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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라 함은 동식물을 의인화하거나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과 말 속에 내포된 풍자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우화에는 간혹 사람들도 등장하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이 바보라 불린다. 어쩌면 우화는 이런 주인공들 때문에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역시 어려서부터 많은 우화를 읽으며 자랐다. 허나 그런 우화를 읽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닫는지는 전적으로 읽는 이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우화 속에 나오는 상상의 그림이나 바보들의 행동 속에서 철학을 배우기도 하고, 세파에 찌든 나 자신을 비웃기도 하고, 실의에 빠진 내 마음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우화를 읽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솝우화나 장자에 나오는 많은 우화와 우언을 읽지만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 살아온 관습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인도우화집이다. 저자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읽고 들은 우화와 설화, 신화는 물론 실제의 이야기까지도 담고 있다. 저자는 우화가 삶 속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일깨우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믿으며, 그래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를 모으는 작가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소박한 문체로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모으면서 삶을 이해하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진리에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렇게 모은 이야기들 중 100편을 뽑아 실었다. 100편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나 또한 우화 속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멀리 떨어진 나라 인도, 그들의 우화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세상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것 같다.
왕이 선물로 받은 매가 날지 않자 왕과 조련사는 매를 날 수 있게 만들 현자를 찾아 나선다. 그 누구도 매를 날게 하지 못하자, 어느 농부가 나서서 매가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자 매는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이 우화는 현자가 아닌 농부의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우화의 주인공은 현자도, 농부도 아니다. 날지 않고 있다가 자신이 앉아있는 나뭇가지가 부러지자 어쩔 수없이 날아오른 매이다. 저자는 ‘내가 날지 않으면 어느 날 삶이 강제로라도 날게 할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라도. 스스로 자를 것인가, 아니면 부러뜨림을 당할 것인가?’하고 묻는다. 삶을 능동적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끌려갈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임을 우리는 우화를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화를 읽으며 누구의 관점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지는 스스로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한 스승이 네 명의 제자에게 차례로 먼 곳에 있는 배나무 한 그루를 만나고 오는 여행을 보냈다. 계절별로 여행을 떠난 제자들이 보고 온 배나무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본 배나무에 대해 자신이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여 설명하며 항상 그 모습일 거라고 단정한다. 스승은 제자들을 불러 그들의 의견이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지만 전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단지 나무의 한 계절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해 지금의 모습만으로 성급하게 그 사람의 전 생애를 판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한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처음 골프장을 짓고 골프를 시작했을 때, 공을 칠 때마다 원숭이들이 그 공을 가져다가 엉뚱한 곳에 떨어뜨렸다. 경기가 지연되거나 시비가 일어나기 일쑤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매번 경기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사람들은 특별한 규칙 하나를 만들어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자 경기의 묘미가 더 생겼다. 이기고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지게 되고, 어이없는 실수를 한 사람이 이기게 되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이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는 ‘삶은 우리의 계획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놀라운 일이 가능하다. 어느 소설가가 썼듯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나빠지고, 더 좋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좋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화는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화는 한결같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시작이고 거기에는 끝이 없음을 알려준다. ‘운명을 염려하고 피하려 할 때 오히려 운명과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그 길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때로는 웃음도 필요하고, 때로는 독설도 필요하며, 그리고 때로는 위안도 필요하다. 평범한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웃음과 독설과 위안이 추운 날씨 속에서 마음을 다소나마 풀어준다. 어쩌면 그 이야기들이 우화여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그 길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고,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들과 함께 삶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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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에 들인지 1년쯤 되고 있는데 어제부터야 조금씩 가까이 하고 있다. <100가지 인생 처방 우화 모음집>이라는 카피가 너무도 와닿는다. 인생에 이만한 처방이라면 진실한 사랑이나 의미 있는 타인을 경험하는 것외에는 찾을 수 없을 듯 하다.
지금까지 읽은 우화들이 모두 마음을 움직이는 듯했지만 무엇보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장의 우화가 너무 감명 깊었다.
한 스승이 제자들을 하산시킬 때가 되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 지역에 있는 한 배나무를 각자 다른 계절에 가서 보고 오라는 명을 했다고 한다.
한 제자는 겨울에 그 배나무를 보고 와 생명력이 없고 가지 깊숙이까지 메말라 전혀 쓸모없는 나무였다고 스승에게 고했다.
다른 제자는 봄에 나무를 보고 와 첫번째 제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가지마다 새 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뿌리는 생명수를 길어올리고 있는 나무였다고 다만 아무 열매도 없어 관상용으로나 적합한 나무였다고 주장했다.
