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을 통해 선인들의 사고의 프리즘을 들여다 보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의 틀 안에 갇히지 않고 그들이 가진 폭넓은 사고의 기술을 사용해 보는 경험은 우리의 생각 또한 한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엔 좀 겁이 나긴 합니다. 내가 너무 부족하니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바로 그 위대함 때문에 그의 주석을 단 현대인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고 하네요. -<피고석의 하나님>266p- 그렇다면 옛날 책이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세상에는 책이 넘쳐납니다. 이 책에도 옛날 책의 이로움에 대한 구절이 있군요. 오래도록 먼지가 끼어 더러워진 거울 같은 마음을 거듭 닦는 데는 오래도록 성현들이 전하여 온 옛 학문이 필요하다.-185p
주자에 대해선 제가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그래서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습니다. 서문을 조금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자의 이름은 주희(朱熹:1130~1200)이며,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이다. 호는 회암晦庵이라고 하였다. 주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론 주자학이라 불리는 성리학이다...정자의 4전제자이다. 당시 유학의 수준은 여전히 훈고학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랬던 것을 북송 5자의 유가 학문을 집대성하면서 성리학의 수준으로 크게 끌어올린 인물이 주자다......주자도 문사철에 두루 능한 학자였는데 후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철학, 곧 유학자로만 부각된 인물이다. -5p
책의 형식은 아래 사진과 같이 "시의 역주는 원문을 바로 대조할 수 있도록 한 직역에 산문으로 완전히 푼 의역과 감상을 돕는 주석을 첨가하였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문장만으로도 머리속에서 버퍼링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원문과 주석을 읽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랑말랑한 "산문으로 완전히 푼 의역"만 읽기로 하고 책장을 넘깁니다. (원문에 한자의 음이 표기 되어 있었다면 주석과 대조해 볼 용기가 조금이나마 생겼을텐데...하는 아쉬움을 살짝 접으면서...) ![]() ![]() ![]() 그저 현인의 시심을 따라 그의 지혜를 살짝만 엿보는데 만족할려구요. 마치 주자의 블로그를 유람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학자답게 학문에 힘쓰려는 다짐이 많구요, 그 기쁨에 대한 감탄이 많습니다. 일상적인 일기 같은 시도 있고 ,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관한 감상도 있구요.
특히 아래의 시들을 보면 그의 상황이나 형편, 학문에 대한 갈망과 기쁨을 조금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21."어머니의 생신날 축수를 드리다"는 시 인데 형편이 빈궁해 생신상도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하는 송구한 마음이 담겨 있네요. ...눈동자는 천년을 장수한다는 사람들처럼 네모 반듯하다.(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묘사한 듯 합니다.) 집이 가난한 데다가 자식은 어리석어 남들처럼 변변한 벼슬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몸을 깊이 숨기었다. 잠시 속했던 관직 생활에서 돌아와 벌써 다섯해째나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 대문과 들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나 거칠어졌다...-75p
33. 감회 나라를 경영하는 데 참여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은 내가 옛날부터 숭상하고 바라던 바였다. 평소에 그런 마음을 품고 있던 터였다. 이 세상에서 몸을 숨겨 은거하는 것 따위는 평소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이제는 경세제민에의 꿈도 미련없이 모두 버렸다... ...이 몸은 지금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109p
어떻게 하면 내가 머물 있는 아래 세상의 샘물을 떠나서 구름이 되어, 인간 세상을 고루 적셔줄 수 있는 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188p
나를 위해 마치 모르는 물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켜 가면서 가르쳐주는 것 같다.-113p
지난 날 나의 학문은 유가에다가 석로의 것까지 뒤섞여 마치 얼음과 숯을 한꺼번에 안고 있듯이 모순투성이였소. 그대를 만나 종유하고 난 다음부터 비로소 [주역]의 문호인 천지 건곤의 이치를 알게 되었소... ...그 정밀하고 미묘한 뜻을 깨닫는 순간, 이를 정말 말로는 무엇이라고 표현해내야 할지 몰랐답니다... ...이 세상을 운행하는 모든 이치가 다 이것 곧 이치에서 생겨나 흘러 나옵니다. 이는 아마 모든 성인들이 이 이치의 근원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함께 알아서일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이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서기만 한다면, 그 학문을 시작함이 그리 번거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이 말로 서로 학문이 돈독해지도록 기약함이 어떨는지요!-151p~152p
사방을 돌아보아도 조용한 것이 산수를 즐길 일은 많이 있어도 신세타령같은 속세의 근심따위는 전혀 없다. 조용히 지내면서 틈나는 대로 책이나 지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 줄 현자를 기다리기도 한다. 앞으로 올 현자가 그간 이 몸에 쌓였던 잘못이나 허물을 바로 잡아서 내 앞에 있었던 성인들처럼 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118p
주자의 시를 죽 읽어나가다 보니 주자의 가슴을 지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는 과연 기다리던 현자를 만날 수 있었는지 궁금해 지네요. 어쩌면 그 현자와 성인는 자신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그의 블로그에서 찾아낸 아래의 시에 공감버튼을 꾸욱 눌러주며 서평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지식이 마치 강물처럼 불어나 큰 전함이 강 가운데로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을 할 때 무엇이든지 마음껏 미루어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내게도 오기를 기대하면서...
