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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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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었다. 당시 책 소개에서 레이먼드 카버를 '리얼리즘의 대가', '미국의 체호프' 등으로 불리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라고 했지만 솔직히 레이먼드 카버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단편집을 읽은 탓에 그의 명성이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대성당」을 읽은 후 몇 해가 지난 최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문기행 시리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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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었다. 당시 책 소개에서 레이먼드 카버를 '리얼리즘의 대가', '미국의 체호프' 등으로 불리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라고 했지만 솔직히 레이먼드 카버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단편집을 읽은 탓에 그의 명성이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대성당」을 읽은 후 몇 해가 지난 최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문기행 시리즈인 클래식 클라우드의 「레이먼드 카버」편을 읽고나서야 왜 레이먼드 카버를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이자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부르고 있는지 알게 됐다.

 「레이먼드 카버」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특징답게 지은이가 레이먼드 카버의 삶의 행적을 찾아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야키마를 시작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 포트앤젤레스까지 곳곳을 누비며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지은이 고영민 작가는 국내에 나와 있는 유일한 카버 평전의 번역가로서 내용의 깊이를 더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1938년 5월 미국 오리건주 클래츠카니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포트앤젤레스 자택에서 사망할 때까지 오십 년을 살았는데 그의 오십 생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가난과 알코올의존증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고통의 터널로 몰았던 <나쁜 레이먼드 시절>과 술을 완전히 끊고 나서 두 번째 부인 갤러거와 함께 평생 원하던 삶을 누렸던 <착한 레이먼드 시절>이다. 이번 리뷰는 카버의 두 시절을 나누어서 간략히 담고자 한다.

[나쁜 레이먼드 시절
 레이먼드 카버(이하 카버로 통일)는 1938년 클래츠카니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야키마로 이주하여 고등학교까지 다닌다. 야키마의 제재소에서 톱날 다루는 기술자로 일한 아버지의 월급으로 한동안 안정된 삶을 살기도 했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로 인해 집안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가난에 빠지게 된다. 산과 들과 강으로 둘러싸인 야키마의 자연은 카버가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었고 헤밍웨이처럼 낚시와 사냥을 하며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생기게 된다. 

 열 일곱 살에 어머니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도넛 가게에서 카운트를 보던 열 다섯 살의 메리앤을 만나 사랑에 빠진 카버는 10대의 나이에 메리앤이 임신을 하면서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 
 TV 프로 <고딩엄마>를 종종 시청하다 보면 화면 속 어린 부부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되는데 카버 부부 또한 안정된 기반 없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연이어 아이 둘을 낳은 삶은 고난한 여정으로의 진입이었다. 

나는 그때, 앞으로 올 어느 시절보다 더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인생은, 수많은 급커브들을 품고, 저 앞에 놓여 있었다.
- <웨나스 능선>, <두 개의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


 <웨나스 능선>은 카버가 야키마의 웨나스 봉우리에 올라 바람이 골짜기 안에서 요동치며 강으로 빠져나가는 순간을 표현한 시인데 카버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서 마주할 수많은 급커브들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을까?
 아버지의 알콜의존증을 그대로 카버에게 전해져 9살 때부터 마신 술은 카버가 알콜의존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40살까지 카버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삶을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다. 2번의 파산 등 길고 긴 가난, 가난으로 인한 잦은 이사와 부부의 알콜의존증으로 인한 아이들의 방황, 특히 아빠와 외모까지 빼닮은 딸은 아빠의 알콜의존증을 이어받아 카버가 죽는 날까지 마음의 짐으로 남게 된다. 

 그나마 카버가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의 우선 순위를 카버의 글쓰기로 두었던  아내 메리앤의 헌신, 대학에서 카버에게 소설 창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틀을 가르쳤던 은사 존 가드너, 카버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편집자 고든 러시와의 만남이었다.

 작은 잡지에 꾸준히 발표하던 작품들 중 몇 편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해 작가로서 안정적인 삶을 가질 기회가 있었지만 카버와 메리앤의 알콜의존증은 점점 심해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고(가출했던 딸이 유치장에 갇힌 카버 부부를 데리러 올 정도였다) 결국 결혼생활도 파국을 향해 가고 만다.


