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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게 벌써 몇 년 전인가? 25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나에게 요즈음 중학생들의 생활을 나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교복 세대가 아니어서 여학생들의 패션은 다양했다. 한창 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죠다쉬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 그리고 명동의 보세 패션까지. 사춘기의 여중생이 그렇듯 많은 수다가 있었고, 질투가 있었고, 몰려다님이 있었다. 그 안에는 분명 왕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처럼 잔인하거나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왜 이렇게 잔인하게 친구들을 왕따 시키는 것일까?
왕따를 당하던 친구가 자살을 했다. 그 친구의 유서에는 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절친이라 칭했던 나, 왕따의 중심인물인 미시마와 네모토, 그리고 후지슌이 좋아했던 여학생 사유. 하지만 나는 후지슌의 절친이라 칭할 수 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까지는 친했었지만 중학생이 되고 부터는 멀리했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절친 이었던 너는 후지슌이 왕따 당하고 있는 동안 뭘 했냐고? 그런 원망이 나의 인생을 무섭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후지슌은 잘못이 없다. 다만 선택 당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미시마와 네모토가 아닌 새로운 아이들이 나타난다. 후지슌을 왕따 시키는 그룹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왕따 시킬 수 있는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지슌은 죽었다. 그는 왜 나를 절친이라 칭했을까?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된 나는 그 무서운 십자가를 지고 살 수 밖에 없다. 아버지가 된 나는 아버지가 된 후 후지슌을, 그리고 그 부모님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왕따에 이유가 없다는 것. 어쩜 그게 제일 무섭고 잔인한 것 아닐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누군가의 불행을 침묵으로 동의하고 있는 이 현실이 많이 슬프다. 이 세상은 오로지 피해자만 되는 사람이 없고, 오로지 가해자만 되는 사람도 없다. 지구가 둥근 것처럼 나의 선의든, 악의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십년이 되든, 이십년이 되든.. 그렇기 때문에 선한 부메랑이 되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 선한 부메랑 때문에 우리는 가능하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모든 이의 입장이 되어서. 후지슌의 입장, 후지슌의 부모입장, 그리고 왕따 시킨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의 부모 입장, 그리고 제 3자의 입장. 왕따를 당한 부모입장에서는 왜 그 많은 아이 중에 우리 아이였냐고 눈물 흘린다. 가해자의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는 그럴 일이 없다고 일단 아이 편을 들게 된다. 그리고 제 3자의 부모 입장에서는 휴.. 우리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부모인지, 어떤 부모여야 하는지.. 아이를 사랑하고 믿어줘야 하는 것. 그건 맞다. 하지만 아이의 잘못 앞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는 분명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 아이의 잘못을 감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평생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할지 모를 인생을 만들어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 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75)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한다. 나도 부모가 되었다. 그래서 후지슌의 부모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지켜줄 수 없었던 부모 마음. 알아채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 당연히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 앞에서 부모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학교라는 건 하나의 그릇이야. 내용물이 바뀔 뿐, 그릇 자체에 뭐가 남는 건 아니지, 그리고 교사의 일은 내용물을 보는 거야. 12년 전에 죽은 학생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하기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왕따를 봐야 하거든. (299)
책을 다 읽고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모두의 입장을 생각하고 싶어서다. 어떻게 사랑을 줘야 모가 나지 않은 아이가 될까? 어떻게 사랑을 줘야 친구를, 이웃을 배려하는 아이로 자라게 될까? 부모, 그리고 아이들, 선생님까지..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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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십자가 / 시게마츠 기요시 / 이선희 / 예담
어느날 갑자기 내 친구가 자살한다면 나는 어느정도의 충격을 받을까?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를 어느정도 괴롭힐까? 글쎄요.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어요. 죽는다는 건 슬픈 일이니까 제 주위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자살의 유혹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가장 가가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잡아줄 테니까요.
며칠전에도 한 청소년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났어요. 원인은 학교폭력이었어요.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해서 결국 목숨을 끊은 거예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한 생명이 죽은 거라 생각해요. 나 하나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피했을지도 몰라요.
