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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학자 니콜라 귀요의‘조지 소로스는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까’의 부제는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수퍼리치들의 두 얼굴이다. 이 책은 지난 2006년 프랑스에서 나온 책이다. 문제(?)는 제목이다. 원제인‘금융, 자선: 월스트리트의 사회학‘과 ’조지 소로스는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까’는 거리감이 커 보인다. 이렇듯 원제와 거리가 먼 제목 설정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제목 선정 예는 너무 많다. 어떻든 이 책에서 저자가 타겟으로 삼아 비판한 것은 소로스 같은 신 금융가들의 자선사업이다. 구체적으로는 1980년대 미국 재계의 인맥 네트워크를 특권에 집착한 기업가로 묘사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 티 분 피켄스, 가장 탐욕스러운 기업사냥꾼이면서도 친(親) 노조적인 제스처를 취해 TWA항공사를 적대적 인수합병시킨 칼 아이칸, 정크본드를 자본시장 민주화의 상징으로 포장하고 스스로를 시민권의 투사라 내세운 마이클 밀켄,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의 처단자를 자처한 조지 소로스 등이다.
1980년대에 대두한 자선사업의 개혁, 윤리경영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조절이 실제로는 금융이 지배하는 새로운 자본 축적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세계는 이제 단순한 금융 만능의 시대를 지나 교묘하게 치장하고 제스처를 취하고 왜곡하는 사기(詐欺) 자본주의의 절정기에 들어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부분은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부정확한 생각을 미분학(微分學)의 언어로 가장하는 기발한 습관을 개발했다는 수학자 노버트 위너의 지적을 연상하게 한다. 귀요에 의하면 자선사업은 1990년 이후 적대적 인수합병과 내부자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미국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탐욕스러운 금융가들이 내세운 불순한 카드이다. 보에스키, 밀켄, 레빈 같은 신 금융가들이 감옥으로 불려가게 되자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들고 나온 카드인 자선사업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정우 교수의‘천하나의 고원’(돌베개 刊)에 이런 글이 나온다.“오늘날 특히 미국에서 유학한 사회과학자들에게 학문의 토대는 철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에서 복잡계 이론, 진화심리학을 비롯해 이것저것 끌어 와서 그래프를 그리고 통계를 내고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그런 것들로 객관성, 과학성을 가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과학이다. 그런 식의 탐구들은 사회에 내재하는 가장 예민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피해가는 데 적격이다. 그런 식의 객관성/ 과학성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것, 그래서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마리의 괴물이 지배하는 체제, 더 단적으로 말해 미국이 지배하는 체제에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이 미국 유학파 사회과학자들이 하는 일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윤리학과 정치학의 본연의 통일성을 회복하는 일이다.”219 페이지)
니콜라 귀요의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 글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다. 객관성에 대해서는 장 지글러의 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금융 전략가들은 천문학자가 천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경제적 현상 앞에 서 있다. 천문학자는 자기장을 측정하여 별들의 궤도를 계산하고, 학문적 활동을 객관화한다. 오늘날 금융전략가는 천문학자를 빼닮았다. 그들은 자연법칙을 들먹인다. 그들의 눈에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164 페이지)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마리의 괴물에 대해서는 귀요의 책에 인용된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한 은행의 고객이 계속 그 은행의 고객으로만 머무는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늑대가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메릴린치의 동업자 윌리엄 샐러먼은 당시를 증언했다.”(본문 48 페이지)
귀요는 오늘날의 자선사업을‘포드주의의 폐허 위에 쌓은 재산’으로 정의한다. 본래대로라면 국고로 환수될 돈이었지만 자선에 대한 세금 공제라는 제도를 교묘하게 활용함으로써 국가권력과 행정의 통제를 피해 재분배의 본질까지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선에 대한 논의는 마침내‘국가 주권’영역으로 확장된다고까지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안을 제시하기 전에 도덕과 정치가 분리된 배경을 살펴보자. 마키아벨리는‘군주론’에서 정치와 도덕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기에 정권 유지를 위해서 군주는 때로 도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특히 이런 구절:“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찬양받을 일임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으로 보아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군주들은 약속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으며 기만을 통해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데 능숙한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제압했습니다.”(돋을새김 출판사 刊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군주론’146 페이지)
