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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는 1975년에 나온 프랑수아즈 사강의 단편집이다.
여기엔 표제작 '길모퉁이 카페'를 비롯하여 모두 1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웃! 그럼 두껍겠군.'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 대부분 단편의 길이가 보통 열 페이지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즉 차 한잔 마실 시간에 얼마든지 소화가 가능한 분량인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티타임을 위한 단편집'이라 부르고 싶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커피나 홍차를 옆에 놓고서 느긋하게 누워 한 편씩 음미하기에 딱 적당한 책이다.
'길모퉁이 카페'에 실린 19개의 단편들은 모두 저마다 삶의 조각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어떤 건 질투고 어떤 건 상실이며 어떤 건 회의고 어떤 건 의심이며 어떤 건 죽음이다. 아마도 우리들 역시도 어느 삶의 모퉁이에서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그런 보편적인 감정들을 이 책에 실린 19개의 단편들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티타임'에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겼다. '티타임'이라고 해서 굳이 읽으면서 차를 마셔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저 일상의 어느 한 순간 문득 비어버린 시간이 찾아올 때 벗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좀 뚝 떨어져 나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 여기 19개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도 언젠가 어쩌면 과거이거나 아니면 미래에 하게 될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역시도 얼마든지 삶의 가장 눈부신 순간 느닷없이 의사로 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을 수도 있고('길모퉁이 카페'), '이제 사랑은 끝났어'라고 생각한 순간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득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될 수도 있으며('지골로') 또 아니면 오래도록 너무도 잘 안다고 여겼던 배우자가 전혀 뜻밗의 비밀을 가지고 있음을 우연히 알아차릴 수도 있는 것이며('내 남자의 여자') 그도 아니면 정말 완전 실패라고 생각했던 계획이 예상외의 전개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에('개의 밤') 읽다보면 그런 때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저절로 대입해보게 되고 이왕 시작하게 된 사유의 여정에 좀 더 진정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일상 속의 나로부터 떨어져 나와 본연의 나로 돌아간 상태에서 여기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를 음미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이 단편집의 제목은 처음에 나온 작품의 제목인 '비단 같은 눈'이지만 한국 번역판의 제목인 '길모퉁이 카페'가 이 단편집이 가진 전반적 분위기에 비추어 보아 더욱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직장이든 학교든 일을 위해 분주히 걸어가다 우연히 길모퉁이를 돌다 예쁜 카페를 보고는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가 의자 깊숙히 몸을 뉘이고 새삼스레 카페의 대형 유리창 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그야말로 '관조'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문득 깨닫는다. 삶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하며 어떤 반전을 숨겨 놓았을지는 우리의 작은 머리로 전혀 알 수 없는 것을!
프랑수아즈 사강이 이 단편집을 통해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도 왜소하다는 것이다. 아는 것도 없고 알 수 있는 것도 적어서 쉽사리 타인을 의심하고 삶을 불안하게 여길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 사강이 묘사하는 인물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성들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것을 우리가 가진 약점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이것을 오히려 우리의 긍정의 계기로 보여주고자 한다. 물론 단편의 처음에 문득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거나 체험하게 된 이들은 그로 인해 타인을 외면하고는 홀로 고독해지려 하고 때로는 그 약함과 불안을 야기시키는 타인을 파괴하려고도 애쓰지만 그러다가 결국엔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삶이 감춰놓은 진실 역시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더욱 궁극적인 진실이고 등장인물들은 그 때서야 비로소 삶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된 것과 같다. 바로 자신의 약함 때문에 온전한 삶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사강은 우리의 연약함을 삶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로로 만든다. 그런데 왜 그녀는 약함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약함이 우리를 바로 경계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세계의 가장 가장자리, 어떤 모퉁이에 홀연히 서게하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에 서는 건 물론 쉽게 세계로 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한 일이지만 사실 내가 사는 세상의 참된 모습은 바로 거기에 서 봐야 제대로 보여지는 것이다. 