'제물 자살' 사건이 메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운데, 유서의 복사본이 돌아다닌 것이다. 그곳에 쓰여 있던 이름은 전부 넷. 그중 하나가 내 이름이었다. "사나다 유, 나의 절친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유 짱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할게." - 12쪽
소설은 유서의 내용을 소개하며 시작을 해요. 소설속 화자인 '나'의 친구가 자살을 했는데, 유서에 자신이 절친으로 적혀 있었어요. 하지만 '난' 자살한 아이와 절친이라고 할 정도의 친구사이는 아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배신자라고 말할땐 죄책감도 많이 느껴요. 결국 '나'도 제물 자살을 방조한 사람이니까요. 반 아이들 모두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만요.
"한마디로 말해, 사람을 죽인 녀석과 죽게 내버려둔 녀석들의 반이군." - 55쪽
"너희는 평생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둔 죄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 56쪽 제목이 십자가인 건 죄를 등에 짊어지고 살아야 할 아이들을 말해요.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진 것 처럼요. 그 십자가는 평생 지고 살아야 해요. 무겁기까지 해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지고 살아야 해요.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 75쪽 한 아이가 떠올랐어요. 중학교 1학년때 같은반 친구에요. 그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어요. 반에서 늘 꼴찌였고 친구도 없었어요. 반 아이들 모두 아이를 따돌렸고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따돌림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말리지도 않았어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느날 저는 아이와 친해져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말을 먼저 붙였어요. 아이는 말이 조금 어눌하긴 했지만 대화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어요. 마치 정상인 같았어요. 결국 모든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던 거라고 생각하며 아이와 친하게 지냈어요. 이런 제 모습이 반 아이들에겐 눈엣가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이들은 아이만 왕따한 게 아니라 저 까지도 같이 왕따를 했어요. 저는 그렇게 처음으로 왕따라는 걸 당해봤어요. 이유없이 다리걸고 침뱉고 때리고,,, 힘든 1학년을 보냈어요. 너무 힘들어서 담임선생님께 말했지만 나아지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땐 참 많이도 소심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겨우 중학교 1학년짜리가 뭘 알았겠어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아이는 내게 연락을 해서는 고맙다고 말했어요. 자신의 연락처는 가르쳐주지 않은채... 그래선지 저는 이런 왕따이야기를 읽으면 그 아이 생각이 나요. 저와 이름이 비슷했던 아이는 자기 때문에 나 까지 왕따를 당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줬어요. 그런 아이에게 괜찮다고 우리 둘이 친구면 된다고 안심을 시켜줬어요. 물론 이 책은 소설이지만 기사를 보고 글을 썼다고 해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잘못된 학교 교육과 무관심이 아닐까요? 그저 공부만 잘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반 친구들은 경쟁자일 뿐이니까요. 이런 교육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요? 답답하기만 해요.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사유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 120쪽 살아간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용서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사람을 살게 하는 작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은 힘들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며 살아갈게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삶을 살아갈게요. 손꾸락버튼 눌러주셔서 고마워요. ^^ #nahabook 이 책리뷰는 퍼플소셜평가단 2기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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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왕따를 당하던 반 친구, 후지슌의 자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발견된 유서에는 가해자인 두명의 학생 이름과, '절친'으로 표기된 사나다, 그리고 미안하다라는 말을 전한 사유짱.. 왕따의 방관자였던 사나다는 '절친'으로 표기된 그 단어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살게 된다. 그리고 자살하기전 생일선물을 전달할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만나주지 않았던 사유짱 또한, 그 짐을 짊어지게 된다. 이 둘은 그 짐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대학교 2학년때까지 사귀는 존재가 된다. 그들을 이어준, 후지슌..그들은 죽은 후지슌이 이어준 사이지만, 후지슌이 지어준 그 무거운 짐을 20년이나 짊어지게 된다. 이 책은 사나다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짐을 짊어지게 된 그들은 후지슌의 자살한 날을 첫 페이지로 해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이야기를 한다. 책 곳곳에 그들의 인생사를 책에 비유한 글들이 있다. 그러나 책 속에 있는 첫 페이지는 찢어지지 않는 이상, 언제나 들춰서, 외부에 요인에 의해서도 들춰지는 것들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어쩌면 그 짊어진 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나서야 첫 페이지를 다른 페이지와 별 차이없는 한 순간으로 여길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후지슌 이야기가 나오면 말의 템포가 느려졌다. 가끔 바람에 의해 책이 앞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처럼, 이런식으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다 읽은 페이지는 풀로 딱 붙여서 두 번 다시 펼쳐지지 않는 그런 책은 어디에도 없을까?
