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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4] 백성을 위한 정치란?
"[13-24] 백성을 위한 정치란?" 내용보기
율곡(栗谷) 이이(李珥), 사림(士林)의 경세론(經世論)을 제기하다.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의 사망으로 구체제의 균열이 드러나자 성리학적 이상정치를 꿈꾸던 젊은 신진세력, 즉 사림(士林)은 구체제의 해체를 시도했다. 이들 사림(士林)은 “기성의 정치적 권위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지니고 있었고, 이들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선배들에 대해 아무런 존경심도 갖지 않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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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栗谷) 이이(李珥), 사림(士林)의 경세론(經世論)을 제기하다.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의 사망으로 구체제의 균열이 드러나자 성리학적 이상정치를 꿈꾸던 젊은 신진세력, 즉 사림(士林)은 구체제의 해체를 시도했다. 이들 사림(士林)기성의 정치적 권위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지니고 있었고, 이들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선배들에 대해 아무런 존경심도 갖지 않았다.1)그래서 사림(士林)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로 여겼던 이황(李滉; 1501~1570)이 임금에게 추천한 이준경(李浚慶; 1499~1572)2)까지도 구신(舊臣)이라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인적 청산이야말로 문정왕후(文定王后)로 대표되는 구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이(李珥; 1536~1584) 또한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이준경(李浚慶)이 사망한 후 사림(士林)이 권력을 장악하자 그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그들은 부패한 것을 제거하고 깨끗한 것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시3)했던 만큼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능력을 탁월했지만, 국정을 운영할 식견이나 방법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우의정 노수신(盧守愼; 1515~1590)모든 사람이 일의 폐단만을 말할 뿐 그 폐단을 바로잡을 계책은 말하지 않으니,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4)라고 말한 것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제야 현실을 보는 눈을 뜬 이이(李珥)만언봉사(萬言封事)>(1574)에서 정사(政事)는 시의(時宜)5)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공(實功)6)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사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치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7)라고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여 과감하게 제도적 개혁을 해야 세상이 다스려진다고 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비록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동호문답(東湖問答)>(1569)에서 방납(防納)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건의한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은 그러한 인식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원칙에 따라 민생(民生)을 돌보다.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일생은 이 책의 소제목 가운데 하나인 험난한 시대를 산 따뜻한 관리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당대에 완평(完平; 이원익)은 속일 수 있지만 차마 속일 수 없고, 서애(西厓; 유성룡)는 속이고 싶어도 속이지 못한다.8)라고 평가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오직 원칙을 지켜 맡은 일을 신속하고 착실하게 수행하는 것만으로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지방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로 하여금 선조(宣祖)에게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소서. …… 오직 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입니다. 조정은 이 점을 절실하고 급박한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 밖의 일들은 부수적인 일일 뿐입니다.9)라고 말하게 하였다.

그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단지 립서비스로 민생을 언급하는 것과 달리 실천에 옮겼던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이(李珥)에 의해 논의되었던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을 부활한 경기 선혜법(京畿宣惠法)을 사실상 제안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를 즉위시의 일회적인 시혜조치로 수용한 광해군을 설득, 항구적인 제도로 전환시켰다.

비록 훗날 삼도 대동법(三道大同法)을 추진했다가 그에 따른 혼란과 저항 때문에 스스로 철회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시행착오가 김육(金堉)이 대동법(大同法)을 완성하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포저(浦渚) 조익(趙翼), 대동법에 대한 반론(反論)을 반박(反駁)하다.

 

조익(趙翼; 1579~1655)성리학 공부에 진지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도 마음을 다한 관리10)였다고 한다. 이는 그가 현실에 참여한 지식인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조익(趙翼)만 현실에 참여한 지식인인 것은 아니다. ‘사대부(士大夫)’라는 단어 자체가 현실에 참여하는 혹은 참여예정인 지식인임을 암시하고 있으니까.