사강은 삶의 총체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건 우리가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약해서 우리는 쉽게 상처받고 불안해하며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겪는 그 진정한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제와 같이 일시적 해결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해답이 필요하고 그 진정한 해답은 오로지 삶이 정말로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 온전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강은 그렇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원한다면 스스로의 약함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약함을 긍정하고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받아들여 바로 거기서 다시금 삶의 모습을 바라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사강의 '길모퉁이 카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잘 썰어놓은 바게뜨를 하나씩 배어물게 하듯 한 조각 한 조각 나눠주는 것과도 같은 제안인 것이다. 그렇게 '티타임을 위한 작품'이다. 우리는 늘 강함을 칭송해왔고 늘 강해지기를 개인들에게 강요해왔다. '강함'은 지금 우리들에게 거의 강박관념과도 같다. 그래서 스스로 억지로라도 강해지기 위해 허세까지 부려가며 많은 노력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약함은 오히려 더욱 강조되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떼어낼 수 없는 그 연약함 때문에 더욱 우리는 고통받는다. 그런데 진실은 어떠한가? 우리 이성을 넘어서는 거대한 삶 앞에서 인간이란 바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즉 우리의 약함을 없애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사실 그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니 그로인한 고통 역시도 사서 고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대해 사강은 제대로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의 약함이란 우리가 그림자를 떼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워버릴 수 없는 것이며 그저 받아들이고 안고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건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의 대상인 것이다. 우리는 애써 강해질 필요도 없으며 강한 척을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하려는 가운데 더욱 상처를 얻게 되니 그리 좋은 일도 아니다. 아니 연약함이야 말로 우리에게 더욱 좋다. 강한 자의 교만은 볼 수 없는 삶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니까 말이다. 사강이 특히나 '해는 진다'는 단편에서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를 패러디 하는 진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연약함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강해져라!', '강해지려면 비정해져라!'라는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우리들에게 더욱 소중한 제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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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책의 제목만 보면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작은 카페가 연상된다. 대형 체인점 커피숍이 아니라 작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커피맛이 정말 좋은 카페를 알고 있다. 내가 떠올리는 이 곳과 책에 나온 카페가 서로 비슷하다는 느낌을 살짝 받았다.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름은 많이 들었다. 희대의 스캔들 메이커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그녀는 크고작은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나를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던 작가로 깊은 인상을 받았음에도 그녀의 작품은 여태껏 접해보지 못했다. '길모퉁이 카페'가 그녀를 만나는 첫 작품이고 주로 장편을 많이 썼다는 그녀의 글보다 단편소설 집을 먼저 만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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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편의 단편들을 하나같이 삶보다는 죽음, 만남보다는 헤어짐, 사랑보다는 결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내용과는 다르게 전혀 무겁지 않고 오히려 냉소적이며 차갑우며 시크한 느낌을 준다.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먹고사는 것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어도 그들의 마음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가 의도하지 않던 위험에 빠졌다가 나오면서 다시 사랑하는 아내로부터의 애정을 되찾게 되는 '비단같은 눈',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위해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하기 위해 가던 기차 안에서 그만 화장실 문이 고장나 그 속에 갇히 된 여자.. 그녀는 처음의 생각과는 다른 말을 던지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 '왼쪽 속눈썹',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어 자신보다 배나 어린 젊고 매력적인 애인을 얻을 수 있었던 여자는 자신이 소유하고 버렸던 다른 애인들과 다른 한 남자로 인해서 심적 갈등을 겪는다. 그녀를 진심으로 대했던 젊은 남자와 그런 남자를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물건같은 존재로 여긴 '지골르', 건강에 대한 생각없이 삶을 살았던 한 남자... 살면서 한번도 용기란 것을 내어 본 적이 없는 남자는 죽음을 선고 받은 시점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늘 가던 카페에 갔다가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이며 사람들이 갑자기 낯선 존재로 다가온다. 냉소적인 미소를 머금으며 자동차에 오른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성을 내보이는 '길모퉁이 카페' 등등.. 열아홉 편의 단편소설들은 침울하고 시니컬한 분위기가 책의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도 무척 세련되고 감각적이란 느낌을 준다.
