참하게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그녀의 모든 가치는 무너져 내리고 무기력한 한 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중 에임즈 목사와 결혼을 하고 한국에 나와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그 전쟁고아들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모색해 보지만 그녀를 붙잡고 있는 과거의 상처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야기는 1950년대 한국전쟁과 전쟁 이후의 고아원에서의 생활 1934년 만주사변 당시 실비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상황 그리고 1986년 현재 준과 헥터의 모습을 시간의 흐름상이 아닌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모습등을 교차적인 방식으로 서술한다. 많은 분량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고 대화나 어떤 극적인 사건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가 더 많기에 자칫하면 무거운 주제속에서 암움함만을 느끼게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하지만 극적인 효과를 주는 사건들이 곳곳에 포진이 되어 있어 현재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 과연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과거의 이야기로 그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또 '이런 일들이 현재에는 어떤 결과로 나타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계혹 갖게 하며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한 사업가가 된 준..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기 위해 오래전에 이별했던 헥터를 찾고 자신이 보물처럼 간직했던 실비의 책을 들고 유럽으로 떠나버린 아들 니콜라스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이미 죽음이 예견된 그녀의 삶,, 아들을 찾아나선다는 명목이 있었지만 그녀는 실비를 생각하며 솔페리노를 찾아 떠난 것이고 그곳이 자신의 종착지임을 예견한 떠남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1950년 그 피난 열차를 떠올린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동생과 떠나려는 기차를 두고 어치할 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결국.. 맨발로 뛰어 오른 열차 뒤로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세상을 느끼며 그녀는 느꼈다 '살아남은 것이다' 이 문장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생존이라는 것.. 일단 살아남아야 그 이후의 삶이 있는 것이기에 그 순간은 그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 휴유증과 고통속에 살아나가야하는 괴로움은 그것을 진정한 생존이라고 말할 수 없게 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과거와 만나며 그것을 다시 바로 잡을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 있는 고통들은 사랑과 용서로 극복하려는 인물들의 노력을 통해 진정한 생존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안타깝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자신이 발을 땅에서 떼고 열차를 올라타며 살아남았던 그 순간의 그 감각을 느끼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작가 이창래는 3살에 이민을 가서 영어로 글을 쓰는 재미작가이다. 그의 이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나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를 통해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는 또 다른 전쟁의 이야기.. 모든 것이 파괴되고 황폐해진 회색빛 속에서 초록빛을 띄우기 위해 힘겨운 못짓을 하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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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의 참혹함을 잘 알지 못한다. 아마 우리 세대 즈음부터 해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자란 세대일 것이다.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나이에 서울올림픽이 열렸고 IMF가 닥쳤을 때에도 대학새내기였던지라 그저 놀고 먹기 바뻤으니까. 부모님 세대들 역시 전쟁을 직접 겪었던 세대는 아닐테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을 경험한 분들이고, 민족이 정치이념에 의해 둘로 갈리고 숙청이라는 이름 하에 동족을 처단하던 시대, 혼란의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분들의 아픔조차 사실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아마도 실제 전쟁에 참여해서 총칼을 들고 싸운 것이 아닌 부모님 세대는 남겨진 자, 살아남은 자로서 여전히 슬픔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 부모, 형제, 자매의 죽음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이념의 차이로 인해 혹은 전쟁 중의 혼돈 속에서 다시는 서로 볼 수 없는 이산가족이 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를 얻고 현재에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생존자>는 남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50년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고 살아 남은 다양한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그려냈다. 600여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사람들의 방대한 인생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치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서부터 글을 풀어내야 할 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서도 내가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전개 되고 서로 간에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니 조금은 혼란스러운 느낌이랄까. 또한 개개의 인물들의 심리가 전부 이해가 되지 않음은 서두에서 말했듯 내가 전쟁의 참혹함을, 또 남은 이들의 지독한 아픔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크게 3명이다. 준, 헥터, 실비. 준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린 고아다. 헥터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으로서 전쟁의 공포와 잔인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생의 의지를 잃고 고아원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다. 