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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의 강에서 떠도는 섬들 - 마르그리트 뒤라스 《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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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부영사"를 ‘부영사(浮榮史: 덧없는 세상의 헛된 영화 이야기)’ 뜻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다 읽고 나니 내 예감이 아주 빗나간 것 같진 같지만 정확하게 부영사(副領事)는 프랑스 외교관 직책이자 한 인물을 지칭하는 거였다. 라호르에서 의문의 사건을 저지른 걸로 인도 내 영국인 주류 사회에서 철저히 배척당하는 라호르 주재 부영사 장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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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부영사"부영사(浮榮史: 덧없는 세상의 헛된 영화 이야기)’ 뜻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다 읽고 나니 내 예감이 아주 빗나간 것 같진 같지만 정확하게 부영사(副領事)는 프랑스 외교관 직책이자 한 인물을 지칭하는 거였다. 라호르에서 의문의 사건을 저지른 걸로 인도 내 영국인 주류 사회에서 철저히 배척당하는 라호르 주재 부영사 장 마르크 드 H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직접 언급되는데 특히 주목된다.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보다 더 강렬하고 흥미롭다

이 소설은 특정한 주인공을 콕 집을 수 없게 독특하게 배치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해 가난한 집에서 쫓겨나 캄보디아에서부터 10년을 걸어 인도 캘커타에 이르는 여자 걸인의 여정으로 시작한다. 액자식 구성처럼 피터 모르간이 쓰고 있는 소설 속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 불현듯 현실 속에 그녀가 등장한다. 그가 여자 걸인 이야기를 쓰게 된 경위는 캘커타 주재 프랑스 대사 부인 안 마리 스트레테르가 자기 주변에서 늘 인디아나 송을 부르고 있는 한 여자 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부터다. 샤를르 로제트 앞에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그가 주는 동전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갓 잡은 생선 머리를 물어뜯으며 그가 공포를 느끼는 걸 즐긴다. 인도에서 아름답고 섬뜩한 분위기의 여자 걸인을 본 적 있어서 소설 속 여자 걸인에 대해 상상이 쉬웠다. 이 여자 걸인은 뒤라스가 인도에서 목격한 아이를 파는 여자 걸인에서 나온 모티프로 그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한다.

스트레테르 부인에게는 피터 모르간 외에도 마이클 리차드, 조지 크라운이라는 정부가 더 있는데 그들이 가족처럼 지내는 건 아주 기이한 풍경이다. 그녀는 인도에 새로 부임한 외교관 비서인 샤를르 로제트에게도 관심을 보인다. 샤를르 로제트는 그녀에게 끌리면서도 그녀를 둘러싼 관계들에 섞이는 것을 주저한다. 그녀의 권태를 간파한 부영사가 그녀에게 구애하지만 외면당하는 것과 대비된다. 로제트는 이 소설의 주요 세 인물 스트레테르 부인과 장 마르크 드 H와 여자 걸인을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인물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이기도 하다모든 등장인물의 기이한 관계와 행동들의 이유는 계절풍이 부는 인도의 무더위와 권태가 공통점이겠으나, 기후는 그들 내면에 품고 있는 근원적 문제가 드러나게 되는 트리거다. 그것을 각자 풀어가는 모습은 다른 듯 같게 느껴진다. 스트레테르 부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과 부영사가 대낮에 문둥이들과 거울을 향해 총을 쏜 사건과 걸인 소녀가 툭하면 인디아나 송을 부르는 것은 닮았다.

 

한 사람이 기억을 떠올린다. 정원에서 그가 인디아나 송을 휘파람으로 불어. 마지막 사람이 이 인디아나 송을 기억하지. 전에 그가 인도에 대해 알던 전부였어. 인디아나 송.(p165)

 

그 여자애 가끔씩 섬에도 와요. 안 마리를 쫓아온 것처럼, 백인들을 쫓아온 것처럼 말이오. 참 묘해요. 캘커타에 완전히 적응을 한 것 같다니까요. 내가 꿈을 꾼 건지도 모르겠는데, 더러 밤에 갠지스 강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해요. 그 애가 부르는 그 노래, 그건 대체 무슨 노래요, 안 마리?”