![]() 모든 것에 싫증을 느낀 여자가 클럽에서 신나게 놀다가 자신을 늦은 시간까지 기다린 어린 문지기 소년의 감탄어린 눈빛에 마음이 끌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장소를 찾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충동적인 감정에 이끌려 말에 올라타게 탄 그녀.. 허나 그녀는....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은 '슬픔이여 안녕'이라고 한다. 얼핏 다른사람의 글을 통해 잠시 보았던 기억은 있는데 정확한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을 드높이는 계기가 된 책이라고하니 조만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길모퉁이 카페'를 통해서 프랑수아즈 사강이 가진 문체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를 그녀의 다른 책을 통해서 또 만나고 싶을 정도로 길모퉁이 카페는 프랑수아즈 사강이란 작가를 나에게 확실히 인식시켜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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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우리가 프랑스 예술을 접하는 시각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루하다, 재미없다, 딱딱하다, 고리타분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독특하다, 흥미롭다, 예술성있다, 깊이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좋아해 프랑스 영화를 종종 보는데, 소설이나 문학작품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어요. 왠지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에 소담출판사 꼼꼼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2월 미션도서로 <길모퉁이 카페>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극작가인 사강이 쓴 단편소설집이예요. 이 책을 읽고나서,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조금은 깨졌다고 할까요? 꽤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그녀의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은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강은 19세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으로 유명세를 탔죠. 작품도 꽤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더욱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자유분방한 사생활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으니까요. 위에 언급한 말은 50대에 그녀가 마약 혐의로 법정에 발언한 것입니다.
사강의 작품들은 처음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녀만의 독특함이 묻어있어 차츰 빠져들게 됩니다. <길모퉁이 카페>는 그녀의 작품들이 어떤 색을 띄고 있는지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것 같아요. 얇은 책에 19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단편집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라고 해요.
꽤나 냉소적이고 차갑게 느껴지는 이 소설들은 책 속 주인공들의 이별과 상실을 통해 알수 없는 위로를 전해주는데요. 굉장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타인에게는 어떤 변화를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무게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과도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과 툭툭 던지는듯한 문체, 사사로운듯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 말하고 싶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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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편의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삶의 냄새를 맡는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틈틈히 평안함과 맞닿은 죽음을 덤덤히 그려내는 작품에 지친 작가의 마음도 읽는다. 열정, 당혹, 추억, 그리고 죽음, 휴식과 함께. 1975년 첫출간 이후 2009년에 재출간된 이 책은 <슬픔이여 안녕>으로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단편소설집이다. 단편은 장편과 달리 호흡이 길지 않고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내야 하기에 함축적이고 압축된 알맹이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고 짧은 순간의 묘사만으로도 전체를 읽어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단편의 장점이다.
작품들에서 작가 특유의 감수성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더욱이 이별과 죽음에 대한 시니클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 슬픔을 자아낸다. 사랑이란 이별을 전제로 하기에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비단 같은 눈, 왼쪽 속눈썹, 로마식 이별). 삶이란 죽음이 예비된 상태이기에 더욱 생동하는 법이다(고독의 늪). 그래서 문득 죽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삶이 더욱 실감날 수 있다. 반어법적인 묘사들이 주제를 더욱 강조해 준다.
책에 묘사된 이야기들 속에서 인생을 배운다. 늙은 여인이 젊은 청년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해 그를 버리는 이야기 '지골로'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랑을 확인하고, '완벽한 여자의 죽음'에서는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 생각났다. 새로이 만나는 남자들에게 자신을 맞춰가는 '귀여운 여인'처럼 남자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여인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아, 남자들이란... 하지만 그들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눈빛도 있었다"(125쪽). 인생은 늘 꼬이는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낚시시합), 예상못한 선물들이 주어지기도 하고(개 같은 밤), 죽음이 전제된 현실이라는 사실(길모퉁이 카페)을 본다.