[착한 레이먼드 시절
  어린 시절 결혼해 카버의 글쓰기와 집안 경제를 위해 헌신을 다했던 메리앤과의 관계는 깊어진 감정의 골과 가치관의 차이로 끝내 파국을 맞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카버의 알콜의존증이 각고의 노력 끝에 금주에 성공하며 새로운 인생이 찾아오게 된다. 카버의 남은 인생의 동반자가 된 시인 갤러거와의 만남, 정규직 대학 교수로 부임, 구겐하임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안정적인 생활 속에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등 카버의 대표 작품들을 연이어 집필하게 된다. 

 특히 앞서 카버를 대중에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별명을 안겨 줄 정도로 널리 알린 편집자 고든 러시는 자신만의 문학관이 확고해 카버가 집필한 원작의 40%를 들어낼 정도로 재창작을 한다. 이후 갤러거가 카버 작품의 불 관리인이 되어 고든 러시 편집본이 아닌 카버 원작 그대로 출간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대성당> 집필 때는 고든 러시의 편집을 제한함으로써 둘의 관계는 끝나게 된다. 고든 러시는 '카버는 내가 만들었다'며 논쟁의 불씨를 지피기도 하지만 카버는 이미 미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
- <말엽의 단편>,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

 두 번째 부인 갤러거와의 안정된 결혼 생활 속에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카버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몰려온다. 바로 폐암 진단을 받게 되는데 폐 절제술까지 하지만 끝내 치료는 실패를 하고 금주 후 10년 만에 갤러거와 행복한 삶을 꿈꾸던 마지막 자택에서 눈을 감는다.




 카버가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어릴 때부터 보고 경험했던 불안정한 노동자의 현실을 소설과 시로 현실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카버 본인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작품화한 적은 없다고 늘 주장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가족들은 작품 속에서 다루는 가족의 불안정한 이야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레이먼드 카버」에서 지은이 고영범은 카버의 부인인 갤러거의 거절로 직접 만나지는 못 했지만 그가 살았던 도시와 집들을 찾아가며 카버가 운전했을 차까지 마주하는 등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지은이는 카버의 주요 작품 외에 국내 미출간 작품, 그리고 국내 최초로 카버의 시까지 소개하며 국내 유일의 레이먼드 카버 평전 번역가답게 풍성함과 깊이를 전해 주었다(카버의 묘지명에는 시인이 소설가보다 먼저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앞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읽을 독자라면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레이먼드 카버」를 나침반 삼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해 본다.


#레이먼드 카버 #클래식 클라우드 #고영범 #(주)북이십일 아르테


 
YES마니아 : 로얄 s****6 2025.02.13. 신고 공감 1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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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의 무덤 머릿돌의 Gravy, 착한 레이먼드..
"커버의 무덤 머릿돌의 Gravy, 착한 레이먼드.." 내용보기
오늘 오전에 주문해서 오늘 오후에 받았다.‘대성당’을 읽고 이사람 대체 뭐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구매한 책이다.이 책의 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그 책에 수록된 소설 모두가 압권이었다.카버의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나 역시 대상으로부터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문장들에 매혹되었다.마치 따귀를 때리듯이 서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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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주문해서 오늘 오후에 받았다.

‘대성당’을 읽고 이사람 대체 뭐지?
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구매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책에 수록된 소설 모두가 압권이었다.
카버의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대상으로부터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문장들에 매혹되었다.

마치 따귀를 때리듯이 서늘하고 매섭게 넘어가는
매 페이지의 문장마다 작가의 서명이 들어 있는것 같았다.

작가는 극심한 가난의 고통속에서 단련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신화이지만,
이것은 신화가 되고 난 뒤의 이야기일 뿐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 과정에서 파괴되고 만다.
몇가지 행운과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처절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카버 역시 인상작인 초기작 몇편만을 남기고 사라진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한명으로 남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작가가 본인이 의도한 바를 말해주지 않고도
독자가 그 의미를 꿰뚫고, 감동받을 수 있는 글을
쓸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인것 같다.

혹,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통찰력이 남다른 독자들 덕택에
극찬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나쁜 레이먼드)







YES마니아 : 골드 s****y 2020.03.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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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와 고영범
"레이먼드 카버와 고영범" 내용보기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소설가이고, 먹고 살기 바빠서 장편보다는 단편을 주로 썼고, 한국에 독자가 꽤 많다고 했다. 독서 방송이나 나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름을 꽤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작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시를 통해, 그리고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의 삶을 정리한 이 책을 만난 것은 레이먼드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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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소설가이고, 먹고 살기 바빠서 장편보다는 단편을 주로 썼고, 한국에 독자가 꽤 많다고 했다. 독서 방송이나 나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름을 꽤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작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시를 통해, 그리고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의 삶을 정리한 이 책을 만난 것은 레이먼드 카버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이 책의 저자인 고영범 선생과 인연 때문이었다.


