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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출판되어 이미 4년이나 지난, 한물 간 책을 아마존 별점이 양극단으로 갈린 최대의 논쟁서 어쩌고 소개하는 출판사의 낚시에 걸리지 않으려고 그냥 패스했던 책인데 최근에 제 주위에서 잡식을 하는 분들이 채식하면 죽는다고 채식을 해서는 안 되는 근거로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자꾸 이야기하기에 대체 뭔 소리가 쓰여 있길래 그러는지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일단 눈물 좀 닦고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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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아주 솔직하고 주관적인 감상부터 쓰겠습니다. TV나 광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으례 믿듯이, 책으로 인쇄된 내용은 당연히 검증을 거쳤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채식의 배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또는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채식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하게 만드는 책이 이런 책이죠. 채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런 책부터 읽으면 채식에 대해 굉장히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됩니다. 특히 윤리적 채식주의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은 너무나 많은 부정확한 정보가 담겨 있어 많이 위험합니다. 사실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된 미국에서는 주목도 못받고 묻혀버린 책인데, 국내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는지 몰라도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역되어 홍보되고 있네요.
다음은 이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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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채식주의가 소수 문화이며, 이 책이 다루는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채식주의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채식주의가 국내에 제대로 자리잡기 전에 <채식주의의 신화(The Vegetarian Myth)>라는 책이 <채식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시기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채식주의 운동에 동참하여 동물과 사람 모두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 책이 채식주의에 대한 발전적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편견과 오해를 강화시키기 쉬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 대한 반론을 통해 채식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고 채식주의자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음의 사실을 바탕으로 읽혀지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 현대인의 육식이 대부분 '공장식 밀집 사육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2) 공장식 밀집 사육 시스템은 동물의 비인도적인 사육과 도살, 환경오염, 제3세계의 기아 양산으로 비판 받고 있다는 사실. 3) 현대 곡물의 대부분은 식용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재배되기 때문에 육식하는 사람들이 채식하는 사람보다 곡물을 더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 채식주의는 아주 간단히 정의하면 "육식을 하지 않고 식물로부터 양분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생활 양식이 존재하는 현대에 채식주의가 일상에서 구현되는 모습은 무엇을 먹는가,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허용하는가 등의 측면에서 개인의 생활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20년 동안 '비건' 으로 살았다고 했을 뿐, 비건 채식주의를 어떻게 실천했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이해한 바에 따르면 저자는 채식주의를 '일체의 살생을 피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일탈이나 융통성을 불허하는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지향한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년의 비건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육식을 하게 된 경험에 기초하여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채식주의의 무지와 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반론을 펴기로 하겠다. I.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1) 동물 권리 옹호주의는 동물이 아닌 인간의 행복과 고통을 앞세우기 때문에 인간 중심적이고 감상적이다. "엄마가 있거나 얼굴이 있는 건 먹지 않겠다"는 주장이 동물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런 특징이 동물에게도 통증, 공포, 염려를 느끼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의 고통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들은 감상적이라는 비난을 듣는데, 그런 비난에는 맞는 구석이 있다. 동물 권리 옹호론은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동물에 투사한 것이지 동물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p.135-136)
아무리 객관적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의 시각에 의존하여 동물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순수하게 동물의 입장에서 행복과 고통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인간의 행복과 고통에 기초하여 동물의 행복과 고통을 가늠하는 인도주의적 시선을 완전히 걷어낸다면 내 앞에 있는 강아지와 책상이 다를 바가 무엇일까? 인간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동물 학대를 주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동물을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잘못이라면, 저자의 ‘식물도 감각과 감정을 느낀다’는 주장이나 ‘우리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자’는 주장도 같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참고해볼만한 문제: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2)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은 동물의 동물적 본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세렝게티 한가운데에 담을 세워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갈라놓는 담장을 쌓자고 제안한 비건처럼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은 동물의 동물적 본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p.137) 폴런의 동물권 옹호 철학에 대한 비판: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인간의 동물성 뿐만 아니라 동물의 동물성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바로 자연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p.141)