또한 인생이란 순간의 연속이 아닌가. 늘 순간이다. 지루한 일상에, 평온했던 일상에 폭풍을 안겨주는 것도 순간이었고, 이별의 통보를 앞두고 다시 깨닫는 사랑에 안도하는 것도 순간이었다. 행복한 일상으로 돌이킨 것도 순간의 고독이 더욱 그 행복을 실감케 했다. 그래서 단편소설이 인생의 소중함이나 가치를 더 잘 담아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이라이트 같은 묘사들을 만나게 되므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길모퉁이 카페'는 죽음 앞에서 더욱 찬란한 삶을 만난다. 죽음을 맞게 된 이의 심리묘사가 적나라하고 실감나게 표현되었다. 그러면서 용기없다 하기도, 용감하다 하기도 모호한 결말에서 죽음도 그저 삶의 일부려니 받아들이게 한다.
"죽음이란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는, 마르크는, 죽을 수 없었다."(198쪽) "전형적인 암 환자 사례로, 석달 뒤 폐암으로 사망할 예정이다."(199쪽) ".. 갑자기 '삶'이 현관에 나타났다... 바깥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200쪽)
그는 죽음을 맞을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죽음을 앞에 두고 더욱 절절한 삶을 느끼며 더 절망했을 것이다. 그 두려움과 절망감에 맞설 용기가 없어 생을 마감할 호의를 베풀었다고 표현한다. 태양을 보고 삶이 찬란하다 묘사한 부분에 마음이 와닿았다. 산후우울증에 힘들어 죽음이란 단어가 자꾸만 떠오를 그 때, 너무나 눈부신 5월의 햇빛은 살고 싶은 욕망을 주었었다. 그래서일까. 그 찬란한 태양에 노출된 마르크는 죽음을 대면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찬란한 태양과 같은 삶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유한하기에 더 무한해지고 싶은 것이 삶이 아닐는지.
단편의 장점. 틈틈히 시간 날 때 잠깐 들여다 봐도 좋다는 것. 이야기의 농축도가 높다는 것, 순간을 담아낸 묘사가 긴박하다는 것 등. 바쁜 시대에 짧지만 여운이 남는 단편의 이야기들로 감수성을 깨워봄은 어떨까.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나의 삶의 행복을 더 실감하게 하리라 생각된다.
-> '외로움에 대한 공포증'이라.. 인간은 고독하되 고독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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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길모퉁이 카페(프랑수아즈 사강: 소담, 2013) 이별과 상실의 세계
프랑스가 사랑한 그리고 전 세계의 연인인 '프랑수아즈 사강'.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은 그녀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수식어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그녀의 매력적인 글들. '프랑수아즈 사강'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이 살아 숨쉬는 단편 소설들이 엮인 <길모퉁이 카페>는 사강을 사랑하는 그리고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닐런지요.
<사강을 만나다. 그리고 상실과 이별을 경험하다.>
프랑수아즈 사강(본명 프랑수아즈 쿠아레)는 19세때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등단한 텃에 통속적인 연애소설 작가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2년 뒤 두번째 소설 <어떤 미소>를 발표해 세간의 의혹을 일축하고 진정한 작가로서 '뛰어난 재능>과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프랑스 문단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길모퉁이 카페>는 사강의 독특한 분위기와 다양한 매력이 살아 있는 19편의 단편모음집입니다. 작품의 테마는 '결별'입니다. 신분과 나이 환경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 만나기도 하며 같은 공간에서 사랑으로 결합된 이들이 각 에피소드에 등장합니다. 짧은 내용이지만 이별을 눈앞에 두고 전개되는 상황 가운데 놓인 남녀의 심리 묘사와 시니컬하고 냉소적이면서도 때로는 해학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만남과 사랑 그리고 '결별'이 가져오는 관계의 심리 변화의 이야기속에 흠뻑 빠져드는듯 싶습니다. 고전 뿐만이 아닌 근대 문학의 다양한 대표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들은 근대 문학 가운데서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서 단연 으뜸인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국내에 소개되는 사강의 첫 단편 모음집이라는 점에서도 한번쯤 읽어보아야할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주제를 한없이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퍼져나가는 생의 순간들을 묘사하는 사강의 글에서 대중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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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계단을 돌아 내려오는데 갑자기 '삶'이 현관에 나타났다. 마르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바깥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200
