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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레미야가 힘들다. 눈물로 고된 삶으로 기도로 살아낸 삶 어둠 깊이 시대의 끝을 살아낸 삶 우회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돌파해낸 눈물의 선지자. 처절한 삶을 견뎌낸 사람. 그렇게 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 하나님을 너무 사랑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 강한 사람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문제를 피하지 않는 사람임을 내게 알려준 선지자. 나는 그가 고통스러울 만큼 부러워서 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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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야, 그래 인생은 고해와 같단다. 그래서 방해하는 첫 파도가 몰아칠 때 아예 기권하려는 것이니? 인생에는 하루 세끼 식사와 밤에 잠자리를 구하는 것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게 되자 뒤로 물러갈 작정이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자기 신변의 안전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을 보는 순간 집으로 뛰어갈 생각이냐? ... 나는 너를 최상의 삶을 살고, 의를 추구하고, 탁월성을 향해 계속 전진하라고 불렀다. 그래, 오히려 신경과민에 걸리는 편이 더 쉽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기생충처럼 사는 편이 더 수월하다는 것, 보통 사람처럼 느긋하게 사는 편이 더 쉽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더 쉬운 건 사실이지만 더 나은 삶은 아니야. 더 수월하긴 하지만 더 뜻깊은 삶은 아니지. 더 쉽긴 하지만 더 보람 있는 삶은 아니란다. 나는 네가 스스로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상한 목적을 가진 삶을 살라고 너를 불렀고, 네 소명을 이룰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니. 그런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미지근하고 냉담한 군중과 경쟁하다가 피곤에 지쳐 나가떨어지면 도대체 가짜 경주가 시작되면 어떻게 할 작정이냐? 날렵하고 승부욕이 강한 탁월한 말들과 경주하는 것 말이다. 예레미야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 이런 군중과 함게 발을 질질 끌며서 걷고 싶으냐. 아니면 말들과 함께 힘차게 경주하고 싶으냐? p.34 어느 아이도 한갓 아이에 불과한 경우는 없다. 아이들 각각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장차 영광스럽고 위대한 어떤 일을 하려는 의도를 두신 피조물이다. p.48 내 정체성은 내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시작되는 게 아니다. 내가 스스로에 대해 품게 된 생각 이전에 이미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내게 품으신 생각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이 본질상 하나의 응답임을 의미하며 내가 응답하는 상대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내가 화두를 여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내가 움직임을 시작하는 경우도 없다. p.60 성도saint라는 말은 그들의 행위가 지닌 질이나 덕을 지칭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선택받아 살도록 되어 있는 인생의 종류, 곧 전장에서의 삶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굉장한 공로를 세운 후에 부여된 호칭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 편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시였다. 성도라는 단어는 성별되다는 동사의 명사형으로서, 그것은 예레미야가 생물학적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그에게 영적인 형태를 부여한 핵심 단어였다 p.62 하지만 하나님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없어도 되는 존재나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다. 나만이 채울 수 있는 구별된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아무도 나를 대치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실제로 어떤 일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도 전에 내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유익한 존재라고 그분이 친히 정하신 것이다. 삶에서 차지하는 내 위치는 입학 시험 성적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 p.63 ...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수태되기 전,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분이 나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분이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나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분이 나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p.68 전 위험한 임무를 띠고 길을 떠날 위인은 못 돼요. 차라리 이 반지를 보지 않았더라면! 어째서 이 반지가 제 손에 들어온 거죠? 어째서 제가 선택된 걸까요? " 그건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네. 한 가지 분명한 건, 남들이 갖지 못한 무슨 장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세. 힘이든 지혜든 말이야. 하지만 일단 선택된 이상 자넨 자네에게 있는 모든 힘과 용기와 지혜를 사용해야 할 걸세." J.R.R. 톨킨 p.72 ... 믿음의 길로 들어서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벅차다고 해서 피하는 게 아니라 명령을 받고 구비되었기에 그 일에 뛰어들게 된다. 우리의 느낌이 삶에 어느 정도 참여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경험이 우리가 할 일이나 우리의 인물됨을 좌우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고 힘든 믿음의 삶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고 힘든 믿음의 삶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또한 어떤 인물이 되게끔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이다. p.78 ...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입 발린 말에 불과한 경우가 없다. 그 말씀은 성취를 앞두고 있는 하나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발설한 것을 이루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한 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p.81 ... 그들이 어떻게든 교묘히 속이려 애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오랫동안 외모에 바탕을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내적인 실재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들은 성공적인 개혁에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이미지가 전부이고 알맹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한다. 우리의 문화는 새로운 시작을 장기적인 후속 조치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여긴다. 이미지는 중요하다. 시작도 중요하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이미지는 거짓이다. 