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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미국 조지아주 침례교 목사인 네이선 프라이스는 아내인 올리애너와 15살인 맏딸 레이첼, 쌍둥이 자매 리아와 반신불수와 실어증 증세가 있는 에이다, 5살의 막내딸 루스 메이를 데리고 아프리카 콩고로 1년 예정의 선교활동을 떠난다.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가능한 최대로 챙겨가지만 열악한 콩고의 생활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된다.지독한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고 온갖 벌레와 해충,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환경에 던져진 가족들은 냉철한 목사인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낯선 문화와 빈곤한 생활에지쳐간다.벨기에령이었던 콩고는 아프리카에 몰아친 독립열풍에 힘입어 독립국이 되지만 불안한 정치와 폭력에 휩싸이게 된다.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던 레이첼은 모국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과 열악한 환경에 진저리를 내지만 맏딸로서의역활은 생각지 않는다. 쌍둥이로 태어난 리아는 영재반에 속할만큼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지만 미숙아로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에이다는단지부자연스런 몸이 문제일 뿐 뛰어난 두뇌와 감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한다.리아와 에이다는 목사인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막내동생인 루스 메이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엄마인 올리애너의 결정을따라 콩고를 떠나려고 한다.부족장의 아내가 될뻔했던 레이첼은 비행기 조종사인 액셀루트와 거짓약혼을 하고 결국 루스 메이의 죽음 이후 그를 따라 남아프카공화국으로 도망치고 만다. '예수는 뱅갈라'라고 외치는 네이선의 설교를 콩고인들은 '방갈라'즉 '독나무'라고 알아듣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포이즌우드'는 네이선이 이루고자한 복음을 의미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네명의딸을 둔 네이선은 실제로 아내와의 섹스를 부정하게 여기거나 선교활동에 가족들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모습으로 종교인의 맹목을 보여준다.사실 모든 식민의 시작이 선교였음을 알고 있다. 이 소성에서네이선의 종교에 대한 맹목은 미국이란 나라가종교를 통해 미개국에 어떻게개입되고 존재감을 심어가는지를 보여준다.불행하게 던져진 가족들은 루스 메이의죽음으로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 소용돌이의 와중에 엄마 올리애너는 쌍둥이중 장애를 지닌 에이다를 선택하여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상실과 불완전의 존재였던 에이다가 장애를 이겨내고 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해나가는 그 시기의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쌍둥이중 영재라고 여겨졌던 리아는 콩고인인 아나톨을 선택하여 결혼하고 그후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을 같이 극복해가는 인물로 설정하여 마치 미국의 마지막 양심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태되거나 잠식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몇번의 결혼으로 자신이원하는 부유한 삶을 거머쥔 레이첼은 정의와 부도덕의 경계선에 선 영악한 인간의 상징일 수도 있다.선하고 순수한 루스 메이와 온벽과 상실의 두얼굴을 지닌 쌍둥이 자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는 레이첼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대표하며 네이선의 독선과 이기는 그 시절 미국의 국가관을 연상시킨다.5~60년대의 미국의 모습이 이 작품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미국의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우수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모두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아프리카에 몸과 영혼을 내 주었다. (중략)우리는 제각기 아프리카의 흙에 우리의 가슴을묻었다. 내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을 파내 흙을 털고 그것을 다시 빛으로가져올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580p 다행히 작가는 아프리카의 남자를 선택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리아를 통해 희망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그것도 조국인 콩고에게 정치적인 박해를 받는 의지의 인물 아나톨과 그 모든것을 함께 견디는 인물로 설정된 리아를 통해서 말이다.영악함과 비겁함에 타협하지않고 갈색피부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기저귀를 삶는 의지의 여인 리아는 문명의 이기심에 물든 야만인들에게양심을 묻는 진정한 바이블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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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백 번 죽는 것이지,난 엄마란다.넌 아니지.그도 아니었어. - 본문 -
우리 인간은 태어난 곳에서 여러 요인과 변수에 의해 수도 없이 이동하면서 삶을 살아 가는 존재이다.어릴 때는 부모의 직장과 경제적,교육적 환경의 요인이 발생하면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고,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시 직장,개인의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남편을 따라가고 직장의 인사 이동에 의해 이동을 한다.이동의 결과는 더 나은 삶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이 딸린 가장(家長)이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전 식구가 이동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식구들의 암묵적인 합의와 타협이 있어야 할 것이다.특히 치안이 불안하고 경제적 수준 및 위생시설 등이 열악한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면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과 부양의식이 뚜렷해야 가족은 가장을 믿고 따르고 의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복음을 전하려 네이쳐 일가족이 콩고의 땅을 밟으면서 겪게되는 콩코의 정치,사회의 분위기를 비롯하여 원죄 의식을 씻어 내고 구원을 전파하려는 콩코 원주민들과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져 있다.신화와 미신이 위주가 되고 부족장의 말 한마디가 법이 되는 콩고 원주민들이 평화롭게만 살아가던 중 네이쳐 가족이 들이 닥치면서 파란이 일어난다.뼛 속 깊게 전해져 오는 콩고 원주민들의 뇌리에는 이교도의 침투가 못내 거슬리기만 한데 네이쳐 목사는 부족장과의 사이에 갈등과 시련이 닥치게 된다.