|
|
미국에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신경숙 작가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첫 대답은 "일단 번역이 되었기 때문에"였습니다. 한국 문학작품 중에 좋은 작품들이 굉장히 많은데 "번역이라는 난관에 처해서 한국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조명을 받을 기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일에는 '문학적' 수준의 번역 작업이 요청됩니다. 번역의 문제가 가장 큰 장벽으로 와닿는 문학장르는 '시'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번역의 문제를 제일 과제로 꼽았던 기억이 납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시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더 잘 통할 수 있는 정서를 외국어에 담는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학 작품의 번역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예술(문학) 창작의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한시를 많이 읊어주셨습니다. 휴일이면 함께 등산을 하는 날이 많았고, 산 정상에 오르면 아버지는 이런 저런 시를 멋지게 암송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멋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셨습니다. <주자 시 100선>에 끌린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자 시 100선>을 처음 대할 때, 이것이 '시'라는 문학 장르이고, 외국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조들도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고, 그것을 배우고 감상함에 있어 한자를 잘 모른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든지,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와 같이 그렇게 읽고 그렇게 감상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뿐입니다. 막상 <주자 시 100선>을 읽어보니 그 시의 맛과 멋을 제대로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자의 운율이나 리듬에도 독특한 느낌이 있을 터인데 제게 한자는 그저 외국어이고, 눈은 어느새 번역자의 주석을 읽으며 의미를 파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번역된 시어로는 그 본래의 멋을 알 수 없는 궁색한 실력이지만, 해설처럼 풀어 쓴 글이 있어 읽는 재미는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그것도 '번역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넘어, 국경을 넘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는 것이 또 새삼 신기합니다.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지혜를 깨닫고 기뻐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친구와 나누는 우정과 학문에 만족함을 느끼고, 그리움에 잠 못드는 밤이 있고, 덧 없는 세월 앞에 한숨 짓고, "한 없이 한가로워 보이는 봄날의 분위기"에 젖어 여유를 만끽하는 시인과 (어설프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주자는 "성리학의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린" 성리학의 대가로 평가되지만, "문학 방면에도 두루 뛰어났"고, "그 중 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약 1,500수의 시 가운데 100수를 엄선한 것이니 관심과 여유를 갖고 읽어볼 만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
|
'주자'하면 성리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주자학을 창시하였고, 일생을 저술과 교육에 힘썼다고 한다. 학창 시절 '이기론'에 대해 배우며 주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 주역이나 다른 주해를 보면서도 주자는 흔하게 언급되었다. 시험을 앞두고 '권학문 주자훈'을 책상 앞에 적어두고 학문에 정진하고자 마음을 다잡았으니 주자가 나에게 준 영향은 크다. 독서실 책상 앞에 붙여둔 글을 읽다가 '연못가 봄풀 꿈을 미처 깨지 못하였는데, 뜰 앞에 오동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전하는구나.'라는 문장에서 아련해지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 표현에 감탄하던 시간을 기억한다.