왠지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요즘 동네마다 작은 카페들이 많이 생겨나서 은은한 커피향이 우리들의 수다 본능을 일깨우며 유혹하고 있다. 커다란 가게는 많은 사람들과 소란스러움으로 채워지지만 아담한 가게는 정겹기도 하고 편안함도 느껴져서 자주 가게 된다. 그러한 기대감을 안고 오랫만에 다시 만난 '프랑수아즈 사강'은 여전히 자기만의 모습을 한결같이 지니고 있었다. 그녀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분위기를 담은 '길모퉁이 카페'는 단편소설 열아홉 편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을 빼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남녀가 사랑하고 헤어지는데 굳이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만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1975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어떠한 어색함이나 거부감이 없는걸 보면 세월이 아무리 흘렀다해도 사랑과 이별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히 변치않는 테마인가 보다. 거창하지도 않고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게서는 고독, 허무, 사랑, 이별, 슬픔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나는 길에서 아내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렸음을 알고 분노와 배신감에 흔들렸던 제롬, 나이 오십에 스무살이나 어린 애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것 같아 서둘러서 헤어지려는 여자, 기차를 타고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가는 레티시아의 이야기 그리고 3개월 남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길모퉁이 카페로 달려간 마르크 등등. 최근들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일어난 가슴 아픈 일들이 내게 큰 영향을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물론 알고는 있지만 내게는 결코 일어날 일이 아닐거란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나를 마구잡이로 흔들어놓은 것이다. 그 여파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면서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
어쨌든 이제 그에게 행복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행복이든, 마르트든, 다프네든. 이제 그는 뛰고 또 뛰는 심장일 뿐이었다. 글고 지금 그가 사랑하는 것은 그것뿐이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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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소담출판사
우리는 제2외국어로 불어와 독일어를 배우던 시대였다. 일본어와 중국어는 더더욱 생소한 언어였던 기억이 난다. 이과반으로 독일어를 선택한 나와는 다르게 음대를 가려고 피아노를 치고, 문과반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던 두 살 위의 언니는 프랑수아즈 사강에 심취했던 모양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을 떠올리니, 불어를 배우던 언니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불어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을 뿐 아니라, 문학과도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나는 이 『슬픔이여 안녕』뿐만 아니라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해서도 참으로 아는 것이 없다. 이 책, 『길모퉁이 카페』는 열아홉 편의 단편 소설을 싣고 있다. 여느 단편 소설과는 그 느낌이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강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작가 사강의 분위기처럼 아름답고, 독특하고 바람끼 넘치는 여인들이다. 이 차갑고도 가혹한 단편은 '이별의 세계', 혹은, '상실의 세계'로 이끌어 순식간에 빠져들게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내고,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제삼자의 눈에는 평범하고 소소한 사건이 인간에게 끼치는 여러 변화들을 다루고 있다고 평한다. 아마 이런 극찬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책, 151쪽 <왼쪽 속눈썹>을 읽으면서, 아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영원한 물푸레나무요, 다정함이요, 어린 시절이라!'라는 표현이라던가, '레물라드 소스를 묻힌 셀러리, 역사적인 넙치, 혁명적인 고기구이, 튀긴 감자, 대충 만든 치즈, 바닐라 파스타 폭탄이...' 같은 표현이 사강 식의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서술을 가능케 하는지도 궁금해 진다. 이 책으로 인하여 프랑수아즈 사강을 새롭게 알게 되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 이라는 말을 낳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프랑스의 여류 작가가 궁금해졌다. 2013.2.18. 사강과 함께 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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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이름은 익히 들어봤었으나 읽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작품에 녹아난것 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하였다 한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그녀의 그런 삶조차 사랑했던 것 같다.
이번 길모퉁이 카페는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하나하나의 소설들이 짧아도 여운을 주는 느낌이었는데, 보수적인 내가 읽기에 큰 공감이 가는 내용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어쩐지 씁쓸함을 담은 느낌이라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해탈까지는 아니지만, 인생을 초월한 것 같은, 삶을 이미 초월한것같은 그런 시선이 느껴진다.
