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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 [다복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 [다복이]" 내용보기
이 이야기가 실화이든 아니든 이야기 자체로서 주는 의미가 깊다. 부분적으로 보면 누군가의 생애에서 아픈 단면과 일치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도 부분적으로 닮아있는 삶의 단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복이]는 가슴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이야기이다. 그림책은 대부분 아름다운 자연이나 동물들을 의인화 하였다. 어쩌다 사람이 주인공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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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실화이든 아니든 이야기 자체로서 주는 의미가 깊다. 부분적으로 보면 누군가의 생애에서 아픈 단면과 일치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도 부분적으로 닮아있는 삶의 단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복이]는 가슴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이야기이다. 그림책은 대부분 아름다운 자연이나 동물들을 의인화 하였다. 어쩌다 사람이 주인공인 그림책을 만났을 때 더 반가움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삶과 닮아있는 부분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복이]를 쓴 윤구병 선생을 눈여겨보게 된다. 보리출판사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윤구병 선생은 현재 간암 3기로 투병 중이시다. 변산 공동체를 이끌고 계신 분으로 그의 이력이 독특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분에 대하여 한 번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서울대''이나 나오신 분이, 정년 보장된 대학교수직을 때려치우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 농사꾼으로 전업하여 공동체를 꾸렸다. 함께 농사지으며 나눈다. 이 분의 철학이 대충 짐작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급속하게 해체된 부분을 메우고 계신 분이나 다름없다. 해체되는 속도가 메우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서 문제이긴 하나 느리게라도 '공동체'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는 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몇 년 전 귀농, 귀촌을 고민했을 때 우연히 변산 공동체 사이트까지 들어갔었고 남편에게 여기 가서 귀농에 대한 체험을 하고 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까지 나눈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른이 계시다는 게 든든하고 신뢰가 갔다. 그런데 암투병 중이시라니.... 일체의 인공적 치료를 받지 않으신다. 일흔이 넘으면 사고로 죽으나 병으로 죽으나 죽는다는 것은 '자연사'나 마찬가지라고 하시며 병원 치료를 받지 않으신다고.)

 

[다복이]를 읽으면 윤구병 선생님의 철학이 언뜻 보인다. 다복이는 미혼모에게 태어났다. 엄마는 다복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만화방을 인수하여 운영했지만 운영이 어려워 3년 후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다복이 엄마의 임신 사실을 안 직장동료가 혼자 애를 키우는 건 안된다며 출산을 만류하는 장면>

 

 

그림책이라서 많은 말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미혼모 문제, 빈곤문제, 여성의 취업 한계, 사회적 취약 계층아동의 소외문제 등이 이 짧은 그림책에서 모두 다루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지만 뭉툭하게 다복이의 이야기를 해 나간다. 어른이 읽으면 이 문제들이 한꺼번에 보일 것이다. 아이들의 눈으로는 다복이가 새아빠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구나, 라는 단순 구조로 당장은 이해하겠지만 아이가 한살씩 더 먹을 때마다 한 번 더 이 책을 읽게 한다면 [다복이] 그림책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두고두고 볼만한 책이다.

<갓난 아기 다복이를 돌보는 장면>

 

 

글은 회상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라 감정을 배제하고 설명하는 느낌이다. 오히려 그림이 이야기의 감정을 다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글을 읽지 않고 그림만 보아도 마음이 움직였다. 실제 어떤 장면일지 앞뒤 흐름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실사에 가까운 그림이어서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건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라는 생각에 자꾸만 감정 이입이 된다.

 

<일을 하기 위해 다복이를 방안에 남겨두고 방문을 잠근 채 출근하길 1년>

 

 

나도 다복이처럼 아기 때 방안에 갇혀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엄마는 일하러 가야하고 아이는 맡길 데가 없어 기저귀를 두툼히 입히고 우유병 하나 물려놓고 바깥에서 방문을 잠그고 나가셨다 한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방문을 부여잡고 그리 서럽게 울고 있더란다. 나의 우울 증세가 이때 형성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 혼자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등이 이때의 흔적이 아닐까, 라는 자가 진단을 해보는 것이다. 다복이도 이런 신세로 1년여를 지냈다. 쑥쑥 커야할 두세 살 때, 엄마 손이 간절할 저 시기에 혼자 방안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세살이 되도록 다복이는 잘 걷지도 못했고 목도 못 가누었다. 마침 다복이 엄마는 우연히 농촌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공동체 대표에게 다복이와 자기를 무작정 데려 가 달라고 사정했다. 그리하여 다복이네는 농촌공동체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아마 윤구병 선생이 변산공동체에서 다 자란 다복이를 보고 조금 각색하여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다복이는 이제 스무 살이 넘었다. 걷지도, 목도 못 가누던 다복이가 뜀박질은 물론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진 모습으로 자랐다. 그 사이 새 아빠도 생겼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하고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윤구병 선생의 기본 철학이 잘 드러나는 그림책이다.