저자는 일부 괴상한 채식주의자의 생각을 보편적인 동물 권리 옹호론으로 간주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나는 동물보호단체가 자연의 포식관계를 부정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환경 운동가인 저자의 동물권 운동에 대한 몰이해가 놀랍다. 3)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년생 곡물을 기본으로 한 식단이 "아무 것도 죽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무지를 드러낸다. (p.140)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죽음이 생명의 일부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부정한다. (p.142)
이렇게 생각하는 채식주의자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채식주의 운동의 정론은 모든 살생을 부정하는 교조주의가 아니라 동물이라도 소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 때문에 죽는 동물이 식용동물이 전부는 아니며, 아무리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라도 살면서 일체의 살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채식하지 않을 바에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라는 생각이나, 모피를 입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이 먹는 동물은 불쌍하지 않냐?"고 따지는 것은 개인이 가능한 선에서 행하는 윤리적 실천의 본질을 흐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먹을 거리는 윤리문제이지만 광신도는 필요 없다"는 피터 싱어의 조언(보기 클릭)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자신의 극단적, 교조적인 채식주의를 채식주의 전체로 투사한 것 같다. 4) 식물도 감각(고통)을 느낀다. 저자는 식물도 '생명 활동'을 하는데 인간의 척도로 가늠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알지 못할 뿐(p.154)이라며, 우리는 식물에게 감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인간과 DNA의 50%를 공유하는 '우리'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p.159)고 주장한다. 저자가 식물의 '감각'에 고통도 포함시키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식물은 먹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식물을 "살아있고, 영예를 돌릴 가치가 있으며, 존중하고 감사할 대상이지만 감각은 없는 생물"의 범주로 규정했지만 식물을 접하면 접할 수록 그런 범주가 말이 안돼 보였다(p.151-153)고 한 것으로 비추어보아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식물의 감각을 운운하며 채식주의자의 세계관에는 이것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p.151)고 비판한 저자의 결론이 황당하다. 저자는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는 전제하에 생명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할까?"란 질문을 던지는데, 엉뚱하게도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밤낮의 경계를 가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은 선을 긋지 않고 원을 그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먹이기 위해 죽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개별 개체들이 죽더라도 생물 종 전체가 멸종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p.162-163)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동식물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고 감각을 느낀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으니까 동물, 식물을 구분하지 말고 전부 먹자는 것인데, 이것이 비채식주의자의 육식 옹호론이라면 몰라도 한때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여 채식을 했던 사람이 다시 육식을 하게 된 근거로 주장할 수 있을까?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는 입장은 변치 않았다는 전제 하에 "식물이 감각을 느낀다"는 주장에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저자는 동식물 모두 먹지 않는 쪽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뭐든 먹어야 하는 현실에서 윤리적인 태도를 고수하려면, 현대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감각을 느낀다고 밝혀진 동물은 먹지 말고, 식물의 감각은 그것이 실제로 밝혀진 후에 고민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나는 저자가 똑같은 심정으로 살아있는 당근과 닭에게 칼을 들이대는지 궁금하다. 식물의 고통을 거론하며 밥상의 윤리를 추상화시키는 것은 실존하는 고통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 모두가 감각을 느낀다고 믿는다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먹지 않음으로써 고통을 줄이는 것이 옳을까, 둘 다 먹는 것이 옳을까? 게다가 육식은 채식보다 더 많은 식물의 죽음을 야기하는데? 만약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호흡주의자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나는 심정적으로나마 저자에게 동의했을 것이다(물론 호흡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5) 동물 사육에서 인간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으며, 실은 그들을 키우기 위해 중노동을 하고 있다. 닭이 마실 물을 나르느라 겨울에 얼어붙은 문을 여는 과정에서 손바닥에 화상을 입고 목덜미에 눈 한 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맞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모든 걸 거꾸로 봐 왔구나. 내가 닭을 착취하는 게 아니었어. 모두 따뜻하고 안전하고 배부르고 행복하잖아. 고생하는 것은 나뿐이야. 닭이 나한테 물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눈 위에 발끝 하나 내밀지 않아도 되니까." 마치 나를 찌르는 냉정한 현실의 칼처럼 느껴졌다. 닭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들을 위해 일하도록 만든 것이다. (p.58-59)
살면서 더 나은 대우를 받고 고통과 스트레스 없이 도살된 동물을 먹는 것이 그렇지 않은 동물을 먹는 것보다 윤리적인 육식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처럼 가축을 직접 키울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이 먹는 동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 어렵고, 동물 복지 농장의 고기가 아직까지는 소수의 수요만 충족시켜 준다는 현실에서, 저자의 이런 주장이 현대의 육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닭과 인간은 동반자로 지내 왔고, 공장형 축산법이 나오기 전까지 이 관계는 건강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야생 가금류는 유전적으로 인간을 상대로 도박을 했고 그 도박은 성공이었다. 인간은 온 세계에 닭을 퍼뜨렸다. 정글에 사는 모성애 강한 어미 닭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못다 이뤘을 원대한 꿈을 현실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p.59)