잠들어 있는 안 마리 스트레테르는 대답할 수 없다.

조지 크라운이 말한다.

그 애는 항상 노래하고 주절거려요. 정적 속에서 쓸모없는 말들을 늘어놓죠. 아마 그게 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봐야 할지도 몰라요. 그 애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즐거워하더라고요. 개 한 마리가 지나가도 깔깔거리죠. 밤에는 산책을 해요. 나라면, 만일 내가 책을 썼다면, 그 애한테 죄다 거꾸로 하게 했을 것 같아요. 나무 그늘이나 갠지스 강가의 이쪽저쪽에서 낮에 잠을 자게 하는 거죠. 그 애가 결정적으로 길을 잃는 곳은, 어떻게 길을 잃을지 알게 되는 곳은, 갠지스 강물 속이 될 거요. 자신이 누군지 잊고, X의 딸이었는지 Y의 딸이었는지도 더 이상 모르고, 더 이상 권태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곳 말이오. 조지 크라운이 웃는다하긴 우리도 원칙적으로는 바로 그것 때문에 여기 있는 것 아니겠소? 절대, 절대로, 조금이라도 권태롭지 않으려고 말이오.”

안 마리 스트레테르는 잔다.”(p205)

소설 끝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부영사 장 마르크 드 H의 사건처럼 그가 삶의 권태를 이길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스트레테르 부인에게 가진 첫사랑도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그가 파티장에서 스트레테르 부인과 그녀의 정부들에게 나도 당신들과 남고 싶소, 한 번만 당신들과 남게 해주시오.”라고 외치며 쫓겨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가 떠나간 뒤에도 그 고함은 갠지스의 모든 소리와 섞여 소설이 끝날 때까지 여전히 맴도는 것 같다. 여기 내게도.

그들은 듣는다. 그것은 고함 소리가 아니라 여인의 노랫소리다. 대로에서 들려오는. 잘 들어보면 고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하지만 아주 멀리서, 부영사가 아직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로에서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잘 들어보면 모두가 나지막하게 고함을 친다. 하지만 저 멀리, 갠지스 강 저편에서 들려온다.(p169)

 

이 소설은 뒤라스가 인디아 송(1975) 제목으로 직접 영화로 만들었다. 여러 번 놓친 영화였는데 기회 된다면 꼭 보고 싶다.

 

 https://youtu.be/qV_XVnz5RM4?list=RDqV_XVnz5RM4

 

그녀가 샤를르 로제트에게 말한다.

이 더위는 먼 훗날까지 기억날 거예요. 더위가 곧 당신의 인도에서의 젊은 날이 될 거라고요. 그러니 지금부터는 더위를 아예 나중에 당신의 추억이 될 무엇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모든 게 달라질 걸요.”(p215)


g******i 2017.10.24.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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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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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웁니다. 그저 고통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 울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인 것처럼요. 나른하고 권태로우면서 퇴폐적인 문체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라호르에선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게 뭐가 중요한가? 사실 여기에선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해봤자 어차피 껍데기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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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웁니다. 그저 고통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 울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인 것처럼요. 


나른하고 권태로우면서 퇴폐적인 문체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라호르에선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게 뭐가 중요한가? 사실 여기에선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해봤자 어차피 껍데기에 불과한 말 뿐인데...

