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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 저기의 간극에서 태어난 감정들, 빛나는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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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바 텐드>> 리뷰 내용/ 황문희제목 '엔드 바 텐드'는 ‘여기 그리고 저기’라는 뜻입니다. 표제작의 배경은 몽골이며 나머지는 주로 한국입니다. 첫 번째 작품으로 <엔드 바 텐드>에서는 모래언덕과 사랑이 가득한 사막과 물질주의적 사고관으로 가득찬 서울이, 여기와 저기로 표현이 됩니다. 몽골에서 앓았던 사랑의 이야기가 사막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다음의 장면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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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바 텐드>> 리뷰 내용/ 황문희

제목 '엔드 바 텐드'는 ‘여기 그리고 저기’라는 뜻입니다. 표제작의 배경은 몽골이며 나머지는 주로 한국입니다. 첫 번째 작품으로 <엔드 바 텐드>에서는 모래언덕과 사랑이 가득한 사막과 물질주의적 사고관으로 가득찬 서울이, 여기와 저기로 표현이 됩니다. 몽골에서 앓았던 사랑의 이야기가 사막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다음의 장면은 남녀의 감정선이 아슬아슬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감정 표현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와 풍경이 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네요.

흑설탕 같은 벌판 위로 뭉게뭉게 피어난 흰 구름이 눈높이에 걸려 있었다. 맨 처음 딴 목화솜처럼 순결한, 누구의 손때도 타지 않은 뽀송뽀송한 구름이었다. 우리는 그 구름 아래서 대여섯 걸음 정도 떨어져 함께 지평선을 바라보며 오줌을 줬다. 바람이 거센 탓인지 오줌 줄기가 누운 's'자 모양으로 파동을 그리며 날아r갔다. 허공에 그리는 무늬였다. 등 뒤에서 그녀의 오줌발이 뜨거운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해이수, <<엔드 바 텐드>>, <엔드 바 텐드>,32쪽

다음은 현대물질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리키의 화원>의 일부분입니다. 리키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리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찰의 지점에 서 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먼지가 다 쓸려 내려가는 경험을 리키를 통해서 하실 겁니다.

“집중은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슈퍼 파워를 찾게 해줘요. 사람들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해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남을 봐서 그래요. 남들을 기준으로 삼는 거죠. 남들에게 박수받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어요. 영원히 불행해요. 남들이 만든 기준은 매번 바뀌잖아요.”
-해이수, <<엔드 바 텐드>>, <리키의 화원>, 57쪽

“나는 이 장애물을 성공하기 위해 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순간을 즐길 뿐이에요. 그럼 떨어져도 실패가 아니잖아요.”
-해이수, <<엔드 바 텐드>>, <리키의 화원>, 67쪽

<한산수첩>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서민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담겨 있습니다. 간단한 원리와 성실함과 우직함으로 깨달음을 실천하는 시곗방 주인으로부터 치킨집에 마련된 공부방의 불빛까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옴 샨티>에서는 요가를 수련하며 얻은 이야기와 죄책감으로 가득 찬 사랑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습니다. 해이수 작가의 작품에서는 오래 머물게 하는 문장과 구절들이 중간마다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의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물이 지향해야 할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요가란 무엇입니까?"
"균형입니다. 균형은 단순히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평정을 배우는 것으로 진아의 통로입니다."
"무엇과 무엇의 균형입니까?"
"요가의 요체는 치우침 없음입니다. 우리 몸의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 앞과 뒤의 균형, 위와 아래의 균형, 안과 밖의 균형, 육체와 정신의 균형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현재의 균형입니다. 망각을 위한 기억입니다."
"균형은 균등한 정반대의 힘 안에 존재합니다. 균형은 자유를 줍니다. 훌륭한 답을 마련하신 완님은 더는 과거를 살피지 마시고 부디 현재를 사세요. 요가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해이수, <<엔드 바 텐드>>, <옴 샨티>, 116쪽

<요오드>인 경우 인도주의 정신이 현실 정치의 문턱을 한 치도 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들이 묘사됩니다. 실제 우리의 정치와 남북 관계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엄청난 조사와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강사와 P교수>는 그야말로 <<엔드 바 텐드>>의 작품 중 걸작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이 작품은 읽고 나서 오래 곱씹게 합니다. 여기 <엔드 바 텐드>처럼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른팔이 되어 달라'는 P교수이 요구에 오른팔을 뽑아 버리는 김강사의 이야기는 내면의식을 아주 잘 끌어냅니다.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강렬합니다. 해이수 작가가 어떤 면모로 우리에게 그 자질을 드러내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낙산>에서도 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강사와 P교수>와 연결하여 읽어도 자연스럽습니다. "인생역전은 꿈도 꾸지 않고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를 바 없(203쪽)'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세희라는 여인에 대한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의 내면이 절절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제 인물 '나'는 과거의 추억과 사랑에서 벗어나 현실로 되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에 해이수는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놓지 못하는 감정'과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감정'을 적절히 섞어 우리의 감정을 쥐락펴락합니다.

