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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처음엔 이 시인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참회하는가 싶기도 했다. 아니면 이제야 철이 들었나 생각했지만, 20년 전에 처음 출간한 시집을 지금에 와서 다시 내놓았다고 하기에 그럼 아직도 철이 안들었나 하는 생각도 했다. 뭐~ 꼭 철이 들고 안들고에 따라 미안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산골 농부시인이라고 한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아내와 함께 자신도 노동자시인으로 살아가다가, 지금은 산골 농부로 살며 땀의 가치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시를 쓴다고 한다. 해서 시인의 시에는 고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평범한 말 속에 숨어들었지만 그것은 바로 사랑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소주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취한 날이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그리움이 되는 건/우리들의 사랑이었’음을 알기에 가난할수록 사랑이 깊어가는 행복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애달픈지/목숨하나 얼마나 모질고 질긴지/알기나 하느냐고/삶에 지쳐 휘청거리는 내 어깨를 잡’기에 아내에게 미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혼인한 지 십칠 년/철없는 자식들 키우느라/어수룩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취미교실 문 옆에도 못 가보고/뒤돌아볼 새도 없이 십칠 년//하루 일 마치고/달빛에 머리를 이고/파김치가 되어 돌아온/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3,4연>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 시인의 노래는 꼭 아내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머니, 분식집에서 일하는 소년가장, 막노동꾼, 옆집 할머니 등 시인이 주변에서 만나는 삶의 아픔과 애환을 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지며, 그들 모두가 우리가 함께 보듬고 안아야 할 사람들임을 이야기한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평범한 일상의 언어들이 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문학상이 어쩌고저쩌고 시부렁거리는 시인들은/제가 쓰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알쏭달쏭 어려운 시들을 지어내지만,/수영이는 땀 흘려 일하면서 온 몸으로 시를 쓴다’. 그러기에 그가 쓰는 시들을 읽으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삶이 우리를 시험하거나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들 때, 우리들이 일상에서 하는 말 그대로가 시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라는 것이 세상과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생생한 삶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믿는 시인의 믿음이기도 하다.
무농약 무표백 무방부제 우리밀 라면 봉지에 정확하게 찍힌 유효기간처럼
사람들 목숨에도 정확하게 유효기간이 찍혀 있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정확하게 찍힌 유효기간만큼 딱 그만큼만 살 수 있다면 부질없는 세상 욕심 버릴 수 있을까요?
아, 그렇게 해서라도 부질없는 세상 욕심 버릴 수 있다면 사람들 목숨에도 유효기간 찍어 주시기를 <‘유효기간’ 전문>
이제는 농부이기도 한 시인의 시를 읽어가다가 내 마음 속 상념이 머무른 곳이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도시의 편리함을 버리는 순간, 소박하나마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삶을 맛볼 수 있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 몰라도 마음은 평안해진다. 그럼에도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 세상욕심이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 목숨에도 정확하게 유효기간이 찍혀 있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부질없는 세상 욕심 버릴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드는 마음 속 몽우리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있다. 삶의 편린들을 스스로 감싸 안고 조금 느리고 불편한 삶이 소중하고 인간다운 삶이란 걸 제대로 깨닫게 된다면 사람들의 목숨에도 유효기간이 찍혀 있으면 좋겠다.
헌데, 나는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없을까? 시집의 제목을 본 아내가 미안하면 말로 하라고 한다. 고마워도 고맙다는 말, 미안해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미안할 뿐이다. 가족끼리 뭐 그런 말이 필요하냐는 아내의 말이 더 미안할 뿐이다. 나는 너무도 늦게 철이 드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