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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읽고 싶다 내가 한 페이지를 읽을 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두 장 정도를 읽는다 조급한 마음에 나도 최대한 서둘러서 읽고 나면 도통 뭘 읽었는지 내용도 분위기도 알 길이 없어서 그냥 천천히 다시 읽게 된다 *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다 못 읽고 있다 * 구실 좋은 핑계 같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 도리스 레싱 그래도 내 마음에 위대한 작가라는 인상으로 남아있다 도리스 레싱 나는 기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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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이라고 하니 학창 시절 새 학기가 되면 문구점으로 달려가 새 공책을 샀던 기억이 떠오른다. 색색의 공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공책들을 골라 표지에 이름을 쓰고 과목명도 적었다. 첫 장을 쓸 때는 글씨도 또박또박 예쁘게 쓰고 줄도 자를 대고 단정하게 긋다가 뒷장으로 갈수록 글씨는 삐뚤빼뚤, 줄은 대충대충, 어지러운 모양새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마구 쓰다가 끝까지 다 못 쓰고 버린 공책이 몇 권인지. 소중한 살을 내어준 나무들에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도리스 레싱의 장편 소설 <금색 공책>에도 주인공 '애나'가 새 공책을 사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공책 네 권은 모두 18인치쯤 되는 너비에, 겉장은 싸구려 물결무늬 비단처럼 광택이 났다. 색으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각각 검정, 빨강, 노랑, 파랑이었다." (1권, 118-9쪽) 애나는 네 권의 공책에 각각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검은색 공책에는 애나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노란색 공책에는 경험한 이야기로부터 상상한 이야기를, 빨간색 공책에는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파란색 공책에는 그날 그날의 일기를 적는다. 한 사람인 애나가 네 권의 공책으로 상징되는 네 개의 분신을 가진 것처럼 애나의 삶 자체가 분열되어 있고 모순 투성이다. 애나는 젊은 시절 담배 농장주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영국의 식민지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그 남자와 결혼해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곳에서 공산주의자 청년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썼는데 그 소설이 히트를 쳐서 지금까지도 인세를 받고 있다. 애나는 공산주의자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에 가입한 적도 있지만 공산주의 이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는 페미니스트이지만 남성 없이는 아무런 욕구도 만족도 느끼지 못한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그의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을 못 버린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르니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발벗고 나서서 일자리를 찾아보지는 않는다. 애나가 첫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오랫동안 다음 작품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모순 때문인지 모른다. 젊은 시절 애나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했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전쟁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강렬한 경험을 했고 이걸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소설을 썼으니 발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면 쉽게 몸을 허락했고, 그것이 '자유로운' 여자라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공산당이 몰락하는 모습을 볼수록, 자신의 소설이 평론가와 독자들로부터 혹평을 받거나 아예 잊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자신을 '신식 여자'라고 불렀던 남자들이 각자의 가정에 있는 '구식 여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수록, 애나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걷는 법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걷지 못하게 되듯이, 사는 법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애나는 결코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다. "'개인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 하지만 유칼립투스 아래 그 무리를 회고하면서, 내 기억 속에 다시 그들을 되살리면서, 그 말이 헛소리에 불과함을 불현듯 깨닫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메리로즈를 만난대도 그녀는 어떤 몸짓을 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눈길을 돌릴 테고, 바로 그 때문에 파괴될 수 없는 메리로즈로 남는 것이다." (1권, 196쪽) 그렇다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하나의 사상이 한 사회를 휩쓸 때 누구는 경도되고 누구는 경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폭력적인 구분을 누구는 받아들이고 누구는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나는 한때 그것이 사회 경제적인 계급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가, 교육 수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가, 종국에는 그 어떤 압력이나 제도로도 변경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자신이 머리로는 공산주의나 페미니즘 같은 사상에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한 사상에 합치되는 삶을 살지 못하는지 알고 싶은 나머지 심리 상담을 받고 꿈 해석을 청한다. 결국 애나는 꿈속에서 자신에게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한 결과가 현재의 자신이라는 답을 얻는다. "백가지 인생을 사는 것 같았고, 내가 아직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했거나 경험하기를 거부한, 혹은 내게 맡겨지지 않았던 여성으로서의 역할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나는 삶에서 그것들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금 그 역할을 연기하는 비운에 처했음을 알고 있었다." (2권, 351쪽) "내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들이었지만 감독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2권, 371쪽) 예쁘다고 산 공책을 끝까지 쓰지도 않고 버린 어린 날의 기억처럼, 인생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배신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때 옳다고 믿었던 것을 끝까지 옳다고 믿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모순이나 분열과 갈등하는 과정 없이 순탄하고 온전하게 믿음을 고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강한 신념이라기보다는 아집이나 미성숙이 아닐까. 인간을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부자와 빈자 등으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분열의 속성이 사회에 있다고 탓하기는 쉬우나, 그러한 속성이 인간 -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반성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 작품에서 그러한 고백과 반성의 목소리를 읽었고, 그것이 이 작품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반열에 올렸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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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울프에게는 네 개의 공책이 있다. 