수록된 작품 중 마지막 작품인 <종이배>는 또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작품입니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사회와 현실은 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역시나 순수하게 지켜주지 않습니다.

굵은 모감주 알이 탐스럽고 길이 잘 들어 반들반들했으나 병일은 꺼려하는 기색을 비쳤다. 지연은 봉투가 떨어지지 않도록 안으며 다른 손으로 병일의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검지 손톱이 까맣게 죽어 있었다.
"술 먹고 잃어버리지 마. 이거 500만 원짜리야."
-해이수, <<엔드 바 텐드>>, <종이배>, 235쪽

해이수적 인물(저는 소외되고 결핍된 자들, 사회의 중심에서 한 걸음 비껴난 자들로 해이수적 인물을 규정하겠습니다.)들은 해이수의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고, 절망합니다. 그 절망들을 해이수는 따뜻하게 품어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에는 아주 요원한 일 같군요. 여기와 저기의 경계에서 아픈 이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안목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해이수의 작품은 살아가는 데 힘을 주네요. 손 닿는 곳에 두고, 문장과 구절들을 곱씹고 싶은 작품입니다.

m******i 2020.01.25.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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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나 거기나 [한국소설-엔드 바 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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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가의 이름을 내가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부지런히 읽는다고 여기고 있는데도 낯선 이름을 만나고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내 늦은 속도가 무안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쓴 글도 많고, 아무래도 쓰고 있는 이들의 부지런함만큼은 따를 수 없겠지. 결코 다 읽을 수는 없을 테니. 그래도 섭섭한 건 맞다. 이 책을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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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가의 이름을 내가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부지런히 읽는다고 여기고 있는데도 낯선 이름을 만나고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내 늦은 속도가 무안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쓴 글도 많고, 아무래도 쓰고 있는 이들의 부지런함만큼은 따를 수 없겠지. 결코 다 읽을 수는 없을 테니. 그래도 섭섭한 건 맞다. 이 책을 신청하고 당첨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이 기회가 아니었더라면 이 작가를 몰랐을 테고, 작가의 글을 향한 내 호감을 못 만났을 테고, 소중한 즐거움 한 부분을 모르고 말았을 테니.  

 

비슷한 주제나 비슷한 배경을 가진 소설이라도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글이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어려운 대목을 풀어 놓은 글, 불편한 것을 건드리고 있는 글, 답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도드라지는 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풀어지는 게 아니라 더 답답해지기만 하는 글들. 사정이 이럴수록 읽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또 그 마땅함이 더 거슬려서 피하고만 싶어지는 글들. 소설이라는 장르의 본질적인 특성이 그 사회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해 보이는 그 이유가 부담을 줄 때도 있으니까.  

 

모두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대체로, 총체적으로 답답하다. 이 작가의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주제와 배경과 인물들의 구차한 현실 때문에 안 읽고 말았을 것 같다. 실제로 읽다가 그만둔 적도 있고. 그런데 이 책 속의 글들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분위기는 영 못마땅한데도 문장에는 이끌렸다. 마치 문학 교과서에 실린 글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해야겠다.(문학 교과서의 글에 대한 두 가지 인상 중 당연히 좋은 쪽이다. 실릴 만해서 실려야 하는 소설들로) 모범처럼, 반듯하게 읽히는 글, 한동안 외면했던 우리 사회의 어둡고 쓰라린 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해 주는 글들로. 문학과 사회의 연관성을 공부하는 데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글들로.   

 

소설만 쓰는 소설가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현진건의 '빈처'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여전히 이 꿈을 품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한번 더 확인해 보라고. 그리고 들어서야 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들어서야 하는 것이라고.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있다면. 비록 권하는 입장의 나로서는 힘이 너무도 모자라 겨우 덜렁 읽어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지만, 읽는 동안의 즐거움과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게 고작이지만. 창작하는 사람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고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절을 꿈꾸는 건 이대로 영영 무모한 바람인 걸까. 우리는 언제쯤 메디치 가문과 같은 지식인을 만날 수 있을까. 오래도록 쓸쓸한 시대다.

