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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정치, 지치지 않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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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지난날의 선거에서 민중은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를 진보에 반하는 퇴보로 평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건 민주/반민주의 대결구도 속에 묻히고야 말았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독재의 시퍼렇던 서슬은 무덤 속에나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 시절을 단순히 기억하는 사람들과 폭력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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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지난날의 선거에서 민중은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를 진보에 반하는 퇴보로 평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건 민주/반민주의 대결구도 속에 묻히고야 말았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독재의 시퍼렇던 서슬은 무덤 속에나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 시절을 단순히 기억하는 사람들과 폭력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의해 과거는 끊임없이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안에서 일말의 희망을 발견한다. 기존의 숱한 시선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지 싶다. 그가 주목한 것은 두 대선후보의 잇따른 사죄였다. 누구를 향해 무엇이 미안하다고 말했던가. 두 인물 모두가 제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으로 인한 사죄가 아니었다는 점이 독특했다. 과연 그들이 사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에서부터 시작하여 차기 정권을 노리기 위한 일종의 전략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던지 등, 사죄에 대한 평은 엇갈린다. 어떠한 평에 기대건 분명한 건 그들이 사죄를 했다는 것과, 그 사죄가 충분히 이후 그들의 행동에 구속력을 발휘하리라는 점이다. 사죄는 생각 없이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유쾌했다. 역사에 숱한 오점이 존재하겠지만, 비교적 가까운 시일에 발생했으며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할 이승만과 전두환에 관한 부분은 실로 그랬다. 진심이 강제되지 아니 한 유체이탈적인 화법은 조소를 낳을 법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냥 웃고만 있을 순 없었다. 영향력 없는 개인이 그리 굴었어도 누군가는 상처를 입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와 같이 굴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만나볼 수 있었던 일제 치하의 부역자들의 사죄를 읽으며 조금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죄를 함에 있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 싶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퇴로부터 확보하고, 그리하여 사죄가 사죄 아닌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음을 최남선 이광수 등 당대의 지식인들은 증명해보였다. 그들의 사죄는 진심이기보다 사회와 시대의 요구에 위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 제 안위를 위한 것이었다. 사죄 없이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지난날의 자신을 100% 부정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내놓은 자구책이었다. 사죄의 형태를 보였으나 사죄가 아닌 모호한 언변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이 고수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더구나 일본 사회는 사죄를 원하지 않는 듯하니, 아베 정권이 마치 군국주의를 향해 활개를 치는 것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결과지 싶다.

하지만 역사는 일종의 흐름이고, 사람들은 그 흐름을 기꺼이 놓치지 않는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난 과오에 대해 사죄를 요구한 일이 꽤 된다. 요한 바오르 2세가 교회가 긴긴 과거 동안 해온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말을 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기껏해야 100년에 불과한 삶을 살다 가는 인간이지만 사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사회가 정의라 여기며 행한 것들로 인해 희생된 이들이 상대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상대를 용서할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닭과 달걀을 놓고 어느 쪽이 먼저인지를 가리는 것마냥 사죄와 용서의 우선순위를 다투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상대가 사죄치 아니 함에도 용서하는 것이 대인배의 자세라는 주장은 아마 모두가 한 번 즈음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용서가 가해자가 행한 모든 잘못에 대한 용서는 아니다. 나의 용서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해자의 용서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생전 김근태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진심인지 의심스러웠다고 그래서 용서치 못 했다던 그의 고뇌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죄의 성격에 대해 고민케 한다. 사죄할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식으로 하는 사죄를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사죄도 결과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진보로 이끄는 원동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사죄의 여지조차도 남기지 않았던 독재자가 거짓 사죄를 해놓고 용서를 강요하는 이들보다 더 자비로운 건 아닐지를 묻게 된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다던 이가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죄를 행한 것이 무가치하다 말할 순 없을 게다. 제 입으로 뱉은 말을 부정하는 일은 쉽지만, 역사는 그 말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다.

 

이달의 사락 q*****2 2013.10.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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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개인은 지칠 수 있지만 역사는 지치지 않는다"..'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정의로운 개인은 지칠 수 있지만 역사는 지치지 않는다"..'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내용보기
공자孔子의 어록인 ’논어論語‘ 제 9편 자한子罕 25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공자가 말씀하셨다. 충성과 신의를 지키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며, 잘못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아야 한다.”이렇듯 내가 김욱 교수의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에 즈음해 ’논어‘를 생각하는 것은 ’논어‘가 군자와 소인의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고 특별히 과
""정의로운 개인은 지칠 수 있지만 역사는 지치지 않는다"..'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내용보기

