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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오로지 경험한 자의 것이지 그 외의 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명제를 두고 <라이프 오브 파이>는 믿음과 해석의 경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온갖 것들의 경계를 학습시킨 후 질문한다. 사실은 어렵다.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에 비하면, 이 작품은 겉핥기하기도 쉽고 우상화하기도 쉽다. 그래서 어렵다. 신과 자연, 과학과 종교, 인간과 동물, 진실과 사실 사이의 간극을 촘촘한 그물로 엮어 파이를 밀어넣은 후 이 대결에서의 승자로 인식시킨다. 파이가 살아남은 것이 이긴 것이다. 파이를 이기도록 한 원동력이 이 영화의 다양한 소재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종교가 관통하는 문화권에서 다양한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아버지는 종교보다는 경험에 의한 이성을, 어머니는 종교에 의한 믿음을 가르쳤다. 상반된 가치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제 안에 축적시킨 파이는 모든 종교를 믿고 이성 또한 챙김으로서 질문을 흡수한다. 한편의 훌륭한 성장소설이 뛰어난 역량을 가진 감독에 의해 어떻게 기술적으로 맞는 옷을 입게 되었나 같은 설명은 적어도 최소한으로 얘기되거나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이유로 쓰지 않았다. 아무 이야기 아니면서 수많은 이야기인 이 영화가 내 안에서 해석되는 순간, 나는 수많은 해석들 중 하나의 단서에 대해 단호하게 써내려 갈 것이 분명하고, 그러고 나면 영화가 해석에 갇힐 것이 두려웠다. 질문에 올바른 대답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반드시 대답이 필요하리라 여기지도 않았다. 인생의 시험대는 기다리지 않는다. 시험대에 올려졌을 때는 시험받아야만 한다. 그간 살아온 방식과 받아온 교육, 고수해온 가치관의 행렬에 따라 천차만별의 양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곧 세상의 질서이자 이치가 된다. 스펙터클한 파이의 난파선 표류기 진실이 어쨌든, 어떻게 시작하고 끝났든, 진실이 진실이게 하는 순간은 파이가 이야기 속에 오롯이 실재한 찰나일 뿐이다. 이야기에서 밀려난 아니 애초 이야기 안에 존재한 적도 없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 영화는 수두룩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각 개인의 몫으로 남기는 여백의 미학을 발휘한다.
두 이야기 중 한 이야기의 파이가 유독 컸으므로, 나 역시 리처드 파커의 손을 들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는 관객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믿고 싶은 것을 믿게 하고, 듣고 싶은 것을 듣게 한다. 그게 문제가 될까. 그렇다. 유일한 문제다. 내가 리처드 파커의 부재를 슬퍼한 이유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이 좌절된 마지막 순간에 절망해서이기도, 태초에 개인은 타자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진리를 깨달아서이기도 하다. 우연히 당도한 멕시코 해안의 야생의 숲으로 자취를 감춘 리처드 파커가 파이의 진실을 검증해주지 못함에도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파이가 들려준) 두 버전의 이야기가 보증하는 유일한 사실은 파이가 227일간의 난파선 표류를 견뎌냈다는 것과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라는 점, 이를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뿐이다. 이 순간, 파이의 조난은 진실을 추궁하는 경험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믿어야 하는 신화가 된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파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변형된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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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순간을 예감하고도 결국 리처드 파커를 내려치지 못한 파이의 손은 이제 그의 먹이를 잡고 그를 피해 도망하기 위해 정신을 놓치지도 못한다. 행복이 계속되면 권태가 오고, 불행이 계속되면 파멸이 기다릴 뿐이다. 구조의 희망을 예감했을 리 없는 파이가 그 짧은 순간 무료를 견디기 위해 리처드 파커가 필요하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없다. 죽을 확률과 생존 확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파이가 본능적으로 고독 보다는 위험을 선택했다는 것은 인간이라서, 인간이기에 가야 할 역설의 길을 생각하게 한다. 팽팽한 긴장이 오히려 약이었다는, 뻔하면서도 위대한 연설을 파이는 들려준 것이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어쭙잖은 소통 대신 차라리 철저한 고립과 이기주의를 택한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역할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 날 이후, 자신이 믿어온 종교의 모든 신을 정말로 믿게 되어버린 한 남자가 가족을 잃은 대가로 제 가족을 꾸려 살고있는 지금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신과 인간, 선과 악, 자연과 과학, 이성과 본능, 믿음과 불신에 대한 대립의 경계를 흩어버린 채 각기 다른 영역이 아닌 미지의 영역에서 조합한 어떤 세계. 그 세계를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옳다고 믿은 나머지 이성의 이성에 집착해 때로 균형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나, 한 번도 소중한 걸 걸어본 적 없는 이에게 세상은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위대한 인간에게 자연은 더 위대한 세계를 선사한다. 파이가 겪은 세계는 그런 세계였고, 오랫동안 오지 않을 미래이며,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기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