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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중에서...
깨닫지 못한 마음은 목표 지향적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단지 지금 여기에 산다. 지금 여기에서 무슨 목적을 가질수 있겠는가? 어떤 때는 장작을 패고, 어떤 때는 우물에서 물을 기른다. 거기에 무슨 목적이 있는가? 목적이란 개념은 에고의 받침대에 불과하다. 목적이란 없다.
목적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이 모든 일이 불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목적은 없다. 다만 신의 에너지가 넘쳐흐를 뿐이다. 신은 자신의 에너지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는 사방으로 흘러넘친다. 그는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별이 된다. 그는 인간이 되고, 동물이 되고, 새가 된다. 여기엔 계급 제도가 없다. 목적은 계급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그대는 자신이 더 높은 목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높고 어떤 사람은 낮다.
계급은 없다. 존재계는 하나다! 다만 온갖 종류의 표현 양식이 있을 뿐이다. 어떤 곳에서 신은 푸른 나무가 된다. 어떤 곳에서는 붉은 꽃이 되고, 어떤 곳에서는 나비가 되고, 어떤 곳에서는 무지개가 된다. 그는 어떤 곳에서는 남자가 되고, 어떤 곳에서는 여자가 된다. 이렇듯 표현 양식이 다를 뿐 그는 똑같은 실체이다. 거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마음과 사념이 사라졌을 때, 에고가 사라졌을 때, 그대가 전적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할 때, 그때 돌연 그대는 무목적성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삶은 사업이 아니다. 삶은 그저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사업에는 목적이 있지만 기쁨에는 목적이 없다. 논리에는 목적이 있지만, 사랑에는 목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