콩코는 열대 지역에 정글 및 풍토병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이다 보니 경제수준이 높던 미국 생활이 그립기만 하다.흙담으로 벽을 두르고 풀잎으로 지붕을 엮은 집에 낮이고 밤이고 벽에는 도마뱀이 기어 오르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 드는 모기떼,생쥐들의 공격으로 인해 말라리아병에 걸리기 십상이고,불개미떼가 파죽지세로 밀려 들기라도 하면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도 쳐야 하는 곳이 콩고의 자연환경이다.이러한 자연 환경 속에서 네이쳐 목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도 하고 일면 청소년들에게는 성경 학습과 성경 필사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한 편 네이쳐와 부인 올리에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간극이 발생한다.1960년대 미화 50달러가 현재 가치로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섯 식구가 50달러로 생계를 꾸리려면 아무래도 팍팍할 것이다.생활비에 아이들 교육 그 외 지출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네이쳐 목사는 집 안 일에는 도통 무관심하게 되고 부인은 가정과 아이들 문제에 치중하다 보니 결국 갭이 생기게 되고 그 간극은 점점 벌어져 몸과 영혼은 모래알과 같이 퍼석퍼석한 상황으로 번져 간다.
큰 아이 레이철,둘째는 쌍둥이로서 리아와 에이다가 있다. 에이다는 소아마비로 인한 신체 장애가 있고 막내 루스메이가 있다.자매간이라도 모두가 개성이 있고 나이차가 있다 보니 이성에 눈을 뜨는 레이첼,성경 학교에서 원주민 아나톨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 리아,그리고 뱀에 물려 죽게 되는 루스메이,루스메이의 죽음을 기점으로 올리에너 부인은 목사 남편이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에이다를 데리고 미국으로 되돌아 가게 되고,남은 레이철과 리아는 콩고에 남아 그녀들의 짝을 만나 새로운 삶을 일궈 나가게 된다.네이쳐 목사는 복음 및 신앙심에 충실하지만 부부라는 관계를 너무 소홀히 하고 가정을 책임진다는 소명의식이 결여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당시 콩고는 벨기에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게 되면서 모부투에 의한 독재정권이 탄생하고 야당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게 되는데 리아의 남편 아나톨은 보다 나은 콩고의 자치와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수용소 생활을 치뤄 내는데 리아는 정신적 믿음과 애정으로 긴 세월을 버텨 나가고,맏이인 레이첼은 백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종교적 신앙보다는 돈을 버는 호텔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다.에이다는 미국에서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공부에 매진하게 되고,엄마인 올리에너는 부부간에 못나눈 회한에 사로 잡히게 된다.
포이즌우드(독나무)는 아프리카인의 정령을 대표하고 있는 나무인 것 같다.아프리카에 몸과 영혼을 실천으로 옮고 열대전염병학과 신형 바이러스를 연구하려는 에이다를 통해 그들은 알게 모르게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그들이 아프리카에 그들의 가슴을 묻고 가슴을 파내 흙을 털어 그것을 빛으로 가져오려고 하는 자세에서 국경,인종을 초월한 상생의 정신과 참된 인류애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또한 아프리카 오지의 자연 환경과 순수하게 살아 가는 아프리카인의 생활 방식과 정령의식,풍부한 콩코의 자원을 놓고 이념갈등을 벌이는 미.소 양대국의 이데올로기에 콩고 독재정부 지도자들의 저울질하는 모습도 당대를 이해하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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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글이 빽빽하다. 별로 여유도 없다. 마치 끝없이 펼쳐져있는 아프리카 대초원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서사극. 그 단어에 딱 맞는 소설같다. 아프리카라는 뭔가 스케일 큰 배경을 깔고 있으면서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이어지는것을 보면 그 낱말에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야기의 뼈대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난 한 가정의 일대기를 그린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신념으로 불쌍한 아프리카 미개인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겠다는 투지의 사나이 목사 네이선. 그리고 그를 따라서 낯선 세계로 불안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아내 올리애너와 4명의 딸들인 레이첼,리아,에이다,루스메이. 이교도를 믿는 흑인들로 가득찬 대아프리카땅에서 이 소수의 백인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짐작한데로 불안의 근원은 아프리카에 있는것이 아니라, 목사 네이선에게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않게 거론되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독선적인 기독교인이 바로 그 네이선이다. 그는 그 자신만이 옳고 그 자신만이 이 미개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수있다고 여기고 참으로 열성적으로 힘차게 하지만 독선적이고 무모한 전도를 한다. 그런데 누가 거들떠 보기나 할까.기독교의 초기선교방식처럼 한손에 빵을 든것도 아닌데. 그저 맨땅에 헤딩식으로 무식하게 하니 누군들 관심을 가질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그만인 원주민들과는 달리 네이선의 가족들은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큰 비극이 닥치게 되고 그것을 기점으로 아프리카를, 아니 네이선을 떠나기 위한 가족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게 된다.
