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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이름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명백한 사실은 분명 있었다. 보안사로 끌려와 간첩 혐의를 적용받은 사람의 태반이 재일 조선인이었고, 그렇게 간첩이 되어야만 했던 이들 중 실제 간첩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1980년대)은 눈만 뜨면 간첩이 출몰하던 시절이었다. 정당성을 잃은 권력은 위태롭게나마 붕괴를 면하고자 엄한 사람들은 끌어다 간첩으로 만들어댔다. 분단이라는 현실이 이 모든 행위를 정당하게 만들었다. 수시로 출몰하는 간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정권이 필요하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권력은 강요했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간첩이 출몰하기까지 대체 권력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사건을 크게 부풀릴수록 우리는 강함을 지향하는 권력의 약함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순을 품은 방법은 오늘날에도 이따금 사용되고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참으로 많은 이들이 아픔을 겪었는데, 여전히 시대는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가 막힌 이야기가 책 한 권에 담겼다. 조국의 부조리를 일본 사회에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 땅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을 때 곧바로 원고지부터 찾았다. 개인의 불행한 기억으로만 이를 치부할 수 없었다. 조국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총대를 짊어져야만 했다. 저자는 기꺼이 이를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였다. 그는 앞서 언급한, 간첩이 되어야만 했던 재일 조선인이었다. 그의 조부모는 일제시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일본 땅으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그는 태어났고, 막연한 상상을 통해 조국에 대해 갈망했다. 성인이 된 그가 연세대학교에서 우리말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나름 탄탄한 직장에 취업하기도 했다. 보안사로 끌려가기 전까지 그의 삶은 무던했다. 일을 마치고 가족을 위해 생선 따위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평범함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가 배어나왔다. 보안사가 그의 행복을 망쳤다. 아무도 그가 왜 간첩의 누명을 쓰게 된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고, 그 자신조차도 이유를 몰랐다. 모든 것은 허술한 가운데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결론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부정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수긍함으로써 다시금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길 기도했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도 끝났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다.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의 자백은 구체적이지 못했으며 모순 투성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이가 혁명을 함께 계획한 동지로 둔갑했으며, 뜻 없이 내뱉은 실없는 농담이 체제 전복을 위한 치밀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것은 고문을 자행한 이들의 비인간성이었다. 권력에 눈이 멀면 인간으로서의 기본조차도 망각한다는 말이 사실인 듯 보안사의 인물들은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상사의 승진을 위한 성과뿐인 듯했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도 자신의 성과가 하나 더 생겨난다는 사실에 열광했으며, 거대한 사건의 조작에 실패했을 때조차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가 너희의 죄를 불쌍히 여겨 석방해준다는 식의 시혜론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애국심이 내겐 참으로 끔찍하게 느껴졌다. 모든 행위는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조국을 위한다는 신념하에 자행됐을 것이다. 신념이란 건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아마 일제 강점기에 행해졌던 각종 친일 부역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일제는 끔찍한 만행의 주역이면서도 동시에 애증의 조국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자유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저자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엮어 넣는 데 성공한 보안사 측은 저자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일본어와 한국어 모두에 능통하다는 점을 감안해 그를 보안사에 직원으로 취직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행했다. 자신을 고문한 이들이 졸지에 동료가 됐고, 한 때 자신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던 이들이 이따금 고문실로 끌려와 자백을 강요당했다. 너무도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나머지 혁명의 히읗도 유추해낼 수 없었던 인물이 졸지에 거물급 간첩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이들은 저자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 자신이 당했던 처사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상대의 운명을 자신에 견주어 예측해볼 때마다 흐르는 건 눈물뿐이었다. 상상이 쉽지 않았지만 절로 숨이 막혔다. 이 끔찍한 기록이 현실이던 시절에 나도 살아 있었다. 다만 너무 어려서 시대를 읽어낼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조금은 비범한 유지길 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를 응원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 특별한 용기를 가진 이에게만 허락되고 있는 모습이 미치도록 싫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2014년에도 한국 사회는 적과의 위태로운 동침을 하고 있다. 간첩이, 그것도 공무원으로 채용됐다는 소식으로 사회가 술렁였다. 북한 정찰기가 벌써 여러 대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단다. 급기야 아이 잃은 부모의 설움을 ‘사회에 분열을 책동하는 세력’이라며 경계하는데, 과연 우리는 1970~1980년대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지가 묻고파진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사람들이 언론과 정부가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진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불신의 도가 지나치다며 위험하다 말한다. 그렇지만 권력을 향한 불신이 곧 우리 자신,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오히려 개별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권력의 냉혹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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