 

물론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수출신 장관들이 현실참여형 지식인임을 주장하였지만 그것이 허울에 불과하였음을 보아 왔듯이, 조선시대의 수많은 사대부들이 겉으로만 사대부(士大夫)’였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조익(趙翼)은 그런 겉보기 사대부들과는 달랐다. 재생청(裁省廳)의 책임자로 임명된 후, 이원익(李元翼)이 물꼬를 턴 삼도 대동법(三道 大同法)을 시행하면서도 대동법을 반대하는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였다.

인조(仁祖) 원년(1623)논선혜청소(論宣惠廳疏)”, 인조 2(1624)대동청계사(大同廳啓辭)”, 인조 3(1625)논대동불의혁파소(論大同不宜革罷疏)” 등 잇따른 상소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밀한 논리로 반대 세력을 설득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공납(貢納) 문제의 핵심을 단순히 방납(防納)으로 보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다양한 사회적 관계 사이의 불균등에 따른 공납 부담의 불평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조정에서 삼도 대동법(三道 大同法)을 폐지하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한 뒤에도 그는 2차례나 더 상소를 올려 대동법의 혁파를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대동법(大同法)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잠곡(潛谷) 김육(金堉), 대동법(大同法)을 완성하다.

 

김육(金堉; 1508~1658)의 삶을 보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그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광해군 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고 그를 유적(儒籍)에서 삭제한 사건으로 인해 잠곡(潛谷)으로 은신하여 직접 농사짓고 숯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 곳에서의 10년간은 그에게 백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평생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것은 안민(安民)이었다. 그에게 정치의 핵심은 누가 권력을 갖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안민(安民)을 구현해낼 수 있는가 였다.11), 정치를 누가 옳으냐 틀리냐를 따지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의 장()이 아닌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한 장()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오랜 세월 백성들을 괴롭혔던 공납제도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한,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끈질기게 추진하여 사실상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대동법을 이해하고 그 실시에 헌신할 실무관료인 이시방(李時昉; 1594~1660), 남선(南銑; 1582~1654), 허적(許積; 1610~1680), 김홍욱(金弘郁; 1602~1654) 등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고 그들을 대동법 반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였고, 효종(孝宗)의 관심과 동의를 유지하여 대동법(大同法) 시행이라는 결단을 이끌어냈다.

 

국가적인 위기였던 임진왜란(壬辰倭亂) 전후로 조선시대의 주목할 만한 경세가(經世家) 4명의 간략한 전기(傳記)로 엮인 이 책은 잘 알려진 사람(이이)의 다른 면을 보여주거나 사실상 잊혀져 있던 사람(이원익, 조익)을 재조명 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좋은 정치가란 어떤 정치가인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던져놓은 책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이정철,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역사비평사, 2013), p. 62

2) 이정철, 앞의 책, p. 60에 따르면 이황이 국가가 위태하고 불안할 때 음성이나 안색이 흔들리지 않고 나라의 형세를 태산같이 안정시켜 놓았습니다. 기둥과 주춧돌 같은 신하이며, 그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추천하였다고 한다.

3) 이정철, 앞의 책, p. 65

4) 이정철, 앞의 책, p. 92

5) 이이의 시의(時宜)시대에 맞게 법제를 개혁하여 제도적인 민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6) 이이의 실공(實功)이란 일을 하는 데 성의가 있고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7) 이정철, 앞의 책, p. 93

8) 이정철, 앞의 책, p. 176

9) 이정철, 앞의 책, p. 196

10) 이정철, 앞의 책, p. 246

11) 이정철, 앞의 책, p. 357

w******f 2013.05.04.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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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이 실시되기까지 진정성과 헌신성이 빛난 인물들-'언제나 민심을 염려하노니'
"대동법이 실시되기까지 진정성과 헌신성이 빛난 인물들-'언제나 민심을 염려하노니'" 내용보기
조선사회는 선조 왕에 이르러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사림들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양반내에서 권력 교체가 이루어진 셈인데, 하지만 사림들은 권력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세상을 운영할 것인지,즉 경세(經世)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비로소 고민하고 방법론을 생각한 선구자는 바로 이익이었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에
"대동법이 실시되기까지 진정성과 헌신성이 빛난 인물들-'언제나 민심을 염려하노니'" 내용보기

조선사회는 선조 왕에 이르러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사림들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양반내에서 권력 교체가 이루어진 셈인데, 하지만 사림들은 권력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세상을 운영할 것인지,즉 경세(經世)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비로소 고민하고 방법론을 생각한 선구자는 바로 이익이었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삶 즉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제도'를 통해 '민생'을 개선하고 해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 민생을 중시하는 사고의 반영으로 거둔 성과 중 대표적인 제도가'대동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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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민생을 개선하는데 힘을 기울인 경세가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대동법이 성립하는데 기여한 인물들로,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이 그 주인공들이다.