저자는 현대 농장 동물의 번식이 대부분 인공 수정으로 이루어진다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 임신, 출산으로 이루어지는 번식을, 게다가 그런 번식을 통해 태어난 농장의 환경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지옥같은 환경인데, 이런 번식을 동물이 인간을 상대로 벌인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충동구매에 따른 동물 유기를 양산하거나 말거나 인간에 의한 개, 고양이 대량번식과 판매도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II.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정치적 채식주의자들은 일년생 곡물을 키우는 농사가 생태계를 통째로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곡물은 또 다른 화석 연료이다. 풍요로운 곡물은 사실은 진짜 풍요가 아니다. 화석연료로 만든 비료로 대량 생산된 곡물은 결국 '줄기에 달린 화석 연료'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곡물 시장을 지배하는 몬샌토, 카길 등의 거대 곡물 카르텔은 곡물 가격을 생산비용보다 낮게 형성시켰다. 그리고 낮은 가격과 생산 비용의 차액은 납세자의 돈으로 메우게 되었으며, 이것은 전 세계 소규모 농장과 지역 경제를 망쳤다. 이러한 기업의 공급 장악과 과공급, 덤핑 가격대 형성의 순환구조는 지역 생존 경제를 파괴하고 전세계 극빈민의 생계를 위협한다. 따라서 미국 곡물은 기아의 원인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하며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매우 깊이 공감한다. 그런데 저자가 농업의 해악을 근거로 채식주의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곡물 생산의 수혜자가 오직 채식주의자뿐인가? 대부분의 곡물이 식용 가축을 위해 재배된다는 것은 오늘날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결국 육식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보다 곡물을 더 많이 소비하는 셈이다. 이 책에서 제기된 현대 농업과 곡물 카르텔의 문제점, 윤리적 소비는 채식주의자/비채식주의자 모두가 고민할 문제이지 채식주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참고로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11월 29일 발표에서 공장식 축산을 지역적, 전세계적인 토지 황폐화, 기후 변화, 공기 오염, 물 부족, 수자원 오염, 생물 다양성 파괴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하였다.) III.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육, 채식을 가리지 않는 소화 능력은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게 한 유리한 습성이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육식을 해왔고 육식을 통한 영양소를 통해 오늘날의 인간이 되었다.(p.236-7) 인간의 뇌가 지금의 크기로 성장한 것은 고기 덕분에 소화 기관의 크기가 줄어든 결과 남은 에너지를 뇌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238) 인류의 조상이 육식을 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p.241)
인류가 고대부터 육식을 했다는 주장은 현대에도 육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과거에 식인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부활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듯이, 과거에 어떤 것을 먹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그것을 먹는 것의 타당성과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현대 인류는 생존 조건에서 고대 인류와 비교 불가능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인류 진보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가 폐기되었듯이, 육식 문화도 이롭지 않다고 판단되면 폐기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인간 정신이 진보하고 기술이 발전해서 인류가 살생 자체를 야기하지 않는 음식으로 살게 될 날이 오게 될지?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채식 때문에 앓게 되었다는 병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술했으면서도 채식하던 시절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는 거의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하다. 저자가 어떤 식으로 채식을 했는가에 대해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문장은 물론 다른 것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니 그렇게 먹은 것은 모두 탄수화물이었고... 고기에 대한 금기가 너무 엄격해, 단백질을 먹고 싶은 감정마저도 거의 동족 살해와 맞먹는 끔찍한 범죄처럼 느껴졌다.(p.288) 뿐이다. 물론 20년 동안 채식 라면만 먹고도 채식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전부 탄수화물로 이루어진 식단이 건강에 좋을 리는 당연히 없다. 탄수화물만 먹는 것이 채식이라고 믿는다면 저자는 한참 착각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황당하면서도 저자가 애처롭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 채식의 영양학적 문제점을 기술한 후 저자는 이제 기름진 음식을 찾아 나설 때라며 지난 20년 동안 굶주려 온 바로 그 음식을 당장 먹자. 그게 무엇이든 지금 당장(p.335)이라고 외치는데, 생태계를 살리는 음식만 먹겠다는 초반의 비장한 결심은 온데간데 없다. 또한 저자는 자, 이 정도면 뭔가 기름진 음식을 찾아 수렵, 채집에 나설 때가 아닌가?(p.288)라고 말하는데,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마이클 폴란처럼 멧돼지 사냥이라도 떠날 기세이다. 저자의 히스테리는 참치를 먹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고, 마침내 먹을 것이 공급되는 환희를 느꼈다(p.379)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참치는 저자가 이 책에서 먹자고 주장하는 지역 생산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저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채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올바른 채식에 대한 강연, 저술을 통해 채식을 과학으로 확립시키고 있는 닐 버나드, 존 맥두걸, 콜린 캠벨, 조엘 펄먼, 칼드웰 에셀스틴을 비롯한 의학 전문가에 대한 언급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 건강한 채식주의자와 채식으로 병을 고친 사람들은 저자에게 전부 투명인간일까? 게다가 현대인이 먹는 고기의 지방질에는 수렵, 채집 시대의 고기와 달리 각종 환경 오염 물질이 축적되어 있고 이것이 인체에서 암을 비롯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상식인데 이 책에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인스턴트, 정크푸드, 가공식품을 즐겨먹던 사람이 건강이 나빠진 원인을 육식으로 돌릴 수 없듯이, 저자도 채식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먹는 것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해보았어야 할 것이다. 동물성이든 식물성이든 건강에 해로운 음식은 존재하며, 해로운 식품을 즐겨 먹던 사람이 건강 악화의 원인을 육식이나 채식 전반으로 돌리는 건 온당하지 못하다. 한편, 채식의 영양학적 문제점과 관련해서 이 책의 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전문가의 리뷰를 링크한다. 베지닥터 이덕희 경북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리뷰: http://vegedoctor.net/vegedoctor/bbs/board.php?bo_table=column5&wr_id=136 채식 영양 전문가 Ginny Messina의 리뷰: 영어로 된 리뷰인데 이 책의 저자는 영양학 자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고, 책에 인용된 정보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며, 저자가 찬양한 지방에 대한 정보도 오류로 가득하다는 내용이다. http://www.theveganrd.com/2010/09/review-of-the-vegetarian-myth.html 맺음말: 세상을 구하려면