"후지슌이 멀어졌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페이지를 넘겼고, 마라톤 코스는 외길이 아니었다."
"책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도쿄에 와서 또 새로운 페이지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몇 페이지를 읽는 사이에 가끔 주인공을 잃어 버렸다. 앞으로 넘길 페이지에 주인공이 제대로 나올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애당초 우리가 보고 있던 책은 정말로 같은 책이었을까..?"
"사유와 헤어진 뒤, 나는 내 책을 몇 페이지나 들추었다. 그곳에는 사유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소한 계기로 앞 페이지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런 일은 사라졌다. 페이지가 되돌아가지 않게 누르는 비결을 파악한 것이다."
사나다와 사유가 있다면, 사나다는 글 속에서 항상 '그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후지슌의 아버지를 나타낸다.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그 사람, 그러나 그 사람도 아들의 자살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왕따 당하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왜 아들이 왕따당하는 것은 몰랐을까? 라는 자괴감을 항상 갖고, '절친'이라고 유서에 쓰여 있지만 절대 절친이 아닌 오히려 방관자인 사나다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었을까? 사나다는 어느덧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화해의 손길은 점점 다가오게 된다.
잔잔하게 흐르지만, 결코 조용하지 않고, 각 사람들의 심리가 잘 표현된 책이다. 감정이입이 되게 하여 눈물이 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고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방관자적 삶을 살아오면서, 쉽게 잊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리고 곳곳에, 학교의 안일함, 무능력함을 비판하는 작가의 속내가 비친다.
후지슌의 자살전 읽었던 여행책에서 자신이 상상했던 여행의 최종 목적지를 스웨덴의 '숲의 묘지'로 정한 이유가 무었이었을까? 죽음을 예감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 곳에 세워져 있는 회색의 십자가를 보며, 인간의 죄에 대한 희생물로 십자가를 진 예수처럼, 왕따의 제물인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 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생일과 후지슌의 죽음이 같은 날인 사유, 사나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짐은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짐을 견딜수 있을 정도의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무거운 짐과 하나가 되어 걷고 있다고.... 그래서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등을 탄탄하게 만들고, 다리와 허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뿐일지도 모르죠"
스웨덴 '숲의 묘지'... 회색의 십자가가 서있다. 후지슌의 아버지가 이곳에 갔을때 심정은 어떠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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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나의 시선을 붙잡는 일본 소설을 나는 결코 외면할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도 서점에서도 계속 내 시선을 빼곡히 채웠던 소설 <십자가> 어렴풋이 누군가의 리뷰를 대충 훑어보면서 '왕따'에 관한 이야기라는걸 알았다. 그리고는 나는 지레짐작 당연한 흐름을 예상해 버렸는지도. 소설의 중반을 지나서도 어떠한 감흥도 몰입도 느끼지 못하였다. 지지부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도, 마음에 안들었을 뿐더러, 지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건조함이 풀풀 날리는 흐름이라니. 이 소설이 왜 이렇게 평이 좋은 것이 였던건지... 읽는동안 내내 나는 불만으로 가득했지만, 이미 반이나 읽어버린 책을 포기하기는 왠지 아쉬웠고, 책 속의 이야기의 결말이 은근 궁금해졌다. 또한 책 속에서 느꼈던 의문들도 아직 풀지 못했으니..