그런데 마키아벨리는‘로마사 논고’에서는 공동선에 신실한 시민들의 정치 공동체를 그려냈다. 정치학자 김만권에 의하면“‘군주론’은 정치 일선에서 쫓겨나 있던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의 호감을 얻어 정치에 복귀하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고“‘로마사 논고’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공화주의자들의 모임을 통해 얻은 자신의 신실한 믿음을 정치적 욕심을 떠나 제시한 것”으로“일관성이란 점에서 탐구해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예측 불가능성을 본질로 하는 우연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정치란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라는 일관성이 있다.”(개마고원 刊‘세상을 보는 열일곱개의 시선’106, 107 페이지) 주목 할 것은 김만권이 말한 다음의 이야기이다.“결국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한 근대 사회에서 정치란 도덕의 실현이 아니라 집단의식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일이며 그 신화의 창조가 바로 정치가 할 일이기에 도덕과 정치는 서로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120 페이지) 도덕과 정치 vs 도덕과 금융/ 경제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 물음은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해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현 체제는“자본주의 경제의 금전적 영업의 영역이 산업적 생산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적반하장의 사태.”(책세상 刊 홍기빈 지음‘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154 페이지)가 벌어지고 있는 체제이다. 한나 아렌트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마키아벨리를 호평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나는 마키아벨리가 대응해 제거하려 했던 예측 불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란 말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말하는 것처럼 현 체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속도와 강도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말이다. 홍기빈에 따르면 경제학이 부의 실체를 설명하는 데 노동가치론 외의 다른 이론이 제시되어야 했다. 이로 인해 부(富)를 노동가치나 물질적 부가 아닌 희소성하에서의 선택을 통한 만족의 극대화로 보는 이론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희소성과의 끝없는 투쟁인 인간의 운명을 경제활동에서의 합리성 극대화의 체제로 만들기 위해 가족관계, 정치관계, 그 밖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재조직되어야 한다는 사고의 결과물이었다.(책세상 刊 홍기빈 지음‘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47 페이지)
데이비드 흄이 정의감과 적당한 희소성을 정의의 환경으로 정의한 사실(개마고원 刊 김비환 지음‘이것이 민주주의다’29 페이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금융가들이 혹 마키아벨리즘을 들먹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본의는 예측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데 있었고 그들 자신이 바로 현 체제를 예측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 카오스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세력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과학자 마틴 셰퍼는“위기에 대한 인식이 강렬해질수록 오래된 구조와 습관에 더 집착하며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한다.(궁리 刊‘급변의 과학’376 페이지) 인간 사회가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경직성이 더 심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는 셰퍼는 사회적 임계전이를 방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결론을 내린다.(386 페이지) 분명 과학자의 눈에도 위기이고 파국을 앞에 둔 현 체제가 예사롭지 않게 비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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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책주문의 폐해이다. 제목으로 현혹시키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쏘아 부치고 싶다.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했겠지만 인터넷의 소위 낚시성 제목으로 클릭하게 만드는 경우라고 하고 싶다 당하면 엄청 짜증나는,, 그래서 이렇게 혹평을 해대는거다 책이 아니라 칼럽 몇 개 모아서 제본한 것이다 책값이 비싸다 3,000원 정도면 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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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낚여서 구매한 책인데 제목과 달리 내용이 너무 무겁고 사회과학적 이어서 급 당황했음 읽을만한 가치는 있지만 제목과 내용이 너무 달라 취향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없는 책 . . . 소로스가 자선은 많이 하지만 조세를 회피하는 이중적인 모습의 원인을 조금 알게된 것 같은 . . . 씁쓸함을 주는 책 ?? 결국 자선이란 마치 ~ 교회에서 신자들이 헌금한 돈을 모아서 빈곤한 사회를 돌며 빵을 나눠주고 기도를 시키는 것이고 . . .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집단이 또 열심히 교회에 와서 더욱 열심히 헌금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라는 것. 이 과정에서 교회는 부와 명성을 얻게되고 이 시스템이 고착화 될 수록 부의 집중은 더욱 강해진다는 . . . 자본시장에서 자선의 시초와 변화 성장을 설명 해주는. . . 책 역시 복지는 국가가 맡아서 하는게 옳은것 같습니다. 사심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