저자는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해결책으로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1. 가능하면 아이를 낳지 말자. 2. 차를 더 이상 몰지 말자. 3.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르자. 저자는 채식주의자들이 "광신적 추종 심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지만(p.425), 한번 더 혹평을 하면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신이 한때 심취했던 광신적 채식주의를 세상의 모든 채식주의에 투사하여 자기 위안을 도출한 어느 극단주의자의 채식 탈출기이자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카스리말'이라고 하는 성인의 지식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채식 근본주의에서 생태 근본주의로 이동했을 뿐 극단적인 사고 방식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인류의 현실에 대해 제기한 문제는 채식주의자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렵, 채집 시대에 대한 갈망이나 채식주의나 결국은 같은 고민에서 탄생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 책에 제시된 세 가지 해결책에 동참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자의 생각에 통렬하게 동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를 수 없고 여전히 공장식 축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엄존한 현실에서, 이 책이 현재의 문제를 타개하는 것에 또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채식주의보다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의 비판에서 멈추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온라인 상의 반응을 검색해 보았다. "뭐든 골고루 먹는 게 좋지," "잘난 척 하더니 고소하다"는 반응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채식주의에 대해 느끼는 장벽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는 "고기를 안 먹기는 어렵다," 둘째는 "채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 셋째는 "채식주의자가 잘난 척하는 게 아니꼽다"일 것이다. 첫 번째 "고기를 안 먹기는 어렵다"라는 장벽과 관련하여, 나는 완벽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데 집중하자고 말하고 싶다.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말보다는 “육식을 최대한 줄이자"는 말이 훨씬 쉽게 느껴질 것 같다. 채식'주의'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완벽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어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곤 하는데, 완벽을 기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오래 지속하여 고통과 희생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채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장벽과 관련하여, 채식은 식단에서 단순히 육식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잘못된 채식으로 건강을 해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올바른 채식에 대한 연구와 홍보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 채식을 권장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베지닥터가 출범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이와 함께 채식인 스스로가 빛나는 모범이 되어 채식주의자는 건강하다는 인식을 일반에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채식주의자가 잘난 척하는 게 아니꼽다"는 장벽과 관련하여, 채식인의 당당함과 윤리의식이 잘난 척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잘난 척한다는 생각을 양산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육식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일부 채식주의자들의 배려심 부족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말을 노골적으로 들은 적이 몇 번 있지만, 채식주의자들의 의식도 진보해서 점점 듣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하면서 주위에 채식을 전하고 싶다면 스스로 자세를 낮춰야 할 것이다. 채식은 윤리적인 실천임에 틀림없지만 남들에게 우월의식과 반감을 느끼게 하는 태도는 채식에 중립적이었던 사람들마저 등돌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 자신이 항상 조심했지만 예전부터 수없이 저질러왔으며, 지금도 고치려고 노력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 글에서 내가 잘난 척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부디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 드린다. 나 혼자 열 걸음보다는 다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옆 사람의 손을 잡아준다면,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초석 삼아 후대가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인간과 동물 모두 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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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비건으로 살다가 채식을 버렸다기에 뭔가 가치 있는 내용이 등장하리라 기대했다. 채식의 영양학적 문제라든지, 육식을 꼭 멀리할 필요는 없다든지... 뭐 그런 이야기가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등장하기를... 그런데 이건 뭐... 라 할 말이 없다. 저자가 채식을 버린 이유는 2가지. 하나는 곡물을 재배하는 것이 지구환경을 망치고 있으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는 것. 둘째는 채식이 영양학적으로 매우 불균형적이기 때문에 몸을 망친다는 것. 첫번째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곡물을 재배하지 않고 동물을 길러 먹는 것은 생태계를 더더욱 망치는 일이므로, 무엇을 먹고 살라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하게 만들었다. 결국 끝에 답이 나오긴 한다. 