주자가 남긴 글은 실로 다양하다. <사서집주>, <주역본의>, <자치통감> 등의 책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그런 '주자'가 시문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미 주자십회나 권학문주자훈 등 생활 속에서 접한 글이 다양하게 있음에도 글 따로 시 따로 생각하던 습관 때문인지, 나에게 주자의 시는 낯설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책 <주자 시 100선>을 통해 주자의 시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이 책은 주자의 시 중 100편을 엄선해서 담아놓은 책이다. 최근까지 발굴된 주자 시 1500여 편 중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100수를 가려뽑고 상세한 해설과 주석을 달았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것이다. 때로는 해설과 주석이 책에 몰입하는 데에 방해를 하기도 하지만, 생소한 글을 읽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해설과 주석이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일단 그 생소함을 없애기 위해 해설을 먼저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해설을 읽고, 그 다음에는 원문과 주석을 읽으며 다시 음미해보았다. 옮긴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한시를 직접 읽고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면 더 깊이 와닿았을텐데, 해석된 것으로 유추해서 그 느낌을 살려야하니 그 점이 아쉬웠다. 영시나 한시의 경우, 직접 그 언어로 접하고 싶은 마음은 그저 해석본으로 달래본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주자의 시 100편을 접하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올해에는 옛사람들의 시문을 좀더 다양하게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접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은 책은 타이밍도 적절했고, 올해의 독서 목적에도 맞는 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주자의 시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었다. 생생하게 눈 앞에 보이는 듯한 광경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자 시를 읽으면서 말이다.
|
|
주자시 100선 주희 지음│장세후 옮김│연암서가 刊
소위 문리가 트인 사람들에게 주자를 최고의 가치로 치던 시대가 있었다. 그놈의 주자
이렇게 낭만적이고 시가적인 주희에게서 그리도 완고한 성리학이 도출되다니 그가 고
사실 까놓고 하는 말이지만 우리처럼 시를 잘 짓는 민족은 없다. 중국이야 문자가 한문
시인으로서 주희의 시는 현재 전하는 것만 1500수나 된다. 한문 시는 전문학자들만 애
주자를 얘기하면서 정치적인 서사를 빼고갈 순 없다. 그가 끼친 성리학은 외래 사조다.
어디 그뿐인가. 국제정치역학에 의해 해방이 되더니 다시 마르크스엥겔주의에 원인해서
봄빛이 버드나무 가지에 이름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 未覺春光到柳條. 바야흐로 봄이다. |
|
중국 남송대의 주자학으로 널리 알려진 주자는 이기설(존재론),성즉리의 설(윤리학),격물규리와 거경의 성(방법론),경전의 주석이나 역사서의 저술 등을 내면서 구체적인 정책론 모두가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혈연적 계급질서의 관점이 관철되고 있다.중국 안휘성 출신으로 자는 원회이고 호는 회암이다.
주자학은 일명 성리학이라고도 불린다.이는 군신,부자,부부 사이를 강조하는 삼강과 인의예지신을 강조하는 오상을 강조하고 있는데,조선시대의 국체가 바로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국가의 기초 질서,군신과 백성 간의 관계,연장자,조상을 섬기는 제의 등도 성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이렇게 주자학을 제창한 주자는 만년 권신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의 학문이 위학(僞學)이라 박해를 받고 해금이 되기 전에 죽음을 맞게 된다.
주자는 성리학이라는 학문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고 집대성한 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우무.양만리,범성대.육유와 동시대인으로서 당대의 경세제민,속세를 벗어난 은둔 생활,서정성이 짙은 시를 문집 10권에 수록하고 별집과 유집,현재까지 전해지는 것까지 합하면 1,500수 가량 된다고 한다.저자는 이중 꼭 알아두면 좋을 듯한 시를 100수 선별하여 연암서가에서 선을 보이고 있다.
주자 시 100수는 주로 5언율시 및 7언율시로 되어 있다.시의 내용이 일률적으로 어떻다라고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지만 계절과 자연을 마주 하고 느끼는 소회를 그린 시도 있고,부모,스승에 대한 효성과 예도,속세를 벗어나 은둔하는 거사의 모습,동진 시대의 대시인 도연명을 그리워 하는 모습 등이 본제(本題)의 해석,각주,해설이 꼼꼼하게 배열되어 있다.주자가 그린 전반적인 시를 소화할 수는 없지만 명민하게 20세 전에 진사합격부터 대학자로서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한 면모 뒤에 감성적이면서 그의 생각과 사유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주자 시는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가 있어 유익하기만 하다.