한 정책과 제도, 특히 당시로서는 기득권에 반하는 개혁성을 띈 대동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임진왜란이전부터 백성들의 세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지만, 전쟁의 발발, 반정 등 국기가 흔들리고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쉽게 진척될 수 없었다.

오랜 전쟁과 반정, 사화 등 국기를 흔들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굵직굵직한 사건이 이어 벌어졌고, 청나라의 군사, 조공 요구에 조선의 재정은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었으니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원익(1547~1634)이 조정은 '민생'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어 조익(1579~1655), 김육(1580~1658)등은 선혜청을 통해, 대동법의 체계를 갖추어갔다. 그리고 반박에 대한 반론과 대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고 타협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물이 삼도 대동법(1623),호서 대동법(1651),호남대동법(1656) 실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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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조익, 김육이 대동법이 성립되기까지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의 역할은 컸다. 이들은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이원익)혹은 농촌에서 농민들의 현실을 지켜보거나(조익) 직접 생계를 꾸려갔던(김육) 경험을 바탕으로한 투철한 현실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탁월한 실무능력과 경험, 소신을 갖고 '민생'해결을 대한 정책을 처방했고, 그것의 필요성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헌신적인 관료였고, 인정(仁政),안민(安民), 완평(完平) 등 추구하는 가치를 잊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너무 이들에 대해 너무 좋은 점만 썼나보다 하면서도 이들에게 민생에 대한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들은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때로는 명분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란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이며 곧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관리의 임무라는 것을 누구보다 가슴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e****0 2013.04.17. 신고 공감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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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安民)을 우선 한 조선의 경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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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언제나 망한 나라는 비난 받는다. 어쨌든 문제가 있었기에 다른 왕조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니까. 조선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아예 외세의 지배로 넘어갔으니까. 그래서 내내 당파 싸움에 골몰했고, 나라 밖의 흐름에 귀를 닫은 나라로 비난 받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나라는 500년을 유지했다.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중국이나 유럽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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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언제나 망한 나라는 비난 받는다. 어쨌든 문제가 있었기에 다른 왕조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니까. 조선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아예 외세의 지배로 넘어갔으니까. 그래서 내내 당파 싸움에 골몰했고, 나라 밖의 흐름에 귀를 닫은 나라로 비난 받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나라는 500년을 유지했다.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중국이나 유럽의 왕조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내내 당파 싸움으로 귀양 보내고, 서로 죽고 죽이는 권력 놀음에만 빠져 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무언가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 있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 해답 중 하나를 이 책에서 찾는다. 스스로 조선 최고의 개혁이라 일컫는 대동법에 관한 책을 저술한 이정철은 그 대동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갖는 네 명의 경세가를 소개한다. 바로 율곡 이이,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이 그들이다. 바로 앞에서 얘기한 대로 그들을 경세가(經世家)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념적 기둥인 성리학에 바탕을 두면서 관료로서, 정치가로서 국가를 경영하는 데 자신의 학문과 경험을 이용한 이들이라는 얘기다. 이들이 활약한 시기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선조 때부터 효정 때까지. 이 시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있었다. 광해군의 시기를 겪고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도 있었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웠던 시기였고, 그래서 민심의 이반도 심했다. 뿐만 아니라 사림(士林)의 진출이 본격화된 이후, 당파가 분화되어 나간 시기이기도 했다. , 작은 이념적 대립, 혹은 서로간의 이해에 따라 죽고 죽이는 정치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네 명이 활약했다. 그들도 위태로웠다. 이이를 제외하고는 정승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쉬운 삶을 살지 않았다. 탄핵을 받고 물러나기도 했고, 임금의 필요에 의해 복직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 조정에 있어야 하는지를 잊지 않았다. 바로 안민(安民)이었고, 국가의 유지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분명 학자(특히 이이와 조익)이기도 했지만, 고서의 문구에 집착하여 형식에만 얽매인 이들이 아니었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이들이었다는 얘기다. 그 최종적인 결과 중의 하나가 바로 대동법이었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 약 100쪽씩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율곡 이이도 그렇고, 아무래도 생소한 잠곡 조익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들이 살아간 생애의 무게를 나누어 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생애를 보면서 당연히 지금의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인재의 등용 방식도 달라졌고, 정책의 수립 과정도 달라졌고, 또 그 정책을 관철하는 통로 다르다. 이들과 같이 진퇴를 두고 도박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킬 수도 없고, 임금의 결단을 통해서 이뤄질 수도 없다. 관료와 정치인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통해서 관료로서의 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정치적 압력이라고 난리가 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활약한 시기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아니 적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철학에 대해서는 충분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학문이 학문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이상적 상황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목표가 바로 백성(국민)이라는 것, 그리고 국가라는 것.