책의 흐름은 아내 올리애너와 4명의 딸들의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프리카 생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 인물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어서 우리는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바라볼수 있게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곳은 아프리카 중에서도 콩고라는 나라다. 우리에게는 잘 들어보지 않은 낯선곳인데 책을 통해서 이 땅이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잘 보게 된다. 요즘은 드러나지 않게 하는지 몰라도 냉전시대의 미국은 콩고에서 했던 방식으로 신생국들을 조종하려했다. 국가의 정체성이 민주적이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무조건 미국에 이익이 되는 정권만을 원했고 그런 정권이 들어서게 하기 위해서 정부 전복도 서슴치않는 그야말로 깡패국가같은 행위를 한것이다. 지은이는 여러 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서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계사에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역시나할것이고 그런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쩌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콩고라는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백인 국가에서 파견한 기독교 선교사가 흑인 국가에서 어떻게 원주민과 접목하게 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수 있게 한 소설이었다.
지은이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산 덕분에 좀더 사실적으로 아프리카를 그릴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가 참 섬세하면서도 굵직하고 꼼꼼하면서도 대범한 필체가 돋보인다. 극중 화자가 각기 다른 여성 인물들이어서 더욱더 그렇게 느껴지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광고 문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책은 이런저런 소식으로 알려진 책이다. 숱한 상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에 속하는 신고전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뜬금없을지 몰라도 하퍼리의 '앵무새죽이기'에 버금가는 책이라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난리가 났던 책인데 1998년에 출간이 되었으니 나온지가 한참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출간이 된다는건 아무래도 헛된 기독교 선교방식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내용이 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대초원같다고 했는데 그 초원을 시속 200킬로로 달리는 스포츠카를 타고 가는것처럼 빠르게 잘 읽힌다. 과장 좀 보태서. 물론 중간에 아프리카물소떼가 지나가는 통에 거의 기어가다시피한 부분도 좀 있긴 했지만. 한 가족의 가족사를 통해서 현대사와 지역사를 알수있었고 여성의 이야기도 느낄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포이즌우드는 우리말로 독나무(poisonwood)다. 독은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고 못 쓰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에게 약이 되는 독나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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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구름끼고 흐린 풍경의 표지부터 poisonwood 라는 제목까지 화자는 다섯이다. 네이선은 실패를 경멸하는 완고한 사람이다. 이제 선교사 가족들은 하나씩 콩고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콩고의 상황이다. 콩고가 벨기에령이었을 때부터, 콩고의 독립투쟁, 초대 콩고 총리 살해, 미국 주도의 쿠데타 같은 상황들이 그려져있다. 저자는 친절하게 이 사태를 비유로 설명했다. 콩고는 자신에게 해가 될 만큼 부유한 동화 속 공주이고, 도처의 남자들이 그녀를 왕창 털어먹으려고 들러붙었고, CIA 콩고 지부장, 국가안전보장회의, 미국대통령, 모투부라는 콩고 청년 등 많은 남자들이 이 게임에 매료되었다는 것. 사실 이 소설에서의 선교는 단순히 종교적 강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소설 속에서는 상대방의 정신세계를 바꾸기 위해서 투입되는 것으로 종교와 문명의 편리성을 들고 있는데, 외세의 침략을 선교활동으로 빗대어놓은 것이다. 평화나 안전, 독립 원조 등 명분만 고상한 그 식민 지배 말이다. 한편 외부의 침입을 통해서 콩고인들도 배우게 된 것이 있는데, 바로 '민주주의적 결정'이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라는게 씁쓸하다. A는 B가 못 마땅해서, C는 D가 못마땅해서 반대표를 던지다보면 모두가 원치 않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 때 정작 주인공 자체를 크게 염두에 두고 투표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라고. 이렇듯 콩고 vs 서구 열강의 대립이 핵심적인 주제이지만 정치와 종교를 버무려 660쪽에 걸쳐 긴 이야기를 한 저자는 "우리 중에는 우리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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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미국 조지아주 침례교 목사인 네이선 프라이스는 아내인 올리애너와 15살인 맏딸 레이첼, 쌍둥이 자매 리아와 반신불수와 실어증 증세가 있는 에이다, 5살의 막내딸 루스 메이를 데리고 아프리카 콩고로 1년 예정의 선교활동을 떠난다.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가능한 최대로 챙겨가지만 열악한 콩고의 생활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된다. 지독한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고 온갖 벌레와 해충,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환경에 던져진 가족들은 냉철한 목사인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낯선 문화와 빈곤한 생활에지쳐간다.
