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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 읽고싶어 YES24홈피 여행하다.평이 너무 좋은 책이있어 샀다. 입센의 (인형의 집)같다. 근대까지의 여성은 가축개념이었다. 전통과 편견이라는 평원위로 날아오르려는 새는 강한 날개를 가져야한다. 쇼팽의 소설은 (82년생 김지영)으로 계속 진행중이다.♡○☆ 겨울에 자미원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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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선구적인 소설, 페미니즘의 시초격인 소설이라기에 궁금해서 구매해봤다. 여자의 일탈이 일상적이지 않았던 때 (일상적일 때가 있긴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제목처럼 각성한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데로 솔직하게 정해진 선을 넘어간다. 어떻게 보자면 그저 흔한 불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시대의 눈으로 보기에는 일탈이 그다지 일탈 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보자면, 이 글이 나온지 수십년이 지나서야 조망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자면 아마도 그 자체만으로도 페미니즘적인 부분을 대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재밌게 읽었다. |
| 출판사의 평이나 홍보 문구를 보고 강하게 읽고 싶어져서 겨울 내내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작 이 정도로?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라면.. 하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중점은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그것이긴 했지만, 다른 많은 것도 자유를 속박하니까요. 마지막 결말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없는 답답함.. 안타까웠습니다. 그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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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The Awakening 케이트쇼팽 지음 / 한애경 옮김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퐁텔리에 부부. 에드나는 휴가를 간 곳에서 로베르라는 청년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한 인간으로서 한 여자로서 감정을 느끼고 본인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그림.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라티뇰부인처럼 배우자에게 완벽하게 대하고 자녀들을 키우고 집에서 내조 잘하는 그게 여자의 행복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게 틀린 것도 아니고 나와 생각이 좀 다를뿐.
에드나가 허무해하고 정말 인생은 무엇인지, 여자라서 아니면 그 시대라서 그래야만 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120년 전 임에도 지금과 같은 고민을 했다는게 신기했고, 또 그랬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절판되었다가 쇼팽 사후 60여년이 지나서야 읽혀지게 된 것도 그때는 그 시기에는 그랬겠구나 싶었다. 그 시대에 그런 글을 쓴 자체가 완전 신여성임.
역자해설에서 말하듯이 그 시대에 정신적인 각성뿐만 아니라 에드나가 경제적으로도 배우자에게서 독립해가는 과정도 꽤 의미있었던 것 같다. 꼭 남자라서 여자라서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 또한 여자라서 뭐든 못할것 없다는 주의라서 그녀가 그림을 배우고 팔고 또 자기가 만족하는 작은집으로 이사하는 부분은 신체도 정신도 독립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부부라도 서로 경제적인 독립 부분은 어느 정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데도 상관 하는 듯 하다.
마지막에 그 휴가지에서 배웠던 수영으로 그때를 생각하며 한 없이 자유로운 몸이 되어 물 속으로 갔던건 마음이 아려오면서 그게 정말 본인이 선택한 마지막 행복의 길 이었을까 멍하니 생각하게 된다. 결국은 그게 최선이었을까?
덧붙여 이 소설을 패미니즘이니 아니니 하는 말도 있지만 딱 잘라서 그렇게 분류하는 것 보다 이 작가가 그 시대에 여성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그렸다는게 정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만 생각하고 파악하자. 너무 편 나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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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을 읽을 때 항상 궁금했던 점. 미국이 남부와 북부로 갈려서 전쟁까지 한 걸 보면 남북 사람끼리 서로 뭔가 아직도 사는 방식이나 사상이 안 맞을거같은데 맞을까? 남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지주적인 풍모를 지니고 있을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등장하던 인물들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맞을까 등등... 이 작품이 세간에 평에 따라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격인 작품이라는 평은 좀 제처두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 특히 거기서 살아가는 크리올 - 프랑스 등에서 건너온 귀족 계층 - 들의 의식속에 깊게 뿌리박혀 있었을 경직된 사고방식에 대해 주목해본다. 주인공은 부자 남편을 만나서 결혼해 아들 둘 낳고 살아가지만 남편을 진정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면서 자기의 수동적인 삶을 인식하고 각성하게 되면서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시도하게 된다. 이런 연유에는 그녀의 주위에서 만나게되는 크리올들의 부유하지만 경직되고 단조로운 삶에 대한 염증도 한 몫했다. 미국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남부지방 사람들의 모습이다. 비슷한 장르의 유럽소설을 보면,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는데, 귀족 집안에 남녀가 그 중 한 명이 배우자가 있더라도 서로 애인 삼으면서 염문을 퍼뜨리고 다니는게 유행이었다고도 하고 - 물론 잘못된 상황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 "안나 까레리나","보바리 부인 : 물론 귀족집안은 아니지만"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풍토가 어느 정도 만연했었다는 건 사실이다. 이 작품 내내 보면, 현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이 그다지 충격적인 일탈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닌데 그 당시 미국남부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인지 이 소설이 출간이 금지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당시 미국이 유럽보다도 분위기가 훨씬 경직되었었을까? 남자들하고 바람 좀 피웠다고 자살을 결심해야 할 정도의 작품이 나올 분위기였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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