뭐 이런 것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굉장히 에로틱한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 

h*****p 2019.12.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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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출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 그래서 난해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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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라 검색을 해 보니 영사의 다음 위치에 있는 외교관이란다. 가끔은 이상하게 배경이 같은 문학 작품을 접할때가 있다. [시티 오브 조이]라는 인도의 캘커타를 배경으로 비슷한 시대의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농부의 이야기를 읽다가 집어 든 이 책 또한 비슷한 시기의 인도의 캘커타가 배경이다. 이럴땐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이야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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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라 검색을 해 보니 영사의 다음 위치에 있는 외교관이란다. 가끔은 이상하게 배경이 같은 문학 작품을 접할때가 있다. [시티 오브 조이]라는 인도의 캘커타를 배경으로 비슷한 시대의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농부의 이야기를 읽다가 집어 든 이 책 또한 비슷한 시기의 인도의 캘커타가 배경이다. 이럴땐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이야기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더이상 먹고 살수가 없어 고향을 떠나 도심으로 나가 인력거를 끌게 된 하사리의 이야기와 달리 이 책에는 무언가 권태롭고 무료하고 아슬아슬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권태롭고 때로는 긴장감이 감돌게도 한다. 그런데 참으로 난해하다.

 

일단 이야기의 시작은 아이를 잉태한 한 소녀가 엄마에게서 쫓겨나 고향을 벗어나려 애쓰는 장면에서 부터다. 너무도 냉정한 엄마에 대한 복수로 이를 갈다 아이를 낳고 자신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베트남 어느 도심의 한 귀부인에게 아이를 주어버리고 바탐방이라는 자신의 고향만을 기억하는 걸인이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피터 모르간이 쓰고 있는 소설이며 장면은 인도의 캘커타의 라호르의 부영사의 이야기로 바뀐다. 거지들과 나병환자들이 모여 있는 광장을 향해 총을 쏘는 사건을 일으키고 그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부영사, 그는 그곳에 체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며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그를 프랑스 대사의 부인인 안 마리가 파티에 초대하고 남몰래 연정을 품어 왔던 그녀와의 시간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부영사는 드디어 그녀와의 춤출 기회를 잡는다. 그 순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또 무슨 대화를 주고 받는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어느곳이나 남의 이야기 듣기 좋아하고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존재하는법, 왠지 안그럴거 같은 교양있고 학식있는 사람들은 아닌 척 하면서 더 뒷얘기 하기를 즐긴다. 그렇게 부영사는 불우의 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대상이기도 하며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라호르 부영사의 호기심을 자극한 프랑스 대사의 부인 안 마리는 도대체 어떤 여자인걸까? 그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떠들기 좋아하는 이야기속에서의 그녀는 대사의 묵인하에 정부를 두고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러 종종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파티장에서 그 섬으로 초대 받은 젊은 샤를르 로제트가 부러운 부영사는 취기로 인해 자신 또한 그곳에 가기를 희망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섬에서의 안 마리 역시 두 남자 사이에서 조차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가 전개 된다.

 

사실 이 소설은 단절된듯한 문체와 무언가 의미심장함을 가득담은 문장과 문장들 사이의 숨은 이야기가 안개속에 가려져 잡힐듯 잡히지 않는 그 어떤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소실이다. 자신의 돌발 행동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부영사의 휘파람 [인디아 송]이 이 책의 이야기속에 내내 흐르는듯 하다. 어떤 음악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왠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인디아의 음악! 그 속에 잠재되어 있는 표출하지 못하고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과 그 삶을 이어가야하는 그네들의 삶은 읽는 내내 모호하기만 하다. 마르 그리트 뒤라스의 소설과의 첫 만남은 결코 내게 쉽지 않았다.

 



k*******7 2013.03.11.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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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풍경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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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2011년 그책에서 에디션 D 시리즈를 출간했다. 당시 첫 작품으로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를 접했는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달리 책은 단조로웠고 길의 말로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었을 때의 홧홧한 느낌보다 표지가 더 야릇하게 느껴졌던 시리즈였다. 여러모로 적나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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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2011년 그책에서 에디션 D 시리즈를 출간했다. 당시 첫 작품으로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를 접했는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달리 책은 단조로웠고 길의 말로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었을 때의 홧홧한 느낌보다 표지가 더 야릇하게 느껴졌던 시리즈였다. 여러모로 적나라한 표지가 걸렸는지 출판사에서는 에디션 D 시리즈의 모든 표지를 바꾸고 이전에 나왔던 작품을 포함해 몇 권의 작품을 더 선보였다. 새롭게 선보인 작품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다.

