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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바라보는 것 보다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 보다 진보적인 태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래라고 하여 무조건 유토피아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존재하며 끝도 존재한다. 수많은 왕조들이 시초에 스스로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권위 획득에 박차를 가하였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몰락하였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다 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과도 흡사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개인의 죽음이 그러하듯이 국가의 멸망, 문명의 붕괴 역시도 사람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것으로 간주된다. 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하나의 문명이 붕괴하였다는 사실을 곧바로 진보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비록 그것이 또 다른 진보적 문명의 도래를 초래한다 할지라도 그 중간과정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도 이야기되어질 만큼 고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국가라고 하는 시스템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이러한 국가의 등장과 관련하여 작가는 지금까지 이야기되어지던 갈등이론과 통합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이론은 독창성을 지니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어떠한 이론으로도 한 문명의 붕괴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뗄 수 없는 동질성도 지니고 있다. 이들 이론들은 ‘문명’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이해되어지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명을 특정 정권의 붕괴가 아닌 연속적인 문화현상으로 파악할 경우, 그것의 붕괴라는 측면 한 국가의 몰락과는 또 다른 잣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고찰은 현 문명에 대한 교훈을 남기며, 특히 붕괴의 측면에 대한 고찰은 현 인류로 하여금 같은 과오를 반복치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문명의 붕괴를 고찰함에 있어서 특정 잣대에 맞추어 하는 것 자체가 문명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다양한 문화를 하나의 평가기준으로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고찰이 조금 더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다양한 이론에 대한 언급은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특정 사회, 문명의 붕괴를 다룸에 있어서 특정 이론을 적용해볼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하였다.
작가는 비용/이익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도입하여 문명의 붕괴를 설명하고 있다.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상황이 권력의 공백 발생과 맞물렸을 경우 특정 문명은 붕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이러한 특성이 발생하였을지라도 실질적인 붕괴로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림을 역사 속의 로마, 마야 등의 예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한계 생산성의 감소 조짐이 나타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보조 에너지를 확보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끊임없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존립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특성이라고 생각된다. 즉,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석탄, 석유 등의 연류는 머지 않아 고갈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천연가스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붕괴를 피하기 위한 자본주의 사회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연가스의 개발 등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양호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미국이 택하고 있는 군수산업에 의한 자국 경제의 부활은 한 문명의 존속을 위해 다른 문명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과연 어떠한 이론으로 설명해야 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대다수의 이론들은 변증법적 논리에 따라 한 문명이 성숙하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경우 혹은 자연재해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붕괴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침략자이론의 경우, 상대적으로 복잡성이 덜한 사회가 복잡성이 극도에 이른 사회의 중심부를 공략하였을 경우, 경직된 문명은 변화에 적응할 유연성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붕괴로 이르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 모든 이론들은 미국의 현 정책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듯 하다. 그렇다고 하여 한 문명은 1470년을 주기로 붕괴한다는 신비주의적 이론에 따르기엔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다. 중요한 것은 문명이 붕괴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붕괴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가이며, 미국 사회를 고찰함에 있어서도 그러한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가장 독특한 의견은 다름 아닌 붕괴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붕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붕괴는 원초적 혼돈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복잡성이라고 하는 인간 정상적 조건으로 복귀하는데 불과하며,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붕괴야말로 가장 적절한 대응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국가와 문명이라고 하는 체제가 불안정성을 지닌 존재이며, 억지로 이루는 발전보다는 자연스러운 붕괴가 더 합당하다는 판단에 입각하고 있는 듯 하다.
붕괴, 종말, 끝 등의 단어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문명의 붕괴를 고찰한 이 책은 그 제목만으로도 나에게 짜릿함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사회는 변화하고 있으며, 한 개인의 죽음과 노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문명의 붕괴 역시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함양할 수 있는 여건이 되리라고 본다. 문명의 붕괴를 설명하는 이론은 이 책에서 살펴보았듯 굉장히 다양하다. 난 이론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다양한 사회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이론을 다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이론적 틀에 입각하여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획득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것은 문명의 붕괴를 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문명이 붕괴하더라도 새로운 문명을 시작하게 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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