실비는 중일전쟁 시기에 선교활동을 하던 중 사랑하는 이의 배신과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세 사람이 경험하고 느낀 지독한 절망과 슬픔은 각자의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이 남긴 상처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공포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의 역할도 한다. 고통의 경험은 같은 경험을 한 타인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상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정상적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인 상황이겠지만 말이다. 삶 자체가 철저히 생존에 맞춰져 있는 준. 전쟁은 11살짜리 여자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평시라면 이기적이고 못된 성향의 아이로 치부될 수 있는 행동들은 아이가 겪은 경험과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그저 아픔으로 다가올 뿐이다. 영악하다고까지 느껴질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환경이 인성에 끼치는 영향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치 카멜레온처럼 의도된 변화를 만들 줄 아는 아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표출하는 극단적인 폭력성들은 아이만의 잘못일까? 끔찍한 경험의 기억은 준의 성장 과정 내내 트라우마로 남아 그녀의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보며 받았던 느낌은 마음 속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무의식 속에 내재된 기억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원치 않는 행동을 이끄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순간순간의 감정 조절이 어려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식의 죽음까지도 외면하게 되는..... 정신착란처럼 보이는 이런 증상도 남은 자의 고통일 것이다. 헥터는 어떠한가. 그는 전사자 처리를 담당하는 부대에서 무수히 많은 죽음의 흔적들을 목도했다. 죽음에 어느덧 익숙해진 그에게 있어 스스로의 삶에 가치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신체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자해조차도 하기 힘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무엇.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뿐이었을 것이다. 혹은, 죽음을 선택하거나...... 헥터 역시도 준과 같이 이중적인 내면이 보였다.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무기력한 영혼과 타인에 대해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따뜻한 영혼. 헥터가 고아원 내에서 실비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도, 입양이 좌절된 준을 자신의 아내인 것처럼 꾸며 미국으로 데려간 것도 로라라는 여성을 통해 생의 의지를 되살리게 되는 것도, 생존 본능에 기인한 따뜻한 영혼의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싶다. 실비가 가지고 있는 고통 역시도 희석되지 못했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과 수차례의 유산. 목사인 남편은 자신의 길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남편. 무너져 가는 삶과 극도의 외로움은 의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마약이라는 물질을 통한 마음의 안식은 그녀의 삶을 점점 피폐해지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녀 마음 한 구석에는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숨어 있지 않았을까. 헥터와의 외도를 통하여 그녀가 얻고자 한 것은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는 정신적인 안정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숨겨진 본능이 준을 입양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을 꿈꾸게 하고, 남편이 소홀했던 것에 대한 사과를 하자 마약까지 끊을 수 있었던 의지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세 명의 경험과 삶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이들 간에는 동질감이 존재한다. 혼란스러운 내면. 죽음과 가까운 껍데기 뿐인 영혼과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내재된 그 동질감이 헥터와 실비를, 실비와 준을, 준과 헥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으리라. 이들의 관계가 서로를 오롯이 보듬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실비의 남편이 실비를 이해해주고 다독여줬듯, 실비와 준이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받았듯, 로라가 헥터에게 사랑을 주었듯 말이다. 그러나, 안정화 되지 못한 영혼들이 서로에게 주는 마음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을 위한 마음의 전달은 서로에게 상처로 남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그들의 아픔은 스스로가 극복할 수 밖에 없는 한계성을 가진다. 책을 읽고 난 후 혼란스러웠다. 서두에 말했듯 그런 경험이 없기에 주인공들의 내면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팠다. 책이 그려내는 주인공들의 인생사는 마지막까지 처절하고 슬프기만 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혹성으로 인해 생긴 남은 자의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을까. 오늘 북한이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령했다고 한다. 그들의 도발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전쟁의 위험은 현존하고 있고, 63년전 발생했던 그 비극적인 사건이 만들어 낸 고통과 슬픔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전쟁 그 자체의 잔인함과 공포, 참혹성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일 게다. 생을 마감하는 준에게 헥터가 베풀었던 것과 같이..... 타인의 고통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애정어린 관심의 자세와 배려가 절실한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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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경험을 가진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주인공들은 한국의 한 고아원에서 몇 달간 함께 지냈다. 그 짧은 시간의 생활은 세월이 흘러서도 그들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중요한 시기였다. 제일 행복했던 시기이면서 또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준. 그녀는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동생들까지 차례대로 잃었다. 가족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혹독한 삶을 경험한다. 그때 준의 나이 고작 열한살 이었다.