벨기에령이었던 콩고는 아프리카에 몰아친 독립열풍에 힘입어 독립국이 되지만 불안한 정치와 폭력에 휩싸이게 된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던 레이첼은 모국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과 열악한 환경에 진저리를 내지만 맏딸로서의 역활은 생각지 않는다. 쌍둥이로 태어난 리아는 영재반에 속할만큼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지만 미숙아로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에이다는 단지부자연스런 몸이 문제일 뿐 뛰어난 두뇌와 감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한다. 리아와 에이다는 목사인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막내동생인 루스 메이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엄마인 올리애너의 결정을 따라 콩고를 떠나려고 한다. 부족장의 아내가 될뻔했던 레이첼은 비행기 조종사인 액셀루트와 거짓약혼을 하고 결국 루스 메이의 죽음 이후 그를 따라 남아프카공화국으로 도망치고 만다.
'예수는 뱅갈라'라고 외치는 네이선의 설교를 콩고인들은 '방갈라'즉 '독나무'라고 알아듣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포이즌우드'는 네이선이 이루고자한 복음을 의미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네명의딸을 둔 네이선은 실제로 아내와의 섹스를 부정하게 여기거나 선교활동에 가족들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모습으로 종교인의 맹목을 보여준다. 사실 모든 식민의 시작이 선교였음을 알고 있다. 이 소성에서네이선의 종교에 대한 맹목은 미국이란 나라가종교를 통해 미개국에 어떻게 개입되고 존재감을 심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불행하게 던져진 가족들은 루스 메이의죽음으로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 소용돌이의 와중에 엄마 올리애너는 쌍둥이중 장애를 지닌 에이다를 선택하여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상실과 불완전의 존재였던 에이다가 장애를 이겨내고 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해나가는 그 시기의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쌍둥이중 영재라고 여겨졌던 리아는 콩고인인 아나톨을 선택하여 결혼하고 그후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을 같이 극복해가는 인물로 설정하여 마치 미국의 마지막 양심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태되거나 잠식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번의 결혼으로 자신이원하는 부유한 삶을 거머쥔 레이첼은 정의와 부도덕의 경계선에 선 영악한 인간의 상징일 수도 있다. 선하고 순수한 루스 메이와 온벽과 상실의 두얼굴을 지닌 쌍둥이 자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는 레이첼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대표하며 네이선의 독선과 이기는 그 시절 미국의 국가관을 연상시킨다. 5~60년대의 미국의 모습이 이 작품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미국의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우수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아프리카에 몸과 영혼을 내 주었다. (중략)우리는 제각기 아프리카의 흙에 우리의 가슴을 묻었다. 내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을 파내 흙을 털고 그것을 다시 빛으로 가져올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580p
다행히 작가는 아프리카의 남자를 선택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리아를 통해 희망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 그것도 조국인 콩고에게 정치적인 박해를 받는 의지의 인물 아나톨과 그 모든것을 함께 견디는 인물로 설정된 리아를 통해서 말이다. 영악함과 비겁함에 타협하지않고 갈색피부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기저귀를 삶는 의지의 여인 리아는 문명의 이기심에 물든 야만인들에게 양심을 묻는 진정한 바이블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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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도착한 책을 받고 한참을 생각했다 첫번째는 이 두꺼운책을 내가 다읽을수있을까 두번째는 미국고등학교선정,뉴욕타임즈137주연속 베스트셀러등등의 화려한선정이된 이책 나는 종교인이아니기에 소설이라고해도 지루하지않게 잘 읽을수있을지가... 이책은 아빠 네이선목사,아내 오리애너,15살 큰딸 레이펠, 일라성쌍둥이자매 리아와 에이,5살루스메이 이렇게 다섯명의 여자들이 소설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1959년 아버지에 뜻에따라 자기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콩고로 떠나지만 콩고에 도착한순간 큰딸 레이첼은 우리가 벌을 받는건가 콩고에 가장 먼저든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자신들맘대로 할수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하나도 심지어 우리자신도 책임지지 못할거 같다는 생각도 같이 들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콩고에서의 정식활동 허가를 받은것이 아니기에 그모든것들을 다 가족들이 해결해야하는상황인데도 선교를해야한다는 열정으로 콩고에 온것이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콩고의 독립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자 다음선발대로 오기로한 부부도 안오게되었다 그런데도 아버진 가족들보다 선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떠나지 않자 1년을 생각하고 온 선교활동이 30년동안 한가족이 모든 사건사고를 겪으며 마음에 상처를 입고 비극적인삶을 살게 되지만 희망을 잃지않는 장편소설이다 이책을 일고난후 첨에 내가 생각했던 어리석음은 없어지고 정치 종교 사회문화 인간에모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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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무척 충격을 받으며 본 다큐가 있다. `최후의 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였는데..우리가 아는 초강대국 미국에서 아이들중 4명에 1명 꼴로 점심을 굶고 있단다.세계에서 부자가 가장 많고 오늘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그렇게 많은 기부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에서 굶는 아이가 그렇게나 많다니 놀랍지않은가?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것은 모든 부의 재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않은 탓으로 본다 세계 최강대국의 사정이 이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태평양제도의 아주 작은섬에서는 모두가 나눠서 일을 분담하고 서로 나눠먹는다.가장이 죽거나 아플때에도 가족은 걱정이 없다.이웃들이 서로 도와 그들의 몫을 나눠주는 `아로파`라는 게 있기때문인데.그래서일까?우리의 현재기준으로보면 부족하고 없는것 투성인데도 그들의 표정은 평온하고 너무나 밝았다. 얼굴에서 그들의 행복이 드러나기때문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죽도록 공부하고 일하는 이유는 뭘까?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우리모두가 걱정없이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삶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걸 비록 우리눈엔 초라해보이는 그 태평양의 작은섬 사람들의 삶에서 찾을수 있을것이다. 이 책`포이즌 우드 바이블`은 미국의 한 목사가족이 그들의 눈에 한참 미개하고 덜떨어진 콩고로 가서 그들의 주님인 예수의 사랑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온정을 베풀고자 노력했던 그 오만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책을 읽는 내내 가진게 없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늘 웃고 그날그날을 충실하게 사는 그 태평양의 섬사람들이 생각났다.