길모퉁이 카페만 해도, 자신이 곧 폐암 말기로 죽게 될 거라는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발길 닿은 카페에 들어가 1등에 당첨되었다며 사람들에게 한턱을 내고, 그길로 차를 몰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읽다보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삶에 대한 처연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번뇌로 요동치는 이야기보다는 냉소적인 느낌이 더욱 강하다.
아름다운 외모와 부를 가진, 그러나 이미 애끓는 사랑을 하기엔 나이를 많이 먹은 노년에 가까운 중년 부인의 이야기도 몇편 나왔다. 자식뻘의 남자친구를 사귀지만, 남자만큼이나 열정적이지 못하고, 6개월이면 기간이 길었구나 하며 스스로 냉정하게 끊어내려 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이라 생각하지 말고 마치 소모하는 느낌을 주는. 그녀의 그런 냉정함에 남자는 몸서리를 친다. 그녀가 6개월을 데리고 있다 다른 여자에게 대물림하듯 이어주려 하는 방식에 남자는 자신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냐며 전율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매력을 갖고 남자들과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도 헤어진 남자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남겨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다가 그만 화장실에 감금돼 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닌척 해보려 했지만 문은 고장이 나 안에선 열리지 않았고, 절대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추한 몰골로 문 밖에 나오고 나서도 기차역에서 내릴적에는 금새 완벽한 화장과 차림새로 내리는 등 자신을 가꾸는데 절대 소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별을 어느 정도 즐기기까지 했던 그녀가 정신병원과도 같았던 그 짧고도 긴 폐쇄공간에서 달라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글로 표현해내지 않고는 힘들었던 것일까?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랑과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더 책임감있고, 그리고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랑인데.. 그녀의 사랑에는 이기심과 냉소가 더 크게 자리하는 것이 아름답지만 차가웠던 그녀의 삶인양 느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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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 카페가 있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카페가 있다는걸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곳을 한번쯤 가봤거나,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으면 어쩌면 존재조차도 모르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늘상 다니는 길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가고 있다면, 주위에 뭐가 있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날 길모퉁이를 돌았는데, 내 눈에 문득 카페가 보인다면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카페를 찾은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카페는 커피향이 가득하면서 잔잔한 음악이 있어 언제든지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음악에 취해보기도 하고, 친한 사람과 담소를 나누어도 좋은 곳... 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 음... 생각만 해도 벌써 내 마음은 카페에 가 있는 것 같다. 책 표지가 은은한 커피색이었다면 어쩌면 커피 향이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 보이는 민트색이 약간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책에 들어있는 내용 역시 위로와 냉소적인 느낌들이 많이 잇다. 이 책에는 19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는데 해피엔딩보다는 차갑고도 가혹한 고독의 파편들이 보여지고 있다.
처음엔 길모퉁이 카페를 담은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줄 알았다. 요렇게 짤막짤막한 단편이 책 한권에 들어있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례를 안보고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뒤로 가면서 주인공들이 매칭되지 않는걸 보면서 그제서야 각각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걸 알았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여자는 나이트클럽에서 잘생긴 남자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이젠 신물이 나기도 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나이트클럽을 나선 그녀는 자신의 차를 지키며 졸고 있는 문지기 소년을 발견한다. 그 소년이 가여웠던지 그녀는 소년을 태워다 주기로 한다. 그녀는 가는 길에 한때 자신이 찾았던 마구간으로 들르기로 한다. 기수가 되고 싶었다던 소년은 차와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녀는 소년을 차에 태우고 200킬로미터까지 속력을 낸다. 마구간에 도착한 그녀는 소년에게 구보하는 말을 보여주고 싶어 승마복과 장화로 갈아신고 말에 올라탄다. 말은 안탄지 2년이나 됐지만 거절할 수 없어 말에 올라타게 되고, 그녀는 말을 타고 가다가 흙덩이가 얼굴에 날아들게 된다. 안장에서 서서히 미끄러지게 되고, 말이 그녀를 걷어차게 되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가 없다. 모든 걸 다 가지고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여인이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말을 타다가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이 가진 걸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이 있었지만, 그 욕심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줄 생각지도 못했을테니 말이다.
