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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올해의 문제소설: 신인류의 한국전쟁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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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올해의 문제소설《올해의 문제소설》은 매년 상반기 국내 문단에 발표된 단편소설 중 문제작을 선정, 이들을 엮어 출간된다. 1998년부터 같은 작업을 해오고 있으니 어느덧 16년째. 척박한 우리네 문학 지평에서 16년 동안이나 꾸준히 젊고 신선한 작품들을 발굴, 대중들에게 소개해오고 있는 것이다.  98년이면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던 해, 겨우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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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올해의 문제소설

《올해의 문제소설》은 매년 상반기 국내 문단에 발표된 단편소설 중 문제작을 선정, 이들을 엮어 출간된다. 1998년부터 같은 작업을 해오고 있으니 어느덧 16년째. 척박한 우리네 문학 지평에서 16년 동안이나 꾸준히 젊고 신선한 작품들을 발굴, 대중들에게 소개해오고 있는 것이다.

  98년이면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던 해, 겨우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내가 힘겹게 새벽잠을 설쳐가며 멕시코와 네덜란드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는 우리 국가대표팀을 지켜보던, 이어진 벨기에전에서조차 우리나라가 선제골을 실점하자 결국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이 들고 말았던 시절이다-그리고 다음날 방송 3사가 하루종일 다시 틀어주던 유상철의 동점골을 수없이 지켜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던 그 때, 그 때가 1998년이다.

World Cup 1998 Belgium Vs Korea (YouTube)


  축구선수라곤 최용수, 고종수, 하석주말곤 모르던 아홉 살짜리 꼬마였던 내가 재작년에는 혈혈단신 유럽행 비행기에 올라 석 달 간의 배낭여행을 하며 바르셀로나의 캄 누에서 엘 클라시코를 직관하기까지 했으니, 그 동안 묵묵히 한국 문단의 한 축을 담당해온 《올해의 문제소설》이 새삼 고맙다. 책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가로서의 등단을 꿈꾸는 10년차 작가지망생으로서. 2010년 우연히 광화문의 한 서점에서 《2010 올해의 문제소설》을 발견한 후, 조만간 내 소설도 같은 지면상에 실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년 읽어온지도 이젠 네 권째다.

  별다른 이유는 없이 예년 보통 때보단 한참 늦게 손에 든 《2013 올해의 문제소설》. 그런데 올해는 지난 세 권의 책과는 무언가 다르다. 물론 매년 수록된 작품들이 다르고 작품마다 그들이 지닌 문제의식은 늘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마는, 올해는 어쩐지 공기가 달랐다. 매일 들이 숨쉬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비율이 아주 미세하게 바뀐 것 같달까.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호흡기관이 먼저 직감하는 그런 종류의 미세한 다름이 있었다.


1950-1953, 한국전쟁 그리고 휴전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자. 이제는 한 세기의 끝이 아니라 그 중간이다. 가뜩이나 일제에 의해 35년 간 가혹한 수탈을 받으며 피폐해진 국토는 전쟁 동안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그러던 1953년, 마침내 전쟁이 일단락됐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것이다.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나뉘었다.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또는 정전에 불과할 뿐이다란 지적은 정확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 다른 체제의 남과 북의 분단은 고착화됐고, 어쨌든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그렇다고 남과 북이 아주 완전히 갈라서서 서로 모른채 살았다는 건 아니다).

F.L. Scheiber, Seoul, 1950, LIFE (Google Archive)


  굳이 '한강의 기적' 같은 낯부끄러운 단어를 써야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아무튼 휴전 이후 실로 엄청나다 할 변화가 이 땅에서 벌어진 것 만큼은 분명하다. 일제와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마을이 생겨나고 도시가 생겨나리라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재건은 빠른 속도로 전개됐고 폐허 위엔 아스팔트가, 다시 그 위엔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이제 우리 땅 위에서 전쟁의 흔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건 비단 물리적인 영토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테다.

  매년 심심치 않게 대학생 중 몇 퍼센트가 혹은 청소년 몇 명 중 몇 명이 한국전쟁의 발발연도를 모른다는 둥의 기사를 접하곤 한다(참조) 그 수치는 매년, 그리고 각 언론사마다 다르지만 아무튼 일반 대중이 느끼기에 심각하다고 여겨질 만한 수치임은 분명하다-그러니까 언론에서 앞다투어 보도하겠지. 한국전쟁은 어느덧 우리의 집단기억 속에서도 지워져 가는 것일까.