독실한 신자이자 목사인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어쩔수 없이 콩고로 건너가게 된 프라이스가족 그곳 콩고는 당시 벨기에의 식민지로 아버지 네이선 목사는 미개하고 한참 떨어진 그들 콩고주민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설파한다는 사명감에 열성적인 목소릴 내지만 아무도 그들을 환영하지않는다. 심지어 생각했던것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 가족들조차 네이선에 반발심을 가지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면 돌아오는건 매질뿐이기에 그곳에서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프리이스네 가족 특히 그런 권위적이고 독실하다못해 다른것을 용납하지않는 흔들림없는 아버지의 믿음에 존경심을 갇고 있는 둘째이자 쌍둥이인 리아는 아버지의 모든것을 따라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쌍둥이 언니와 아버지의 모습에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에이다와 콩고의 생활을 유독 못견뎌하는 큰딸 레이철과 제일 먼저 콩고에 적응하는 고집쟁이 막내 루스메이는 콩고에서 매일매일 벌레와 모기를 쫒는 전투같은 삶을 산다. 이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이에 콩고는 식민지생활을 청산하고 독립에 이르게되면서 그들을 이곳 콩고로 보낸 남침례협회에서 그들 가족의 귀환을 명령하지만 네이선은 그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곳 콩고에 남아 그의 후임이 올때까지 원주민을 회개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한다.백인들이 대부분 탈출하는 그곳에서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곳 콩고에서의 생활은 월급이 끊겨서 점점 어려워지고 이들 가족에게도 격변의 물결이 들이닥치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왠지 이 책이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허영을 가진 큰 딸 레이철도,그리고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곳 콩고에선 남자들의 일인 사냥을 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리아도 그리고 고집쟁이에 조금은 막무가내인 막내 루스메이에 말없는 관찰자인 에이다까지도..여기에 이들 각자 개성이 뚜렷한 네자매를 이끄는 너무나 조용하고 남편의 말에 복종하는 엄마모습까지도.. 그렇지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 네자매와 엄마인 올리애나의 시선으로 각자가 당시에 느꼈던 심정을 각자가 주인공이자 화자가 되어 그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두려고 무서웠던 개미떼의 공격에서 목숨을 건 말라리아와의 사투 그리고 목숨을 건 탈출과 그뒤의 생에 대한 이야기 까지... 또한 벨기에 식민지에서 콩고공화국이 되는 시점의 정치혼란과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와 광물을 노리고 덤벼든 강대국들이 벌인 비열하고 인간적으로도 용서받기 힘든 잔인인 처사는 읽으면서 마치 조선말의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듯해 안타까웟다. 그렇기에 힘있는 강대국앞에 너무나 나약해 바람앞의 등불같았던 조국 콩고를 끝까지 포기하지않는 아나톨이란 인물의 인내심과 현명함은 우리가 흔하게 봐왔던 인물과 너무나 다르지만 그럼에도 저절로 존경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 들 가족을 맹수앞에 던져놓은것처럼 제대로 된 준비없이 가족을 위험으로 내 몬 너무나 무책임한 남자 조너선은 가장이지만 가장이 아닌 그저 혼자만의 사랑에 빠진 위선자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는데다 남의 말은 커녕 가족의 반대조차 용납않는 편협함을 종교라는 철갑을 두르고 다른 사람앞에서 군림하려 드는 오만함...심지어 그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콩고로 오면서 프랑스말을 배울 생각조차 않은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었다.그럼에도 아프리카 흑인은 다들 미개하고 무식하다는 편견에 가득찬 다른 백인들보다 더할뿐 아니라 자신을 그들을 구원하러 온 구원자라 믿는 위선까지 갖춘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인간형이기에 그런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다 끝내는 아버지의 정체를 파악한 딸 리아의 경멸을 받는 처지로 떨어지는 부분에선 안스러움을 느끼게도 한다. 그를 그렇게 고집스럽게 몰고 간 게 스스로의 비겁함을 용서하지못한 결과라는 걸 알게 됐을때의 허무함이란... 그리고 마지막까지 일종의 무대같은 모습을 보인 그에게 과연 신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과연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가진게 진정 우리가 원하는 삶인지? 그저 하루하루를 먹고 살면서 자연이 내려준 순리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아프리카 원주민에 비해 우리가 진정 더 행복하게 살고있는건지... 주변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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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침례교목사인 네이선 프라이스는 아내 올리애너와 15살의 레이첼, 영재로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쌍둥이 리아와 한쪽 몸이 불편하고 발을 질질끌면서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녀 또한 영특함을 지닌 짝 에이다, 그리고 다섯 살의 막내 루스메이를 데리고 벨기에령 콩고의 킬랑가로 선교를 하거 떠난다.