이 소설은 구성이 조금 독특하다. 소설 <십자가>는'왕따'를 당하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그려지는것이 아닌, 왕따로 심각한 고통을 받았던 중학생 후지슌의 자살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현재의 모습이 아닌, 성인이 된 '나'(사나다 유)의 시선으로 기억을 곱씹듯 그려지고 있다. 기억 속 우리들이 중학생이였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을 회상하듯이 '나'의 독백 또는 회상록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왕따를 당하던 후지슌, 그리고 자살 짧게 쓰여졌던 후지슌의 유서에 담겨져 있었던 4명의 이름, 그리고 그들이 짊어졌어야 심리적 고통과 슬픔, 안타까움들. 왕따를 당했던 당사자의 고통은 순간의 선택일지라도 남겨진 자들은 어쩌면 평생을 가슴에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 왜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늘 학원 폭력의 피해자 , 당사자에게만 연민을 느꼈을뿐, 남겨진 자들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은 전혀 마음에 담지 않았었다. 그들을 이야깃 거리로 다루는 사회적인 시선들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모든 초점은 피해자에게만 맞추어져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차단해 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책을 읽다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느껴보려 해도 도무지 쉽지가 않다. 그것은 어쩌면 무언가 건조한듯 인물들의 심리, 내면을 들여다보는듯이 조용히 흘러가는 스토리에서 무언가도 얻지 못하고 , 무언가를 알지도 못했고, 무언가를 버리지도 못한채 난 그렇게 텍스트를 곱씹듯 읽어 나가서가 아니였을까. 하지만 그렇게 무심하게 읽히던 소설에서 나는 의문이 생겼고,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는 지독히도 저릿한 강한 여운을 남겼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왕따'를 당한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끝내며 나는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는 잊혀지고 , 지워진다는건 , 시간의 순리이다. 어느 누군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일상의 삶에서 흐릿한 기억으로 주위를 맴돌다, 어느 순간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것에 어쩌면 '나'(사나다 유)는, 왜 자신이 후지슌의 절친이 되어있는지도 모른채 늘, 등에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나'의 기억속에서 후지슌이 사라질까 늘, 불안했고, 그것이 후지슌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된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그건 어린 사나다 유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고 평생에 짙은 트라우마로 남는 고통의 시간들이 아니였을까.. 잊지 말라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 평생 후지슌을 등에 그림자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사유리와 사나다 유가 문득 참 많이 가여웠다. 소설 <십자가>는 이렇듯 한 소년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들을 담담한듯 섬세하게 내면속 심리를 담고 있다. 살아 간다는것은 과연.. 내게, 또는 당신과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로 인해서 ..어쩌면 인생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또다른 희생자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한동안 이 소설은 내 페부의 깊은 곳을 찌르고 있을 듯하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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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십자가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쇠약해질수록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하고 어느때는 모든 짐을 놓고서 편한 길을 선택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십자가'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저자 시게마츠 기요시는 우연히 텔레비젼 다큐멘타리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보고서 단 2주일 만에 이 책을 완성했다고 했다. 저자를 이렇게까지 집중하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자살' 그것도 학교폭력, 왕따로 인해 몸과 마음이 온통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진 학생이 자살을 선택하고 그런 자식을 둔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고서 쓴 책이라 텔레비젼을 통해서 왕따, 자살,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안됐다고하면서 무심히 보던 것보다는 훨씬 더 생생한 목소리로 다가 온 책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을 내뱉는다. 나이프의 말과 십자가의 말... 나이프에 베이면 순간적으로 너무나 아프다. 허나 베인 살이 아물면서 상처가 없어지면 낫는 것과는 달리 십자가에 박히면... 흔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때를 떠올리게 되듯이 그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거 같다. 십자가에 못이 박히듯 가슴속에 못박히고 등에 십자가를 짊어지듯 계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무게를 느끼며 살아야하는 한다면... 그 고통은 이 세상 어떤 고통보다도 깊고 아플거 같다.