2013, 휴전 60주년

올해로 한국전쟁은 휴전 60주년을 맞았다. 분명 지난 6월 25일에도 이 같은 사실을 여러 언론이 보도했을터. 그런데 어쩐지 휴전 60주년이란 말이 낯설다. 아마도 당시의 언론보도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 말인즉슨 내가 6월 25일이라는 날짜에 무관심하다는 것, 다시 말해 한국전쟁에 무감각하다는 뜻일테다. 1990년에 태어난 내게 전쟁은 그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경험했던 무엇, 그리고 기껏해야 전후세대인 우리 어머니 아버지-1950년대 후반에 태어난-가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과 그에 못잖은 반공교육을 남긴 어떤 것일 뿐이니까.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휴전협정 조인,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때문에 막상 '휴전 60주년'이란 단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래서 6월 25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4개월 여가 흐른 11월 초, 예년보다 늦게 읽어 내려가던 《2013 올해의 문제소설》 때문이었다. '문제의' 문제소설은 수록작품 중 두 편, 박민규 作 〈아...르무...리...오〉와 이기호 作 〈이정(李丁)〉이 그것. 두 작품 중 먼저 실린 박민규의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는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이 얼마만이지', 그러다 나중에 실린 이기호의 소설을 마저 읽고 나서는 불현듯 '그래, 올해로 휴전 60년이 지났지.'

  처음 박민규의 〈아...르무...리...오〉를 읽으면서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건 소설의 주인공이 인간의 음성으로 굳이 발음하자면 '아...르무...리...오'라고 밖엔 표기할 수 없는 외계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1954년 6월 측정할 수 없는 먼 곳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누군가에 관한 얘기이다.'(138쪽) 휴전협정이 체결된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1954년 6월이라는 소설의 시간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거나 아니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적을 다뤘더라면 오히려 익숙했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작품이 그 때를 그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전후시대라니. 이건 그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나 모의고사 언어영역 지문에서나 보던 소설이 아닌가-내용이나 형식이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그래 박민규니까, 뜬금 없을 수도 있지 뭐.

  그러나 이기호의 소설 〈이정(李丁)〉에 이르러 나는 2013년 문제의 '문제소설'이 문제 삼는 전쟁과 전후 시대를, 그저 뜬금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는게 아닌가 하는 질문과 마주했다-이정(李丁)은 드라마 《야인시대》 덕분에 당시 모든 초등학생들의 동지였던, 그 이름도 유명한 '박헌영 동지'의 아호(雅號)다. 물론 내가 매년 발표되는 모든 소설 작품을 읽어온 것은 아니다. 그 중 일부, 극히 일부만을 섭취해 왔다는 것이 솔직한 얘기. 하지만 《올해의 문제소설》을 비롯해 《젊은 작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등, 문학성으로나 대중성으로나 인정 받은 작품들을 엮어 놓았다 할 수상작품집 만이라도 매년 읽어왔던 것도 사실. 때문에 물론 한 해 동안 발표되었을 수 백, 수 천편의 작품 중 단 두 작품 만을 사례로 쉬이 단정할 문제는 아님이 분명하나, 분명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내 직감이 완전히 잘못 짚은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만 60년 3개월 15일의 차이.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시점-2011년 11월 11일-은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만 60년 3개월 15일째 되는 날이다(아마 이 글이 게시될 시점에는 며칠-설마 몇 주?-이 더 흘렀을테지). 날짜로는 22023일째 되는 날이라고 한다. 다시 시간으로 환산하자면, 직접 해보길 바란다-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24를 곱하면 된다. 햇수로 60년, 나는 겨우 그 중의 마지막 23년을 살았을 뿐이지만, 정말이지 그 동안 많은 일이 이 땅에는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태어났다(나처럼).

응답하라 1994, tvN, CJ E&M블로그


  우린 X세대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또다른 신인류에 밀려 모두 멸종해버렸지만, 내 스무 살에 우린 인류 역사상 최첨단의 문명을 소비하는 신인류였다. PC통신으로 사랑을 찾고, 삐삐로 마음을 전하며, 음성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던 우린 역사상 가장 젊은 인류였다. 


응답하라 1994, 제 3화 〈신인류의 사랑〉, tvN


  세대라는 말을 많이들 쓴다. 그만큼 세대차이라는 단어도 함께. 만약 인간이 아메바와 같아서 그저 세포 분열만으로 번식한다면, 그리하여 인간의 선조와 그 후손이 온전히 동일하다면 세대의 구분은 무의미할 것이다. 연대순으로 제 1세대, 2세대, 나아가 현재의 세대와 미래의 세대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첫 새대는 그 다음 세대와 같고, 그 다음 세대가 우리의 세대와 같으며 우리의 세대는 미래의 그 어떤 세대와도 같을 것이므로.