미국의 베들레헴에 있을 때는 필요했던 물품들을 추리고 추려서 가져갔지만 막상 도착한 그 곳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으며, 사사건건 마을 추장의 타타 은두와 마찰을 빚는다.
네이선의 독선적인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품 안에서만이 행복과 선의를 추구할 수있단 강한 종교적인 신념은 대대로 내려오는 아프리카 특유의 토착민속과 신앙에 대해 어느 정도의 타협을 통한 선교활동이 아닌 극단적인 정의에 불타오른 그의 신념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행보를 보인다.
하루에 꼭 한 알씩 삼켜야하는 말라리아 약과 더불어서 아이들은 제 각각의 성격대로 아프리카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가지만 아빠의 가정 내에서 아내와 딸들에 대한 무관심과 폭행을 두고도 아프리카의 끈적거리는 장마와 습기들과 함께 이 곳을 탈출하고 싶단 간절한 소망은 무용지물인 상태로 이어져나간다
그러던 시간은 콩고가 벨기에 령으로 부터 독립을하게 되면서 초대 지도자로 뽑힌 사람을 두고 미국의 CIA의 개입과 아이젠하워의 지시로 지도자는 죽음을 맞게되고 빨리 이 곳을 탈출해야만 한다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네이선은 다음 후임자가 올 때까지 선교작업을 마무리한단 결심을 굳힌다.
가족의 소망을 저버린 채 아프리카의 어느 뜨거운 밤, 루스메이는 독사 뱀에 물려죽게 되고 엄마는 이후 모든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 준 채 딸들과 함께 남편을 두고 탈출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희망의 탈출을 하는 여정 속에 리아가 병으로 눕게되고 차를 얻어타고 가는 과정에 엄마는 부득이 추장의 부인이 될 뻔한 큰 딸 레이첼은 자신들을 데려다 준 헬기 조종사 액셀과 함께 떠나게 허락할 수밖에 없고, 리아는 아빠의 설교를 통역해 준 아나톨의 간호가 끝나는 대로 만나기로, 에이다는 엄마의 손에 끌려 미국으로 돌아가게된다.
레이첼은 남아공에서 불안한 액셀과의 결혼을 끝내고 또 다른 탈출을 하기 위해 남자들을 이용 , 결국엔 호텔을 이어받아 성공하는 미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대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콩고라는 대 아프리카의 넓은 땅은 콩고와 자이르, 일명 콩고 공화국으로 나뉘면서 리아는 자이르에서 아나톨과의 결혼을 통해서 네 아들들을 낳고 아나톨의 반체제라는 인사의 낙인이 찍히면서 감금과 투옥의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이마저도 아프리카가 갖는 또 하나의 숙명적인 삶이란 생각으로 살아간다.
에이다 역시 엄마와 돌아온 후 대학에 진학, 자신의 불구였던 몸을 고치고 말을 하게됨으로써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한다.
아버지의 굽히지 않는 예수에 대한 사랑을 전도하는 데 포기하지 않았던 정의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다 끝내 화형에 처하는 삶으로 마감을 한다.
한 가족이 콩고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음로써 그들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친 이 이야기는 일년 반 정도의 삶을 거쳐간 곳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콩고에 묻혀있음을, 좀 더 정확히는 태고의 신천지인 원시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버지 네이선은 모든 전우들이 죽은 가운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홀로 살아남았고 그런 자책감은 끝내 예수가 인도하는 길에 들어섬으로서 자신의 속죄를 덜어내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으로 각인이 된다.
운명은 우리 부친에게 당신의 남은 생으로 이 모든 목숨에 대해 보상하라는 벌을 내렸고 아버지는 빚을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의 눈 아래서 필사적으로 가식을 떨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p 502
전장에서 많은 전우들이 사망하는 가운데 자신의 딸들이 계속 태어나는 것 자체에 대해 아내 올리애너에게 비난의 말을 서슴치않는 독선적인 태도,(아 , 그럴것을 예상했으면 조심했어야지, 왜 아내 올리애너만의 잘못인가? 읽다가 화가 났다. ) 매를 드는 행동은 딸들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아버지로서의 인상을 심어줬고 이런 것은 딸들 중에서도 유난히 아버지의 뜻에 부합된 행동을 보인 리아마저 신의 대한 정의, 속죄, 구원에 대한 선명한 갈등과 갈림길을 만들게한다.