 

'한산 수첩'을 읽으면서 한산면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가 보고 싶었다. 소설 속 공간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글을 만난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참 잘 읽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9.12.1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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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밤새서 독서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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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소용이 없는 삶,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초연하면서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삶, 주어진 삶의 범위내에서 ‘별’이 아닌, ‘먼지’로 살아가면서도 남루한 삶에 깃든 비범한 아름다움과 진성성...’고쳐지지 않는 디지털 시계‘처럼 절대로 맞춰지지도 고쳐지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속에서 조금은 피로해진 맘에 따스한 위로가 되는 ...간만에 읽은 좋은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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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소용이 없는 삶,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초연하면서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삶, 주어진 삶의 범위내에서 ‘별’이 아닌, ‘먼지’로 살아가면서도 남루한 삶에 깃든 비범한 아름다움과 진성성...’고쳐지지 않는 디지털 시계‘처럼 절대로 맞춰지지도 고쳐지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속에서 조금은 피로해진 맘에 따스한 위로가 되는 ...간만에 읽은 좋은 소설 !!!
YES마니아 : 플래티넘 g********n 2020.04.2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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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바 텐드 ㅡ 과거(저기) 그리고 현재(여기)
"엔드 바 텐드 ㅡ 과거(저기) 그리고 현재(여기)" 내용보기
이 책은 6편('엔드 바 텐드' '리키의 화원' '한산 수첩' '옴 샨티' '요오드' '김 강사와 P교수' '낙산' '종이배')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목차를 읽어보고 습관대로 맨 뒷장을 열어 해설과 작가의 말을 읽는다. 보통의 책은 작가의 말은 맨 앞에 있는데 이 책은 맨 마지막 장에 작가의 말이 있다. 한 편의 시 같은 작가의 말을 천천히 음미해본다.  『시선을 두는 쪽으로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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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편('엔드 바 텐드' '리키의 화원' '한산 수첩' '옴 샨티' '요오드' '김 강사와 P교수' '낙산' '종이배')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목차를 읽어보고 습관대로 맨 뒷장을 열어 해설과 작가의 말을 읽는다. 보통의 책은 작가의 말은 맨 앞에 있는데 이 책은 맨 마지막 장에 작가의 말이 있다. 한 편의 시 같은 작가의 말을 천천히 음미해본다.

 

 

『시선을 두는 쪽으로 삶은 스며들므로 환한 곳으로 고개를 듭니다.ㅡ p.258』

 

 

표제작 「엔드 바 텐드」는 몽골과 서울을 소설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몽골어로 '여기 그리고 저기'라는 이분법으로 된 소설은 모든 물질과 문명을 벗어버린 몽골의 모래 언덕에서 평등하게 사랑을 나누었으나 서울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내'가 처한 삶의 실상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삶 같은 시간 강사다. 『김 강사와 P교수』 『낙산』 에서 주인공도 모두 시간 강사다. 담당 교수의 비위를 맞추고 복종해야 하는 시간 강사의 삶과 고민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이 소설들은 삶의 즐거움 보다 삶의 허무쪽에 더 무게를 두고 다루고 있다

 

 

『"별자리를 볼 때 우리는 대개 별들끼리 이어서 보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라 별과 별 사이를 잇는 어두운 부분을 봐야 한다는 거야. 결국은 어두운 부분이 전체의 윤곽을 만든다는 뜻이지." ㅡ p.20/엔드 바 텐드』

 

 

『극소량의 수분으로 생존하는 고비의 가시풀. 사막에서 나고 자란 가이드는 겨울에 먹을 것이 없을 때, 낙타가 입에 피를 흘리며 먹는 그 보잘것없는 풀 한 포기가 거대한 사구를 만든다고 했다. 바람을 타고 가던 모래가 그 풀에 걸려 두꺼비집을 만들고, 두꺼비집은 모래 봉분으로 자라고, 봉분이 언덕으로 커지면 기댈 것이 필요한 모래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사구를 이룬다는 것이다.ㅡ p.34/엔드 바 텐드』

 

 

『리키의 화원』은 모 방송국의 오락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름마저 운동 잘하고 잘 생긴 혼혈의 모 연예인을 상상할 수 있었다. 리키의 가치관을 이해할 듯도 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리키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현재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확고한 신념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태도로 설정되지만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지배 논리에 이용만 당한 슬픈 여운을 남긴다. 장애물 경기 레벨4에서 떨어진 리키가 부상을 당하고 잡초를 뽑는 공공근로를 하는 장면은 마지막 극적인 결말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매끄러운 설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은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슈퍼 파워를 찾게 해줘요. 사람들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해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남을 봐서 그래요. 남들을 기준으로 삼는 거죠. 남들에게 박수받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어요. 영원히 불행해요. 남들이 만든 기준은 매번 바뀌잖아요. ㅡ p.57/리키의 화원』

 

 

『이제껏 카메라를 의식해서 팔짱만 끼고 있던 나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리키는 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청자와 프로그램은 리키를 살아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며 얼마나 더 버티는지 즐기는 꼴이었다. 제어 장치가 풀린 사람들은 더욱 미쳐가고 있었다. 리키는 그들의 초과된 욕망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 광대와 다름없었다. ㅡ p.63~64/리키의 화원』

 

 

『"뭐가 두려워요? 나는 이 장애물을 성공하기 위해서 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순간을 즐길 뿐이에요. 그럼 떨어져도 실패가 아니잖아요."