저자와 인연은 그가 쓴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칭 ‘워싱턴 촌뜨기’ 정재욱 선생의 추천으로 소설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회사 포털에 저자가 각색한 연극 <서교동에서 죽다> 티켓을 신청받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우리 회사에서 수여하는 ‘벽산 희곡상’ 2017년 수상자인 저자의 활동을 응원하는 행사라고 했다. 아내와 연극을 보는데 단지 각색으로 보기에는 내용이 상당히 달랐다. 그 무렵 저자와 인연이 닿게 되었고, 이 작품이 워낙 소설과 희곡 두 버전으로 쓰인 것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저자와 관심사가 비슷해 그 후로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고 지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잠깐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주고받은 건 이야기가 아니라 술잔뿐이었다. 이 나이대의 남자들이 다 그러하듯. 그래서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나이대를 싸잡아 이야기한 게 고 선생께는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보다는 젊으시니.)


불과 쉰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레이먼드 카버는 지금 알려진 명성만큼 누리지 못했다. 마흔을 갓 넘어서 대학교수로 부임하면서 소설가로서 전성기를 맞았지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 아내와 결별하느라 정작 원하던 삶을 누린 건 죽기 전 몇 년이 전부였다. 저자는 2012년 카버의 평전을 번역해 한국 독자에게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카버는 수많은 단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시를 남겼는데, 저자는 2022년 그의 시집인 <우리 모두>를 번역하고 연이은 2024년에는 그의 인터뷰집인 <레이먼드 카버의 말>을 번역해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카버의 단편은 번역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저자의 정체성을 생각한다면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풋내기들>이라는 카버의 단편집은 역자가 소개되어 있지 않던데, 그게 저자의 번역인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자기가 번역해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 카버의 평전과 인터뷰집과 시집을 비롯해 그간 출간된 그의 소설을 따라가며 카버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렇게 추적한 흔적을 현장에서 확인한다. 그를 위해 카버가 작가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을 비롯해 그의 흔적이 주로 남아있는 미국 서부의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주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하고, 그렇게 해서 카버의 문학세계로 흡수된 그의 삶을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카버의 삶을 밝혀나간 바탕이 된 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나는 소설가들의 능력은 문장보다는 줄거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문장은 자꾸 쓰고 다듬다 보면 나아질 수 있지만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로 여러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세계는 늘 작가의 삶 근처에서 맴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작가가 살아온 환경이나 지역이나 세대를 벗어난 작품이 드물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작품을 통해 카버의 삶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고.


오늘 독서방송을 듣는데 어느 작가가 나와 자기 소설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실명이라고 했다. 소설을 위해 만든 이름은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가 나고 그렇게 끌어가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신뢰할 만한 주장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공감할 수는 있었다. 없던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 창작이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 아닐까? 실망스럽다는 말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사람 냄새가 반갑더라.


카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조력자가 두 사람 있었다. 하나는 문학적 멘토였던 존 가드너 교수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다뤄 온 고든 리시 편집자였다.


“카버는 첫 학기에 가드너에게서 창작개론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의 과제로 제출한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 한 챕터를 가지고 한 학기 동안 가드너의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해야 했다. 가드너는 그 끝없는 수정 과정에서 학생이 ‘자기가 한 이야기를 거듭 응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깨닫게 되기’를 원했다. 가드너는 끊임없는 수정이 가진 힘을 믿었고 어느 수준에 있든 관계없이 수정이야말로 작가의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가드너는 카버가 소설을 제출하면 문장 단어부터 시작해 문장부호에 이르기까지 수정해야 할 사항을 빼곡하게 적어 돌려주었다. 가드너는 토론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그대로 지켜야 하는 건 어떤 것인지, 토론해 볼 수 있는 건 어떤 것인지도 명확히 구분했다.”


카버는 훗날 이 과정에 대해 그의 비평이 항상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치밀하고 더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선생에 그 제자가 아닐 수 없다. 열성을 다해 지도한 선생이나 그것을 분에 넘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 제자 모두 큰 복을 받은 게 아닐까.