세번째 제자는 초여름에 나무를 보러 갔다고 한다. 나무는 온통 흰 꽃으로 덮여 있고 뿌리는 단단히 땅을 움켜쥐고 있으며 만개한 꽃들은 벌과 새등 숲의 다양한 생명들을 모아들였다고 제자는 말했다. 다만 달린 열매가 너무 써서 먹을 수 없으니 인간에게 쓸모없는 나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간 네번째 제자는 가지마다 휘어질 만큼 열린 황금빛 열매를 목격했다. 제자는 열매를 가져와 스승에게 풍요와 결실을 이뤄낸 나무의 연금술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과즙 풍부한 열매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들에게 스승은 마지막 가르침을 남겼다.
자신과 타인에게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하고 싶었노라고... 나무든 사람이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그것은 공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일이라고 말이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한 계절의 고통 때문에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줄 기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삶은 공평한가>라는 이야기도 내게는 의미 깊게 와닿았다.
한 농부가 길을 가다가 커다란 뱀... 구렁이라고 하자면 구렁이가 바위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구렁이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농부는 뱀은 싫었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외면하지 않고 바위를 치워 주었다. 구렁이는 살려줘서 감사하다면서도 지금 배가 고프다며 농부의 목을 말아쥐고는 농부를 잡아먹겠다고 했다. 농부는 나는 너를 살려줬는데 이것은 너무도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구렁이는 인생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며 농부를 잡아먹으려다가 그래도 자신을 살려줬으니 세번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농부의 목에 말아쥔 채 앞으로 세 동물을 만나 단 한 마리라도 삶이 공평하다고 이야기하는 동물이 있으면 농부를 살려주기로 했다. 농부와 농부의 목을 말아 쥔 뱀은 첫 번째로 암소를 찾아갔다. 암소에게 농부는 삶이 공평하냐고 물었다. 암소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맛있는 풀을 주지만 자신의 우유를 가져가지 않냐 하지만 자신이 늙어 더이상 우유가 나오지 않으면 자신을 잡아먹지 않겠냐며 삶을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닭을 찾아간 둘은 닭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고 닭은 인간이 자신에게 닭장을 만들어주고 보호해주지만 그대신 매일 달걀을 가져가지 않느냐 하지만 파티라도 하게 되면 자신의 목을 맨 먼저 비틀 것이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당나귀를 찾아가 농부는 삶은 공평한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당나귀는 삶이 공평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당나귀는 엉거주춤하더니 우스운 모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따라온 암소와 닭도 춤을 추었다. 농부도 구렁이도 춤을 추기 시작했고 구렁이가 춤을 추며 느슨하게 또아리를 풀자 농부는 슬며시 목에서 구렁이를 풀어내리고 도망을 가며 당나귀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니 말이 맞아. 인생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는 거야>라고
위의 두 이야기가 영혼 깊이 울림을 주었다. 이 이야기들을 알기 전과 알게 된 이후의 삶이 다를 것 같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제목 부터 의미 심장한 이 우화집을 앞으로 매일매일 하루 몇 가지 이야기씩만 읽어나갈 것이다. 팍팍한 인생에 단비 같은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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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이 생의 절반을 인도를 여행하며 읽고 들은 우화와 설화 신화 그리고 실화를 담고 있다 그는 이 우화와 이야기들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세상을 받아들이며 이야기로써 진리에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한권의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덮고 생각에 잠긴다면 그 독서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자아 성찰의 기회이다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황금률이 황금을 가진 자가 규칙을 정한다의 의미이다 그러나 우화의 세계에서는 왕과 부자도 등장하지만 그들은 대개 바보일 뿐이다 우화의 세계에서 황금률은 지혜를 가진 자가 규칙을 정한다 이기 때문이다
우화를 읽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며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다 고뇌나 추구 없이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것만큼 미심쩍은 일은 없다 우화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이 시작이며 거기에 끝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현실에서는 종종 악행이 칭찬받고 선행이 바보짓으로 취급되지만 우화 속에서는 솔직함이 지위를 이기고 겸손이 자만을 이긴다 인간의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자들처럼 화석이나 토기 조각을 연구할 수도 있지만 우화와 이야기를 읽는 것도 그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다
진리에 이야기의 옷을 입힌 것이 인도에서 온 이야기들의 특징이다 대양 근처에 사는 이는 물고기를 잡을 것이고 언어는 그런 상징들로 가득할 것이다 농부라면 농부다운 비유를 사용할 것이다 고대부터 명상과 요가로 인간과 삶의 비밀을 탐구해 온 인도인들은 진리에 관한 독특한 담론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엄선한 시대를 초월한 100편의 우화와 이야기들이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우화의 기원이 고대 인도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인도는 우화와 이야기들의 나라이다 자신을 독서가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에 실린 우화와 이야기들 중에 처음 접하는 내용이 많아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류시화라는 저자명은 이제 독자들에게 특정한 스타일과 그만의 주제가 떠오르게 한다 인도의 우화와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무엇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를 가장 잘 아는 작가이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속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라마야나의 내일로 미루지 말것과 용서를 신화에서부터 실화까지를 정성스럽게 들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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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100가지의 인생 처방 우화 모음집'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겨있다. 류시화 시인의 깊이 있는 해석 덕분에 낯선 인도의 우화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은 비워지고, 근심거리는 잠시 내려진다.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P.82)
