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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외교사 서적의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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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외무고시생들이 필독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까페에서 추천받아서 구매를 하게 된 서적인데 역시 명불허전... 국제정치외교사의 바이블라고 불릴만한 명저이네요. 1장 중세와 근대질서의 충돌 나폴레옹전쟁부터 시작이 되어 빈회의로 다시 구질서로 회복하게 되고 이후 프로이센-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가 유럽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파트입니다. 나폴레옹의 결정적인 패착은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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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외무고시생들이 필독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까페에서 추천받아서 구매를 하게 된 서적인데 역시 명불허전... 국제정치외교사의 바이블라고 불릴만한 명저이네요.

1장 중세와 근대질서의 충돌

나폴레옹전쟁부터 시작이 되어 빈회의로 다시 구질서로 회복하게 되고 이후 프로이센-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가 유럽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파트입니다.

나폴레옹의 결정적인 패착은 친족들을 정복한 국가들의 왕으로 임명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당연히 해당국가의 반발과 저항을 가져다올게 뻔한데 말이죠.

베스트탈렌왕국 : 동생 제롬

네덜란드왕국   : 동생 루이

스페인 왕국 : 형 조세프 

나폴리왕국 : 뮈라(처남)

그리고 라인연방과 바르샤바대공국이라는 위성국가까지, 결국 나폴레옹의 욕심은 영국과 대륙패권국(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스웨덴, 스페인)의 반발을 부르게 되면서 여러차레 형성된 대프동맹에 의해 저지를 받게 되고 결국 이베리아반도전쟁과 러시아원정으로 인해 무적신화를 자랑하는 나폴레옹이 몰락하게 되는 파트입니다.

빈회의는 열강의 정치적 이익을 조정하는 현실 정치의 측면과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미래지향적 측면을 둘다 가지고 있었고 훗날 1차대전후 안보의 중요성으로 등장하는 국제연맹의 창설을 낳았고 역시 2차대전후에 국제연합의 탄생에도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내용중 발췌 

1792년 4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은 중세와 근대질서의 충돌로 야기된 사건이었다.~~ 여러 중세적인 요쇼들이 그대로 존속해 근대적인 질서와 공존하면서 충돌하였다.

 

2장 유럽 열강의 세계평창

나폴레옹전쟁이후 2월혁명과 7월혁명을 거치면서 민족주의를 유럽을 휩쓸게되고 이탈리아와 독일이 통일국가를 이루게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특히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빌헬름2세는 픟로이센-덴마크전쟁(1864) ,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1866),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을 연거푸 승리하면서 중북부유럽의 강자로 급부상하게 되고 비스마르크는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유럽의 세력균형을 이루는데 성공하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19세기후반 삼국동맹(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탈리아), 삼국협상(프랑스, 러시아, 영국) 이라는 유럽 열강들의 동맹관계가 형성되면서 훗날 1차대전의 불씨를 남기기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영국 : 최강의 해군을 지닌 해양강국이지만  과다한 식민지 유지비용의 증가로 "지친 거인" 이라는 별명을 

독일 : 유럽 최강의 육군을 보유하였고 영국 다음으로 2차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1914년에는 영국을 추월한 후발산업강대국으로 급부상

프랑스 : 육군2위, 해군력 3위에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인구증가율이 감소하는 문제점  비스마르크의 대프랑스 고립정책으로 고전하지만  빌헬름3세의 재보장조약 만기불연장으로 러시아와 다시 한번 동맹관계 결성하면서 위기탈출을 모색

러시아 : 영토대국 하지만 산업혁명이 후발주의 한계로 서유럽과 격차는 여전히 큰 상황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진행하지만 많은 문제점을 야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정치 불안 다민족으로 구성 --> 민족주의 성행하여 분리 독립운동 활발, 크림전쟁,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로 피해를 입음

이탈리아 : 강대국 중에서는 최약체 도시국가의 특성이 너무 큼 중앙집권체제 성립의 한계점(남북갈등)

미국 : 구대륙 유일한 강대국  1890년대부터 해군력을 증강하고 식민지를확대하여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진출을 모색( 파나마 운하개통과 하와이 식민지개척으로 태평양의 맹주로 급부상)

일본 : 1905년 러일전쟁 승리이후 조선과 만주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인정받아 동아시아 유일한 지역강대국이자 제국주의국가의 반열에 합류

* 아프리카의 분할

1884년 베를린회담은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이후 모로코위기와 파쇼다사건으로 유럽열강의 충돌위기도 있어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타협과 독일에 대한 공동견제로 그레이트게임이 끝나고 새로운 파트너쉽관계가 탄생하던 시절(영일동맹 일러협상)

3장 이슬람과 세계외교사

19세기초반 오스만튀르크제국의 급속한 약화로 인해 서유럽은 향후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 '동방문제'가 화두가 됨

오스만이 지배하고 있던 발칸반도는 서유럽의 제국주의 정책의 시험무대이면서 경쟁지역이였고 민족주의의 불씨가 가장 심한 지역, 하지만 당시 오스만튀르크의 청년튀르크당 혁명으로 인해 보수화되자 위기를 느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의 지지하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였다 

여러차례의 러튀전쟁(크림전쟁)으로 오스만은 급격히 쇠락하게 되고 북아프리카와 레반트지역의 영토들을 많이 잠식당하게 되었고 러시아는 흑해지역진출에 성공하지만 베를린회의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를 받게되었고 비스마르크 역시 이에 찬성하면서 러시아는 독일에 대한 배신과 분노로 증오하게 된다.