 

저자는 이후에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책을 썼다. 도덕적 명분이 반드시 좋은 정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거기에는 율곡 이이도 포함되어 있다. 당파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있었고(그 서인의 비조에 해당한다), 당파에 대해 조금은 순진한 생각을 가졌던 이가 이이였다. 그럼에도 이이는 탁상공론에만 매몰되어 있던 인물은 아니었다). 바로 이 책과 이어지는 문제 의식이다. 이상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혹은 현실을 이상적으로 구체화하는 데 어떤 이들이 필요한지, 어떤 이들이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18.06.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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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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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바는, 새삼스러울 수 있지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조선시대를 다루었으므로, 한국사 중에서도 ‘조선시대’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유감없이 표현한 책인 셈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납세제도인 대동법이 100여 년간에 걸쳐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 4명의 ‘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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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바는, 새삼스러울 수 있지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조선시대를 다루었으므로, 한국사 중에서도 조선시대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유감없이 표현한 책인 셈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납세제도인 대동법이 100여 년간에 걸쳐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 4명의 경세가들의 삶을 다루었다. 각 인물의 생애사를 뒤돌아보며 그것이 대동법, 즉 민생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실천과 어떻게 접목되는지 살펴보았다.

 

대동법은 처음 입안된 후 전국적으로 실시되기까지 100년이란 시간을 거쳐야 했다. 100. 이 시간이 갖는 무게가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은 2013년 현재 건국 65주년이다. 불과 세 세대 남짓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최고 법인 헌법만 보아도 9차례나 개정되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대동법처럼 긴 역사적 성숙을 거쳐 수백 년을 지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는가 

 