두번째 이유는 영양학에 대해 이야기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자의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이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을 내릴 수조차 없고 과학적 가치가 없다. 스스로 행한 연구도 아니고, 통계 데이터의 필요한 부분만 가져와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채식위주의 식사는 문제인데, 육식위주의 식사는 문제될 게 없다느니... 지금까지 육식의 문제를 지적한 연구들은 조사를 잘못했고, 데이터를 조작했다느니... 정말... 결국 저자의 결론은 곡물을 먹지 말고, 과일도 재배해 먹지 말고, 동물도 대량으로 사육해서 먹지 말고, 자기가 먹을 만큼 동물을 뒷뜰에 키워 잡아먹거나 그 동물의 젖을 먹고 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지가 키운 짐승 잡아먹고 그 짐승의 새끼들이 먹을 젖을 빼앗아 먹으면서... 인간이 지구를 망치고 있으므로 아이를 낳지 말라고 주장하며, 피임과 낙태를 적극 권장하라고 말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차라리 지구를 위해 다 같이 굶어죽자고 하지... 이게 뭐하자는 건지... 나는 기독교원리주의자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은 좀 너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책 표지에 아마존 별점이 양 극단으로 갈린 논쟁작이라고 쓰여 있는데, 다분히 이 책을 주목받는 논쟁작으로 만들어서 많이 팔아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수 있는 문구였다. 마케팅 포인트를 그렇게 잡은 건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돈과 시간과 읽는 노력을 들인 것이 이렇게 아깝기는 처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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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음식정체성부터 밝힌다. 나는 20세기 후반에 한국에서 태어나서 21세기 초반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평범하게 하루에 3번 잡곡밥을 먹고 국과 찌게 그리고 김치를 비롯한 몇가지 나물과 가끔 한달에 한 두번 가격문제로 선택한 미국 혹은 호주산 등심과 그때 그때 마트 가격상황에 따라 고른 국산 혹은 미국산 삼겹살과 한달에 두세번 치킨을 먹는다. 국산 닭강정은 브라질산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고등어, 갈치, 삼치 등의 생선을 더 좋아한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동태가 최고인데 아쉽다. 사실 저렇게 먹는데 있어서 나의 결정권은 거의 없다. 일단 주는대로 먹는다. <2> 이 사람 리어 키스의 로망 : 구석기 시대다.
정확히 그 어느 시대인지 꼬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그리워 하는 그 로망의 시절은 대충 구석기 시대로 보인다. 농업이 시작되기 전 천막치고 살다가 때 되면 이동하던 시절.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10대 20대의 낭만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이 사람은 구석기 시대에 사람들이 골격은 좋아 보이지만 평균 수명이 얼마였는지, 철마다 빈번히 찾아오는 기근이 어땠는지, 사냥이라는 활동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사망률은 얼마나 높았는지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유아사망률이 극단적으로 높고 사고에 의한 사망등으로 인해 구석기인들의 평균수명이 20살도 되지 않는다는 상식은 저버리고 있다. 저자의 나이가 50인데 구석기 시대 50이면 아마 그 당시 토픽 감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의 "한 때", "원래"가 언제인지 궁금하다. 자연이 "원" 상태 였다는게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인간이 나타나기 전? 포유류가 나타나기 전? 모든 생물이 각자 나타나서 번식하는 순간부터 지구 환경은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나타나서 지구가 변한 것이 안타까운 이 사람은 과연 원시의 아름다운 지구가 삼엽충이나 식물이 등장하면서 대기구조나 바다 환경이 변한것은 왜 안타까와 하지 않을까?
저자의 잘못된 지식에서 시작된 채식은 나이들면서 버렸는데 아직도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고 있다는 역시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를 착취하고 있지 않다. 모든 지구의 생명들은 아메바같은 단세포 동물부터 각종 동식물에서 인간까지 각자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존 하고 있을 뿐이다. 공룡이 지구를 착취했는가? 삼엽충이 지구를 정복해서 착취했는가? 인간은 인간대로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는 정보대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단지 인간이 진화에 거듭 성공하여 과도하게 번식해서 다른 종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만 다른 종들도 그 나름대로 인간주도의 지구에 적응하고 있다. 옥수수처럼 말이다. 옥수수야 말로 인간 다음으로 잘 진화해서 지구를 정복하고 있다. 몇 억년의 관점에서 보면 저자가 안타까와 하는 표토층의 침식이나 토양의 염분화 등 모두 잠시 지나갈 현상일 뿐이다. 문제는 향후 몇십년간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롭게 진화해 나갈 것인가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발론자는 아니다. 단지 인간에게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자는 것이다.지구를 아끼는 것은 지구가 신성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잘 아껴야 우리가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고 때문에 미국 소고기로 대표되는 음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CAFO로 대표되는 미국식 육식이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다. 인간에게 해롭기 때문에 나의 건강과 내 아이의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난 미국식 공장형 사육 고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비록 가격 때문에 먹기는 하지만. 저자도 언급했듯이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문제인 것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제3세계가 선진국의 하청 공장이 되면서 오히려 식량이 부족해지고 기아가 늘어나는 식량의 불평등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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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학교때의 학습이 중요하다. 벌써 몇 십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서 위의 사진처럼 5대 식품군을 보여주면서 모든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저자는 선생님 말씀도 부모님 말씀도 무시하고 헛된 낭만에 휩싸여 20여년 동안 채식하다 몸이 고생하고 나서야 비로서 철이나 정상적인 식생활로 돌아 왔다. 하지만 아직도 이것도 저것도 못마땅해 하는 태도가 보이지만. 채식과 육식이 융화된지 오래다. 즉 채식과 육식의 경계가 사라졌다. 이 세상에 순수한 채식이 어디 있는가? 갑자기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식으로 호들갑 떠는 저자의 태도가 웃긴다. 입 짧은 철부지 사춘기 소녀처럼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하는 태도때문에 숟가락을 빼앗아 버리고 싶다. 콩문제도 그렇다. 엄마말씀대로 골고루 먹으라고 그랬지 누가 콩만 냅다 먹으랬냐. 콩단백질 추출해서 콩고기 만들면 당연히 콩에 있는 해로운 성분도 농축되니 많이 먹으면 해로운 것이다. 그냥 반찬으로 그리고 잡곡밥에 섞어 먹으면 충분하다.