공자孔子의 어록인 ’논어論語‘ 제 9편 자한子罕 25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공자가 말씀하셨다. 충성과 신의를 지키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며, 잘못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아야 한다.”이렇듯 내가 김욱 교수의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에 즈음해 ’논어‘를 생각하는 것은 ’논어‘가 군자와 소인의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고 특별히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즉 잘못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는 자세가 사과(赦過)의 중요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사과는 잘못이 있다면 고치는 것의 한 부분이다. 어떻든 ’논어‘는 개인적 차원의 결단과 수행적 면모와 관계된 책이기에 인용에 참조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사회과학적 분석 그 중에서도 저자가 드러내 보인 것과 같은 동정 없는 냉정한 사회과학적 분석에서 희망을 찾는 일을 대안(代案)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을 뜻하는 사과(赦過)에 대체 어떤 의미와 곡절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김욱 교수가 다룬 사과의 사례와 그를 둘러싼 힘의 메커니즘은 사과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법적, 제도적, 그리고 물리적 배경과 관계된 것임을 알게 한다. 격동의 역사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에 특별히 사과를 하고 또 받아야 할 필요성이 많았다. 아니 지금도 재현(再現)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정치인과 개인은 다르다고.(27 페이지) 따라서 정치적 사과와 개인적 사과는 엄연히 격(格)이 다르다.

 

저자에 의하면 정치적 사과는 언어적 수사(修辭)를 통한 정치이다. 이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정치란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이며 역학적(力學的)이라는 점이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는 박근혜와 문재인의 사과가 말해주는 것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이 특별하게 언급된 것은 모두 18대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였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과를 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인 유신과 민혁당 등의 사건은 물론 박정희 정권의 근원인 5, 16에 대해 사과했고 문재인은“노무현 이데올로기의 모든 것“(119 페이지)이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 초기의 反 민주당 분당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물론 두 건의 사과 모두 선거의 표를 의식한 결과이다. 저자는 (문재인의 경우) 사과의 원인이 된 문제는 당사자 개인의 생각과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세력의 문제이고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고 지지자들의 이해관계의 문제라고 말한다.(126 페이지) 이 내용이 포함된 장(章)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정권을 한나라당에 내주고 들짐승처럼 사냥꾼에 쫓기듯 권력에 쫓기다 고향마을에서 자살한 사건으로 보며 ”이것이 정치”이며“그의 죽음은 운명이 아닌 아마추어 정치가 만들어낸 업보.”라는, 냉정하지만 설득력 있는(아니 냉정하기에 설득력이 높은) 논리로 사태를 풀어나간 저자의 필력이다.(문재인의 사과와 관련해 언급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분석한 113 페이지 - 126 페이지를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마음이나 생각이 아닌 메커니즘, 역학(力學), 이해관계, 물적 토대 등을 중요시한다. 저자의 그런 논리는“사과가 무용한 것이 아니라 그 사과를 유지시킬 정치적 힘이 부족했던”(31 페이지) 것을 문제로 규정하거나 정치적 사과란 정치적 힘 관계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철회되고 심지어는 역류될 수 있다는 분석(45 페이지)을 통해 뒷받침된다. 영남이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즉 김대중과 그의 민주당이 싫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한 패권적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120 페이지)는 말이나 일본이 독일과 달리 정의 관념이 희박한 것이 아니며 그들이 그런 식의 행동을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 역시 같은 차원으로 읽힌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 대한 분석은 돋보인다. 일본이 독일과 다른 상황에서 다른 신념과 교훈을 얻게 된 것을 아시아에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의 결과로 본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정책은 전범 히로히토를 이용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결과 일본이 독일에 비해 전쟁 책임 인정 및 사과에 소홀해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과는 끊임없는 정치적 투쟁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역사(132 페이지)이며 모든 역사적 평가는 지금(혹은 자신)의 잣대로 당시(혹은 그들)를 규정하는 것(133 페이지)이고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133 페이지)이다. 물론 역사를 지금의 잣대로 재규정하는 것과, 현재의 처지로 과거를 합리화하는 것(66 페이지)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한국 진보의) 곤혹스러움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다는 말은 결코 아”(108 페이지)님과,“당시를 이해한다는 것이 곧 당시의 사고에 갇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133 페이지)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글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정교하고 치밀해진다. 특히 친노(親盧),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을 하나의 틀로 분석해낸 책의 후반부는 안타까운 정치사를 드러낸 장(章)임에도 흥미롭게 읽힌다. 물론 그것은 논리적 치밀함과 정교한 분석이 뒷받침된 결과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5장 청산적 논쟁: 폭력의 시대와 그 맞은편의 근본주의적 사과편에서 나는 우리는 성찰을 위해 내면(內面)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까?란 저자의 문제제기를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이는 저자가 1982년“광주학살을 묵인하고 은밀히 지원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미국 문화원에 방화”한 부산 지역 대학생들 중 하나였던 문부식(文富軾: 1959년 - )이 종교적 차원의 내면 성찰을 하는 것을 우려한 데서 나온 물음이다. 저자의 물음은 우리가 성찰의 극한까지 다가갈 경우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저항할 방법이 있는가, 란 문제제기로 이어진다.(212 페이지) 저자는 폭력에 대한 개개인의 성찰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문부식의 명제에 동의하지만 그의 명제가 폭력에 대한 개개인의 성찰만 깊어지면 자동적으로 역사의 진보가 도래할 것이라는 식의 근본주의적 명제라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제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서 평화시의 청산적 문제틀로 과거 폭압 시대의 폭력 저항을 소급해서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모두 깊은 공감으로 읽히는 구절들이다. 저자의 책을 읽고 나는 표를 의식한 정치적 선택은 가해자들에 대한 사죄 없는 용서를 생각 또는 결행하게 할 만큼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인 듯 하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는 상호규정하는 현재의 힘 관계에 의해 표현된 지배 관점이지만 그 힘 관계는 기억의 힘 즉 역사적 정의를 믿는 힘을 포함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힘이 정의가 아니라 언젠가 그 정의가 힘이 된다는 뜻임을 말한다.(230 페이지) 이로써 현재의 처지로 과거를 합리화하는 것(66 페이지)과 모든 역사적 평가는 지금의 잣대로 당시를 규정하는 것의 의미가 차별적으로 드러난다. 합리화라는 부정적인 말과 규정이라는 부정적이지 않은 말이 그 위상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였지만 저자의 논의를 통해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덧붙일 말은 철학 책에서라면 정의(正義)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정치 책에서인 만큼 그런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자신의 패악(悖惡)을 패악이 아닌 것으로,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 굳게 믿는 확신범 수준의 정치인들도 꽤 있음을 감안하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논리적 증명 이전에 우리 역사가 떠안았던 온갖 정치적 사건의 경위와 교훈까지를 상세하게 설명한 저자의 글을 통해 충분히 해명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사죄 없는 화해 이데올로기(의 오류)를 거론하며 부득이 할 경우 강요에 의한 상황적 사과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결론격인 말을 한다.(239 페이지)