카버는 1967년 고든 리시를 만나 사망하기 5년 전인 1983년까지 작가와 편집자로 동행한다.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기간 대부분 동안 카버의 소설은 리시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버는 리시의 통제 속에 갇혀있었다.


“카버가 원고를 보내고 한 달 뒤에 리시가 편집본을 보내왔다. 원고에서 불필요한 지방을 걷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듯한 잔뼈와 거기에 붙은 근육과 살까지 통째로 들어낸 것이다. 리시는 13편 중 몇 편의 제목을 바꾸고, 본문의 약 40퍼센트를 발라내고, 10편은 심지어 결말까지 바꿔 사실상 재창작이나 다름없는 편집본을 만든 것이다.”


책을 읽는 데서 지나 책 만드는 데 관심을 두게 되면서 책은 편집자가 저자의 멱살을 끌고 가며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래서 번역하면서, 또 내 책을 쓰면서 가능하면 편집자의 의견을 따르리라 마음먹었다. 번역서는 새로 쓰는 것과 영 다르기 때문인지 편집자와 별다른 마찰 없이 잘 끝냈다. 내 책을 쓰는 것은 나 자신도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편집자에게 책 제목과 배열을 책임져달라고 자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면 내 글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끝나기는 했어도 나 역시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편집자가 글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보낸 것이었다. 지적이 타당하지도 않았고, 설령 타당하다고 해도 팔리는 책을 만들자고 내 글을 버릴 생각은 없어서 잠깐 그만둘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편집자가 바뀌어 잘 마무리하기는 했다.


아쉽게도 내 책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편집자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받아들였다면 그건 어차피 내 글이 아니고, 내 글이 아닌 것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 게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시가 재창작이나 다름없이 만들어 놓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카버는 이 책으로 ‘미니멀리스트’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 후로 카버는 소설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저자는 카버가 리시의 편집본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애절하게 호소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훗날 편집본을 밀어내고 정본을 회복한 것을 보면 카버는 오히려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든 결국에는 카버가 동의했으니 출간되었을 것이고 그 수혜를 입은 것도 카버이기는 하다. 하지만 카버는 훗날 인터뷰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별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이것이 “리시의 문학관을 향한 공격이었고 여태까지 리시가 해온 역할과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편집자 리시가 카바를 배은망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리시는 그것이 자기 것이고 백번 양보해도 카버와 공동작업한 결과물이라고 여겼다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리시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카버의 소설이 유명해진 것이 편집자의 노력 때문이라고 확신할 근거는 무엇이며, 그렇게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왜 공동 저작으로 발표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아무튼 카버는 그런 리시의 편집에 동의했고, 리시의 손을 거친 그의 문장과 구조가 그의 스타일이 되었고, 리시와 결별한 후에도 그것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카버는 소설의 구조와 문장을 자기 것으로 여겼을까?


저자는 카버의 소설뿐 아니라 카버의 삶을 재구성 해내는 자료로 그가 발표한 수많은 시를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가 곳곳에 인용한 카버의 시를 보면서 한편으로 의아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소설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지만 시는 더욱 그렇다. 그런 문외한의 눈에 그저 낙서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글이 ‘시’라는 이름을 달고 발표되는 것을 보면 과연 시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시 한 편을 놓고 우주와 철학을 끌어들여 의미를 부여하고 극찬하는 글이 적지 않은데,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하게 된다. 내 눈엔 카버의 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카버의 시를 그의 삶을 재구성하는 텍스트로 사용했을 뿐 그에 대한 평가는 내리지 않고 있다. 혹시 저자가 번역한 카버의 시집 <우리 모두>에는 저자의 평가가 담겨있지 않을까?


저자가 발표한 레이먼드 카버에 관한 책은 하나같이 ‘벽돌책’이다. 2012년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이 960쪽, 2022년 시집 <우리 모두>가 640쪽, 올해 발표한 인터뷰집 <레이먼드 카버의 말>이 508쪽. 그리고 카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삶을 재구성한 이 책까지 저자가 카버에게 기울인 노력을 놀랄 만하다. 카버에 대한 입문서는 읽은 셈이니 이제 카버의 소설을 읽을 차례이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서.

YES마니아 : 로얄 b*****3 2025.0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