고아가 되어 군인과 사람을 피해 떠돌다 한 고아원에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1차적인 배고픔과 추위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그녀를 괴롭힌 것은 전쟁이 준 상처로 삐뚤어진 마음이었다. 사람들과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불쑥 화를 내기 일쑤인데다 마음에 안들면 폭력을 휘두르는 등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말 걸기 싫은 스스로 왕따를 자처한 꼴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처럼, 엄마처럼 때론 친구처럼 나타난 '실비'. 실비의 마음에 들기위해 그녀는 변화를 시도한다. 좀 더 친절하게 굴려고 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헥터.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큰 걱정없이 살았다. 평소에는 존경하는 아버지이나 술만 먹으면 늘 싸움으로 끝나는 술 버릇때문에 금요일 저녁이면 늘 아버지 곁을 지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보디가드 역할이 그날은 유난히 하기 싫었다. 마침 그를 유혹하는 뭔가가 있었고, 하루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다. 처음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 있던 바로 그날 아버지는 사라졌고, 며칠 뒤에 물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전쟁에 참여할 결심을 한다. 자신을 벌 주려는 의도로 한국전쟁에 참가하는 헥터. 그러나 전쟁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했다. 죽고 부상당하고 하는 아비규환의 한 복판에서 못 견디고 차라리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사상자 수습부서로 가게된다. 살생보다는 나았지만,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의 생활이 유쾌할 리는 없었다. 그 일도 곧 그만두고 여기저기 떠돌다 고아원에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헥터가 쓸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폐교를 고쳐 고아원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었다. 헥터가 큰 도움이 되면서 지내는 시간은 길어지고, 헥터 자신도 아무 생각없이 일에만 파묻혀 지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게 그에겐 힐링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 만나게되는 '실비'. 목사의 아내인 그녀와 특별한 사이가 되면서 행복함과 고통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헥터에게는 사랑이었는데, 실비에게도 그가 사랑이었을까?
실비. 선교활동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세계 곳곳을 누빈다. 주로 찾아다니는 곳은 당연히 관광지는 아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나라처럼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다. 쉽게 말해 고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다. 1930년대 중반 만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당시는 중공군과 일본군이 서로 대립하면서 본격적인 전쟁 초읽기에 들어간 초긴장의 시기였다.