지속성이 없는 시작도 하나의 거짓에 불과하다. p.102 위대한 상상의 대가들은 무에서 어떤 것을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그러고는 우리가 그 전체적인 그림을 보게끔 훈련시킨다. 즉 이런저런 단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결 부분과 더불어 전체적인 맥락 가운데 온전한 그림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이것과 저것을 연계시킨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지만 우리가 곧잘 간과하고 있는 것을 보도록 돕는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것을 평범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것으로, 진부한 것이 아니라 경이로운 것으로 보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상은 믿음의 삶을 붇돋우는 데 필수 불가결한 사역 중 하나다. 믿음은 일상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깊은 곳으로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p.112-113 예레미야는 계속 관찰했다. 이제 토기장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레를 발로 차 버리고 뾰루퉁해질 것인가? 진흙을 고양이에게 던져 버리고 시장에 가서 다른 상표가 붙은 물건을 살 것인가? 둘 다 아니다. "그는 그 진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었다." 하나님은 반죽을 하고 치대고, 밀고 당기신다. 인내심을 갖고 노련하게 그 창조의 활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신다. 조지 허버트는 다른 이미지를 사용해서 이와 똑같은 것을 표현했다. "폭풍은 그분의 예술의 승리다." p.117 ...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광대한 사랑과 거룩한 목적을 갖고 계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외쳤던 메시지, 곧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지 못한다면 개혁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가난에 처한 사람들의 처지를 돌보지 않고 그들의 삶의 질에 무관심하면서 성전의 놋쇠 기물을 윤이 나게 닦아 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다. 신명기에 스며 있는 사랑의 정신을 무시한다면 그 책에 기록된 명령에 문자적으로 순종해 봐야 소용이 없다. p.133 ... 그걸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었기 떄문이다. 안락함이나 칭송이나 안전이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제일이었던 것이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경이감이 없는 예배, 헌신이 따르지 않는 종교였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놓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날에도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점이다. p.137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예레미야가 기도하는 모습이다.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레미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살아 있는 인격으로 여기고 그분께 나아가는 행위로서, 하나님은 우리가 대화의 소재로 삼는 사물이 아니고 우리가 직접 말씀을 아뢰는 인격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분께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아의 중심이자, 우리의 주님이요 구원자로 여기고 그분께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나아감 속에 우리의 삶 전체가 모아지고 표출되는 것이다. 기도는 개인적인 언어가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지는 것이다. ... p.143 ...기도는 우리가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가 헌신하고 있는 새롭게 하시는 통로다. p.156 예레미야의 편지는 일종의 책망이자 도전이다. "둘러앉아 자기 처지를 한탄하는 짓을 그만두어라. 믿음의 사람의 목표는 가능한 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깊이 있게 그리고 철저하게 사는 것이다. 삶의 현실을 다루고 진리를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창출하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말이다. ...." p.214 심판은 온전함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p.226 ... 좋은 책을 읽는다고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특징을 지닌 사람, 인격과 실속을 갖춘 사람이 되려면 좋은 의도가 승화되어 뚜렷한 헌신으로 나타나야 한다. p.230 실제성에 대한 예레미야의 의식은 하나님이야말로 그 자신 및 동시대인이 관계를 맺어야 할 가장 중요한 실재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는 일평생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그것을 전파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각자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졌다고 믿었고, 우리가 그 관계를 인정하고 그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거짓되게 사는 셈이고 따라서 비실제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선하게 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삶이 아니라 선한 삶을 살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일로 인생을 허비하는 정도는 가공할 만한데, 그에 대해 예레미야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p.240 ...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현재 그분이 일하고 계신 주변 환경으로부터 단절될 경우, 결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p.264 ... 인생은 모호하다. 끝이 느슨하다. 모호함과 무질서, 부조리와 어수선함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성숙함이 요구된다. 만일 우리가 그와 더불어 살기를 거부한다면 무엇인가를 배제하는 셈이고,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아주 본질적이고 귀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믿음의 모험, 하나님의 신비로움과 같은 것들. p.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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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소개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예언자라고 소개했지만 하나님을 통해 훈련받은 예레미야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즉 인간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삶을 사는 백성을 향해, 돌아와야 한다고 외치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 사명에 대한 의지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유진피터슨은 그냥 예레미야서를 이야기 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약학자답게 말씀의 의미와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성경이 쓰여진 때만을 위한 예언서가 아니라 현 시대의 예언자로 부름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외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