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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하나 있다. 대학교 때 같은 동아리 친구인데, 대학 때보다 오히려 최근 들어 자주 연이 닿은 친구이다. 다른 친구들이랑 여럿이 모여서 같이 밥 먹은 것도 여러번이고, 다른 일로 내가 일하는 직장에도 두어번 찾아 왔었고, 또 그 친구가 낸 책에 내가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같이 나이들어 가면서 오히려 연결 고리가 생겨서 반갑다 했는데, 이 친구가 암이 걸렸다. 첫번째 발병은 작년 봄인가? 친구가 갑자기 입원을 해서 병원에 찾아가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한달 전에 다른 암이 발견되었다. 이번엔 더 심각한 암이다. 병원에서도 흔하지 않은 암이라 하여 더 충격을 받았다. 이 친구는 지금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 친구 때문인지, 요즘 한층 더 죽음이 가까이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친구는 또 오늘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 되고, 그 친구의 가족들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 혹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우리와 가족들을 남기가 그냥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나의 마지막 길은 어떻게 되려나...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실, 죽음을 생각하게 된 건 엄마의 임종을 보면서부터이다. 내 눈 앞에서 운명을 달리한 엄마를 보면서, 죽음과 삶이 정말 종이 한장의 두께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는 아무도 죽음의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가깝고 멀고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요즘 웰다잉이 인기라고 하지만, 그 죽임이라는 것을 그저 환영할 수 만은 없는 게 내 심정이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내가 준비가 안 됐다. 그럼, 언제쯤이면 준비가 될 것인가?
내가 가야할 때 미련이 남아서 계속 뒤돌아 보며 가기는 싫다. 내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산 뒤, 떠나야 할 때는 아무런 미련없이 쿨하게 떠나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마지막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 |
| 죽음에 관한 참 따뜻한 책입니다. 아이들 동화책은 볼수록 놀랍습니다. 팡도르라는 하나의 주제로 삶과 죽음을 연결하고 담대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왜인지 눈물 납니다.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인걸까요? 죽음을 통해 삶을 살아나가는 태도를 배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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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색으로 그려낸 전작 『섬 위의 주먹』과 『마음의 지도』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는 이번 책 『할머니의 팡도르』는 세 가지 색의 간결한 그림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외딴집과 할머니와 디저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빨간색, 겨울의 눈과 강의 물안개가 어우러진 흰색, 사신과 겨울나무의 짙은 검은색. 귀까지 덮는 빨간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조그만 할머니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불 앞에서 크리스마스 디저트를 만드느라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사신은 팔과 다리만 있고 얼굴은 뻥 뚫린 커다란 그림자 같다. 그런 사신이 죽음조차 매혹하는 생명의 온기에 검은 코트를 벗고 색색의 숄을 걸친다. 빨간색 구슬이 페이지를 가득 채운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그림을 통해 충만하게 차오른 삶을 느낀다. 하지만 글에서는 죽음을 읽게 된다. “삶과 죽음이 실은 다르지 않다"는 역설을 로피즈는 이렇듯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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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이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를 혹시나 어려워할까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으로 인하여 사신의 마음변화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와 사신이 같이 떠나는 길을 보면서 왜?왜 그랬을까?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구요. 항상 보던 그림책이 아닌 줄글이 더 많은 책이라 지루해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과 다르게 잘 읽었어요! 그리고 더 자주 읽는 책이 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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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사신의 방문을 기다렸음에도 막상 다가온 죽음을 살짝 미루어보고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귀엽게 잘표현하여 죽음이 그닥 두렵기만하지 않고 사신이 빵의 유혹에 살짝씩 넘어가 주는 여유를 보여주어 함께 가는 것이 즐거울수 까지 있어보여 아이들의 동화가 아닌 노인들의 동화로 읽어지는 책이었다 누가나 찰다, 팡도르 등의 낯선 빵이름에 대한 보충설명이 뒤에 저자의 후기에 나오기는 하지만 좀더 알고싶어지는 책이다. 별모양의 팡도르 먹어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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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번역가님이 추천해주신 동화책. 가끔 누군가의 추천으로 동화를 읽다보면 낯선 느낌이 든다. 이런 책을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었지? 하는 느낌. 내가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읽었다면 어떤 의미로 읽었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이 이야기는 이타릴아의 베파냐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동화라고 한다. 산타클로스의 할머니 버전?! 하지만 할머니가 마녀처럼 보일 정도로 주름도 많고, 못생겼고, 빗자루를 타고 다닌다고하니. 하지만 이 동화 속의 할머니는 빨간 스카프 두르고, 사신 앞에서도 당신이 지금은 사신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빵소를 만들기 위해, 누가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줄 팡도르를 만들기 위해. 할머니를 데리러 온 사신은 그 때마다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음식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절대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문턱을 넘어 음식의 향에 맛에 그 결심이 무너진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마지막일까. 아니면 또다른 시작을 말하는걸까. 할머니의 레시피는 누구의 손을 타고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똑깥이 달고, 따뜻한 맛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시작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엄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이때 뭐넣었어? 할머니꺼는 무슨 맛이였지? 오래토록 살아계실 줄 알았어서 한번도 할머니의 음식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할머니 였다.(할머니와 오래 살아서 대다수 음식을 할머니가 해주신 맛으로 기억하기에..) 삶과 죽음은 물리적으로 절대 만날 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은 할머니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탈리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것일까. “집과 나무들은 유령처럼 희미해졌고 두 여인의 뒷모습은 솜사탕처럼 가벼워졌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팡도르를 하나 사먹어 봐야겠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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