"그럼, 그건 실패가 아니고 뭐냐?"

리키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이윽고 눈을 뜬 그가 음영이 짙은 눈동자로 내 어딘가로 깊이 응시했다. 그는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마디마디 굳은살이 단단히 박였지만 심장까지 온기가 전해지는 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뙤약볕 아래에서 쪼그려 앉아 꽃밭을 가꾸는 그를 향해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ㅡ p.67/리키의 화원』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글이 이 『한산 수첩』이다. 소설가인 '나'는 한산의 시장에서 레코딩을 해오라는 출판사 편집장인 선배의 말에 한산 시장을 취재하러 나선다. 사실적인 것은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 취재라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초원다방과 시계수리점과 멕시칸치킨집 유리창 너머로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을 관찰하고 감동하여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장삼이사들의 삶을 취재하는 동안 만나는 인물들, 풍경들이 진짜 사람 사는 소박한 모습들을 짜임새 있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여기'에 사는 오늘의 평범한 일상의 이웃들을 보며 삶에 경배하는 자세는 그나마 이 소설 전체에서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잘 들어. 과학자는 우주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시인은 시간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느낀다! 뭔 말인지 알아? 시골 촌부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곧 우주일 수 있다는 거야. 잔말 말고 가서 온몸으로 채록해 와!" ㅡ p.74/한산 수첩』

 

 

『자식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어느덧 '상냥한 다방 주인에서 '걱정 많은 어머니'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문득 그녀의 어릴 적 꿈이 궁금했다,

"이건 잘 말하지 않는 건데...... ."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기다리자 조용히 대답했다.

"학교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적절하다 싶어서 빙긋이 따라 웃었다. 왜 '마음씨 고운 이모'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그리고 현실에서까지 선생님이나 수녀를 꿈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리 순탄치 못한 사람의 과정을 겪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왜 그 꿈을 이루지 못하여 벽지의 허름한 탁자 건너편의 낯선 남자에게만 그런 속내를 수줍게 털어놓는지 그 역시 알 수 없었다.ㅡ p.77/한산 수첩』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시 처음의 스텝을 되밟는 일이었다. 부속에 먼지가 있는지, 기름칠을 적당하게 했는지, 부품의 아귀가 제대로 들어맞는지 아무리 되짚고 확인해도 작동이 느려지는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달력 뒷면을 양분하여 결함의 문제가 될 법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차분히 나누었다. 문제가 될 법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범위를 좁히다 보니 결국 한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시계 내부를 보믄 말이지, '유사'란 게 있어. 내가 그걸 몰랐던 거여."

군산 시계점 밥을 먹은 지 11개월이 흘렀을 때, 유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냈다. 그럼에도 유사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랐다. 그때부터 주인이 수리를 할 때마다 꼼꼼히 살폈는데, 예전에는 '무조건 훔쳐보기'였던 반면 그 후로는 '옥석을 구분하는 관찰과 분석'에 들어갔다.ㅡ p.86~87/한산 수첩』

 

 

『나는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가게 안에 수많은 시곗바늘이 돌아가고 추가 흔들리면 어지럽거나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악수를 하던 그가 일축했다.

"건 모르는 소리여. 우덜은 저거시 안 움직이면 불안혀."ㅡp.91~92/한산 수첩』

 

 

『옴 샨티』에서는 백화점 문화센터 미술강좌에서 만난 수강생 연이 완에게 개인 지도를 요구하고 경제적 곤란을 겪던 완이 받아들이면서 연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완은 임신한 아내와 전시회 일정이 잡히게 되면서 암에 걸려 죽어가는 연을 외면한다. 그러한 자신에 대한 처벌과 자신을 위해 헌신적이었던 연에 대한 애도를 위해 요가 수행을 한다. 완은 요가를 함으로써 연을 잊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으로 평화를 얻게 된다.