저자의 결론이 황당하다. 그냥 거기까지 반성문쓰고 말 것이지 우리에게 충고를 한다고 사고를 친다. 차를 몰지 말자고 하는 것과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키우자는 낭만어린 지적은 귀엽게 봐주겠다.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한다. 저자는 지구를 신성시하는 가이아교에 빠졌는지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니까 아에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가급적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한다. 이대로 놔두면 신성한 표토층이 사라지고 기아에 허덕이게 되니까 후손을 위해서 인구를 줄이자고 한다. 핵전쟁 한번 일으키자고 안하는게 다행이다. 6,400만년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10Km짜리 소행성이 부딪혀 엄청난 표토층이 사라지고 홍수가 나고 전지구적인 겨울이 왔을때 그래서 공룡이 멸종 했을때 저자는 얼마나 안타까와 했을까? 지구가 아파요! 하면서. 하지만 그런 위기에서 포유류는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 인간까지 이르게 되었다.
난 채식주의자의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의 건강문제를 떠나서 얼마나 귀여운가? 술담배에 찌든 사람보다는 훨씬 좋다. 단 호들갑 떨면서 고기 먹는 사람을 혐오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타인에게 간섭을 하는 순간부터 골치아파 지는 것이다. 난 개고기 먹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단 나에게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먹으면 된다. 사람들 보이는 데서 개를 잡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도축하면서 말이다. 채식주의자들이 입고 있는 예쁜 옷을 만드는 재료인 면, 실크, 모, 합성섬유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들이 알면 그들은 누디스트로 변신할까? 비꼬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은 융화되어 우리가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지구에 해롭다. (리어 키스의 관점에서)
* 리어 키스 이 사람 꼭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닌데 왠지 비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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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싸움이 아닌 생산적인 논쟁 릴레이를 기대하며
채식의 배신. ‘20년간 극단적인 채식을 실천하다 얻은 것이라고는 각종 심각한 퇴행성 질병과 우울증뿐이었던 저자의 채식주의 비판서.’ 이 정도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떠올린 콘셉트였다. 채식주의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던 저자가 ‘속고 산’ 세월을 억울해하며 신랄하게 채식주의를 깎아내리고 고발하는 책…….
뜨거운 진정성 차가운 이성
그런데 원고를 넘기면 넘길수록 애초에 떠올린 콘셉트와는 크게 다른 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저자야말로 그 20년간 채식주의를 뜨겁게 믿고 공감하고 실천한 사람이었고, 채식주의를 벗어던진 지금도 채식주의에 대한 애틋함이 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단순한 개인적인 억하심정의 발로라고 하기엔, 채식주의의 주요 신화를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저자의 논리가 굉장히 튼실하고 세심하다. 보통, 잘못 알려진 신화의 진실을 파헤치는 책들은 정도 이상으로 과격하거나 군데군데 옹졸한 논리로 포장한 구석이 있는데, 이 책은 세밀한 반론뿐 아니라 저자의 진정성이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흔치 않은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얘기되던 채식주의의 온갖 담론을 두루 살피며 그 근거를 묻고 사례를 검증한다.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아니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채식주의의 이면이 충격적으로 튀어나온다.
채식주의, 세상과 생명을 소중히 하겠다는 뜨거운 열망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하는 이들을 이해하려 할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뭐가 얼마나 옳은지 따져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채식을 받아들였는지,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과 생명을 함부로 파괴하지 않겠다는 뜨거운 열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채식주의자들의 무지와 오해, 맹신을 안타까워하는 저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채식주의’라는 것은 단순히 먹는 음식의 종류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그 단어를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그 사람의 총체적 정체성을 표현한다.