이 책은 우리 한국인들이 민생을 위하는 세심하면서도 강인한 제도를 만들었던 자랑스러운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흔히 말하지만 조선은 500여 년을 지속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장수 왕조국가였다. 조선시대를 시기구분할 때 1592년 임진왜란을 분기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조선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임진왜란에 개입했던 중국과 일본은 직접 전쟁이 발발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부담으로 인해 지배세력이 교체되었다. 하지만 막상 전국이 전장으로 불탔던 조선은 체제를 보수하여 왕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조선의 재배세력, 즉 양반 사대부 계층이 전쟁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를 안정시켜 국가체제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대동법과 같은 긴 역사적 성숙을 통해 확립된 민생을 위하는 합리적인 제도들 덕분이었다. 이 책은 지금을 사는 우리 한국인들도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4명의 인물이 자신과 사회의 행복을 위해 좋은 제도를 고민해나가는 과정을 잘 드러내준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대중에게 이 책은 우리 한국인들의 훌륭한 역사적 전통을 알려주는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최근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장관 등 관료 인선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작금의 상황을 걱정한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훌륭한 학자관료들의 삶을 접하고 현실도피 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이며 최고 주권자가 바로 우리 스스로임을 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제도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전공을 불문하고 조선 정치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어려운 조선 정치사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역사 연구자들은 한 번쯤 이 책을 보고 대중적 역사글쓰기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w******n 2013.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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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런 정치가, 공직자들이 필요하리라!! - 귀감이 되고 지침이 되는 조선시대의 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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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보름 남짓이다. 남북관계가 냉랭해지는 가운데 국무위원 인선도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현재까지 인사문제와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당선 당시 그녀가 표방했던 ‘국민대통합’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기를 바란다. 그런 와중에 주목할 만한 책이 한 권 출판되었다. 조선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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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보름 남짓이다. 남북관계가 냉랭해지는 가운데 국무위원 인선도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현재까지 인사문제와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당선 당시 그녀가 표방했던 ‘국민대통합’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기를 바란다. 그런 와중에 주목할 만한 책이 한 권 출판되었다. 조선시대를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자 이정철의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역사비평사, 2013.2)이 그것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민생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민생’을 생각하며 청백리로 살아간 네 명의 인물을,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 시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네 인물은 16~17세기 당대에 손꼽히는 경세가들이었다. 그 유명한 율곡 이이(1536~1584)는 성현의 법도와 마음가짐만을 강조하던 당대에 민생을 위한 경제개혁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개혁론은 당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후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나갔다. 이원익(1547~1634)은 40여년에 걸쳐 재상을 하면서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나라에 백성의 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뒤를 이어 조익(1579~1655)은 조선 후기 국가에 의한 최고의 개혁으로 알려진 대동법(*아래 주석 참조)을 기초하였고, 김육(1580~1658)은 그것을 완성시켰다. 이들은 모두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현실에 근거한 대책을 제시해갔던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네 인물을 저자는 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이이), 진심으로 헌신한 관리(이원익), 이론과 현실을 조화한 학자(조익), 안민을 실현한 정치가(김육)로서 표현했다.

 

한참 인사청문회가 펼쳐지고 후보자들이 각종 비리의혹으로 구설수에 있는 시점이다. 그 시점에서 위의 네 인물들은 대체로 청렴한 관직생활로도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한 예만 들면, 이원익은 평안도 안주 목사로 임명된 다음 날 혼자 말을 타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대개 지방관에 임명되면 한동안 한양에 머물면서 자신의 임명과 관련한 정부 기관들과 유력자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차리는 일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그 때 신임 수령을 모시러 현지 아전들이 서울에 도착하면, 신임관은 부임지에 떠들썩하게 내려갔다고 한다(153쪽). 또 그는 40년에 가깝게 3대에 걸쳐 정승을 지내는 등 매우 보기 드문 관직생활을 지냈지만, 기와집도 아닌 두어 칸 띠집에 머무를 정도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인조는 그를 칭찬하며 새 집을 지어주고 이불과 요를 내렸다고 한다(221~222쪽). 오늘날에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공직에 머물면서 전시행정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고, 나중에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남긴 채 ‘먹고 튀는’ 인물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 책은 역사물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조선시대 상황과 관련한 내용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점도 독자의 이해를 편하게 한다. 보기를 들면 신사임당이 결혼한 뒤에도 강릉 친정에 남아 있었던 것을 두고, ‘시집(시아버지 집)간다’는 말과 ‘장가(장인의 집)간다’는 말의 차이점을 설명하여 조선 전기에 장가가는 것이 큰 흐름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37쪽).

 

또한 책의 주인공, 네 인물들은 모두 뛰어난 업적 내지 명망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인물들의 업적과 생애를 소개하면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도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온다. 이이는 10대 후반 신사임당의 죽음으로 정서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지만, 그 혼란에는 아버지 이원수의 여자 문제도 더해졌다는 속내가 있었다(39쪽). 이러한 설명들이 책 중간중간에 초상화라든가 관련 사진들을 많이 넣음으로써 이해를 돕게 만들고 있는 점도 주목을 끈다.