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도 군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부상당한 중공군 포로를 숨겨두고 치료를 해준 이후로 교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중립을 지키는 길만이 살 길이니 부상당해 죽어가더라도 선의를 베풀면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러 차량을 이끌고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일본군! 먹을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빨갱이를 찾는다는 명분아래 외국인 선교사도 개의치 않고 한 사람씩 불러다 취조를 시작하는데.. 일본의 잔인함은 거기에서도 드러났다. 그곳에 지내던 사람들을 사소한 이유로 상해를 입히고 죽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전시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필요 이상으로 잔혹했다. 그 사상자들 속에 실비의 부모도 들어 있었고,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함께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있었지만, 실비는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이고, 가족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죽는 날까지도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충족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듯 무엇인가에 중독된 것 처럼 보이는 삶을 산다. 마약에 빠져들고, 돈을 버는데 온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힘들고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찾아 다니며 자신을 혹사시키는데 몰두한다. 오히려 뭔가에 빠져 있을때,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을때 그들은 정상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 초반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면 남들보다 배로 행복하게 살면 될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다 뒤로 갈 수록 반전이 될 만한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이래서 였나?' 하는 이해할 만한 이유들을 하나씩 끼워 맞추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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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꾸준히 읽었다는 즐거움이 남는 책이다. 이민자들의 생각이 자신이 머물렀던 시점에서 고국의 사고가 멈춰버리는 경향이 높다. 교포사회를 접하면 보다 많이 느낄수 있게 되는데, 전후세대의 작가가 한국전쟁의 전후를 그린다는 점이 부모님들과의 이어지는 시간의 모티브를 다시 풀어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다양한 배경을 갖은 준, 헥터, 실피, 태너를 보면서 전쟁의 상황과 아픔, 혼란보다는 각자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살아남는 다는 것이 의미있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보다 의미있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처참한 전쟁의 상처속에 가족을 잃고 생존의 절실함과 누군가의 따뜻함을 바라는 준을 보면서, 그녀가 조금은 비뚫어진 듯한 모습이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녀는 숭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타락하지도 않고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도하게된다. 니콜라스에 대한 그녀의 애뜻한 마음의 바램이 끊어진 사실이 아쉽지만, 상처의 굴레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졌다고 생각해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비록 몸은 고된세월을 흘러 피곤에 지쳐 흐르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책속의 교회에 도달하고, 스스로 제 걸음을 다 떼지 못햇다하더라도 정갈한 수의를 스스로 준비하고 꿈속의 희망에 도달하는 그녀의 모습은 대단한 집념이라 생각한다. 생존이란 의미가 육체적인 존재의 의미를 넘어 생각해볼 만하다. 누군가 위대하다고 하는 삶은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부분에 좀더 그녀 스스로를 더 돌아볼수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그녀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실비, 헥터를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구조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 생존의 치열함속에 있는 준을 돌보는 사람들도 똑깥이 전쟁의 상흔을 품고 살며 고뇌한다. 그들은 남을 돌보며 살지만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것 같다. 마약과 불륜이란 일탈,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오는 실비, 묵묵히 자신의 비루한 삶을 이끌지만 나이가 들어도 절제하지 못하는 헥터를 보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배려와 어쩌면 헌신이라 불릴 행위를 통해서 준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또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감없는 태너를 보면 그도 성직자의 삶과 개인의 삶의 갈등이 얼만 많을지 안쓰럽다. 말못하고 그들의 곁에서 있는 모습이, 세상에 존재하는 상처를 품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반면 전쟁의 상처를 품지 못하고 2차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니콜라스..그로 분신한 친구의 모습이 너무 단절된듯해 아쉽다. 전쟁이란 어떤 도덕적, 합리적 판단으로도 정당화될수 없는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재앙이다. 전쟁은 타인의 권리를 어떤 목표를 위해서 폭력적으로 취할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피폐하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책과 같이 그 트라우마가 바라지 않음에도 각각의 육신에 남아 전달되는것 같다. 준으로 상징된 인물이 아마도 우리들의 부모세대의 고단함과 그들이 바랬을 듯한 미지의 희망이 동시에 표출된 것이라면 또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살아갈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Yes24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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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국 이름의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옆에 번역자가 있다. 왜 그럴까 하면서 작가 이력을 봤더니 어렸을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케이스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한국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감성들은 미국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들었다.