 

 

『마치 투명한 보석이 곁에 있는 꽃의 빛깔에 물들듯이 그렇게 생각을 비우세요. 그리고 집중하는 대상에 물들기를 기다리세요. 균형과 집중으로 그 대상과 하나가 될 때 빛나는 그 무엇과 만나세요. ㅡ p.104/옴 샨티』

 

 

『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토대가 되는 팔꿈치, 전완, 손 바깥으로 중력을 배분시켜야 하지만 실력이 그렇게 완벽하지 못했다. 완은 이대로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터져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턱선을 타고 내려온 땀방울이 귓속으로 고여들었다. 요즘처럼 자신이 고통을 담기에 적당한 그릇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적이 없었다. 고통스러울수록 슬픔의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카운팅은 스물다섯에 가서야 멈췄다.

"시르사사나B. 모든 반다를 꽉 잠그세요."ㅡ p.111~112/옴 샨티』

 

 

『"요가란 무엇입니까?"

(중략)

"균형입니다. 균형은 단순히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평정을 배우는 것으로 진아(眞我)의 통로입니다."

"무엇과 무엇의 균형입니까?"

"요가의 요체는 치우침이 없음입니다. 우리 몸의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 앞과 뒤의 균형, 안과 밖의 균형, 육체와 정신의 균형입니다."

지난 한 달간 수없이 몸을 접고 늘이고 굽혔다 펴며 마련한 대답이었다. 완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균형입니다. 망각을 위한 기억입니다."

한나는 고요히 앉아 있다가 입을 떼었다.

"균형은 균등한 정반대의 힘 안에 존재합니다. 균형은 자유를 줍니다. 훌륭한 답을 마련하신 완님은 더는 과거를 살지 마시고 부디 현재를 사세요. 요가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ㅡ p.115~116/옴 샨티』

 

 

『요오드』는 부당한 힘과 사회적인 물림새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작품이다. 내용은 2011년에 탈북보호단체 '손에손잡고' 강병선 대표가 탈북한 아이들의 건강 상태가 요오드 결핍으로 인해 신장과 뇌가 작아서 학습을 따라오지 못하는 원인을 알게 되면서 요오드 성분이 강화된 소금을 북에 전달하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북 관계가 좋지 못한 상황이었던 10여 년 전의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어렵게 만든 요오드소금이 전달되지 못하고 소각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의 성장을 살리겠다는 민간단체의 노력조차 정치적인 이해 안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 무렵 강대표는 자주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자신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고래가 되어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식의 공상적이고 황당한 꿈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흔히 보는 트럭에 소금을 가득 싣고 시골길을 달려서 자신이 그것을 가가호호 한 됫박씩 나눠주는 꿈이었다. 학교 혹은 유치원, 급식소에 원하는 만큼 퍼주는 일이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싱겁기 짝이 없는 소금 장수가 되는 것이 지난 1년간 그가 고대하던 꿈이었다.ㅡ p.147 /요오드』

 

 

 

『김 강사와 P교수』는 인생역전을 꿈꾸지도 못하고 현실에 쫓겨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읽고 있다 보면 마음이 약간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특히 『김 강사와 P교수』에서는 연민과 함께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인공 만필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면 슬프다 못해 아픔을 느끼게 된다. 절대군주처럼 군림하는 P교수를 '견고한 보호 장비를 갖춘 미식축구 선수'처럼 거대한 양쪽 어깨에는 액세서리처럼 여러 개의 팔이 매달려 있다고 표현한 대목이나, '어깨뿐만 아니라 팔, 손목까지도 형체가 없는'으로 표현한 어머니의 대목에서는 이렇게 되는 사회와 그런 교수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청력을 모두 잃은 아내는 젖가슴 한쪽이 희미하게 지워지고 없다'라고 한 표현이라든지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취한 동기들을 '오직 성기밖에 없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에서는 만필의 고통과 좌절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이 된다. 『김 강사와 P교수』에서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섬찟할 정도로 무섭다.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뭐, 이런 소설이 있나!' 하다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아채고는 이내 슬퍼진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슬픈 현실인 것이다.

 

 

『만필은 겨우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모이를 받아먹다가 제거되는 닭의 처지가 되기보다 거친 들에서 양식을 구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학의 고고함을 닮길 원했다. 만필은 구속 없는 영혼의 예술가가 되길 원했다.

(중략)

『만필은 젓가락 끝으로 닭국물을 찍어 식탁 위에 썼다

이런 농담 같은 급여

이런 국물 없는 내일

ㅡ p.158~159/김 강사와 P교수』

 

 

『낙산』의 주인공은 여섯 살, 두 살의 딸을 두고 있는 시간강사다. 아내와도 같은 동기인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들을 불러 아내의 생일을 겸한 집들이를 하면서 오늘 '여기'에서 과거 '저기'를 추억하게 된다. 대학 시절, 그리고 졸업 후에도 사랑했던 과 동기 세희와의 양양 낙산에서의 추억이 중심 이야기로 나온다. 여성 중 열에 일곱과는 썸씽이 일어난다는 바람둥이 명우가 집들이에 뒤늦게 도착하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로부터 낙산(하산) 해야 하는 결말이 있다. 아내와 명우, 명우와 세희. 세희와 '나', 찬호와 명우, 용건, 정아, 이 일곱 멤버들의 얽히고설킨 이성 관계는 과거(거기)의 집착에서 현실(여기)로 돌아와야 하는 삶을 조명하고 있다.