이 책의 내용이 일부 채식주의자들에게 불편하게 다가갈 것이다. 개중에는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 출간 후 아마존 독자 평점이 별 하나와 별 다섯의 양극단으로 갈린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불편할지라도!
그럴수록 저자가 머리말 밝힌 절절한 심정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내가 여러분의 생활 방식과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혼란, 공포,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부디 믿어 주기 바란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다음 부록으로 실린 자료들을 살펴보기를. 제발, 부탁이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혹은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어 주는 것이 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애걸한다.”
이 책이 채식 찬반 싸움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반론에 반론이 이어지는 생산적인 논쟁 릴레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진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전, 지구의 안전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키 기획편집부 부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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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분들도 저처럼 제목에 낚일까봐 일부러 리뷰 남김니다.
저자의 문제는 "채식"이 아니라 "극단적인 저칼로리식단 및 가공식품"입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했으니 당연히 몸이 망가지지요. 논리적 사고력 부족과 강한 행동력이 결합했을때 생길 수 있는 안좋은 케이스이고 개인적으로 동정은 가나, 이렇게 논리적 비약이 심한 글로 애먼 독자들에게 화풀이 하면 곤란하죠. 마지막엔 공장식 농업도 싫고 공장식 축산업도 싫으니 수렵/채집생활로 회귀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세계인구가 6백만 정도로 줄어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완벽한 건강상태를 누렸다는 용감한 전제도 빼놓을수 없군요. 예, 영양실조와 병으로 인구가 늘어날 기회가 좀처럼 없던 그시대 분들입니다. 굳이 이 책의 의의를 찾자면, 미국의 비건그룹 중에 반쯤 종교적인 이유로 이상한 식생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거 정도?
결론: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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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물론 채식을 더 좋아한다. 내 몸이 그걸 더 원한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달리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때문에 종종 육식을 한다. 그러나 육식을 안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채소없는 식탁은 고역이다. 내 밥상에는 그런 일이 없지만 외국에서 밥을 사먹을 때 종종 그런 식탁이 있었다. 그럴때면 괴로웠다. 그렇기때문에 이 책 소개를 처음 접했을 때 채식의 어떤 면이 배신이라는 것일까하고 궁금했다. 아마도 요즘 문제시되는 옥수수나 콩같은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이야기거나 거대 기업들에 의한 횡포, 아니면 농약범벅을 한 다량 생산 뭐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20년동안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저자가 온갖 질병을 앓다가 이것저것 알아보고 채식주의를 포기하고 육식을 하면서 채식주의자들에게 권고하는 형식의 글이다. 그러니 저 제목에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원제가 [The vegeterian Myth]인데 우리말 번역본에 저렇게 바뀌었기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원제는 적당하게 붙여진 것 같다. 다만 내용에서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책 내용은 채식주의자가 된 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지에서 비롯된 신념이었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즉 동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육식을 하지않겠다는 것이었단다. 물론 그 뜻이 올바르지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면에서 너무 극단적이다. 몸이 망가질 지경까지 채식만을 고집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는 또 육식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전개과정이 별로 탐탁하지않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채소가 자라는 것은 동물의 피와 뼈로 자라는 것이니 육식을 안한다고 동물(의 것)을 안먹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동물들이 키워지는 수용소같은 현장을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하고 지표면을 다 없애가면서 단일농작물을 키우는 것을 성토하기도 하면서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을 비난한다든지 그야말로 종횡무진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상황은 맞는 말인데 저자의 결론은 항상 엉뚱한 곳에서 맺음한다. 그래서 읽다가 피식 헛웃음이 나오고 만다. 온갖 자료들을 들이대지만 정말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사람들이 반대편 주장만을 알고있는데 실제는 이런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내가 보기엔 둘 다 한쪽 면만을 본 것이지 저자의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사실 저자의 주장이랄 것도 없다. 여기저기 온갖 다른 사람들의 단편적인 논문이나 발표들을 인용하는 것인데 그거야 자신의 논리에 부합되는 것만 선별해서 이어붙인 것일 뿐이다. 물론 많은 부분을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나도 많이 고민하던 부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식의 글은 오히려 반감만 불러 일으키지않을까 걱정된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쏟아내는 이야기는 더욱 불편하다. 나도 여자지만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동의하는 부분도 많지만 무엇이든 이쪽으로 갖다 붙이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문제제기를 해볼 생각으로 메모쪽지를 붙이면서 읽었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할 수가 없겠다. 그저 내가 붙였던 쪽지나 보여드려야겠다.
지구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저자가 제시한 세가지 중 아이를 낳지 말자는 말은 어이없었지만, 차를 더 이상 몰지 말자와 자기가 먹을 음식은 직접 기르자는 이야기는 애교로 받아주기로 했다. 뒷마당에 개와 고양이 대신 돼지와 닭을 기르랜다. 잔디 대신에 먹을 수 있는 각종 식물을 길러서 식탁에 올리란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는 어쩌라고? 동물애호가인 것 같은데 식용동물 아니고 같이 사는 반려동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집안으로 데려들여가라는걸가?