정치의 기록인 빨간 공책, 경험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이야기(엘라와 줄리아가 나오는 이야기)인 노랑 공책, 애나 자신의 기록물인 파란 공책, 작가 애나 울프의 기록은 검은색 공책이다. 네 개로 나뉜 공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인간의 복잡한 면을 우리는 애나에게서 발견해낼 수 있다. 그녀가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기민하게 캐치하고 혼자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녀의 삶이 조금 피곤해보이기도 한다. 애나가 처한 상황이 그녀를 더 생각이 많고 예민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면도 있다. 모든 것이 분열되어 있는 시기, 냉전 체제에서는 옳다고 믿었던 게 무너지고 믿었던 신념이 깨진다. 그러면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이 옳은 것일까? 몰리의 아들 토미는 눈이 멀어버리고서야 어떤 안정을 느끼는 듯 하다. 토미는 전혀 다른 부모밑에서 자란다. 몰리의 세계(공산주의였던)와 리차드의 세계(자본주의)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옳은 것인지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려있다. 그래서 토미는 우유배달부 아이에게 선택지가 하나인 것이 부럽다고 한다. 자신에겐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멀어 선택지가 좁아진 지금이 오히려 토미에겐 평화로운지도 모르겠다. 이념싸움은 그저 이념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라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발생한다. 갈등과 대립이 분분한 토미가 사는 세계를 신생국이 생기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종종 삼인구조가 등장한다. 토미 - 에나 - 몰리, 리처드 - 애나 - 몰리, 톰 아내 - 엘라 - 톰 같은 식으로. 애나와 몰리는 절친한 친구이지만 그녀들은 남자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가장 친밀감을 느낀다. 남자나 당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얘기하고 그런 말을 하는 자기 스스로를 경멸한다. 애나가 애나를 본다. 분열되는 애나다. 소설의 챕터는 자유로운 여자들이지만 그들은 전혀 자유로워 보이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없어보인다. 애나가 발 딛고 서 있는 사회가 그녀가 혼자 있을 때도 작동하기 때문에 그녀는 비혼이어도 완전히 그녀가 속한 규범, 스스로를 갇히게 하는 울타리를 너머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래서 애나는 망령같은 얘기를 나누며 자신을 경멸하고 그러는 자기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된다. 앞서 말했듯 삼인 구조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한데, 제3세계나 식민지화된 존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있다면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이 있고, 항상 배척되는 것이 존재한다. 사실 이것이 그르며 저것이 옳다는 건 언제나 다른 어떤 것을 소외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애나가 속한 그룹원들은 서로 어울려다니면서도 서로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싫은 것. 생각이 많고, 관찰하고, 예민하게 감지하는 애나의 삶이 버거워 보이는 것은 애나가 자기 자신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왜 그랬는지 검증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연유와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과 말이 진행되는 것을 관찰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애나는 끝없이 겪는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어떤 면을 너무 잘 알게 되어 스스로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리차드에 대한 애나의 시점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아직도 이런 류의 사람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한다고 착각하는 남자. "그 진이라는 여자 있잖아. 그 여자를 봤을 때 또 한번 계시의 순간이 왔지. 그 여잘 사랑한다고 리처드가 그러더라.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가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게 중요하지. 리처드는 어떤 유형을 사랑할 뿐이야. 자기 아랫도리를 후끈하게 만드는 그런 유형 말이야"(P50- <금색공책2>) 매리언의 말에서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에서 읽은 남자 인물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한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저 젊은 여자이다. 이어지는 매리언의 말처럼. "그런데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체구가 크고 갈색 머리에 가슴이 풍만한 그런 여자들을 사랑할 뿐이야. 젊었을 땐 나도 가슴이 참 예뻤는데."(P50) 여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모르겠어? 나로서는 그걸 웃기는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아."(P48) 사랑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두꺼운 장편 2권으로 구성된 <금색 공책>을 한 달이 넘는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읽어냈다. 정치와 이념,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로 이 책을 분석하거나 읽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한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고통받으며 사는 지를 볼 수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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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금색 공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작년 페미니즘 관련해서 어떤 책을 읽어볼까 생각하고 찾아보다가 만났던 책이에요. 실제로 책을 출간한 출판사 창비에서도 페미니즘을 중점적으로 광고했지요. 그래요. 이제 출판사들도 눈치 챙겨야죠. 누가, 어떤 성별이, 책을 "구입"하는지 깨달아야 할 때가 왔어요. 그러니까 알아서들 눈치 챙겨. 아무튼 이 책은 꽤나 분량이 많습니다. 한 권당 분량도 많은 데다가 2권이나 되어서요. 읽기에 만만치가 않겠다 생각은 했는데요. 막상 1권을 펼치자마자 만나게 되는 작가의 말을 읽다가 가슴이 턱턱 막혀 오더라고요. 시대가 변했어도, 기술이 발달했어도, 소녀가 처녀가 되고 아내에 이어 엄마가 되는 그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사람"이라 느끼는 순간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라는 걸 다시한번 느껴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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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 공책 2 자유로운 여자들이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집중했던 장면들은 토미에 대한 이야기였던거 같다. 다섯째 아이가 생각나서 계속 연관을 짓게 되었다. 그 이외 부분들은 거의 분노였다. 책 속에 나오는 남자들이 너무 미웠고 화가 났다. 그리고 그게 현실로 이어져서 신랑하고 한판 거하게 했다. 요즘들어 여자랑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마음도 뇌도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