 

 

『종이배』의 군대 부사관 출신 병일과 지연은 서른 살에 혼인신고를 하고 3년을 함께 살았다. 지연보다 학력이 낮은 병일은 유식한 척을 하며 불안해한다. 병일은 저임금 계약직을 벗어나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번번이 미끄러지자 자격지심이 들어 지연의 행복을 위해 '좋은 남자가 생기면 떠나라'라고 말한다. 지연은 언젠가 병일이 자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두 번째 중절수술을 한다. 이혼을 앞두고 부부는 마지막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낸다. 아이들은 무속인의 말을 빌려 따뜻한 말을 건넨다. 서로 소통이 단절되었던 부부는 서로가 아이 낳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는다. 이별의 날이 다시 화합의 날이 되는 순간이다.

 

『'미안해. 너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게 아니야. 그렇게 하면 엄마가 더 행복할 줄 알았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 아빠가 불행해질까 봐 그랬어. 떠나려는 네 아빠의 짐이 될까 봐. 미안해.'

(중략)

'앞으로 태어날 내 동생 더 많이 사랑해 주세요. 꼭이요!'

병일과 지연은 딸애의 손을 잡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ㅡ p.231/종이배』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다. 힘없고 뒷배 없고 직업 변변찮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이런 일들은 과거엔 더러 흔한 풍경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는 요즘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게 아무리 살기가 좋아진 세상이라지만 결국은 돈 없고 힘없는 상황이 오면 선택하게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다루는 민감한 문제라 가슴이 아팠지만 결론은 두 부부가 진심을 털어놓고 화해하면서 끝나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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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l*****o 2019.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기 그리고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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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의 삶은 왜 나의 생각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일까? 그 길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심훈 문학상, 한무숙문학상과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수상작가인 『해이수』의 『엔드(여기) 바(그리고) 텐드(저기) 』(자음과모음 펴냄)는 지금 현재의 삶을 표현하는 8편의 단편 작품을 담고 있다.   작가 해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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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의 삶은 왜 나의 생각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일까? 그 길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심훈 문학상, 한무숙문학상과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수상작가인 『해이수』의 『엔드(여기)(그리고) 텐드(저기) 』(자음과모음 펴냄)는 지금 현재의 삶을 표현하는 8편의 단편 작품을 담고 있다.

 

  작가 해이수의 작품은 사실 처음 접했습니다. 8편의 단편 소설을 접하고 느낀 첫 느낌은 우리 삶의 곳곳에 묻어 있는 무거운 삶의 단면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어쩌면 "종이 한장을 사이에 두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로 정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 삶의 차이가 바로 저기와 여기가 아닐까요?

 

  첫번째 작품인 『엔드 바 텐드』는 몽골로 떠난 학회에서 만난 여인과의 관계가 몽골이라는 장소가 느끼게 해주는 것과 같이 순수한 마음이 가는데로 관계가 형성되어 갔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로 돌아온 두 사람의 관계는 현실이라는 벽이 가로막는 관계로 그려집니다. 몽골이라면 충분히 사랑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두사람이 서울이라는 현실에 도달하게 되는 순간  형성될 수 없는 벽이 만들어지고 만다.

 

 『"바야르테, 허르홍 부스구이(그럼 안녕, 예쁜 여인)!"

  걸음을 떼자, 급작스레 속에서 격렬한 통증이 치밀어 올라 나는 출입구 번호를 알리는 기둥을 붙들었다. 고비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이었다. 어디선가 거대한 모래언덕이 허물어져 내리는 굉음이 들렸다. 온몸에 힘이 꾹 빠지며 한쪽 무릎이 꿇리고 발목이 접혔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 엔드 바 텐드 중에서 -

 

  두번째 작품 『리키의 화원』에서 오락프로그램인 서바이벌 게임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는 리키, 그의 "다만 논앞의 장애물에 집중할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라는 우승소감은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따라오는 물질적인 욕망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 그런 리키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결코 만족이나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곳을 향하고 있다. 리키에게서는 우리는 그 무언가를 분병하게 느낄 수 있다.

