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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순교자의 나라’를 읽으며 200년전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어떻게 피를 흘렸는지를 알게 되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 1839년의 기해박해가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 수많은 신자들이 무고한 죽음을 당했고 선조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그대로 내놓았다. 그분들의 소박하면서 강직한 믿음은 나의 정신과 온몸을 전율케 했다.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마치 나를 기다리며 그 곳에 꽂혀 있구나하는 운명과도 같은 만남을 느꼈는데 ‘순교자의 나라’에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아 궁금해했던 이승훈 베드로와 정약용 요한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조선민족 1호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조정과 가정과 천주교사회에서 배교와 회개를 거듭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었고 정약용의 행보도 잘 기술되어있다.
윤춘호선생이 이분들의 서간, 진술, 교황청에 보관된 문서등을 연구하여 이승훈의 입장에서 정리하셨다고 한다. 저자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유혹앞에 좌절하는 순간들이 많은데 아니 더 솔직하자면, 나의 게으름앞에 좌절하는 순간들이지만 우리 조상들이 지켜낸 신앙의 발자취를 뒤따라 밟으며 나의 얕은 신앙이 부끄러웠고 힘들다고 내뱉은 말들을 모두 주워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도록 권하고 싶다.
이승훈에게 세례를 주었던 북경 북당의 예수회 그라몽신부가 이승훈에게 보낸 편지中
104. 출세에 대한 욕망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당신에게는 반반씩 있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는 세상에 대한 관심의 크기에 비례하는 법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 없으면 분노가 없을 리 없습니다.
정약용의 편지中 266. 내 가슴속에 믿음이 있는가? 죽은 믿음일지라도 믿음이 있긴 있는 것인가? 분명히 저는 믿음을 버렸지만 그 믿음이 죽어 내 몸과 영혼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죽은 채로 내 안에 남아 있다면 이 또한 믿음은 믿음일 것입니다.
20대 시절 뜨겁게 천주를 믿었던 그 흔적이 제 영혼과 마음에 남아 있고 십자가에 매달린 구세주 예수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일까 두려워하던 30대 시절의 방황과 번민의 흔적이 육십 노인이 된 제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인하려야 부인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아직도 정 아무개가 서학을 버리지 못한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서학을 믿는 것과 그 믿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깁니다. 믿음은 절대자가 주는 선물같은 것 아닐까요? 개인의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믿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닐까요? 혹시 제 마음속에 죽은 믿음이라도 믿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제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자의 선물일 것인데 그런 것이 제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