어느정도 세상을 살다보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중학교 2학년이면 마냥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시기라생각이 든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친구들과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할 시기에 '후지슌'은 자신의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목을 메 자살을 한다. 자식의 자살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버지... 왜 자기 자식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부모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자살한 후지슌의 유서에는 네 명의 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휴지슌 자살로 몰고 간 두 명의 가해학생뿐만아니라 가해학생들과 교묘하게 얽혀 있는 한 명의 학생, 그리고 피해자가 절친이라고 쓴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사나다 유, 그리고 후지슌이 남몰라 좋아했던 소녀 자카가와 사유리... 같은 반 다른 아이들보다 다섯 명의 학생들은 후지슌의 자살로 인해 가장 큰 십자가를 등에 지게 되었고 그들이 커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의 생일날 후지슌의 전화만 받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고통속에 자의반타의반으로 후지슌의 부모님을 찾아뵙는 사유리와 달리 절친도 아닌데 자신의 이름이 적힌 관계로 후지슌의 부모님의 마음에 신경을 써야하는 자신의 입장에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있는 사마다의 심리를 볼 수 있다. 이런 사마다와 사유리는 후지슌의 그림자와 떨어지고 싶어 다른 지역의 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두 사람은 대학 입학전에 후지슌의 부모님을 찾았다가 사유리가 오열을 하면서 쏟아 놓는 말에 격분한 사마다는 그동안 자신이 갖고 있던 심정을 토로하는데....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가족을 이루고 한 아들을 두었을때 우연히 보게 된 아들의 노트에 적힌 이름을 보고서 비로써 예전에 죽은 후지슌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사나다... 그는 비로써 자신이 그토록 내려놓고 싶어했던 십자가가의 그림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후지슌의 자살은 그의 부모님에게는 충격을 넘어서 자식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아들이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체 방관만한 같은 반 아이들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후지슌이 죽고 남겨진 부모님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했던 동생 켄스케다. 사마다가 절친이 아닌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마다에 대한 원망과 죽은 형에 대한 추억만을 가지고 겨우 삶을 지탱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켄스케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와 고통이였는지... 그가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짐작이 간다.
스토리는 총 20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중2, 중3, 고등학교 시절의 사마다와 사유리의 심적 고통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공감이 되며 서로에게 끌리지만 서로가 가진 고통과 상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결코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 한 곳을 볼 수 없기에 다른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후지슌의 유언장이 발견될 때부터 정해진 순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십자가는' 왕따로 인해서 자살에 이른 학생의 남겨진 가족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과하지 않으면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두 명의 프리랜서 기자들이 들려주는 방관자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한번쯤 흔하게 보아왔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 같아서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학교는 물론이고 성인들이 모여 있는 직장에서도 흔하게 왕따나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할 정도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체 외면했던 학교폭력 앞에 이제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는 시간이였으며 나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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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얻은 지 꽤 되었지만 아침마다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좀처럼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 불황 속에서 명문 대학 간판만이 취업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현실이 되어 버렸고, 그 간판을 얻기 위해 같은 반 친구들은 그저 경쟁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요즘 많은 학생들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성적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녀만을 최고로 여기는 학부모, 엄격한 훈육을 포기해버린 교사, 왕따와 자살 문제는 그저 골치거리라고 생각해버리는 학교 측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오늘도 수많은 학생들이 괴로움에 몸을 떨고 있다. 왕따가 사회 이슈로 먼저 떠오른 일본에서는 일찍 이 문제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감을 했던 것일가? 유독 일본 문학에서는 이런 왕따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읽게 된 시게마츠 기요시의 신간 [십자가] 또한 왕따라는 주제를 작품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흔들어 놓은 유서 한 장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출판사 중 하나인 고단샤 100주년 기념 걸작이자 2010년 요시카와 에이지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저자가 우연히 TV에서 왕따로 고통받다 자살한 한 학생의 아버지의 인터뷰 모습을 보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자주 놀았던 두 친구 후지이 슌스케와 사나다 유의 관계는 중학교 입학 후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밝고 솔직하지만 유치한 구석이 많았던 후지이 슌스케는 학급에서 불량한 학생들의 타겟이 되었고 2학년에 들어서 그 괴롭힘이 더 심해진 것이다. 미시마 다케히로, 네모토 신야라는 이 두 학생이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도 사나다 유를 포함한 학급 학생들을 모두 외면한다. 