한 밤중에 습격한 밤 손님 개미 떼 출현은 삶에 대한 애착과 함께 에이다에겐 자신이 아닌 동생 루스메이를 먼저 선택한 엄마의 손길 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지만 루스가 죽은 이후의 모든 삶이 아프리카의 전 .후의 삶으로 나뉘어지듯이 에이다에겐 탈출의 시기가 바로 그러한 구원의 손길이 느껴진 삶으로 간주된다.
리아도 아닌 자신을 선택한 엄마에 대한 의문은 엄마의 말 한마디로 기쁨을 느끼면서 그간의 맘 속에 안고 있었던 짐을 내려놓게되고, 아프리카인과의 사랑으로 자신이 먼저 선택한 아니톨과의 생활은 콩고에선 자신의 하얀 피부때문에 미국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 것이란 생각을하는 콩고인들 앞에서 난처함을, 미국에 가선 미국인들의 흑.백간의 사이에 태어난 자신의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아나톨을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콩고에서 나는 풀냄새와 아프리카만이 지니는 그 특유의 삶 냄새를 미국의 마트에선 전혀 생소한 냄새를 맡는데서 오는 이방인의 삶의 묘사 모습이 아주 가슴에 와 닿게한다.
아버지 네이선은 설교때 말한다.
"타타(콩고에서 남자들에게 붙이는 칭호) 그리스도는 뱅갈라" -
뱅갈라- 가장 귀중한 가장 거슬리는, 독나무란 뜻으로 불리는 이 말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자면 그리스도는 미개한 아프리카인 너희들 함 족의 자손들로 태어난 너희들에게 가장 귀중하단 뜻이다.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아버지의 억양은 마치 독나무란 뜻으로 이해되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진정한 구원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저들만의 신으로 대립하게 된다.
누가 우리 콩고에게 와서 자연이 주는 혜택외에 문명이라 불리는 이기의 혜택을 달라고 했던가?
천연 다이아몬드와 광물의 천연지인 땅하나를 가지고 저들의 이익에 부합한 인물을 지원하며, 콩고는 콩고인의 손에 의해 자립할 수있도록 도와줘야 할 강대국들이 저들의 손익계산서를 따지면서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개미의 한 목숨만도 못하게 처신하는 비판의 소리는 리아의 눈길과 체험,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드는 삶속에 너무나도 투명하게 그려지기에, 이 책은 비단 종교가 갖는 선의의 정의와 설교, 전도, 그리고 더불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문명이라 불리는 주춧돌에 대한 오해와 비판의 눈길을 던지고 물어본다.
방대한 600페이지가 약간 넘는 긴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여인 5명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콩고라는 아프리카의 현 시점을 다시 되짚어보게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녀들의 삶 속에 살아있고 이미 그 곳에 발을 디뎠을 때 자신의 모든 것도 그 안에 수용이 되었음을 30여 년에 걸쳐서 보여주는 장대한 스케일의 여정이다.
아버지가 이해할 수없었던 킬랑가 족장의 무리한 제안은 결국 그네들만의 민주적인 돌려서 말한 해결제시책이었음을 깨닫는 리아의 말엔 누가 문명인이고 야만인지를 생각해보게한다.
오지의 땅에 선교라는 방법은 선구적인 그네들만이 해 온 방식이 아닌 토착민들의 삶과 절충함이 필요함을, 물론 일부다처제같은 것은 수용할 수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세례를 해 주는 방식에 있어서 악어가 출몰하는 강가에서 극구해야만 한다는 네이선의 주장에 반해 아프리카가 처한 생태와 날씨를 고려한 일부 후퇴를 하되 절충안도 필요함을 느끼게 해 주는 작은 일련의 사건들도 작가는 섬세한 여성의 필치로 그려내 감동을 자아낸다.
다양한 부족과 말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 레이첼, 억척스레 주위의 눈길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이 먼저 선택한 남자 아나톨과 이상향을 꿈꾸며 살아가는 레이첼, 자신의 역경을 극복하고 아프리카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하는 에이다, 죽은 루스메이를 아프리카에 묻고 돌아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엄마로서 한 시도 잊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올리애너의 삶의 모습들이 모두 하나같이 빚이나는 천연의 보석같은 삶 모습을 보여주며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국엔 모두 아프리카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 모습을 각 세대별로 각자의 처지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나래이션을 연상케하는 파트별의 글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선의와 정의로 뭉친, 종교가 전하는 좋은 말씀을 전달하려한 네이선의 의도는 바람직했으나 그 과정에서의 그릇된 시각으로 불러온 불행은 책 말미에 성경에 대한 같은 구절이나 상황이 다르게 해석이 될 수있는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점을 지적한 점에 아마도 이 소설을 읽게 될 같은 종교를 가진 독자라면, 깊은 생각을 더해보지 않을수가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성경의 말씀처럼 책 목록도 창세기, 출애굽기, ...이런 제목이 붙여져서 그런가, 책을 읽으면서 상황에 들어맞는 작가의 챕터 제목도 정말 와 닿고 우울하다가도 그 나름대로 자연을 이용하면서 살아가고, 노는 모습들의 장면 출현은 한 때의 찌뿌듯한 우기의 날씨를 잠시나마 잊고 소강상태의 맑은 날씨를 연상케 해 주는 맛이 있는 책이다.
