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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벌이나 다른 군집 동물보다 더 정치적 동물이다. 종종 말하듯이 자연은 어느 것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 인간은 말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유일한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언어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일관된 이론화는 아렌트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이다. 여기서 언어, 즉 말하기란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사유를 꼽으라면 ‘말하기(언어)’ 를 꼽고 싶다. 최근 정치철학에 관련된 책을 자주 접하였는데 말하기가 왜 정치의 시작인지 《정치가 떠난 자리》의 저자 김만권이 정의한 시민의 뜻을 보면 이해가 쉽다 “스스로 바라본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런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비판적 존재‘ 가 시민이라는 정의는 매우 탁월하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유의 시작 또한 언어=스스로 바라본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의 시작이 정치철학의 시작이다.
유대계 독일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을 망명하여 18년간 무국적자의 비극적 삶을 영위한 전체주의의 피해자로서 진정한 정치와 인간다운 삶을 탐구한 현대 정치철학자이다. 무국적자로 살아가면서 한나 아레트는 개인에게 최대의 비극인 “무국적은 정치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의 상실”을 체험하였다. 18년간 무국적 상태와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경험한 아렌트는 이러한 체제에서는 언어와 공간의 상호의존성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으며 전체적 지배가 말하고 행위에 참여할 기본적 권리의 박탈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언어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고 귀에 들린다. 마찬가지로 행위자들이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고자 자율적으로 모일 때 형성되는 공공영역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 인간관계망이다. 반면에 현상세계로부터 이탈한 순간 진행되는 정신활동은 노출되지 않는다. 외부에서 보이는 공공영역은 외면적 공공영역으로,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적막 상태의 정신영역은 내면적 공공영역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언어는 정신활동뿐만 아니라 활동적 삶, 특히 정치행위에 필수적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공공영역인 활동적 삶이나 정신영역의 삶도 인간적 삶의 일부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공공영역의 활동적 삶은 정의로운 정치주체로서 ‘시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서문에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엮여 있으며 잘 엮거나 엮어진 인간관계는 이야기 (언어)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귀감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라는 실로 짜여진 ‘책’은 항상 가까이 할 수 있는 보배이다. 책은 아렌트의 모든 저작들을 잇고 있는 하나의 외올실-정치적 사유‘를 살펴보고 있는데 한나 아렌트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사유의 축은 '공공영역론’이다. 공공영역을 바늘로 하여 아렌트의 저작을 하나로 궤어나가는 작업의 탄생이 바로 이 책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인 셈이다. ‘정치적인 것’ 이란 뜻은 우리 사회의 활동영역의 모든 것을 포함한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민주주의에서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이자 인간의 조건이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적 존재로 빛날 수 있는 이유가 자기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고 견해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잇는 외올실은 스스로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 정치사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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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원표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새로운 시작', '전통과 근대성', '어두운 시대 사람들의 대화'라는 세 가지 파트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저자는 아렌트가 실존주의 현상학이란 실을 가지고 개념적 사유와 이야기하기 방식으로 엮은 18권의 책을 '정치적 사유'라는 돋보기를 가지고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아렌트의 이야기하기는 일상적 삶과 정치적 삶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리고 노출과 은폐의 수사학
아렌트는 그 누구보다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엄밀히 구분하는 정치철학자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적 삶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하고, 활동영역을 사적 영역, 사회 영역, 공적 영역으로 삼분하였다. 아렌트는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근대사회의 발생으로 공적 삶과 사적 삶 사이의 고대적 구분이 붕괴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성에 기초한 '사회'는 공적영역의 자유를 새로운 소비중심주의 및 순응주의 문화로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세기 공공영영의 위축에 대응하여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렌트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노출과 은폐, 빛과 어둠, 단일성과 다수성 등을 언급한다. 노출과 은폐의 대립쌍은 가시와 비가시, 소리와 적막, 가청과 비가청, 경쟁과 조율 등의 또다른 대립쌍과도 서로 연계되어 있다. 노출과 은폐의 수사학은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유용한 해석학적 코드다. 노출은 활동적 삶, 언어행위와 정치행위, 공공영역과 연계되고, 은폐는 정신활동(사유, 의지, 판단)과 사적 영역과 연관된다. 언어를 매개로 한 공동활동은 공공영역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언어행위를 통해서 형성되는 공공영역은 기본적으로 다원성·정체성·도덕성이란 세 가지 원리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관계망이다. 행위자들은 공공영역에서 자신의 유일한 특이성을 드러내며 대화를 통해 공동으로 활동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대화와 논쟁은 상반된 성향에도 불구하고 공공영역의 활성화에 기여한다."(40쪽)
아렌트가 생각한 공공영역은 논쟁도 있고 대화도 있는 극장과 흡사하다. 아렌트에게 그리스의 '폴리스'가 논쟁적 공공영역의 모델이었다면, 미국의 타운미팅과 파리 코뮌의 '평의회'는 조화적(조율적) 공공영역의 모델이었다. 평의회는 행위자들이 혁명과정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모여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하는 결사체적 공공영역이다. 비록 아렌트가 인터넷 가상공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사이버 스페이스는 유사 공공영역에 해당한다.