4장 유교권과 세계외교사

중국(청나라) : 아편전쟁을 계기로 강제로 문호를 개방한 청제국은  몰락의 단계를 겪게된다

일본(메이지유신) : 중국의 몰락과정을 직접 본 에도막부는 대정봉환을 거치면서 일본 천황이 다스리는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시아에서 유일한 근대화에 성공하는 국가로 탄생한다.

이후 중일전쟁(1895), 러일전쟁(1905)를 거치면서 북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급부상하게 되고 결국  1차대전후에는 미국과 영국의 견제로(워싱턴군축회담)으로 제약을 받게 되고 훗날 2차대전의 불씨를 잉태하게 된다

5~6장 조선의 외교사

러일전쟁 파트에 관심이 많아서 한번 연표순으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1904년

1월21일 : 대한 제국 전시중립선언 발표

2월 8일  : 일본 뤼순항 러시아 함대 기습공격 

2월 9일 : 일본군 대한제국 국외중립 무시하고 서울에 주둔 

2월10일 : 러일 양국의 정식 선전포고, 러시아 공사관의 대한제국 철수 

 2월23일 : 한일의정서 조인

만약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우리의 운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겠죠

하지만 전쟁배상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는 포츠마담강화조약 내용이 알려지자 히비야폭동사건이 일보에서 벌어지고(경찰서 교회 신문사 방화 습격) 계엄령을 선포하고서야 질서가 유지되었다고 한다 강화알선도 미국에게 먼저 요청하였고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되지 않았던 점을 러시아도 잘 알고 협상에 유리하게 대응한것이라고 합니다.

7장 제1차 세계대전

사라예보사건이 터지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내고, 동맹국 독일에게 지지를 호소하게 되고, 세르비아 역시 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독일이 무력개입할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점이 큰 실수인듯하다.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은 전쟁억지 효과를 보여주는 외교적 방어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인계철선의 역할을 하게되어 모든 유럽강대국들이 어쩔수 없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트리거 역할을 하게 된것이 비극의 시작이였다,

책에서도 왜 1차대전이 발발하였는지 학회별 국가별로 상이한 입장을 보인다

세력전이이론과 세력균형론과 같이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는 시각도 있고 1951년 프랑스.독일 사학자회의에서는 아래와 같은 합의를 하게된다.

특정한 국가의 정책 또는 사전계획에 의해 발발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유럽동맹체제로부터 발생됬다는 것이다(p610)  베르사유조약에도 독일정부가 법적책임이 있다는 것이지 독일정부에게 범죄가 있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의를 했다고 한다.

베르사유조약체제와 이후 워싱턴회의는 세계질서는 미국와 영국중심으로 재편하고 일본의 확장을 묶어두어 2차대전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8장 혼돈시대의 세계외교사

로카르노조약으로 다시 독일은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합류(1926) 패전국의 법적 지위에서 해방되어 유럽의 평화회복에 기여한듯 보였다

영국 : 독일의 국제사회 복귀로 프랑스의 안보를 보장한다 판단.

프랑스 : 독일의 침략포기와 영국의 군사원조 기대                                                       

독일 : 영프동맹의 가능성 불안감 해소                                                                     

소련 : 로카르노 조약은 영국이 주도한 반소동맹으로 간주함

이후 켈로그 브리앙조약(부전조약)이 체결되지만 실효성이 없었고 평화의 상징적 의미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이 무너지고 극우파정권인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도스안(1924) -영안(1929)-후버 모라토리엄(1929)-로잔 회의(1932)등에서 독일의 배상금을 사실상 탕감해주게 되고 1933년 히틀러는 배상거부를 선언하게 된다.

일본은 만주사변(1931)-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을 차례로 일으키며 태평양을 두고 미국과의 대전을 결정하게 된다.

9장 제2차세계대전

워싱턴군축회의(1922)- 제네바군축회의(1927,1932)-런던국춘회의(1930) 4차례의 서구열강의 군축회담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1935년 재무장선언을 하게된다

추축국 동맹중 하나인 이탈리아는 먼저 이탈리아를 침공하게되고  독일의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먼저 합병한후  수데덴을 요구하게 되고 뮌헨협정(체임벌린-히틀러-달라디에-무솔리니)을 체결하지만 약속을 어기고 체코전부를 합병하게 된다.

폴란드 침공 한달전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한달뒤에 2차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마저 함락한 독일은 비시정권을 수립하게되고( 프랑스의 1/3지역만 통치) 영국 도버해협을 통해 공군으로 공격하지만 실패하게되고 곧이어 우크라이나의 식량(밀)과 코카서스 지방(유전)을 노리고 소련을 침략하지만 모스크바공방전 레닌그라드포위전, 스탈린그라드전투 등에서 연이서 패배하면서 실패한다,

미국은 양양해군법(=빈슨-윌시법)과 무기대여법을 제정하면서 유럽에 군사원조를 하게되었고 대서양 헌장(루즈벨트-처칠) 을 통해 전후 평화수립을 위한 노력(국제연합 창설기초 마련)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후에도 워싱턴회의-카사블랑카회담-퀘벡회의-모스크바3상회의-카이로회담-테헤란회잠-얄타회담-포츠담회담을 거치면서 미, 영, 소,(중) 연합국 대표국들은 전후 처리를 위한 노력을 하게된다.

마지막 주요 전후 문제의 처리와 냉전 파트에 마셜플랜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p856)

이 플랜이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나온 연설이란 것에 놀라웠다,, 이런 중요정책이 국무회의가 아닌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언급되었다니,,, 미 국무장관 마셜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 계기가 되었다,

 

 

 

 

 

  

 

 

 

 

 

j*****7 2023.05.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