 

지금도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문제 등등 각종 사회경제적 현안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제기되고, 구호로서 끊임없이 부르짖는 모습을 목도하지만 막상 그것을 정책화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눈을 돌릴 때는 공염불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관료와 지식인들의 인식도 의외로 관념적이거나 낮은 수준인 경우도 보인다. 여기서 다뤄진 네 인물들을 보면서 지금도 마찬가지로 ‘경세’가 필요한 현실로서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진실’로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는 21세기적인 의미의 경세가, 목민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일독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 대동법 : 조선후기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여, 공물 유통과정에서의 각종 폐단을 방지하고자 한 제도. 전국적으로 유통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k******a 2013.03.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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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를 외치는 현재에 어울리는 조선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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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을 주도했던 구호는 ‘경제민주화’였다. 이 구호를 중심으로 수많은 정책들이 재배치되어 진용을 갖췄다. 그 주장을 실현시킬 여러 경제학자, 국회의원들이 전면에 드러났다. 현재 박근혜 정부 속에서 그것이 정말 실현될지 의문이란 반응들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구성은 남겨져 있다.   조선시대에 ‘경제민주화’와 버금가는 용어가 ‘안민’ ‘민생’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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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을 주도했던 구호는 경제민주화였다.

이 구호를 중심으로 수많은 정책들이 재배치되어 진용을 갖췄다. 그 주장을 실현시킬 여러 경제학자, 국회의원들이 전면에 드러났다. 현재 박근혜 정부 속에서 그것이 정말 실현될지 의문이란 반응들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구성은 남겨져 있다.

 

조선시대에 경제민주화와 버금가는 용어가 안민’ ‘민생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는 바로 조선시대판 경제민주화를 주도했던 4명의 경세가들에 주목해 그들의 삶과 안민을 추구했던 과정들, 명확한 정책으로서는 대동법을 추진해나갔던 과정들을 주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관한 다른 역사책들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주로 당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혹은 왕을 중심으로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을 대면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등장 인물부터 좀 특별하다. 율곡 이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 등은 그다지 대면할 기회가 없었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사림 내에서 발생했던 문제, 당파의 문제에서 한 발 벗어나 안민을 추구하고 그 실질적 대안으로 대동법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당파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이것을 뛰어넘고 행동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아쉬운 점도 있다.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정책은 대동법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정책만으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없듯, ‘대동법만으로 안민이 완성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한 이들이 오랜시간 추구한 것이 대동법만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대동법이라 함은 세금 걷는 방식의 일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지, 진정 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또다른 문제, ‘분배’, ‘산업의 문제는 다뤄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이들의 한계였던 것일까? 저자가 대동법 전공자여서 다른 분야에 대해서 다루지 못한 것일까? 맹자에 일정한 산업이 있어야 일정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 학자관료들에게는 주요한 모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 말을 되새기면서 어떠한 정책들을 펼쳐나갔을 것일까? 그 궁금함이 남는다.

c****3 2013.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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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다르지 않은 400년 전 민생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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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에 귀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그리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듯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찰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자 이정철은 이를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요컨대 역사에서 지나갔다가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17세기를 전후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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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에 귀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그리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듯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찰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자 이정철은 이를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요컨대 역사에서 지나갔다가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17세기를 전후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중엽을 대상으로

각각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동법의 아이디어와 실시에 기여했던 4인의 경세가들에 대한 소평전이다.

연대 순으로 율곡 이이,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이 그들이다.

저자는 대동법으로 박사학위논문을 받았으며, 이를 이미 단행본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이번 책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는 4인의 경세가들의 평전 형식을 통해 그들이 어떤 식으로

조선 중기 당시 직면한 위기에 맞부딪쳤으며, 민생을 주된 화두로 해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해가고자

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마 대동법의 실시과정에서 드러나는 당대 경세가들의 고민은, 민생과 복지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현재의 우리들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소 다를지언정 인간 사는 세상의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어떤 고민과 대응을 해나갔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덧붙인다면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대동법을 배운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세제 개편과정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는 기억만 날 뿐 대동법의 배경과 그를 둘러싼 논의, 의의 등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비단 본인 혼자만의 문제일까? 이 책은 딱딱한 교과서를 통해 배워 얼핏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역사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l*******j 2013.03.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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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으로 오버랩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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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정철은 대동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대동법 전문가이다. 이미 2010년에 대동법을 주제로 한 책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율곡 이이,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이라는 네 명의 인물을 통해 대동법을 설명하는 책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인물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었고, 딱딱한 제도사적인 측면에서 대동법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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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정철은 대동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대동법 전문가이다. 이미 2010년에 대동법을 주제로 한 책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율곡 이이,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이라는 네 명의 인물을 통해 대동법을 설명하는 책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인물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었고, 딱딱한 제도사적인 측면에서 대동법에 접근하고 있지도 않다. 초심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설명으로 인물과 대동법 양자를 조화롭게 연결하고 있다.