 

그러나 맺음말을 통해 18대 대선(大選)이 끝난 뒤“아침에 한술 뜨다가 비로소 울었다.. 절망은 독재자에게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웃에게서 온다. 한반도, 이 폐허를 바라보고 서 있다.”는 절망을 드러내 보인 공지영 작가를 위로하며 역사의 진리를 말하는 저자의 글은 인상적이고 따뜻하다. 문제는 무엇일까? 자신들에게 떨어질 이익과 손실을 계량해 독재 정권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대중의 속성일까? 정의로운 개인은 지칠 수 있지만 역사는 지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245 페이지)이 위로로 다가온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바로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논어‘로 돌아가 군자는 의리를 밝히고 소인은 이익을 밝힌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는 구절을 저자의 전망에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다.

이달의 사락 m******1 2013.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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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미워하는 정치인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니, 정치인들을 싫어하는 건 한국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영국에서도 선거는 몇 년에 한 번 독재자를 뽑는 날이라고 한다니...   예전 어느 시사만화에서 유권자들이 선거가 지난 후 당선자를 찍은 자기 손가락을 원망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하는지 근심하면서... 아무튼 정치인들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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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미워하는 정치인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니, 정치인들을 싫어하는 건 한국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영국에서도 선거는 몇 년에 한 번 독재자를 뽑는 날이라고 한다니...

 

예전 어느 시사만화에서 유권자들이 선거가 지난 후 당선자를 찍은 자기 손가락을 원망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하는지 근심하면서... 아무튼 정치인들은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면서 상처도 주고 원망도 쌓고 그런다.

 

 

그런데 정치인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원망과 분노에 사과하기는 할까? 아니면 뻔뻔하게 모른 척할까? 답은 뻔하다. 정치인은 ‘자신에게 유리할 때’ 사과한다. 그것이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의 핵심 내용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박근혜다.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이 칭호가 아직 어색하다)은 후보로 있을 때 아버지 박정희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 박근혜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가 문제가 되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사과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실행했다. 그리고 그 덕분이었는지 지지율 하락은 멈췄고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게만 보면 참 허망하기도 하다. 사과라는 게 고작 눈속임 같기도 하고...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에서 이 책은 발상을 확 전환한다. 진정성이 있든 없든 박근혜는 사과를 했다. 왜? 국민들, 유권자들이 무서워서 그랬다. 그건 그 자체로 역사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박근혜가 입을 싹 씻고 아버지를 찬양하면 어떻게 하냐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박근혜는 국민이 무서워서 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이 만만하고 우습게 보인다면 박근혜는 하고 싶은 대로(아마도 아버지를 찬양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이 여전히 무섭다면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국민의 힘, 역사의 힘이었다. 그 힘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이제부터의 과제인 것이다.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앞에서는 어떤 배짱 좋은 정치인이라도 자기 잘못을 사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9만 원 전 모씨이든, 영삼 아저씨이든 말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대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그러한 꾸준한 노력이 아닐까..

 

c****w 2013.04.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