 

 『 "집중은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슈퍼 파워를 찾게 해주요. 사람들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해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남을 봐서 그래요. 남들을 기준으로 삼는 거죠. 남들에게 박수 받고 멋지에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어요. 영원히 불행해요. 남들이 만든 기준은 매번 바뀌잖아요."  (중략) "뭔가에 몰두하는 순수한 즐거움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나는 차창을 끝까지 내렸다. 벽창호 같은 녀석의 개똥 같은 말 때문에 속에서 불길이 이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몰두하는 게 즐거워서 일을 한다는 건 이 세계의 진실이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대중의 관심이 떠나지 않도록 싫어도 억지로 하는 것이다.』 - 리키의 화원 중에서 -

 

  마지막에 실려 있는 『종이배』는 지금까지의 아픔을 모두 봉합해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직업군인의 길에 들어선 남자, 그리고 그를 사랑한 여자, 그 사이에 잉태한 태아를 사로의 묵인하에 지고, 둘째는 힘들어하는 남자를 위해 몰래 낙태를 한 여자, 모든 걸 끝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찾은 한 암자에서 만난 보살에 의해 버려진 두 아이의 영혼을 보내기 위한 기도에 참여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조차 알지 못하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 과정이 어쩌면 지금 우리가 힘겹게 살아가는 한 모습이 아닐까 느껴지게 됩니다.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며 떠가던 종이배가 어느 순간 이끼 낀 바위에 걸려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병일은 개울가로 조심히 내려와 팔을 뻗어 그 맴도는 배의 길을 풀어주었다.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애잔하게 얽히자 지연의 말소리가 건너오는 듯했다. - 나는 네가 아이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 - 』 - 종이배 중에서 -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작품속에서의 의미를 읽는 이의 입장에서 나름 느끼고 해석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단편 작품들은 여러가지의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한편으로는 위로를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l***4 2019.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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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엔드 바 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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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 세계를 모른 상태로 책 표지의 그림은 꽤나 궁금했다. 목이 없이 온몸이 칭칭 감긴 채 양손에 나이프와 전자담배를 들고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라니. 다소 스릴러스러운 사이코드라마의 작품 세계이려나 싶은 생각이었다.여기 그리고 저기라는 뜻의 제목인 단편집인 이 책은 대부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스스로 옭아진 것들을 현재로 끌고 들어와 자신을 들볶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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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 세계를 모른 상태로 책 표지의 그림은 꽤나 궁금했다. 목이 없이 온몸이 칭칭 감긴 채 양손에 나이프와 전자담배를 들고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라니. 다소 스릴러스러운 사이코드라마의 작품 세계이려나 싶은 생각이었다.


여기 그리고 저기라는 뜻의 제목인 단편집인 이 책은 대부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스스로 옭아진 것들을 현재로 끌고 들어와 자신을 들볶는 형태의 다소 감정을 낮게 끌어내리고는 있어 생각보다 잘 읽히지만 오래 머물게 만든다.




그중 첫머리를 장식하는 엔드 바 텐드는 고비의 황량함을 도시로 끌고 온 한 남자의 순애보다. 중간중간 고비에서 맞던 바람이 도시에서도 불어주길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별빛과 별빛 사이 암흑에 집중해야 빛나는 별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몽골의 밤하늘이 궁금해진다. 그 속에서 아무것도 없음에 베어버린 이 남자를 어찌해야 하는지.


즐겨봤던 '출발! 드림팀'이 인간의 욕망과 질투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부저를 울리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기 살기로 달리던 장면이 새삼 누군가에겐 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일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과연 리키는 여전히 그 마음일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한산엘 가면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을 '멕시칸 치킨'을 찾아 기웃대고 싶다. 여전히 벽과 출입문을 등지고 단정한 스포츠머리를 한 형제가 앉아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요즘처럼 자신이 고통을 담기에 적당한 그릇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적이 없었다. 고통스러울수록 슬픔의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p112


연약해 보이는 완의 자발적 징벌이 왜 그리 먹먹한지 이해되지도 않았다. 완에게는 연의 죽음은 현재를 체벌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연민 혹은 사랑이 완이 자괴감에 허우적대는 심리 상태로 전달되어 그의 징벌이 연과의 에로틱한 관계로 느껴지지 않아 다소 맥이 빠지기도 했다. 또 소금 하나로 슈퍼맨처럼 하늘 위에서 막 뿌려대는 영웅주의적 관점의 인도주의와 정치적 잇속을 앞세우는 관료들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다. 빌어먹을 정치꾼들! 인도주의는 개뿔!




이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어른의 도리라는, 그게 서른아홉에 대리전을 뛰어야 할 행동대장의 모습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니 새삼 현실이 답답해졌다. 근데 어차피 보스도 과거엔 행동대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나마 위로가 된달까.