그리고 1989년 9월 4일, 후지이 슌스케는 자신의 집 앞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왕따를 당하던 한 학생의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그 사건으로부터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지이 슌스케가 남긴 유서에는 자신을 죽도록 괴롭혔던 두 소년의 이름 이외에 이 책의 화자인 사나다 유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해 죽은 소년이 남긴 유서는 그야말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사나다 유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고 만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자살 사건으로 알게 된《동양일보》의 혼다라는 기자가 사나다 유에게 전한 저 말을 이 작품의 주제이자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TV나 신문을 통해서 접하는 수많은 왕따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뉴스 한 토막으로 전해지는 그 사건에 중심에 있는 피해자 가족들과 가해자들, 그리고 방관자들의 인생까지 조금씩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는 그저 방관했다는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삶을 괴롭게 보내게 된다. 놀랍도록 세밀하게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관찰해 낸 저자는 그 스스로가 이 왕따와 자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한창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들이나 그리고 학창 시절을 이미 보낸 어른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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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한 후지슌... 그가 남긴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두 사람과 '절친' 이라 표현된, 이 책의 '나' 인 유짱.. 그리고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사유리.. 이렇게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실제 괴롭힌 건 세명인데 최초의 두명만 적어놓은 후지슌.. 그리고 절친이면서 어째서 돕지 않았냐는 비난을 받는 유짱.. 후지슌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한 죄책감을 지고 있는 사유리... 이 책은 왕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자의 자살로 시작한 이 책에서 처절하게 다루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이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서럽게 무너지는지... 14년이라는 짧은 추억을 안고, 떠올리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바꿔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아파서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와.... 기억의 각색으로 간신히 자신을 지탱하는 어머니.. 그리고 상처를 안고 커가는 동생.. 돕지 않은 모두가 가해자,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죄책감.. 제물, 이라는.. 유서에 등장한 단어처럼 그들은 후지슌이 괴롭힘을 당하기에 자신들은 편안하게 지냈으니까... 모두는 아파하고.. 그리고 나서는 잊어간다.. 실제 현실에서도 이런 왕따 문제와, 왕따의 피해자들이 힘겨워하다가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지 않기에, 이 책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유짱은 담담함을 가장하지만 뼈저리게 아픈 어조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후지슌은 유짱을 절친이라 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가서 유짱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 책의 제목인 십자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후지슌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왔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고 아파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괴롭히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일까..? 이런 일은 과연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려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씁쓸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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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저지른 방관과 간접살인 <십자가>
사람을 비난하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이프의 말과 십자가의 말이다. 나이프의 말은 찔린 순간에 가장 아프지만,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짊어져야 한다. 아무리 무거워도 내릴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다. 걷고 있는 한, 즉 살아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져야 하는 것이다. p357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십자가>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상당하다. 매스컴에서 '제물자살'로 명명되어 이슈가 되었던 후지슌의 자살과 그가 남긴 유서로 주인공인 사나다 유는 자살한 친구 후지슌에게 느끼는 미안함으로 20년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게 된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네 명의 이름이 남겨졌는데, 그 중 한 명의 이름이 바로 유짱. 사나다 유 그의 이름이다.
미시마와 네모토라는 두 명의 불량한 소년의 제물로 선택된 후지슌은 오랜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가 정말 그들의 괴롭힘이 힘들었다면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동급생들은 그들의 왕따를 방치한다. 오히려 그들의 왕따를 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왕따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할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으니까.
"너희는 평생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둔 죄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p56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p75
"후지슌이 유서에 이름을 제대로 썼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면 사카이도 미시마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
"생각해봐, 같은 반 학생이 죽었어. 더구나 자살이고, 더구나 왕따때문이야. 그런데 동요하지 않을 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게 이상하잖아?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런 때는 동요해야 하는 거고, 동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래? 인간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동요하게 돼 있어. 충격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그 고민과 괴로움을 가르쳐주는 게 학교가 아닐까? 그게 어른들의 역활이 아닐까?"p272
이제 아홉살 난 아들을 둔 아빠가 된 유군은 후지슌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듯, 이런 일들이 비단 어린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너무 많은 것들이 공유되고, 익명을 무기로 타인의 생각을 거침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쁜 일에도, 좋은 일에도 악성댓글들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에는 관대하지만 타인의 일에는 두눈도 모자라 두손까지 들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악플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결국 이들도 칼로 직접 찌르진 않았지만 간접살인자들이다.
