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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부터 정치학을 구원하려는 기도를 가진 20세기 독일계 유대인 아렌트는 철학과 신앙의 합일을 추구한 5세기 북아프리카의 로마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신학사상과 종교적 정체성에 녹아있던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교회의 사제로서 간직하던 성 바오로적 입장간의 긴장관계를 읽어낸다. 386년, 한때 마니교 신도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스런 계기로 인해 우연히 성 바오로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된 후 독실한 기독교도로 개종한다. 아렌트도 나름의 개종 경험이 있다. 바로 1920년대의 풋내기 철학자에서 1950년대의 강단 정치학자로 거듭난 일이 그러하다. 고대의 철학왕 플라톤과 현대의 철학왕 하이데거의 전제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는 아렌트로 하여금 철학과 정치학의 긴장관계를 확연히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한동안 하이데거의 사상과 선을 그었던 아렌트는 만년에 다시 나치를 지지한 하이데거를 옹색하게 변호했다.
아렌트는 역사적인 철학왕들로부터 정치학을 구제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철학과 정치의 합일을 나름의 방식으로 시도하게 된다. 이를 위해 아렌트는 방법론적으로 독일 현상학과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결합하는 접근법을 견지한다.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탄생의 철학을 빌어서 하이데거의 죽음의 철학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시도한 셈이다. 아렌트는 서구 역사상 '최초의 근대인'이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위대한 종교인이나 사제가 아니라 사랑을 논한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파멸과 멸망의 세계성 앞에서 새로운 세계의 창조의 가능성을 모색한 탄생성의 철학자로 재해석한다.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세계와 분리되는 동시에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지금'과 메모리아(기억) 개념을 전유하여 자신의 '눈크 스탄스(nunc stans, 정지된 현재)'로 변형시키는 동시에 그것의 의미를 독일 실존철학의 맥락으로 재해석한다.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존재론 전통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실존주의적 시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 악, 자유, 의지, 선택의 자유, 기억, 상상, 꿈, 환각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피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나 아렌트 둘 다 결정론을 배격하고 자유의지론을 지지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론은 칸트의 형식적 자유보다는 헤겔의 실질적 자유론에 가깝다. 자유로운 선택은 자애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애가 바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크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둘째,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셋째, 세계와 세계적 욕구들로부터 소원해진 신자에게 이웃의 적실성이란 무엇인가? 아렌트의 이런 문제의식에 답이라도 하듯, 두 편집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아렌트 논문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신앙은 인간의 함께함(togetherness)과 상쇄되지 않는다. 구원의 메시지는 세계에 대적하여, 단순히 그것과 별개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도착했다. 지상의 도시 자체는 철폐된 상태이지만 신자는 여전히 그것에 맞서 싸우라는 요청을 받는다. 과거는 신자의 완전한 고립 불가능성 때문에 존속하여 작동한다. 신자는 홀로 행동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혹은 그들에 대항해서만 행동할 수 있다."(7쪽)
오늘날 아렌트의 공식 평전이라 말할 수 있는 책은 아렌트의 뉴스쿨 대학원 제자인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이 쓴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 사랑을 위하여](1982)다. 그런데 영-브루엘은 아렌트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정하면서 아렌트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연계성을 축소시키고 둘의 사상적 유사성을 배제한다. 독일계 유대인 사상가 다그마 바노우(Dagmar Barnouw)가 [가시적 공간들: 한나 아렌트와 독일계 유대인의 경험](1990)에서 영-브루엘의 아렌트 전기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영-브루엘의 전기는 풍부한 문건들에 기초하여 기술되었으며 아렌트에 관한 궁금증을 푸는 데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이 전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아렌트의 유럽-독일의 측면을 잘 다루지는 못했다. 특히 그것과 그녀의 미국에서의 경험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간과했다. 그 결과 현재 아렌트의 지적 위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지 못한다."(219쪽)
1929년 아렌트의 세계는 곧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인적 문제의식은 '나는 나 자신에게 문젯거리가 되었다'이다. 이 문제의식은 자기를 성찰하는 인간 실존의 특성, 즉 우리 모두의 실존적 딜레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제의식은 선택의 자유 대 은총, 자애 대 탐욕, 지상의 도시 대 신의 도시에 대한 논의를 제공한다. 이는 자유의지의 한계, 선택의 전망, 세계적 습관들의 구속력, 공동체들의 도덕적 토대에 대한 검토로 이어진다. 아렌트의 정치윤리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주의를 배제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내적 경험의 형이상학'으로, '믿음이 없다면 이해도 없다'는 식의 신앙주의를 무엇보다 강조하는데 아렌트는 이런 신앙주의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과 교회의 권위에 대한 교조적인 추종도 논외로 제외시켜 버린다.
아렌트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를 상대로 개입과 불개입을 거행하는 개인들의 모범이 된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죽음과 필멸성 대신에 아우구스티누스의 탄생성과 태어남에 주목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탄생성을 인간 창조성의 모델이자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간주하였던 반면, 하이데거는 죽음과 필멸성을 행위의 원천으로 보았다.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올바른 사랑 '자애'를 세계사랑으로 재번역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적 사랑은 바로 신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이는 지상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영적인 사랑의 형식이다. 반면에 우리가 이해하는 기독교적 사랑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과 가엾은 이에 대한 사랑을 유독 강조한다.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사랑의 질서, 즉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한다.
"'사랑'은 개인의 개별화와 집단의 집합성 둘 다의 원천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수단이자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어떤 실존적 연결고리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애는 아렌트로 하여금 존재를 초월적인 창조주로서 재정의하게 하며, 동시에 존재를 인간 조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킴으로써 하이데거 저작 속의 어떤 근본적인 긴장관계를 극복하게 한다. 아렌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애를 전유한 효과는 야스퍼스의 '과정 속의 사실적 삶'과 하이데거의 '존재의 물음'을 합침으로써 이 둘을 초월하는 것이다." (235쪽)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사랑이란 일종의 갈망이다. 갈망이란 갈구하는 욕구인데, 근본적으로 고립된 개인과 현실의 나머지 부분을 연결하는 실존적 고리가 된다. 여기서 갈망은 올바른 사랑인 자애와 그릇된 사랑인 탐욕으로 구분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자애는 모든 선의 근원이고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자애는 공유된 가치들에 기초하는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과 관계되며, 탐욕은 물질주의와 무력이 팽배한 기존 세계를 강화한다. 탐욕은 습관으로서 일상화되며 죄가 삶을 통제하도록 하고 생각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 탐욕은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과 관련 깊다.
근대성의 위기는 사유와 현존의 분리에 있다. 공영역과 사영역이라는 공간의 은유를 빌어 설명한다면, 근대성의 위기는 사적 이익이 공적 관심이 되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고대적 구분이 흐려졌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존재론적 의미들의 상실 현상이 바로 근대성의 위기였다. 문화적 기억상실 혹은 역사적 기억상실에 저항하여 아렌트는 기억과 회상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이야기꾼들이 사건들을 기억이라는 무시간적 영역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재정립함으로써 근대적 세계의 신화를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기억' 개념은 과거와 미래의 무한성이 인식되고 보전되는 내적인 삶의 장들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기억이 없다면 참회도 불가능하다. 아렌트에게 기억이란 절대과거와 절대미래를 탐색하는 선결조건이다. 정지된 현재는 과거와 현재가 영원한 현재에서 만나는 정신적인 공간이다. 또한 기억의 정지된 현재는 판단의 토대이다. 기억상실이 세계로부터의 소외를 부른다면, 기억의 정지된 현재는 세계와의 화해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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