 

한 사람이 기억을 떠올린다. 정원에서 그가 「인디아나 송」을 휘파람으로 불어. 마지막 사람이 이 「인디아나 송」을 기억하지. 전에 그가 인도에 대해 알던 전부였어, 이 「인디아나 송」은. - P.165

 

이곳에서 날이 밝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다. 저 멀리 푸른 종려나무들이 보인다. 갠지스 강가에 문둥이들과 개들이 뒤얽혀 이 도시의 거대한 첫 번째 성곽을 형성한다. 더 멀리 북쪽의 사람들로 복닥거리는 인구밀집지역에서 가아로 죽어가는 자들이 마지막 성곽을 형성한다. 새벽빛이 어슴푸레하다. 이 빛은 다른 어떤 빛과도 닮지 않았다. 한없는 고통 속에서 부분부분 도시가 깨어난다. - P.186

 

마르그리트 뒤라스 작품 중 <연인>을 재밌게 읽었고, 또 영화를 인상깊게 본터라 부영사를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녀의 자전적인 성격인 연인을 비교한다면 부영사는 굉장히 건조하다. 캄보디아나 인도의 캘거타 같은 풍경이 오롯하게 눈에 들어오지만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처럼 자연 풍광이 반 이상 책의 지면을 차지한다. 걷고, 또 겉은 걸인 여자의 모습이...날 것 이상으로 여자의 행위는 원시시대의 그것처럼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환영처럼 느껴지는 것은 피터 모르간이라는 사람이 쓰는 행위가 겹쳐지면서 여인의 모습과 그의 행동이 반복되며 우리는 이상한 미로 속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문제들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 반복한다.

 

한 걸인여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보면 다시 피터 모르간의 글쓰기가 시작되고 다시 부영사의 이야기가 엮어 나간다. 혼란한 입구를 따라 가보면 나약하고 심약한 누군가가 등장하며 강렬한 눈빛과 감정으로 그녀를 주시하곤 한다. 일의 파장은 커지고 본인의 수위를 넘어가는 일이 발생되는 이야기가 바로 그녀가 쓴 <부영사>다. 한 작가의 소설의 세계를 따라가보면 그 작품이 누구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데 <부영사> 만큼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소설의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과연 화살표대로 길을 잘 가고 있나 하는 두려움과 계속되는 작품이다. 

l****9 2013.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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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이 떠도는 유령들의 허밍 : 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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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걷는다, 라고 피터 모르간은 쓴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베트남 산골 출신인 "그녀"는 임신한 채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계속 걸어요. 걷고 또 걷지요. "허기와 걸음이 톤레사프의 땅에 각인되며 멀리멀리 퍼져" 갈 때까지. 어떻게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까 궁리하면서. 길을 잃기 위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더는 알아보지 않겠다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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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걷는다, 라고 피터 모르간은 쓴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베트남 산골 출신인 "그녀"는 임신한 채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계속 걸어요. 걷고 또 걷지요. "허기와 걸음이 톤레사프의 땅에 각인되며 멀리멀리 퍼져" 갈 때까지. 어떻게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까 궁리하면서. 길을 잃기 위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더는 알아보지 않겠다는 자세"가 되어.

 

             허기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대체 어디서 멈출 것인가.  (본문 중에서)

 

   생명을 품은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죽어갑니다. 보이지 않는 저 배 속의 생명이 그녀의 피와 살, 생명력을 무섭게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배고픔은 끝이 없고 그 허기의 원천은 바로 저 배 속의 아이. "쥐새끼 같은" 뱃속의 아기가 자랄수록 그녀는 조금씩 더 죽어갑니다.

 

            전 여기 앉아 기다렸어요. 정확히 뭘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혹시 부영사님을 기다린 걸까요? (본문 중에서)

 

    '그녀'는 피터 모르간이 쓰는 소설 속 인물입니다. (피터 모르간은 누구일까요? ^ ^ )뒤라스는 이 소설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요. 피터 모르간이 쓰는 소설 속 '그녀', 그리고 캘커타의 프랑스 대사관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반복되는 돌림노래처럼 단조롭게 진행됩니다.