그가 만년에 세간에서 갖가지 풍사을 겪고 이를 성찰할 계기를 마련하는데,나이가 들어 몸도 늙고 백발이 잔뜩 나 버린 그의 입지를 두고 그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꿈도 미련 없이 모두 버렸다는 '감회'라는 시는 삶의 방향타를 잃은 주자 자신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經濟夙所尙(경제숙소상) 경세제민은 내 일찍이 바라던 바, 隱淪非所期(은륜비소기) 은거하여 숨음 원래부터 생각지도 않았다네, 幾年霜露感(기년상로감) 몇 년간 풍상 느껴, 白髮忽已垂(백발홀기수) 백발 모르는 사이에 이미 드리웠네, 鑿井北山지(착정북산) 북쪽 산기슭에 우물 파고, 耕田南潤湄(경전남윤미) 남쪽 기름진 물가에 밭 조금 일구네, 乾坤極浩蕩(건곤극호탕) 이 천지간은 끝없이 넓은데, 歲晩將何之(세만장하지) 해 저물어가니 장차 어디로 가나?
'우물 안 개구리'마냥 주자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 그의 시를 통해 다시 한 번 당대 그의 감정과 사유,성찰을 재발견하는 멋진 기회가 되어 다행스럽다.또한 원시를 옮긴 저자는 독자들의 가독성과 이해를 돋구기 위해 꼼꼼하게 각주 및 해설을 실어 놓아서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나 또한 오래간만에 한시의 묘미를 만끽해 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어 다행스럽기만 하다.
|
|
옛 선조들의 시라는것이 다 그렇겠지만 몇번이고 읽어도 정말 경이롭게 다가온다. 온갖 비유와 은유들이 섞여있어서 원문 밑에 당아놓은 주석(해설)없이는 무슨 말인지 모를지경이다. 그냥 횡설수설 하는듯하다. 아주 대단한 학자의 [시] ,혹은 [말씀]인데 나 쉬워라고 숨은 뜻을 져버리고 쉽게 읽을수야 없겠지만 일단은 쉽게 읽어보길 권한다. 한번 더 읽을때 본문에 달아놓은 주석이 많은 도움이 되며 어려운 한시를 풀이해놓은걸 읽으면 그나마 숨은 의미를 음미할수 있었다.다만 아쉬운점은 편집하면서 주석부분을 달리 배치해 독자의 눈에 편하게 들어오게 하는 묘미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할아버지인 공자의 유학(유교사상)을 학문으로 집대성한 성리학을 완성시킨 학자로서의 주자가 아닌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인간 주자의 관점에서 읽었으면 한다. 깊이있게 풀이하고 주석에 달아놓은 많은 관련 자료들을 찾아 정독해가며 이책에 실린 주자의 시들을 읽어가지 않는한 여기서 학자로서의 주자를 분석하기는 힘들것 같다.
다만 공통되게 다가오는 유교사상이라는 큰 틀은 벗어남이 없다.
주자시에서 자주 나어는 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매화가 언급이 된다. 매화의 원산지도 중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나리 꽃이 피면 봄이 라고 말들 하지만 중국에선 매화에 더 상징성을 두는것 같다. 매화열매를 햇볕에 말리면 검게 변하는데 이것을 오매(烏梅)라고 한다.구충의 효능이 있어 옛부터 설사,요혈,복통에 잘 사용되었다. 또 열매가 녹색일때 따서 술을 담구기도한다. 한가지 빼놓을수 없는것은 우리 토속문화인 궂판에 항상 매화꽃은 빠지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매화의 상징성 때문에 주자의 시에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주자의 시 100편의 모든 시들이 한편,한편 운치가 있다. 은둔해있는 스승을 걱정하기도 하고 길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의 해후도 얘기하고 있고,부모님 건강걱정과 친구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탄식들,계절이 바뀔때마다 다가오는 감상과 느낌들이 아름다운 은유로 표현되어 있다.특히 봄이오는것을 좋아했는것 같다. 이렇듯 소소한 일상 생활들을 노래하고 있고 그러한 노랫말속에 공자의 천지인(天地人)사상이 살포시 내포되어 있는듯 하다.
주자의 시에서 자주 나오지만 새생명이 시작되는 "봄" "봄"을 노래한 시가 내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런의미에서 "주자시100선" 이라는 책 제목이 좀 심심하고 교과서처럼 느껴진다. "주자의 춘도(春道)" 라는 제목이었다면 더 운치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책을 다 읽고나서 느낌이 그렇다 큰 의미 없이 주자가 봄의 길을 노래했다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