이 책은 율곡이 태어난 중종대, 이후 명종대의 을사사화를 전후 한 시기를 거쳐 대동법이 비로소 시행될 수 있었던 효종 초까지의 조선시대를 조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동법이 어떤 시대적 과제 속에서 탄생했는지 역시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 국사시간에, 대동법이란 ‘토지의 결수에 따라 공물을 부담하는 제도’라고 딱딱하게 외우면서도 정작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알이지 못했다. 하지만 대동법, 그 안에는 백성을 살리는 방법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 고민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마련한 사람이 율곡이다. 율곡은 정치란 단지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실행될 수 없으며, 민생의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누가’보다 ‘어떻게’ 실현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도 현실 정치에 많은 불만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적 쇄신을 통해 개혁을 이루고자 소망한다. 하지만, 인적 쇄신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율곡을 통해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광해군대 경기지역에 국한된 대동법, 다시 말해 대동법의 예비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경기선혜법’이 실시되는 데, 이것은 오리 이원익의 민생에 대한 그의 열망으로 빚어낸 결과였다. 그는 원칙에 충실한 관리로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해냈다. 이후 포저 조익은 그의 풍부한 학문적‧경험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강원‧충청‧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하기 위한 방대한 운영 규정을 만들었다. 이로써 대동법의 뼈대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효종대 김육은 인물의 적절한 배치와 과단성, 추진력으로 대동법을 실현했다.

이들의 역할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의 지향점은 한결 같았다. 民生, 安民, 仁民 등 표현은 달랐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백성을 살리는 것이며, 이는 공정한 분배를 통해서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성장과 분배 중에서 우리가 실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논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동법의 성립과정은 400여 년 전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문제와 끊임없이 오버랩 된다. 지금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문제가 어떤 모순에 기인한 것인지 파악해야 하며,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찾고, 이 해결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저항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o******e 2013.03.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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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수 있는 대동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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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과 경세가들에 관한 역사이야기는 생각만해도 어렵게 느껴진다. 일단은 이 시대가 아닌 과거의 '법'이기 때문에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용어부터 낯설고 정치의 이야기도 너무나 먼 얘기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른것보다도 제목과 표지가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대동법이 성립되는데에 공을 세운 경세가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시대에 가진 문제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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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과 경세가들에 관한 역사이야기는 생각만해도 어렵게 느껴진다.

일단은 이 시대가 아닌 과거의 '법'이기 때문에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용어부터 낯설고

정치의 이야기도 너무나 먼 얘기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른것보다도 제목과 표지가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대동법이 성립되는데에 공을 세운 경세가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시대에 가진 문제점이 바로 '민생'이었다는 것을 제목에서 먼저 밝혀줌으로써

요즘처럼 '민생'을 쉽게 말하고, 또 그것이 국민이 강하게 요구하는 시대에 하나의 해소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또 안의 내용은 무겁지 않게, 그러나 조선시대 정치계의 흐름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간다.

그리고 저자는 은연 중에 대동법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경세가들의 역량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법제화될 수 있었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특히 요즘같은 때에 저자가 건네는 말은 왠지 더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것은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를 어디서 느껴야할지 조금 난감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첫 번째 고민은 학계밖의 사람들에게도 부담없이 읽힐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시대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하나의 실마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성공적이지만 두번째는 쉽게 읽힐 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조선시대를 잘 모르는 나같은 독자, 특히 율곡 이이 말고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의 생애와 고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 이 책의 강점이 있는 듯하다.

a*********n 2013.03.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