레이디 개럿은 수많은 기사와 연애로 이른바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녀의 애인 샤를은 잘생기고 남자다웠지만, 그녀는 샤를과 마지막으로 만나 결별을 위해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 기차 안에서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왼쪽눈썹부터 마스카라를 칠하기 시작한다. 정차했던 기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며 출발하는 바람에 그녀는 비틀거리게 되고 볼에는 마스카라가 위아래로 검은 자국이 생긴다. 그녀는 화장실을 나가려고 했지만, 화장실 문은 잠겨서 나갈 수 없게 되고,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화장실에 갇히게 된다. 누군가 화장실에 왔었지만 안에서 잠긴 문 때문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고, 그녀는 샤를에게 말할 이별을 연습하기도 한다.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손잡이 때문에 기괴한 상태로 갇혀버린 그녀는 자신을 구해줄 남자만을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 기차역에 도착할 때쯤 그녀는 구출되었고, 평온한 상태에서 기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샤를을 만나 이별 통보 대신 언제 결혼하느냐는 말을 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소설이었다. 아무 걱정이 없을 때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데, 막상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때는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기차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분명 샤를에게 이별 통보를 했을 것이다. 그럼 화장실 문이 순간적으로 오작동 된 것은 샤를에게는 대단한 행운인 것이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삶의 순간순간들은 잔인한 현실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맞닥뜨림으로써 빠지게 되는 충격과 상실감을 반경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은 의외로 하나의 시선, 한마디의 말, 한 순간의 충동에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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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삶의 순간순간들은 삶의 반복이 단절된 순간에 갑자기 맞닥뜨린 이들이 빠지는 충격과 상실감을 반영한다… 고 이 책의 소개글이 말한다. 양장 도서라기엔 두께감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임에도, 그 안에 19편이나 되는 소설이 실렸으니, 편 마다의 이야기가 얼마나 짧은지 예상해 봄직하다. 그런데, 어? 이상하게도 그 여운은 한 권이 하나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소설 못지 않게 상당했다. 가히 '폭넓은 독자층과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작가' 그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집이라 할 만 했다. 어려서는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는 프랑스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아, 저 나라는 나랑 정말 안맞아’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외면했었다. 막연하고, 몽환적이고, 삶의 고단함과는 거리가 먼, 그저 잘사는 나라 국민들의 뜬금없는 이상 타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뀔수록 점점 그 거리감은 좁혀지고, 마주하는 작품마다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그들의 색깔이 달라지진 않았을테니, 내가 달라졌다고 말 하는게 맞을거다. 새삼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우울하지는 않았다.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매력의 친구를 사귄 것으로 그 보상은 충분했으니까. 프랑스 예술은 장르 불문 특유의 감성이 짙게 묻어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근간에 본 영화 <비러브드>가 끊임 없이 떠올랐던 것도 그 때문일것이다. 흥미진진하거나 시간을 잊을 만큼 몰입되는 맛은 없지만만, 한 번 보면 꽤 무겁다. 발 끝에 묶인 보이지 않는 사슬이 나를 잡아 끄는양 그렇게 한없이 침잠한다. 소설을 다 읽은 나는 영화 <비러브드>에서 마들렌이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내가 ‘사랑하느냐 혹은 사랑받느냐’의 차이 안에서 ‘다만 더 나은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인간은 결국 어떤 선택 안에서도 외로운 존재로 남겨진다. 나는 이 대답을 <길모퉁이 카페>의 열 아홉가지 ‘상실’에서 얻었다. 덕분에 아마도, 이전에 먼저 만났어야 할 사강의 다른 소설들을 3월 내에 모두 만나보고 그 끌림에 더 무겁게, 더 깊게 빠져들 것만 같다. 한없이, 한없이… 외롭게, 외롭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