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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짜증나.” 큰 아이 친구 중에 ‘짜증나’를 입에 달고 사는 친구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내가 되어보고 싶은 친구의 행동을 따라해 보라는 미션이 있었는데, 이 친구를 따라한 다른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그 행동이 바로 하루 종일 “짜증나”를 연발하는 거였다나? 그 뒤부터 짜증나 소녀는 그 말을 멀리 했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이 짜증나의 이미지라면.. 분명 좋은 모습은 아닐 테니까.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제목 한 번 죽(?)인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 많기에 책 제목이 “짜증나”일까?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책 표지엔 우스꽝스런 요괴(?)가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쥐고 비웃고 있다. 그 모습은 짜증난 우리의 얼굴 같아 씁쓸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짜증나 소리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짜증나는 일을 생각하려니 바로 머릿속에 떠 오른 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은밀하고 자잘하고, 단순하면서 한 번쯤은 생각했던 짜증남의 순간이 떠올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멋 부리고 싶어 꺼낸 분홍 스웨터. 하지만 가슴팍에 뚫린 좀 구멍도 짜증이 나고, 더운 날의 뜨거운 태양도 짜증이 나고, 사람을 공격하는 모기도 짜증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똥을 싸대는 비둘기도 짜증이 나고(이 부분에서 빵 터졌다. 비둘기 둥지로 가서 자신이 똥을 누고 말리라 다짐하는 모습이), 원터치 정어리 캔 뚜껑도 짜증이 나고(기억할랑가 모르겠다. 지금처럼 원터치 캔이 나오기 전에는 열쇠처럼 생긴 깡통따개가 있었다는 사실.. ^^), 상투적인 말, 버림받은 개도 짜증이 난다. 정성이라곤 전혀 묻어 있지 않은 기계음성 ARS 목소리에 짜증이 나고, 맛없는 쿠루아상에도 짜증이 나고, 차 앞 유리창에 과도한 장식을 한 차에도 짜증이 난다.
작가는 마흔 일곱 편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짜증남을 소개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짜증남이 너무 소소하고, 싱거울지 몰라도 소소해서 귀엽다. 자극적이고 낯 뜨거운 과잉 광고, 불법과 비리, 성 추행 사건 등. 우리나라는 왠만한 일에는 짜증나 소리를 하지 못할 정도로 헉, 헐, 대박... 칠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 작은 책에서 말하는 소소한 짜증남이 애교스럽다. 마흔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재미있고 사랑스럽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텔레비전에 비친 행복’편이다.
왜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행복의 이미지는 대개 돈을 많이 벌었거나 곧 볼 사람들의 이미지일까? 왜 이제 막 골을 넣은 축구 선수, 방금 선출된 미스 프랑스, 텔레비전 게임에서 방금 이긴 사람들일까? (중략) 행복할 다른 이유가 지구상에 없단 말인가? 다른 행복의 이미지는 없을까? 아무것도 아닌 일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은 왜 보여주지 않을까? 그저 여기 살아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는 사람은?
매일 아침 해가 뜨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 봄이라서 행복하고 나무에 싹이 터서 행복한 사람. 여름이라서, 더워서, 샘물이 시원해서 행복한 사람. 가을이어서 숲이 불타는 색을 띠어서 행복한 사람. 겨울이어서, 밖은 추운데 안은 따뜻해서 행복한 사람. 멋진 책을 읽어서 행복한 사람. 바람 소리를 좋아해서 행복한 사람. 말을 해서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어서 행복한 사람. 음악을 들어서 행복하고, 멋진 그림을 그려서 행복하고 또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행복한 사람. 마룻바닥이 반짝이고 자동차가 반짝여서 행복한 사람. 아이가 글쓰기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행복한 사람. 멋진 문장을 써서 행복한 사람. 고통이 사라져서 행복한 사람.
사람들은 “바보처럼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한 건 그렇게 바보스러운 일이 아니다 (127~129)
그러고 보면 나는,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짜증나 소리. 이젠 집어(?)치우고 행복해 소리를 할 수 있는 나, 우리가 되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