  하지만 사람은 남녀가 만나 두 사람의 성행위의 결과로,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수분열의 과정으로 그 후손이 잉태되고 세상에 태어나는 만큼, 그 자손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가운데 그 차이 역시 뚜렷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붕어빵이라고 불릴 만큼 자식이 그 부모를 쏙 빼닮았다고 하더라도, 그와 그의 부모는 엄연히 다른 생명체요 독립된 인격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식 세대는 그 부모 세대로부터 그들의 문화적 자산 또한 물려 받는다. 하지만 자식 세대가 딛고 서있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토대는 끊임 없이 변화하고 그리하여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의 문화적 유산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변용, 새롭게 창조해 낸다. 때문에 세대의 구분은 유의미한 것이 되고, 세대 차이는 늘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갈등을 수반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것이든, 그 반대든지 간에.

  보통 가족 세대를 구분함에 있어, 한 세대를 30년 주기로 잡는 경향이 있다. 한 여성이 태어나 첫 출산을 할 때까지의 평균 기간을 약 30년으로 상정하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세대'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비판의 여지가 다분한 기준이기는 하다). 이러한 기준을 따를 때, 휴전 60년이라는 시간은 휴전 이후 어느덧 두 세대가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금 2013년 가을에 태어난 이들의 조부모 역시 휴전 이후에야 태어났다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한 한국 전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 역사상의 첫 세대요, 그러므로 신인류라는 뜻이다(단순화에 대한 양해는 생략한다. 동시에 이것으로 대신한다).


신인류의 한국전쟁 기억법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전통적인 대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이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오늘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아우르는 사회 교과서의 진리다-적어도 6~7차 교육과정에서는 그랬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가족만 해도 부모와 자식의 2세대로 구성된 가족이며, 그나마도 막내인 내가 상경하면서부터는 가족 해체의 뼈아픈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내 주변을 둘러봐도 3세대로 이루어진 가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과거에는 자녀의 사회화 과정에 있어 (외)조부모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컸던데 반해, 오늘날에는 부모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며(미취학 아동의 경우) 그만큼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유대도 깊어졌다고 사회 교과서는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그들의 경험을 전해 듣듯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곤 하는 것이다. 또한 만날 기회가 잦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명절 때나 가족의 경조사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시대가 많이 변했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날 옛적 이야기'는 여전히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나의 조부와 외조부께서는 모두 내가 세상에 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에 그들을 뵐 기회는 없었지만,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때로는 부모님을 통해 때로는 그 분들로부터 직접 전해 듣곤 했다. 많고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어린 시절 나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했던 것들은 단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의 것들이었다. 지금도 내게 한국전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사책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할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것이다. 이렇듯 1990년에 태어난 나만 해도, 적어도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태어날 새로운 세대, 신인류에게는 모든 것이 간접적인 형태로만,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기억이라기 보다는 국가와 세계의 역사로서만 한국전쟁은 존재할테다. 우리가 지금의 임진왜란을 역사책이나 기타 비슷한 매체를 통해서만 배우고 경험할 수 있듯이, 지금부터 태어나기 시작할 신인류에겐 한국전쟁 또한 그럴 것이고,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말로써 전해지는 기억이 아니라 오로지 문자로서만 전해지는 역사. 그리고 개인의 경험이 아닌 집단의 경험, 민중의 상처가 아닌 양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서의 역사.

  이대로라면 신인류에게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방법이란 없어질지도 모른다. 남은거라곤 오로지 역사적 지식으로서의 한국전쟁 뿐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들이 태어난 이 땅은 여전히 허리가 끊긴 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도,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자꾸만 벌어져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과 반목으로 덧나고 있는데도. 그러므로 지금 당장, 우리는 신인류가 한국전쟁을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우리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들려준 것과 같은 이야기 말고 더 나은게 어디 있겠는가. 알듯 모를듯 존재하던 새로운 인류의 요청에, 두 명의 예민한 이야기꾼은 그래서 소설을 썼다. 한 명은 신인류의 요청에 외계인과 교신했고, 또 한 명은 2013년 오늘에 박헌영을 초대했다.

  각각 1968년과 1972년 출생인 두 작가가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의 부모와 (외)조부모로부터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을 물려 받았을 그들, 또 〈장마〉나 〈광장〉 같은 전후소설을 읽으며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갔을 그들은 이야기의 재구성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그들 자신만의 기억을 쌓아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세대를 위해, 그들이 자신들보다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이야기의 유산을 그들 나름대로의 상상력과 작가의식을 통해 재생산한 결과물이 2013년의 두 '문제의' 문제소설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를 잠시 당혹스럽게 했던 올해의 문제소설은 절대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닐 것이며, 또 예외적이어서도 안된다. 차차 세상에 태어날 수많은 신인류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생산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많은 수의 재능있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작품들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3.11.01-'13.11.14

감자빵(http://inplaceoutof.blogspot.kr/)




s*******v 2013.1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