그대가 지나가는 곳에 그대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대의 생각, 행동은 필연적인 자국을 남긴다. 그 자국들이 그대의 삶이라는 작품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P.241)
문제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들을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잠들지 못해서는 안된다. 문제들에 맞닥뜨리면서도 깊이 휴식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나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유목민들처럼. 여행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앞에 놓인 길이 아니라 신발 속 모래이다.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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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매력을 풍겼다. 그래서 읽었다. 저자 류시화 작가가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읽었다. 류시화 작가는 말하기를 ‘자신은 인도 우화를 모아서 엮은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뜸을 들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우화류의 이야기 글의 최초는 인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이솝우화‘가 더 친숙할까? 우화의 원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왔던 세계사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철저하게 유럽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서구 중심의 사상이 암암리에 모든 면에 들어있지 않을까 한다. 구석기 시대의 최첨단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주먹도끼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을 때도 서양학자들은 처음에 인정하지 않은 기록을 봤던 같다. 철저히 동양 무시가 그들의 생각이었다. 신대륙의 발견도 철저한 유럽인들의 시각이 아니던가.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이 신대륙인가? 엄연히 창조 때부터 있었던 지구의 일부분이 아니던가, 어떻게 발견인가? 발견은 무주공산의 어떤 것을 먼저 찾은 이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던가.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려고 일부러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그래서 신화도 이야기도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같이 여러 이야기 중의 한 부분이 이 책의 제목인 줄 알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열심히 목차를 훑어보았지만 그러한 소제목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찾았다. 소제목이 아니라, 이야기가 주는 교훈 일부분이다. p.203부터 시작되는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에서 골프장에 나타난 원숭이들이 공을 아무렇게나 건드려서 승부가 원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가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아예 게임의 rule을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쪽으로 바꾸니 문제가 해결됐다는 이야기이다. 마치 인생에서 생각지 않을 일이 생기면 바로 적응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것과 같다. 바로 여기에서 등장하는 교훈이 이 책의 제목이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p.206). 이 이야기 말고도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100편이 실려있으니 다 소개하진 못하겠고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를 몇 편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p.37에 ’라스굴라 드세요‘라는 제목으로 왕의 미신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고팔‘이란 익살꾼의 재치로 왕의 미신이 철저히 깨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한 구절. “우리는 누군가를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편견에 쉽게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내가 더 재수 없는 사람인지 누가 아는가?”(p.45). 굉장히 철학적인 이야기이다. 이것이 우화이다. 두 번째로 p.134에 ’내일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오늘의 중요성이다. 왕이 맏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현자에게 길일을 묻는다. 그러자 현자는 중요한 날을 행하는 날이 길일이니 오늘 행하라고 충고한다. 왕은 그래도 손님 등을 초대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위해 날짜를 늦추는 사이 셋째 왕비가 찾아와서 자신과 결혼할 때 했던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에 큰아들을 밀림으로 추방되고 14년 만에 돌아와서 왕위에 오른다. 물론 그사이 이전의 왕은 죽는다. 이 내용에서 느끼는 것은 오늘 할 일을 미룸으로써 14년의 허송세월이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나는 어떠한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다름 아닌 ’바로 오늘‘ 이다(p.137).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첨가한다. p.401에 나오는 ’바보가 되려면 큰 바보가 되라‘ 라는 제목으로 논쟁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와 제목과의 관계가 언뜻 연결이 안 되길래 교훈만 적어본다. ”논쟁이 논쟁다워지려면 적어도 자신보다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토론해야 한다“(p.403).