트윗이나 페이스북, 블로그들의 글을 보면 나와 생각이 다른 글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댓글을 달기전에 무척 소심해진다. 이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 댓글을 끄적일때도 있다. 비판이 무조건 나쁜것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비판은 절대적으로 나쁘다.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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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이 말은 정말 위험한 말이라고 난 생각한다. 어릴 때에 왕따를 당해 학교에 나가 아이들 속에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었던 내게 그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가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잘못을 잊고, 피해 학생에게 어떤 식으로 대하였는지도 잊겠지만… 나와 같은 피해 학생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나를 유독 지독하게 괴롭혔던 몇 놈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들을 내 앞에 두고 '죽여도 어떤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죽일 정도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지난 2012년에는 집단 따돌림인 왕따와 금품 갈취 청소년 범죄, 학교 폭력 등 갖가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렸던 해였다. 그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고용되었던 심리상담 교사 등의 비정규직원들은 올해 2013년도 개학과 동시에 모두 해고가 되었다. 우리 한국의 학교는 지난 2012년 그 잘못을 통해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가 싶었더니 다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오늘, 나는 이 학교 폭력, 그중에서도 왕따에 관하여 너무도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은 '십자가'로 책을 읽는 누구라도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때 왕따였던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교차하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왕따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후지 슌의 사건을 놓고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후지 슌이 죽기 전에 작성했던 유서에 절친으로 남겨져 있던 사나다 유,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고 쓰여진 사유리,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끝까지 저주한단다고 쓰여진 미시마, 네모토. 우리는 이 유서를 가지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 감정을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똑같다. 누구나 왕따를 당하는 사람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저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말리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그 대신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누구도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미친 사람도 없다. 만약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미친 사람이 있었다면, 죽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 부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떻게 이 정도로 섬세하게 심리를 잘 그려낼 수 있었는지 놀랐다. 방관은 간접살인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언제나 누군가가 죽는 것을 옆에 있는 사람들은 지켜보기만 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항상 '나라면 그렇게 안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눈앞에서 그런 사실을 직면하게 되면 모두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가 간접살인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특히 아이들은 더 심하다.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읽을 수 있었는데, 나는 정말 많은 공감을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지난 2012년도에 본 가해 학생의 태도도 그랬었고, 그 가해 학생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나는 직접 내 눈으로 보았었다. '십자가' 이 책은 기자 다하라를 통해 아이들에게 반성하는 태도를 지니도록 하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위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학교와 어른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똑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를 이기적이고, 간접살인자로 키운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2012년에 볼 수 있었던 사건들은 모두 그렇게 종료가 되었다. 그런 우리 사회에서 올해 2013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절대 없다. 나는 며칠 전에도 부산에서 여중생이 '다시 혼자가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왕따 때문에 개학식 날에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런 세상이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나는 책을 통해 자살한 후지슌의 부모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왕따 사건 때문에 학교에 불러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있는 바로 앞에서 "쓰레기에다가 정신병자라서 아이들에게 맞는다"고 말하며 나를 난도질 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를 떠올렸었다. 그 당시에 나는 멍청했기에, 사람이 처음부터 싫었고, 담임 선생님은 처음부터 내 말은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기에 '역시…'하고 넘겼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도무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져 오고, 눈물이 참아지지 않는다. 나는 그때 너무 심한 불효를 하고 말았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옛날 일이 떠올라 혼자 울기도 했었고, '우리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했었지만, 책의 끝 부분에 다가갈수록 내 머릿속은 멍해져 갔다. 책을 읽고 몇 시간이나 지나 글을 쓰는 지금도 도대체 왜 그렇게 머릿속이 멍해졌는지 모르겠다. 단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내 몸을 지배한 느낌이었다…. '십자가'. 이 책을 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분명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바뀌지 않는 학교와 여러 사회 현실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은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청소년 자살률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더구나 2012년에 조금 개선되리라 생각했던 학교 폭력 방지 대책들은 2013년이 되면서 모두 제자리로 되돌아오고 있다.