시대적 배경이 한국 전쟁을 시작으로 해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눠지고 있는데 전쟁을 겪어 보지도 않고 또한 그 이후에도 이 곳에 살지도 않아서 어떻게 우리가 전쟁이란 걸 이겨냈는지 알지도 못한 작가가 그 느낌을 알까 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쟁의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적절한 시각으로 보아내었고 주인공인 준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크게 고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전에 읽었던 책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라는 책이었고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서 엄마의 인생을 다시 보게 되고 그로 인해서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가 아빠랑 만들기 이전의 엄마의 진짜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면 이 책에서는 주인공 준. 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을 찾아가는 그런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사실 처음에 준의 이야기가 나올때만 하더라도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몰랐다. 준의 위로 쌍둥이 언니오빠가 있고 준의 밑으로 또 쌍둥이 동생이 있는 총 일곱명의 가족들. 준은 쌍둥이들 사이에 끼여 자신만이 소외된 느낌을 받곤 했었는데 전쟁이 이러나면서 가족이 하나씩 죽음을 당하고 결국 자신과 쌍둥이 동생만이 남아 있다. 그들은 친척을 찾아서 기차를 타고 피난을 가기로 결정하고 우여곡절끝에 기차의 지붕에 앉아서 가게 되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그들 모두 살아서 부산에 가서 새로운 삶을 겪게 되고 각자의 삶이 어땠을 거라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페이지수가 워낙 많은 책이다 보니 주인공이 셋이상은 되어야 할것 같은 그런 섣부른 생각이랄까. 만약 그들 삼남매가 모두 다 살았다면 준의 인생은 조금 더 달라졌을까. 사람의 인생은 단 한번 밖에 살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더 많이 해보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을 두세번 살수 있었다면 아마 후회나 고민같은 것도 훨씬 덜 하지 않았을까. 다음번에는 이렇게 안 살면 돼 다음에는 더 잘 살면 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열차사고로 인해 두 동생을 다 잃은 준은 고아원에서 살게 되고 그곳에서 봉사를 하러 온 헥터를 만나게 되고 고아원을 이끌어가는 목사부부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엄마처럼 느꼈던 목사부인 실비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다시 실비의 입장으로 넘어가서 그녀가 어렸을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실비의 부모님도 잘 살지 못하는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 부부는 실비를 언제나 같이 데리고 다녔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준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실비는 각기 다른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했을가 아니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으로 서로를 이해했을까. 물론 나이도 달라서 서로를 엄마와 딸로 이해해야하는 사람들이기는 해도 말이다. 부모를 잃고 목사와 결혼을 해서 한국의 한 고아원을 맡게 된 실비와 그녀의 남편.
이야기는 다시 헥터의 이야기로 넘어 간다.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언제나 보살펴 드렸던 헥터. 한순간의 실수로 아버지를 잃고 그는 자신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 결국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여러나라를 전전하다가 결국 한국까지 오게 된 헥터. 전쟁이 끝나고 군인 신분이 더이상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는 대신 고아원에서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서 준과 실비를 만나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세명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렇게 다른 성격과 일들을 겪은 세사람이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주었으면 그들이 그려내는 각각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일까. 자신들이 가지지 못했던 그런 가정을 만들기를 원했을까. 실비에게 입양이 되어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준의 바램은 정말 이루어졌을까.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각 사람의 가족 이야기들을 그리다 보니 이야기를 그 이후로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고 그럼으로 인해서 약간은 지루할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고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번역을 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라고나 할까. 외국에서 다들 영어를 쓸때 서양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과 일본이나 중국 사람처럼 동양 사람들과 얘기할때가 달랐다. 아마 지금은 덜하지만 처음 영어라는 것을 쓸때는 조금 더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대체 왜 영어로 생각이 나지 않는 건지. 그럴때 동양 친구들은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알아들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게 같은 동양 사람이기때문에 그런거야 하면서 웃고 넘어갔지만 아마도 작가가 미국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고 어떻게 얘기해도 알아듣는 그런 감성이 공존함에 틀림없다고 나는 믿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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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미국작가 이창래님의 이름은 이전에도 알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처음이 아닌가한다.도서관 서가에서 [영원한 이방인]을 뒤적거려본적은 있었지만 몇장 들추다말고 포기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런 선입견때문이었을까..자그만치 600페이지가 넘는 작가의 작품을 받아들고 한동안 망연자실했었던것 같다. 혹시라도 지루하지않을까 하는 걱정아닌 걱정도 있었지만 일단 준의 삶에 동행하고 나니 지루할틈이 없이 마지막까지 도달한다. 오래전 전쟁은 끝났지만 그때 전쟁의 상흔은 여러사람들의 인생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그 암울했던 시간들을 거슬러 준은 자기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게된다. 이야기는 준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오가며 준의 인생에서 빼놓을수 없었던 두사람 헥터와 실비의 이야기로 점점 넓혀가면서 준을 6.25전쟁이 일어나던 그때로 되돌려놓는다.
