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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떠났다가 성경에서 해답을 발견하고 이후 ‘회의자의 사도’가 되어 수많은 회의론자들을 다시 돌아서게 한 지은이의 탁월함이 잘 드러나 있는 책 [영광의 무게]. 왜 별점은 5가 아닐까 생각해보니 조금 어려워서?^^; 참 신앙의 길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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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독교의 궁극적 관심사가 개인도 집단도 아님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영생을 상속할 수 없습니다. 자연적 자아도, 집단적 대중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새로운 피조물만이 영생을 상속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의 큰 모욕을 용서하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끊임없는 자극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들볶아대는 시어머니, 윽박지르는 남편, 바가지 긁는 아내, 이기적인 딸, 거짓말쟁이 아들을 계속해서 용서하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영광의 무게 중 발췌
코로나19 집단 감염 중 개신교계로 인한 발병으로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도서는 그리스도 신앙의 공공성을 돌아보게 해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많이 이지러진 상황인지 더욱 깊은 공감과 함께 변혁을 도모하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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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학적 관점으로 옮긴 것이 꿈에서 벗어나 깨어난 상태로 옮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독교 신학은 과학, 예술, 도덕, 그리고 기독교보다 하위에 있는 종교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관점은 이런 요소들은 물론이고 과학 자체와도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저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습니다.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제적 동기나 성적 동기가 우리 도덕주의자들이 ‘세상’이라 부르는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거기에 야망을 보탠다 해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선택된 소수에 들고 싶은 욕심, 내부에 들고 싶은 갈망은 야망으로 단정 짓기 어려운 많은 형태를 띱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내부패거리로부터 구체적인 이익을 바랍니다. 권력, 돈, 규칙을 어기는 자유, 일상적 의무의 회피, 징벌의 모면.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더해 은밀하고 달콤한 친밀감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광의 무게 중 발췌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인간은 인간다움을 입을 수 있다. 그외에서는 인간은 어떠한 업적과 부를 쌓는다 해서 인간다움으로 설 수 없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참되신 영광스러움이다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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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그저 죽어서 사라질 존재가 아닙니다 국가, 문화, 예술, 문명과 같은 것들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며 그것들의 수명은 우리 개개인에 비하면 모기의 수명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농담을 주고받고, 같이 일하고, 결혼하고, 무시하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들입니다 불멸의 소름끼치는 존재나 영원한 광채가 될 이들입니다
전쟁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원래부터 있던 상황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될 따름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벼랑 끝에서 살아왔습니다 인류 문화는 언제나 그 자신보다 무한히 중요한 것의 그늘에서 존재해야 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을 때까지 미뤘다가 지식이나 미를 추구하고자 했더라면 그 추구는 아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영광의 무게 중 발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성전되는 인간됨을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게 하는 CS 루이스의 강연집이다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만에게 충성하고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된 자녀들을 이용하고 압제하는 경우가 참 흔한데 그러한 실제 신앙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원수까지 사랑으로 품으며 살 수 있는가 깊이 있게 숙고하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도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