 

          땀이, 땀의 원천인 몸뚱이에서 철철 흐른다. 계절풍 동안의 이 무더위는 정말이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더 이상 정신을 집중할 수 없다. 생각이 불타버리고 서로를 밀어내다가 공포가 모든 것을 잠식한다. 공포만이 남느다. (본문 중에서)

 

    캘커타는 죽음의 도시입니다. "무더위"와 "어슴푸레한 빛" "도무지 색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단조로움. 굶주린 거지와 문둥이들, 버려진 아이들의 도시이지요. 프랑스 대사관은 외딴 성처럼, 섬처럼 거기 있습니다. "살인적인 태양을 피해 덧창을 닫고" 집안에 갇혀지내는 창백한 사람들의 성. 고향을 잃고 떠도는 이방인들의 섬. 그들에게 남은 건 참을 수 없는 권태와 미지근한 공포 뿐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지요. 피터 모르간의 소설 속 "그녀"처럼. 길을 잃기 위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알아보지 않겠다는 자세가 되어.

 

            저 라호르의 부영사, 당신이 보기엔 약간 죽은 사람 같지 않나요? (본문 중에서)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도 창백한 이국의 유령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삶을 연기하는 그들은, 그래요, 그림자도 없이 떠도는 그들은 유령과 같아요. 죽음은 그들의 욕망과 희미한 기억마저도 앗아가 버렸습니다. 하품하듯이 불평하는 것으로 공포를 견디는 그들 사이에 '부영사'가 있습니다. 샬리마르 정원의 문둥이들과 개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부영사는 캘커타로 임시 배속되어 다음 발령지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프랑스 대사관에서 부영사의 존재는 이상한 열기를 퍼뜨립니다. 그는 누구와도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지요. 죽어간다는 의식도 없이 죽어간 그들과는 달리 생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출한 저항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부영사의 존재를 통해 자기 안의 숨은 욕망과 활기를 갉아먹는 권태, 그리고 공포를 엿보는데요. 죽음을 일깨우는 부영사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매우 불편합니다.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아요. 아무도. 지옥 같은 고독이지요. 제 생각에 여사님은, 그의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말썽에 화내지 않을 유일한 사람입니다. (본문 중에서)

 

 

     부영사의 존재와 함께 부각되는 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요. 프랑스 대사의 아내 안 마리입니다. 부영사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기 안의 숨은 욕망과 공포를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영사가 샬리마르 공원에 총을 쏘는 방식으로 생에의 갈망을 표출했다면 안 마리가 택한 방식은 상심(傷心)입니다. 밤의 무도회를 열고 여러 명의 정부와 쾌락을 나누는 안 마리의 퇴폐적이고 자조적인 욕망은 자기 자신을 둘러싼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고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지요.

 

            한 사람이 기억을 떠올린다. 정원에서 그가 「인디아나 송」을 휘파람으로 불어. 마지막 사람이 이 「인디아나 송」을 기억하지. (본문 중에서)

 

 

     뒤라스가 직접 감독한 영화 《인디아송》(India Song,1975)의 원작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뒤라스의 여타 소설들에서도 드러나는 삶의 권태와 폭력성, 활기를 빼앗는 근본적인 허기...같은  "현재 삶 속의 죽음"을 그리고 있는데요. 고향에서 멀어지기 위해 걷고 또 걷고 끝없이 걷는 임신한 소녀와 캘커타의 프랑스 대사관을 둘러싼 인물들의 권태로운 몸짓을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무의미하고 공허한 돌림노래와 같은 생의 단면을 그려냅니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쩐지 으스스해지는 그런 이야기지요. 뒤라스 특유의 문장, 건조하게 뚝뚝 끊어지는 단조로운 문장이 주는 독특한 울림과 위안이 그리운 이에게 권합니다.

 

 

 

 

 

 

 

 

g*******s 2013.03.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