■새로운 시작
아렌트는 인간의 다양한 삶을 '시작'과 연관시킴으로써 철학적 전통을 벗어난다. 저자는 아렌트 정치철학을 특징짓는 핵심용어인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 개념을 정리한다. '새로운 시작'은 아렌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을 연구하면서 천착하게 된 정치적 개념인데, 아렌트의 여러 텍스트에서 시작, 개시, 참신성, 출생, 탄생(natality), 프린키피움(절대적 시작), 이니티움(상대적 시작)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그 개념적 변형으로 자유, 행위, 건국, 혁명, 세계사랑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그래서 보웬-무어는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출생의 철학'이라 명명한 적이 있다.
아렌트는 자유로서의 탄생과 통제불가능한 운명을 대립시킨다. 아렌트는 사실적 탄생, 정치적 탄생, 이론적 탄생 이렇게 세 가지 탄생을 구분한다. 다시 말해서 제1의 탄생이 인간세계에 진입하는 어린아이의 탄생이고, 제2의 탄생이 공공영역에 등장하는 정치적 탄생이라면, 제3의 탄생은 사유의 무시간성으로 등장하는 정신적 탄생이다.
활동적 삶의 세 가지 형태인 노동(생물학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삶), 작업(인위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활동), 행위(공동생활을 가능케하는 정치활동)는 탄생에 뿌리를 둔다. 정신활동의 세 가지 형태인 사유(나와 자아 사이의 소리없는 대화) , 의지(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능력), 판단(상상 속에 나타나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은 제3의 탄생과 연관된다.
아렌트는 세 가지 정신의 삶에 대표적인 철인 모델을 제시한다. 사유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 의지의 철학자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판단의 철학자로 칸트를 각각 내세운다. 사유는 시각언어로, 의지는 청각언어로, 판단은 취미감각으로 각각 자신을 드러낸다. 아렌트는 세 가지 정신의 삶에 시간적 지향성을 부여한다. 사유활동은 우리가 마주치는 현재시점의 세계 내 사물들과 관계되며, 상상력을 통해 다른 정신능력들이 더불어 작업을 하도록 재현물 혹은 후속 사유를 생기게 한다. 의지활동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기관이다. 판단활동은 우리의 전통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인간적 가치가 있는 예제들을 발견하는 기억의 구역인 보관창고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판단 및 의견과 우리를 연결시킨다. 사유의 대화는 우정이 전제조건이고, 판단의 대화는 관심과 배려가 전제조건이다. 판단은 열린 마음, 대리적 사유, 공통감이 필요하다. 판단은 정신활동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활동이다.
■우정과 세계사랑
아렌트는 “우정없는 삶이란 참다운 삶의 가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우정의 가치를 존중했다. 아렌트의 전기작가이자 제자인 영-브륄은 아렌트를 “우정의 천재”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아렌트는 정치적 사랑과 비정치적 사랑, 정치적 우정과 비정치적 우정을 구분했다. 아렌트는 정치를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이해하는 지적 전통을 거부하고 인간적 공존을 가능케 하는 공동활동으로 규정했다. 정치적 사랑과 우정이란 다름아닌 세계사랑이다. 레싱의 세계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헌신적인 애착이 세계사랑이다. 아렌트는 대화와 소통이 공공영역의 강화에 기여하며 우정의 대화를 통해 인간성,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성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사랑은 인간화된 정치공동체의 형성을 가능케한다. 세계사랑은 정치적 책임 문제, 용서와 화해의 문제와 관계된다. 책임, 용서, 화해는 그 자체로 정치행위의 한 유형이다. 아렌트의 과거청산은 과거지향적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이다. 정치에서 상호용서는 화해이다. 아렌트는 용서보다 화해를 더 높이 평가한다. 일단 용서는 한계가 있다. 즉 용서는 극단적인 범죄나 의도적인 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용서가 가능한 형태는 인간관계망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위반 또는 우리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행한 약속을 위반하여 이루어진 활동이다. 반면에, 화해는 다원성을 유지하고 공동세계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범죄를 판단하는 활동이다. 화해의 정치의 기초가 바로 세계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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