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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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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의 기획에서 예전에 속편을 제작할 땐 거의 대부분 별개의 제목을 붙이고 시작했다. <For a fistful of dollars>라든가 <The Robe>, <The Magnificent Seven>.. 또 뭐가 있을까? <대부>같은 케이스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정 안 되겠으면 part 2 같은 부가문구를 곁들이는 식이었다. 그런데 번거로운 수식어구를 일절 생략하고 쿨하게 기냥 2, 3 같은 넘버링으로 다 때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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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의 기획에서 예전에 속편을 제작할 땐 거의 대부분 별개의 제목을 붙이고 시작했다. <For a fistful of dollars>라든가 <The Robe>, <The Magnificent Seven>.. 또 뭐가 있을까? <대부>같은 케이스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정 안 되겠으면 part 2 같은 부가문구를 곁들이는 식이었다. 그런데 번거로운 수식어구를 일절 생략하고 쿨하게 기냥 2, 3 같은 넘버링으로 다 때우는 작명법은 아마 스필버그의 <조스> 시리즈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때로부터 4년 전에 만들어졌던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의 속편이다. 그런데, 전편과 달리 그 내용이 地底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 보니, 전편의 제목에다 그냥 2를 붙이고만 말 수는 또 없게 되었다. 해외 기사에 따르면 그래서 아예 쿨하다 못해 무식하게 원편 제목의 상당 부분을 다 떼내 버리고 제목이 그냥 <저니 2>가 되었는데, 좀 심했다 싶기도 하고 본작의 정체성도 분명히 밝히기 위해 뒤에 '신비의 섬' 한 문구를 덧붙인 게 이 제목이다. 만약 몇 십 년 전이었으면 <Journey to the Mysterious Island>라고 아주, 아주 자연스럽게(아니 우리가 딱 봐도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제목이 지어졌을 텐데 말이다. '저니 2'가 대체 뭐냔 말이다.

지 피붙이가 저 오지에 조난(혹은 억류, 박해)당해 있으니 내 도저히 이 편안한 곳에 발 뻗고 누울 수 없고 당장 짐 꾸려서 현지로 떠야 하겠다며 설레발치는 건 문예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의 전통이겠고, 여기선 그게 지 영혼 깊은 곳에 같은 유전자를 내려 심어 준(그래서 그런 소식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임, 나 자신의 일부가 거기서 핍박을 받는 셈이니) 지 할아버지(정상이 아님)로 설정된다.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내용은 황당하고 더 무식한 착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스티븐슨의 <보물섬>, 베른의 <신비의 섬>, 그리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배경으로 나온 릴리펏이 모두 같은 섬임을 주인공 션(좀 컸음)과 의붓아버지 행크(드웨인 존슨이 나온다)가 둘이 막 싸우다 갑자기 발견한다는데, 영화 제목만큼이나 무식하게 지어진 세팅이지만 여튼 이 무모한 '여행'은 저 놀라운 '발견'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실이라면 근대 문학사, 지리학 교과서, 나아가 역사서 전반을 모두 고쳐 써야 할, 거의 '외계인과의 조우'만큼이나 인류가 공유한 물리적, 정신적 기반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들어 놓을 대사건이지만, 이 둘은 그딴 외부 사정에는 조금의 속물적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어디까지나 '그들 개인적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이 미친 여정을 시작한다.