1950년 서울, 준은 동생 둘을 데리고 훔친 모포를 덮어쓴채 기차에 올라있다. 기차가 달려갈수록 준의 상념도 기차의 리듬에 맞춰 지난시간들을 되짚어가고 있었는데.. 쌍둥이 언니와 오빠 그리고 역시나 쌍둥이 남매를 동생으로 둔 준은 다복한 가정의 셋째였다. 자상하고 인자로운 어머니, 웃음이 떠나지않던 가족들..그러나 전쟁은 그 모든것들을 불시에 빼앗아갔고 이제 준은 모든 가족들을 잃은채 소녀가장이 되어 동생둘을 지켜야하는 신세가 된것이다. 그때 준의 나이 고작 열하나..준을 괴롭히는것은 혹여 자신이 동생들을 짐으로 여기지않을까하는 두려움..그때였다..잠시잠깐 졸았나싶었는데 눈을 뜨고보니 동생들이 보이지않았다. 기차사고..그리고 이미 숨이 끊어진 희수와 다리가 잘려진 지영...길은 보이지않았다. 지영을 찾으러 돌아와달라는 지영의 말에 의미없는 약속들을 하며 준은 지영의 곁을 오래도록 지켰지만 마지막 객차가 지나갈때는 살기위해 달려야했다. 오로지 살기위해서...
1986년 뉴욕, 준은 이제 서서히 마무리를 지을 준비를 하고 잇었다. 운영하던 가게의 물건들은 거래하던 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겼고 집에 있는 가구들은 아파트관리인에게 넘긴 준에게 이제 해야하는 일은 8년전 유럽으로 떠난 아들 니콜라스를 찾는 일만이 남았다. 이미 손쓸수가 없을정도로 온몸에 퍼진 암이 더이상 준의 몸에 자리하기전에 니콜라스를 만나는 일만이 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남겨져있는 셈이었다.니콜라스의 행방을 찾기위해 고용한 클라인스에게 헥터를 만나는 일또한 중요하다는것을 인식시킨 준은 헥터를 찾아 클라인스와 동행하게 되고, 그리고 드디어 헥터의 집에 도착하게 된다.
헥터는 주정뱅이 재키브래넌의 아들이었다. 전쟁에 나갈수없었던 재키에게 전쟁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금요일이면 늘 같은 일들의 반복이 일어났고 그 뒷수습을 해야하는 일이 헥터로서는 영 못마땅한 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여느날처럼 술에 취해 또한바탕 소동을 벌일것이라는것을 알면서 헥터는 아버지를 두고 술집을 나섰고 그날이 헥터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된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두고와서 돌아가시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 헥터의 어머니는 헥터를 원망했고 헥터는 그런 원망과 스스로의 자책속에 군대로 도망을 치게된다.전쟁은 헥터의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적군이라고 보려고해도 아직 솜털도 가시지않은 소년병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힘들었고 그렇게 헥터에게 목숨을 잃은 이들이 늘어날수록 헥터의 삶은 더욱더 어둠속으로 자리하게된다.상관에 대한 불복종과 갖은 사고로 불명예제대를 하게 된 헥터는 고아원의 일자리를 제안받고 그곳으로 향하던 중 준을 만나게된다.
