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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이상적 모습은 누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좋은 경쟁을 벌이고 진보와 보수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불안정할 때가 많고, 전쟁이나 세계적 경제위기와 같이 외부로부터의 위기에 취약하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큰 변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혁명을 지향했던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도 거기에 있었다. 대중 정당을 만들고 선거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민주정치에 참여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바라는 혁명의 길이 멀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민주주의는 혁명의 무덤”이라 불렀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등장했고, 대표적으로 아테네라고 하는 폴리스의 정치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2백년 정도 지속되었는데, 그 후 아테네 민주정이 몰락한 다음에는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오랫동안 역사에서 사라졌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다시 나타난 것은 13세기 중엽, 오랫동안 잊힌 상태로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라틴어로 번역된 다음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영어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뒤인 16세기말 프랑스어의 번역어로 소개되면서부터다.
19세기말까지 민주주의는 거의 대부분의 정치철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되었다. 민주주의를 ‘다수의 전제’나 빈자들의 선동 정치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보수적인 정향이 강할수록 더 심하긴 했지만 비판적 지식인들에게도 민주주의는 환영받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직접민주주의자 가운데 하나로 꼽는 루소 역시 자신의 책 사회계약론에서 민주주의는 신들에게나 어울리는 제도이지 인간이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거의 2천년 동안이나 잊고 있었던 민주주의라는 말이 불사조처럼 다시 부활해서는 아테네 민주주의와는 매우 다른 현대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 시민권, 인민주권, 공화국 등 현대 정치의 주요 개념들은 거의 모두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또 현대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보다 로마 공화정이나 르네상스 시기의 공화정과 유사성이 더 많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왜 유독 민주주의라는 용어만큼은 그리스에 기원을 둔 democracy라는 말로 보편화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몽테스키외나 제임스 매디슨처럼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디자인을 이끈 정치철학자들도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고대 아테네와 같은 민주정이 아니라 공화정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을 거치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대중의 정치 참여 요구가 강해지면서 이상하게도 공화주의라는 말과 민주주의라는 말이 병용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민주주의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확고한 시민권을 갖게 된 데는 투표할 권리를 갖지 못했던 노동자와 여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보통선거권 획득 운동의 성과와 함께, 이들이 대중정당이라는 조직 형태를 발명해 기존 체제에 도전했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는 그 말이 시민권을 갖는 과정에서부터 노동운동과 보통 사람들의 언어였다.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그 탄생에서부터 노동과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 하층의 배제에 반대하는 정치언어였다.
민주주의 운동은 20세기 초에 본격화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절정을 이루었다. 이 시기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은 대표적인 민주정치의 실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지 않았고 정치 불안이 계속되었다. 군국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하게 표출했고, 혁명파들은 민주주의가 개량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대중을 혁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며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민주주의가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르러서다. 다시 말해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뒤이은 세계대전의 비극적 경험을 거치고 나서야 “좌파는 혁명을 포기하고, 우파는 착취를 포기하는 길”을 받아들였고 그 위에서 민주주의가 비로소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