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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가운데 꿈꾸는 평화 세상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가운데 꿈꾸는 평화 세상" 내용보기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907번지 본적지를 두고 살아온 이에게 섬진강은 어머니의 탯줄 같은 양분을 공급하며 철부지 소녀를 철들게 했다. 철따라 다투어 피어나는 들꽃들을 마주하며 자연적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벗들과 함께 어울렸다. 얼어붙은 땅이 풀리기 시작하면 연초록 싹들이 대지에 기운을 더하고 섬진강 건너 햇볕이 잘 드는 다압면 매화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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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907번지 본적지를 두고 살아온 이에게 섬진강은 어머니의 탯줄 같은 양분을 공급하며 철부지 소녀를 철들게 했다. 철따라 다투어 피어나는 들꽃들을 마주하며 자연적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벗들과 함께 어울렸다. 얼어붙은 땅이 풀리기 시작하면 연초록 싹들이 대지에 기운을 더하고 섬진강 건너 햇볕이 잘 드는 다압면 매화 밭에는 청홍 빛으로 물들어 세상을 환히 비춘다. 온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여 애향반 깃발 아래 일렬로 줄을 서서 면소재지에 위치한 학교를 향했다. 십 리를 걸어 다니던 시절 봄이면 언덕배기에 올라 삐비를 톡톡 뽑아 씹어서는 단물이 빠지면 내뱉고 고운 빛깔로 들판을 수놓는 풀꽃들을 꺾어 한 움큼 쥐고 재잘거리다 보면 어느 새 동네 어귀에 다다랐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뒤란 앵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작은 열매는 볼이 통통해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농염한 색깔로 걸음을 멈추게 했다.

 

  시절 인연이 다하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거처를 옮겼을 때 낯섦이 익숙함으로 치환될 때 일상은 소소한 울림을 전하며 내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시인은 모악산 에서 지리산 아래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정을 붙이며 살기 위해 정성을 들였다. 곡괭이와 삽을 들고 반달 모양의 연못을 만들고 바위틈에 쪼갠 대나무를 잇대어 물길을 잡아두어 운치를 더했다. 옛 선비들이 마당에 파초를 심어두고 넓은 잎으로 떨어지는 청아한 빗소리의 울림을 즐겼던 것처럼 시인도 파초를 통해 고즈넉함을 달랬을 것이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들이 다칠세라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며 생명을 배려하는 데 시인의 넉넉함이 묻어난다.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품는 시간 생명의 탄생에 동참하려는 듯 숨 죽여 그 과정을 살피는 모습은 완두콩을 거두어들인 뒤 뿌리 내리고 살던 자리로 눕혀 밑거름으로 되돌려 또 다른 생명적 유기체를 위하는 배려로 비춰진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조금만 더워도 움직이기 힘들다며 아우성하는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 더위를 날려 보냈던 때를 추억하며 그 시절을 불러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아이들 표정은 여전히 마뜩치 않은 모양이다. 소년은 강으로 이어진 언덕에 몰고 간 소 말뚝을 박아놓고 소가 배불리 풀을 뜯어먹게 한 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섬진강으로 내달리기 일쑤였다. 소녀는 옆구리에 큰 소쿠리를 끼고 은빛 모래밭을 가로질러 강바닥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재첩을 잡으며 우리들만의 피서를 즐겼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질 때면 섬진강물은 범람하기 일쑤였고 그 때마다 황토 빛으로 가득한 강물이 길까지 올라와 물이 빠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강물은 자정작용으로 제 빛깔을 찾아 갔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허울 좋은 개발에 떠밀려 골재 채취로 섬진강 모래는 바닥을 드러내고 물이랑을 이루면 알이 굵은 누런 재첩은 화수분처럼 쏟아졌는데 그 모습은 추억 속에나 자리하니 안타까움이 더한다.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이 주는 선물로 밥상을 차리던 일은 가슴 속에나 자리하게 되다니 생명적 질서를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우주적 질서가 조화로운 사회도 인간의 자취가 잦아지면 자연적 질서가 이지러져 균형을 잃고 만다.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이들이 자연적 상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지에 따라 보존 상태는 원시적인 것에 가까울 것이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신비로운 푸른빛에 외경심을 품을 수 있었던 것도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삶을 잇는 이들의 맑은 마음이 투영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상식을 뒤집어엎고 생태계적 평형을 깨는 일을 서슴지 않은 전 정권의 국정 운영 책임자가 4대강 사업에 1000명이 넘는 이에게 국민들의 혈세로 훈장과 포상을 남발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다. 환경에 깃들어 사는 유기체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자는 취지로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다 생명 평화 순례단으로 오체투지하며 산천을 몸으로 느끼던 이들의 정성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처연해지고 만다.