그리고 실비..선교사의 아내인 실비를 만나게 되면서 헥터와 준의 삶이 또다른 방향으로 바뀌게된다. 어려서부터 선교활동을 하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던 실비는 만주에서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처형되는 선교사일행들과 부모님을 목격하게되고 그일은 실비의 삶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된다. 방황하던 실비에게 청혼한 태너와 결혼하면서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던 실비에게 한국행은 또다른 기회였다. 한국의 고아원에서 헥터를 만나고 자신과 닮아있는듯한 준을 만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만 실비의 계획은 태너에 의해 좌절되고 그런 실비의 모습때문에 준은..
미국으로 오고나서 잠시의 결혼생활을 했었지만 헥터에게 준과의 인연은 그것이 다였다. 돌아보고싶지않은 과거의 시간속에 그녀가 있었지만 준에게는 헥터와는 다른 인연이 하나 더 존재했었다. 바로 아들 니콜라스의 아버지가 헥터였던것이다. 니콜라스가 그렇게 궁금해해도 알려주지않았던 아버지는 바로 헥터였었다. 그래서 자신이 삶을 마치더라도 니콜라스가 이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만 할 것 같아서 헥터를 찾아온것인데 느닷없이 찾아온 준으로 인해 헥터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던 인생이 다시한번 뒤틀려버리게된다. 불행이 찾아왔다고해서 거기에서 멈출수만은 없는 노릇..니콜라스를 찾기위해 헥터와 준은 힘겨운 동행을 시작하고 생전처음으로 만나보게되는 아들 니콜라스..
아들 니콜라스를 찾기위해 동행한 헥터와 준의 모습들을 보면서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었었다. 이 모든 상황들을 준이 알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암세포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진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었지만 헥터와 준을 생각하면 그들의 동행은 꼭 필요했을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오래전 전쟁은 끝났지만 헥터는 여전히 그 전쟁에서 헤어나지못한 모습이었고 준 또한 실비에게 선택받기위해서 자신을 꾸미던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못한 모습들이 보였다. 아픈 과거의 시간들을 공유했던 두사람에게 함께하는 그 시간들은 그 상처의 시간들을 마주하고 지난날의 아픔들을 털어내기위해 필요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1950년 준은 아직 달리기를 멈추지않았다..그리고 살아남았다. 많은것을 바라는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조금 더 가지기를 갈망했던 소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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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래 님의 <생존자>입니다.
이창래 작가는 국내엔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닌데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
작가가 되기 이전에는 월스트리스티의 주식 분석가로 일하기도 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5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한국계 미국인의 변방의 삶을 다룬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이 발간되어
펜/헤밍웨이 문학상, 오리건 도서상, 반스 앤 노블의 위대한 새로운 작가 발견 등 다양한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고
국내엔 <영원한 이방인>과 한국계 미국인 헨리 박을 통하여 바라보는 주류의 세계에 끼지 못하는 이방인 이야기 <제스처 라이프>,
현대 사회의 가족 해제 문제를 다룬 <가족>이란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작품, <생존자>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과 인간의 잔혹함을 그린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중 가장 잔인한 역사이기도 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현재 경제적인 삶에서는 성공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을 쏟지
못한 한국계 미국 교포 준을 통해 가족들을 처참하게 읽어야 했던 전쟁과
인간의 잔혹함은 물론이거니와 준과 감티 전쟁과 가족에 대한 깊은 상처를 가진 헥터라는 인물의 만남.
예상치 못한 비극을 통해 전쟁과 구원, 사랑과 용서 그리고 숭고한 희생에 대한 가치를 섬세하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치고 전쟁이 보여주는 참혹함과 아픔을 그려내지 않은 작품이 없다고는 하지만
<생존자>는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피폐화된 한국과 1986년 미국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되는데요. 30년이 훌쩍 넘어버린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전쟁 그 당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세대의 아픔을
가슴 절절히 그려내고 있다는 면에서 가슴 속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존자>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물론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작품이라
재미의 측면에서는 다소 어려운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이라는 역사가 엄연히 우리의 역사이고
분명 우리의 주변에도 당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한국인이기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