세 편의 아동문학 고전(정확하게는 저 스위프트의 작품은 정치 풍자 소설이었지만 일단 넘어가고)이 동일 배경을 다루고 있었다는 폭력적 상상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섬이 '버뮤다 삼각지대'에 위치해 있어 여태 발견되지 않았다는 합리화의 깡패 행보다. 아동물의 인기 이슈란 이슈는 한 이야기에 다 쑤셔 넣은 건데, 야 이거 완전 갈데까지 가자는 거구만 소리가 절로 나올 밖에. 헌데 이런 식의 거창한, 감당 안 되는 엄포로 시작한 이야기가, 그저 자신이 떠벌인 토픽의 반 정도만 끝에 가서 수습하는 성의를 보여도 모든 무리수는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넘어갈 수 있다. 아니 이해가 다 뭔가.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허풍에서 시작하며, 어떤 문학의 고전도 차라리 듣는 이들의 걱정을 유발하는 뻥카에서 그 성공의 싹수를 보였던 것이다. 수습만 잘 되면, 투자자의 돈만 잘 갚으면 서로 달려 와서 영웅의 구린 뒤, 즉 니 국부의 세척에 설단부를 내밀며 자원하려 든다.

의붓아버지란 여러 모로 힘든 신분이겠는데, 사실 한 여성과 끝까지 원만한 애정을 유지하는 것(상대는 한 번의 실패한 과거가 있고, 이건 벌써 이 여성이 관계를 꾸리는 데 원만하고 무난한 성격이 아니라는 公示작용이나 마찬가지)도 만만한 과제가 아니거늘 그 적대적인 의붓아들까지 어르고 달래서(어른이 양보해야지 어쩌겠어) 제 편으로 만드는 게 어디 보통 숙제겠는가 말이다. 전편에서는 지 외삼촌과 지저세계(헉)를 탐방한 이 반항아가 이제는 지상에 남은 마지막 미지의 영역을 향해 덩치 좋고 힘 쎄며 지 마음에 안 드는(최악)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아 있는 지옥의 아가리를 향해 죽음의 돌진을 시작하는 것. 현지에는 딸내미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어떤 궂은 서비스 제공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원주민(영어를 잘한다)이 있고, 그의 아름다운 딸(이라곤 하나 우리 눈엔 그냥 촌년)이 총명한 지성을 뽐내며 이들의 탐사에 동행한다. 이 역시 아주 정해진 코스를 밟는 모습이며, 대담하다 못해 황당한 초기 착상의 파격과는 매우 대조되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미친 탐험가 할아버지로 마이클 케인이 나오는데 이런 역에 아주 제격이었다. 아이의 보호자 역을 두고 둘이 서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데, 물론 아이가 보이는 원천적 애정이 어느 방향인지 워낙 뻔하므로 이 게임은 결코 공정할 수 없다. 둘 사이에 험악한 말도 여러 번 오가는데, "영감님, 당신에게는 결코 없을 책임감이란 미덕을 이 아이는 배워야 하는데 그게 누구로부터일까요?"라고 드웨인 존슨이 한 방 날리기도 하고, (다른 쇼에서 여러 번 선보였지만) 그 특유의 멋진 노래 솜씨를 과시하며 <What a Wonderful World>를 불러 주는 드웨인 존슨에게(사실 워낙 잘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나 보는 우리나 벙찐다) 배알이 꼴린다는 듯 "이 나이를 먹도록 사방팔방을 다니면서 못 보다가 오늘 처음 발견한 게 노래하는 사스카치(雪人)일세."라며 한번 긁어 주곤 웃으면서 사과하는 마이클 케인의 대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디스 안에 자기 반성도 들어 있으므로 아주 오펜시브하진 않음).

1988년생인 바네사 허진스는 사실 여러 청춘물, 그리고 2년 전쯤 내가 리뷰했던 <스프링 브레이커스>에서도 나온 유망 배우이며 무슨 '촌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자원은 아니다. 진취적이고 똘똘한 눈빛을 반짝이며 돈 많은 도회인의 호의를 마냥 넙죽넙죽 받아먹는 비굴한 현지인으로 살지 않기 위해 정당한 자존을 가꾸는 그런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모든 영화를 촌년의 활약 여부로 판정, 재단하는 프레임은 모든 이슈를 어설픈 정치 논리로 접근하는 태도만큼이나 지양되어야 마땅한 폭거임을 개인적으로 떠올리게 도와 준 신나는 아동물이었다고나 할까(뭐래).

s****o 2016.02.27.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