내 꿈이 수렵 채집인이라고 곧잘 우스개 삼아서 이야기하곤했다. 저자의 꿈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웃기가 어렵다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책을 어떤 사람들에게 권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했다. 정말 동물 애호가여서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 육식, 특히 지방을 먹으면 건강이 해친다고 생각하는 사람?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을 너무 신봉하는 사람? 세상을 구하고 싶은 사람?
이 책을 읽는 동안 옆에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좋은 책만 골라 읽으라고. 난 이 책이 나쁜 책은 아니라고 박박 우겨가며 싸웠다. 그래도 좋은 책이라고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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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어들여 판매부수나 늘려보려는 수작이 다분한 쓰레기 책! "제목에 낚인다"는게 이런뜻입니다. 언론사만 이런 쓰레기 낚시글 쓰는줄 알았더니 이제는 작가들도 이걸 배워 책을 파는 시대가 도래했네요..기막힌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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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하면 우선 몸에 좋다는 인식이 강하다. 나역시도 살도 빼고 싶고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지만 한번씩 미치도록 고기가 땡겨 아직까지 채식을 해 본적이 없다. 헌데 '채식의 배신'을 읽으면서 채식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느끼게 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던 채식의 좋은점은 거의 없고 오히려 우리의 몸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저자 리어 키스는 단지 채식이 우리몸에 끼치는 나쁜 점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 채식을 행했던 인류와 고기를 함께 섭취했던 인류의 건강 차이는 물론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채식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완전한 채식일 수 없다는 것이다. 땅이 가지고 있는 근본부터 살펴보면 미세한 미생물부터 동물성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으며 인간도 죽어 땅에 묵히면 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존재이기에 완전한 채식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순수 단백질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고 바다의 고기로 다이어트나 건강상의 이유로 식이요법을 하는 사람들이 꼭 챙겨 먹는 '콩'이 알고보면 얼마나 위험한 식물인지 꼼꼼히 알려주고 있다. 읽는내내 그럼 앞으로 콩 섭취를 많이 줄여야 한다는 생각도 했으며 콩에 많이 함유된 에스트로겐 성분으로 인해 유방암과 갑성성 질환에 대한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저자 자신이 오래도록 채식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라 더 신빙성이 느껴지는 책이였다. 채식을 20년이나 한 사람이 갑자기 채식을 포기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단순히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가 채식의 위험성과 지구상에서 많은 식물 얻기 위해 나라, 대기업으로 벌이고 있는 일로 인해 많은 땅이 비료나 화학제품으로 인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알려준다. 여기에 저자 자신도 채식을 시작하고 바로 여자들이 매달하는 '매직'을 끊기는 현상을 경험 했으며 오래도록 채식을 하면 관절이 안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우울증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란 생각을 가지고 생활해야한다. 인간이 최상층의 포식자지만 죽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간 인간도 비료로 사용되며 이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살짝 놀라기도 했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람모양의 나무가 있다는 글이였다.
무엇보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단순히 수치로만 파악되는 표가 아니라 인류가 채식만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땅을 병들게 한다는 것과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인한 각종 병에 걸리기 쉽고 무엇보다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인구증가가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강조한다. 포화상태를 넘어 더 이상 지구상에 인구가 증가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위험성은 실로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채식에 대한 위험성이 무엇인지 궁금한 면이 있었다. 허나 책을 읽다보면 채식을 선택하고 안하고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지구란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동식물과 함께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채식을 바라보는 확대된 시각을 가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채식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건강하게 하는게 무엇인지 다시한번 꼼꼼히 따져보고 생활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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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로와서 책을 사지는 않고 인터넷으로 주요 내용을 쭉 흝어봤다. 인터넷에 상당히 많은 내용이 노출되어서 사지 않고도 주요 내용이 다 파악가능한 상황. 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이 굉장히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전세계 거대 곡물 메이저에 대한 이야기나 극단적인 채식이 어떻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지 등등은 상당히 읽을 만하다고 느꼈다. 또 지역 농축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도 공감한다. 그런데 채식이 건강을 망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서양식 채식과 동양식 채식의 식단이 달라서 이 책의 주장은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이다. 서양식 채식의 식단은 밀가루위주이니 몸에 좋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채식 식단은 현미등 잡곡 위주여서 건강에 안 좋을 수가 없다는 생각. 사실 난 고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대로 먹고 살찌면 건강검진 결과는 엉망이다. 고지혈 등등. 가끔 단식에 가까운 절식 요법과 그 이후 채식위주 보식 식단기를 거치면 몸이 상당히 좋아진다. 주변에서도 그런 사례를 많이 보는데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상식적이고 임상적인 사례들에 반하는, 잘못하면 독자를 호도할 수있는 위험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넘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 책 번역자와 출판사에 좀 유감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