 

아이와 함께 [다복이]를 읽으며 나는 많은 질문에 답해야했다. 왜 다복이는 아빠가 없는지, 어떻게 아빠 없이 엄마만 아이를 키우는지, 아기 다복이는 왜 혼자 방안에 남겨져야 하는지, 다복이 엄마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여덟 살 아이가 자기와 전혀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무수한 의문을 던진다. 이것이 바로 책 읽기를 해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한 확신과 판단은 쉽게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다른 삶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책(또는 영화)을 통해 만날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배려는 다른 삶을 직접 살아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답을 통해 아이의 작은 세상이 깨지면서 더 큰 세상으로 확장된다. 거기에 상상이 보태지고 상상을 통해 자신을 다복이에게 이입시켜보면서 이해와 공감력이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훗날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이 몸에 배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아이의 눈엔 저 그림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보다. 어떤 모습을 독후화로 남기고 싶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와 손을 양쪽으로 잡고 공중 부양하는 다복이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아이의 마음이 드러난다. 엄마 아빠가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고 가족의 완성체로 인식하는 아이의 작은 고정관념. 점점 독립성이 커지겠지만 아직은 분리불안이 있는 '아이'이구나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다복이]를 여러 번 읽었다. 그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스산해지고 마지막으로 책장이 넘어가서야 스산한 마음이 다시 데워진다. 분명 아는 이야기인데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같은 감정이 반복된다.

 

윤구병 선생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그가 왜 이러한 동화를 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얼른 쾌차 하셨음 좋겠다. 죽음을 기다리신다고 말씀하시기엔 아직 우리 사회에서 하셔야할 일이 많으신데. 이기적인 입장으로 보이겠지만 나 자신은 저렇게 못살아도 누가 저렇게 살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앎과 행함을 일치하는 지성인의 모습이 절실한 시대아닌가.

 

 

“시골사람들이 왜 너그러운지 아십니까. 시골사람의 유일한 재산은 바로 유기물입니다. 유기물은 천년만년 보존이 안됩니다. 그 해에 나눠야 합니다. 씨앗도 2년 묵으면 싹이 안 터요. 그러니까 노동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유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한데, 도시에서 생산하는 무기물은 그런 공간이 요구되지 않고 무한 축적이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도시인들의 탐욕이 커지는 것이죠. 시골살림은 농민뿐 아니라 해, 바람, 하늘이 함께하는 겁니다. 씨 뿌려놓고 노력을 그만큼 안들이고도 하늘이 일을 해줍니다. 바람의 몫, 해의 몫, 흙의 몫, 물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누자는 의식이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생명체는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생명체는 아니거든요.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몸으로 겪고 나면 알 수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요. 인간관계 속에서만 살아남으면 되니까요. 스스로 함정에 빠져서 미래가 없죠.”

경향신문, 2007.11.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0251600

 

 

YES마니아 : 로얄 g********s 2015.09.3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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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둘러싼 마을 공동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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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곤란할 때는 아이를 혼자 집에 두어야 할 경우였다. 어쩌다 아이 혼자 집에 둘 상황이 되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아이 혼자 심심함을 달래고 달래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드는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 엄마 아빠한테 거세게 따지고 들면 외려 덜 미안할 텐데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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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곤란할 때는 아이를 혼자 집에 두어야 할 경우였다. 어쩌다 아이 혼자 집에 둘 상황이 되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아이 혼자 심심함을 달래고 달래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드는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 엄마 아빠한테 거세게 따지고 들면 외려 덜 미안할 텐데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니 아이를 혼자 집에 두는 것이 얼마나 불안했겠나. 그런데 미혼모인 다복이 엄마는 책을 파는 한 해 가까운 기간 동안 다복이를 방 안에서 혼자 지내게 해야 했다. 자물쇠가 달린 방문이 닫히는 것을 내다보는 다복이의 처연한 눈빛이 가슴 먹먹하게 한다.


엄마는 살길을 찾아야 했어.

물건을 모두 다복이 손이 안 닿는 곳으로 치웠어.

언젠가 어느 집에서 아이 둘을 두고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갔는데

아이들이 성냥불을 켜고 놀다가 불이 나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기저귀를 두툼하게 채우고, 공 하나만 방에 놓고 방으로 나왔지.

새 직장을 찾으러 나서는 길이었어.

자물쇠를 밖에서 걸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대.


다복이 엄마가 도시에서 혼자 다복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다복이는 공 하나만 갖고 노는 동안 걷기도 힘들어 하고 고개를 들 수도 없게 되었다. 다른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때 다복이 엄마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시골 할아버지의 강연을 듣는다. 그러고는 할아버지에게 그곳에 가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매달린다.


다복이는 엄마가 밭 매러 갈 때도 산에 땔감을 주우러 갈 때도 엄마와 함께 갔다. 잠깐이라도 엄마가 눈에 안 보이면 크게 울어 댔다. 그러나 시골 공동체 생활은 다복이를 자연의 아이로 자라게 했다.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돌보았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둘러싸고 있었다. 다복이는 고개를 바로 세우고 뜀박질도 곧잘 하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다.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많아졌다. 새 아빠도 생겼다. 나이 들도록 장가 못 간 복성이 아저씨가 전봇대를 받치는 쇠줄과 전봇대 사이에 걸려 움머움머 애처롭게 울던 소를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한 식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복이는 엄마 아빠 손에 매달려 그네를 뛰는, 이름 그대로 다복한 아이가 되었다.


다복이 엄마가 시골 할아버지의 강연을 들은 것은 행운이다.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변산공동체에 살게 된 것은 더 큰 행운이다. 미혼모가 도시에 사는 것은 수렵시대에 던져진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감히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그곳을 찾아간 용기가 있었기에 행운이 찾아들었지만 걷기도 힘들어 하고 고개를 들 수도 없게 된 다복이를 살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다복이의 허물어지는 몸은 살려달라고 외치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부디 세상의 수많은 다복이들이 살려달라는 외침을 다복이 엄마들이 듣고 화답하게 되기를, 변산공동체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 우후죽순처럼 살아나 다복이 엄마들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를, 우리 사회기 일정 정도 변산공동체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온 세상 다복이들의 웃음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기를.

YES마니아 : 골드 g*******g 2013.0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