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부디 이 책이 과연 그런 현상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해답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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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비난하는 말에는 나이프의 말과 십자가의 말이 있다고 한다. 나이프의 말은 굉장히 아프고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대로 치명상이 되지만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 뿐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등에 진 채 평생을 살아가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왕따를 당하다가 자살을 했는데 그 유서에 나를 '절친'이라고 적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말이라고 이해해야 하나? 혹시 나는 어떤 비난의 말을 하였던가? ![]() [예스24 북티저 영상 캡처]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는 중학교 2학년 생인 후지이 슌스케의 자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1인칭 소설로서 화자는 왕따 피해로 자살한 슌스케의 유서에 '절친'이라고 쓰여진, 같은 반 친구 사나다 유. 사나다 유는 슌스케를 그저 반 친구중의 하나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그의 유서에 '절친'이라고 적히는 바람에 크나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나다 유는 왕따당하는 친구를 방관했던 여러 친구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인데 유일한 '절친'이라고 지목된 것이다. 후지이 슌스케는 왕따를 당하는 자신의 현실을, 반 친구들의 제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왕따가 처음 시작된 것은 4월이었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택되었다는 표현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후지슌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선택되었을 뿐이다.(p.13)" 슌스케는 선택되었고 스스로 제물이 되었다. "그들은 후지슌을 선택했다. 그들이 교실에서 기분 좋게 지내주면 우리도 한숨 돌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후지슌을 찾아오려고 하지 않았다.(p.14)" 슌스케는 기꺼이 제물이 되었지만 동급생들은 고개를 돌린다. "미시마 다케히로, 네모토 신야. 영원히 용서 못 해. 끝까지 저주할 거야. 지옥으로 가라!" "사나다 유, 나의 절친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유 짱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할게." "나카가와 사유리, 귀찮게 해서 미안해. 생일 축하해. 늘 행복하기를 바랄게."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이 유서의 내용은 결국 모두를 향한 비난의 말인지도 모른다. 나이프의 말이나 십자가의 말 모두 비난의 말이 아니던가. 사나다 유와 나카가와 사유리는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사나다 유는 사유리에게 그만 짐을 내려놓자고 말한다. 또 자신도 그러기를 원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에도 사유리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사나다 유도 모두에게 용서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책한다. 사유리는 또 말한다. "우리는 모두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무거운 짐과 하나가 되어 걷고 있다고... 그래서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등을 탄탄하게 만들고, 다리와 허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뿐일지도 모르죠.(p.348)" 사나다 유는 자살한 슌스케의 가족에게, 유서에 이름을 쓰고 자살한 것은 '민폐'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민폐라고 생각할 만큼 언론은 그들을 가혹하게 묘사한다. "매스컴은 왕따를 눈치채지 못한 학교 측을 철저하게 비난하고, 후지슌을 왕따 시킨 아이들을 짐승처럼 취급했다. 반면에 후지슌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왕따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섬세하고 마음 착한 소년이 되었다.(p.83)." 사나다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 "절친이었다면...... 왜 구해주지 않았지?", "절친이었으면서? ...... 그렇다면 왜......", "왜 슌스케를 ...... 구해주지 않았지?" 슌스케가 자신을 반 친구들을 대표하는 제물이라고 생각했다면 반대로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사나다 유의 이름이 유서에 적힌 것도 역시 제물이 아닌가 사나다 유는 스스로 생각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옮긴이의 글에서 이선희 번역자는 책을 덮으면서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의 아버지로서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중학교 2학년에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사나다 유는 어느덧 아버지가 되었고, 그 아들의 일기에서 '절친'이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아직은 어린 나의 아이들도 언젠가는 글씨를 쓰고 일기를 쓰고 절친이 생길 것이다. 누군가에게 절친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절친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후지슌은 집 마당의 감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후지슌의 아버지는 20년 만에 그 감나무를 베어버린다. 20년간 감나무를 보며 아들과의 아픈 추억을 기억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아버지가 된 사나다의 모습도 떠올려 본다. 아버지가 된 사나다는 아들이 자신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들이 우리 2학년 3반에 있었다면 어떤 캐릭터였을까? 적어도 미시마나 네모토는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카이는 더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후지슌도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가장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용기를 가져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최악이다", "친구를 죽게 만들지 마라" ......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당시 담임이었던 도미오카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아빠는 옛날에 그렇게 하지 못한 걸 계속 후회하고 있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 p.326
사유리가 사나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언젠가 어디선가 서로 등이 탄탄해져서 만났으면 좋겠군요.(p.350)" 후지슌은 여행을 마쳤고 남은 자들은 무거은 짐을 메고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은 하얀 십자가를 향한다. 십자가는 언덕 위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고, 사람들은 말없이 계속 걷는다. 모두가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