 

   온전한 정신에 자발적 의지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들보다 적게 여겨지는 중년이어서인지 부박한 세상에 지치고 닳을 때면 이미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버린 부모를 대신한 고향은 아늑함을 준다. 삼태기 모양을 하고 있는 악양은 동쪽과 서쪽이 합쳐지는 어귀에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 앙금으로 남은 찌꺼기를 씻어 내리고 유장한 가락처럼 내면에 스며든다. 시인이 사는 동네는 악양면에서도 움푹 들어간 곳으로 산수가 수려한 만큼 골이 깊어 마음까지 넉넉히 떠받쳐 준다. 지인이 마련해 준 거처에 자신만의 공법으로 손수 원두막을 마련하고 갖가지 채소를 가꿔 철 따라 소박한 음식을 마련하여 이웃과 밥을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일상은 자발적인 선택이 주는 행복일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누군가를 학대하여 빼앗는 이기심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적 요소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머무는 곳마다 주인으로 자리할 수 있길 바라며 심원재에 머물며 관계 맺은 이들과의 소통 속에 행복을 발견한다.

 

 

 



n*****9 2013.10.22. 신고 공감 2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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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내용보기
강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녹조 라떼’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가만히 놔두는 것이 최고의 자연 사랑이라고 했지만 인간은 조급했다. 우리 스스로 일군 문명을 통해 자연을 감복시키고자 안간힘을 썼다. 곳곳에 도로가 뚫렸다. 물길이 뒤틀렸으며 생명들은 터전을 잃었다. 필요한 건 적극적인 저항이었다. 그러나 어디 생이 그리 쉬운 것이었던가! 제 살기에도 바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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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녹조 라떼’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가만히 놔두는 것이 최고의 자연 사랑이라고 했지만 인간은 조급했다. 우리 스스로 일군 문명을 통해 자연을 감복시키고자 안간힘을 썼다. 곳곳에 도로가 뚫렸다. 물길이 뒤틀렸으며 생명들은 터전을 잃었다. 필요한 건 적극적인 저항이었다. 그러나 어디 생이 그리 쉬운 것이었던가! 제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이었다. 격렬히 저항했어도 사실 정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네 위정자들은 이미 모든 것의 결론을 정해놓은 후 눈과 귀를 막아 버린 지 오래다. 고리타분한 개발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모든 것을 이끄는 데 그보다 더 단순한 방법도 없다. 모두가 투사가 될 순 없다. 저마다 제 삶에 있어 최선을 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혼자 좋은 꼴 보려고 그리 사느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저자와도 같은 형태의 삶을 사는 것도 저항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리산 자락에 정착했다. 삶의 방식은 지나치다 싶을 만치 고전적이었다. 세상에 버릴 거 하나 없음을 증명해보이려는 듯 배설물조차도 거룩히 여겼다. 이전에 살던 모악산 쪽에서 일부 살림을 데리고(?) 왔는데, 모든 게 보란 듯 울창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불편할진 모르나 결코 지루하지는 않은 삶. 주변의 모든 것을 가꾸고 돌보는 가운데 저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녀야만 하는 공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간직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잘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손을 통해 자라나는 것 같은 생명체들도 실은 자생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노력은 생명력이 보다 아름답게 싹틀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오만을 떨쳐버린 채 자연과 도란도란 지냈다. 짧은 시기에 재빠르게 키워 비싼 값에 판매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조바심은 낼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은 그의 상 위에 올라왔다. 제철의 의미가 사라졌다곤 하나 이제 막 솎아낸 나물 등이 하나둘씩 올라온 상이야말로 진수성찬이라 말할 만했다. 농사와 함께 더위와 추위를 나는 데에도 부지런함이 필요했다. 되도록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하는 게 그의 삶이었다. 장작을 패는 그의 도끼질이 힘차다. 세상 이치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쌓여온 울분도 그렇게 풀었다. 정신건강에도 아마 좋았을 거다.

실로 단순한 삶이었다.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았더라면 정말이지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삶이 가능했을 것 같다. 허나 좁은 국토, 높은 지리산 자락조차도 세상과의 단절을 허락지 않았다. 그를 화나게 하는 소식들로부터의 완전한 고립은 불가능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삶이 아주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을 듣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세간 사람들의 그와 같은 평은 모두가 마땅히 그리 살아야 하는데 오로지 그만이 그리 살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시(!)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수시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문명을 우린 익히 알고 있다. 어쩌면 쉬이 유혹 당하는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문명을 위대하다고 인류 스스로가 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삶이 곧 예술이었다. 모두가 지향하는 삶을 그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내려놓을 게 너무도 많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보니 우리는 그의 삶을 부러워하기만 한다. 실은 오래 전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윗세대에서는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다. 억지로 쟁취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것,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형태의 삶을 그에게서 배웠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은데 이제 그만 써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고도 하나 이럴 때일수록 그의 이야기는 빛난다. 점입가경. 나아질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는 현실인 만큼 그의 이야기로부터 위안을 얻길 희망하는 이들 또한 늘어났을 것 같다.

q*****2 2014.07.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