우리에게는 이미 여러 가지 교훈들이 마음속에 담겨 있다. 책을 읽어서이건, 이야기를 들어서이건.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현실이 가져다주는 걱정거리로 인해 이미 가지고 있는 교훈을 활용할 기회를 사용할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통해 얻는 교훈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고 있는 교훈도 있고 새로운 교훈도 있다. 그래서 다른 책보다 더 빨리 완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한 번 더 읽어봤으니까? 활용하는 횟수가 많아지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마친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한번 꺼내 일기를 희망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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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시인의 도서를 읽다보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진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인도에 대한 갈망도 생기고 한명한면 모두가 철학자인것만 같은 인도인들도 만나보고 싶고~ 현실을 살기 급급한 우리에게 잠시 쉬어가라는 편안한 휴식을 얘기하는것만 같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역시 기대했던대로 힐링이 되는 도서였고 코로나로 집에서 멤도는 아이들에게 조금씩 읽어주며 함께 인도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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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호박벌이 날아다니다가 열려 있는 꿀단지를 보았다. 흥분한 벌은 꿀단지에 뛰어들어 한껏 꿀을 맛보았다. 꿀단지 밖으로 날아가면서 그 벌은 다른 벌들에게 무슨 일이일어났는지 알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몇방울의 꿀이 그의 입에서 다른 모든 벌들에게 튀기 시작했다. 다른 벌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벌들은 그저 한 마리 벌의 열정과 행동 때문에 꿀을 얻고 있었다. 여러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은 내용의 책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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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에 문을 연 식당에는 중년의 부부가 직접 우동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야식이 먹고 싶어서 함께 온 가족도 있고, 밤늦게 일을 끝내고 허기를 채우려고 혼자 온 사람도 있습니다. 맛있게 우동을 다 먹은 사람이 문을 나서기 전, 부부를 향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가 나가자마자 부인이 남편에게 투덜대며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 설거지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복은 무슨 복이야." 식당에는 아직 우동을 먹고 있는 사람들,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서너 평의 작은 식당이라서 그 부인의 말을 들은 건 남편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축복의 말조차 함부로 걷어차버리는 경솔함... 만약 내가 신이라면 그 부인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축복을 거둬갔을 거라고. 실은 제가 그 식당에 남아 있던 손님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문자나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서로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진심을 담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말뿐이라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축복의 말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축복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만. 반대로 욕설이나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나를 향해 던져도 내가 도로 던지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가장 안타깝고 불행한 건 상대가 던진 저주를 진짜라고 여겨서 큰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상처가 깊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새해에는 축복의 말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저주의 말은 시원하게 걷어차버릴 겁니다. 늘 말의 힘을 기억하며, 한 마디의 말이라도 신중하게, 진심으로...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류시화 님의 '인도 우화집'입니다. 류시화 님은 이 책의 저자로 되어 있지만, 자신은 이 우화와 이야기들의 저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들과 종이에 기록된 인도 이야기들을 다시 풀어 썼으니, 자신은 한 사람의 엮은이, 혹은 이야기 수집가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를 모으는 작가이고 싶었다." (13p) 인도 우화는 머나먼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어리석음과 지혜가 단박에 구분이 되는데, 왜 삶에서는 그 구분이 어려운 걸까요. 너무 가까우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듯이, 자신의 삶은 잘 안 보여도 타인의 삶은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화는 수많은 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저 역시 일상을 관찰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나 봅니다. 그 식당 부인의 경솔한 말 한 마디는 타인의 치부가 아니라 제 내면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저도 모르는 어떤 순간에, 복을 걷어찼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원래 남의 허물은 태산 같고 자기 허물은 티끌 같아 보이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지라... 지혜의 산을 오르려면 겸손의 입구부터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 문제를 발견하는 문제 인생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생로병사는 말할 것도 없고 불만족, 분노, 온갖 장애물 등 많은 것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매사에 우울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스승이 하루는 그를 불러 물 한 잔을 가져오게 하고는, 소금 한 줌을 타서 마식 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물맛이 어떤가?" 제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무 짜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그를 근처 맑은 호숫가로 데리고 가서 호수에 똑같은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했다. 그러고는 물맛이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제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스승은 제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 차이를 이해하겠느냐?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라." 소금의 양은 같지만,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짠맛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14-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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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가페에서 좀 읽고 너무 쟈미있어서 바로 yes24에서 구매를했습니더 급하게 읽는거보다 사간좀 있으면 단편스토리라 조금식 읽어보몬서 내용ㅇ을 첨천히 여러번 감상하면서 즐길수있는 책입니더 책이 우화집식이라 너무 편하게 편암하게 읽을수있습니다 |
| 류시화 시인의 글은 언제나 어느책이나 손에 들어도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 인도 우화를 엮은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역시 짧지만 진리에 옷을 입힌 아름다운 책이다. 책상 위나 침대 머리곁에 두고 어느 곳을 펼쳐도 지혜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