이미 1998년도에 출간이 되서 미국에선 학교에서 채택이 되어 있다던데,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면 각기 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간의 인생여정이 아름답게 그려질 것 같은 느낌이 확 오는 책이다.
***** 남아프리가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P530 밑에서 11줄 위, 오타가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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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아프리카 콩고의 이야기 포이즌우드 바이블에서 등장인물들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콩고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인 일들은 사실에 근거한 콩고의 아픈 이야기들로 작가는 그 비극적인 이야기를 섬세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낯선 땅 콩고로 선교 활동을 떠나게 된 미국의 목사 네이선과 그의 아내와 딸들이 아프리카 콩고에서 30년간 고난에 부딪치면서 살아온 비극적인 삶이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이야기는 콩고의 비극과 함께 한 가족의 비극도 만날수 있었습니다. 한 가족의 놀라운 비극적인 이 이야기는 네이선 목사의 아내 올리애너와 15살 레이첼, 일란성 쌍둥이 자매 리아와 에이다. 그리고 5살의 루스 메이 다섯명의 여자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그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낯선 땅으로 선교 활동을 떠나기 전 엄마는 꼭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자신들이 12개월 동안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체온계와 진통제를 비롯해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 엄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자신들이 가게 된 콩고에서 그런 물건들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큰 언니인 레이첼은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리아는 똑똑하고 용감했지만 에이다는반신불수로 실어증 증세를 가진 절름발이였습니다. 에이다는 몸 한쪽을 못쓰고 뇌가 손상되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루스 메이는 악마를 미워하지만 악마가 아닌 나머지는 모두 사랑해야 된다고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그들 가족의 아버지 네이선은 선교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 콩고로 왔지만 레이첼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우리가 벌을 받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들 가족은 콩고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선교 활동을 할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자신들의 뜻대로 할수 있는게 없었고 그곳에서는 가족의 안전도 책임질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들 가족이 도착했을때 마을 사람들은 환영식을 열어 주었지만 주민들의 낯선 모습과 음식에 기겁을 한 레이첼은 그저 외모를 꾸미고 열여섯살을 기념하는 멋진 생일 파티를 생각하는 어린 소녀에게 커다란 국자로 음식을 먹어야 되고 가슴을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는 여자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킬랑가 마을은 크윌루 강을 따라 이어져 있는 곳으로 사방이 대나무 숲이 자라는 곳이었습니다. 교회는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막내 루스 메이는 이웃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먹을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이첼은 12개월 동안 침대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콩고로 데려온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아침 집앞에 몰려 들어 신기한 동물처럼 아이들을 구경했고 그들 중에 어린 소녀들도 있었는데 결혼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로 보였지만 아기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행복한 모습인 동시에 슬퍼 보였습니다. 에이다는 실어증 증세를 가진 아이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경계를 늦추어 우스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었지만 에이다는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습니다. 선교활동에 대한 열의는 가득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많은 상처를 입혔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딸들은 자신들이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콩고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 정식으로 인가를 받지 못한 일이었고 그것은 곧 그들이 그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된다는 것으로 먹을것과 물은 늘 부족하고 그들 가족의 안전 조차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선교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벨기에령 콩고의 독립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자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했고 올리애너는 불안했습니다. 그들 가족 다음으로 오기로 한 부부는 계약을 거절했고 선교 활동은 몇년 뒤에 재개된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네이선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가족보다 선교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선교활동의 중지로 식량과 물을 구하는 일은 점점 힘이 들었고 콩고의 독립으로 새로운 총리가 뽑히게 되고 그들 가족의 앞날을 예상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네이선은 킬랑가를 구원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실패할 것이라고 결코 믿지 못하는 네이선은 자신이 돌보아야 할 가족들 보다 자신의 신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들 앞에 나타나게 될 정치적인 변화들을 결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 가족이 일년을 목적으로 떠난 선교활동이 그들의 삶을 걷잡을수 없게 만든 이야기를 다섯명의 여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면서 정치적 혼란기에 겪게 된 아픔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137주 연속 베스트셀러, 미국 고등학교 선정 필독서라는 소개를 떠나서 아프리카 콩고의 독립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대국의 싸움에서 혼란에 빠진 한 가족의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껴졌고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또 다른 희망을 위해 일어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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