그리고 세희의 나이프, 부대찌개와 모둠 회의 은밀한 동거, 마지막으로 '변해도 사랑'인 그들만의 사랑법은 먹먹하게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팍팍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인간의 여러 심리를 적나라하고 세심하게 묘사하는 8개 단편을 통해 작가의 필력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한 편 한 편이 담백하지만 책장이 쉬이 넘겨지지 않는 이유는 어쨌거나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할 우리가 가슴에 하나든 열 개든 품고 사는 이상이라는 것이 크면 클수록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는 사실이 읽혀서다.


표지의 남자를 숨은 그림 찾듯 내용에서 의미를 찾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c********u 2019.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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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바 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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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지만 굳이 대화의 주제로 삼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 있다. 얼굴 붉어지는 불편한 소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을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엔드 바 텐드> 소설집이다. 이 작품은 해이수란 저자의 확고한 세계관이 엿보인다.   마흔이 된다는 건 가질 수 없는 이상향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다. 표제작를 비롯한 소설집의 여덟 작품 모두 같은 세계관 내에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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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지만 굳이 대화의 주제로 삼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 있다. 얼굴 붉어지는 불편한 소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을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엔드 바 텐드> 소설집이다. 이 작품은 해이수란 저자의 확고한 세계관이 엿보인다. 

 

마흔이 된다는 건 가질 수 없는 이상향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다.

 

표제작를 비롯한 소설집의 여덟 작품 모두 같은 세계관 내에서 진행한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예술가를 꿈꾸는 이상론자, 신데렐라를 꿈꾸는 어려운 경제 형편과 백마 탄 왕자님이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어쩌면 해이수의 페르소나 일 지도.

 

표제작 엔드 바 텐드
몽골어로 "여기 그리고 저기"를 뜻한다. 별다른 의미를 내포한 것은 아니다. 심포지엄을 위해 몽골에 간 시간강사 남자주인공. 함께 간 일행 둥 자신과 처지가 "완전히" 다른 여교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사막의 가시풀과 오징어의 교접완을 비유적으로 활용해 소설이 더욱 에로틱하다.

 

리카의 화원
KBS 출발 드림팀을 풍자했다. 유일무이한 운동능력의 소유자 리키 정이 장애물 달리기 도전자로 나선다. 매회 기록을 세우며 성공하자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장애물 난이도는 함께 올라간다. 시기와 관심을 동시에 받는 리키 정의 4차원 사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쨋든 걸그룹 외모 팔이로 변질되었다 폐지된 프로그램을 향한 저자의 일갈은 시원하다. 

 

한산 수첩
KBS 다큐 3일 - 한산시장 편을 보는 듯 하다. MB <신화는 없다> 속 사례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시계점 사장의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즉 기시감이 느껴지는 내용들로 독자의 접근성을 높였다. 결국은 가족이란 결말도.
 
옴 샨티
굳이 번역하자면 "모든 존재에 평화가". 화가 완이 불륜을 스스로 징벌하고자 하는 요가의 용어에서 따온 제목이다. '에로스의 궁극이 자신을 죽이는 황홀한 통증이듯, 극도의 쾌락과 극도의 고통은 서로 살이 맞닿아 있다. (~114p)' 이 문장 하나가 소설 전부를 함축한다.

 

요오드
탈북 아이들 중 출신이 내륙 지방인 학생들에게서 요오드 결핍 현상으로 인한 저능아 현상이 발견된다. 관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요오드 소금 배송 작전을 계획한다. "내로남불"이 참명제임을 증명하려 듯 일은 꼬이기만 한다.

 

김 강사와 P교수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82년생 김만복>이 그려진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로 끝나는 결말은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지향점일까?

 

낙산
지극히 현실적인 부부. 15년 만에 대학동기들과의 모임을 기획한다. 부부는 그 때 그시절 킹카와 퀸카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한 줄 알았다. 어장(漁場) 관리였음을 꿈에도 모른 체.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종이배
경제적 형편과 부부간의 신뢰 문제로 두 생명을 낙태한 젊은 부부. 이제 정말 관계를 끝내고자 강화도 보살(菩薩)을 찾는다. 돈을 주고 사기엔 아쉬운 팔찌와 800만원짜리 묵주 팔찌는 수미상관 일지 아닐지 궁금하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감춘 요약이다. 오히려 이 리뷰를 통해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음 하는 바람이다. 감상평 한 줄 "블랙코미디, 기분이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다."

 

사족을 붙이면 고독한 소설가를 꿈꾸는 해이수지만 현실은 마지막 단편의 병일처럼 아는 체 하는 속 빈 강정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l*****0 2019.12.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