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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펀홈을 감동적으로 보았고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구매 후 보게 되었습니다?. 찬찬히 이야기를 보는데 등장인물이자 자신이자 가족인 존재들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자하는 필자의 노력이 뭔가 정말 너무 절실하게 느껴져서 공연을 보는 동안보다 심적으로 조금 더 괴로웠어요. 완전히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하여 이만큼이나 거리를 두고자하는 노력의 절실함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오픈리 레즈비언인 자신과 가까우면서 멀고 비슷하지만 다른 클로짓 게이였던 아버지와 그와 자신의 기억들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너무 젖어들지 않게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그리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런 거리감을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치열하고 객관적으로 자신과 아버지의 삶을 파고들어 결국 그와 같을 필요도 온전히 이해할 필요도 그렇다고 증오할 필요도 없음을 고요하게 말하는 엔딩이 뭉클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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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체 좋아한다 연출 기가 막힌다 어두운이야기 나도 공감간다 아버지는 좋은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그림자를 남겼다 지금도 그를 봐야한다는게 괴롭고 어렵다 종교의 힘을 빌려야하나 이런생각마저든다 힘든관계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그린다는것에 존경을 표한다 현대 레즈비언의 삶을 시각적으로 그려 낸 연대기로 ‘만화계에서 흔치 않은 탁월한 대작’이라 평가받은 펀 홈 FUN HOME 은 그의 첫 베스트셀러 그래픽 노블이자 영문학사에서 대단히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획득한 아버지’에 관한 회고록이다 다들 한번씩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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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벡델의 비주열 노블(미국식 만화책?) Fun Home 펀 홈의 리뷰입니다. 이 리뷰는 내용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바랍니다. 앨리슨 벡델은 요즘 영화나 콘텐츠를 평가할 때 자주 언급되는 벡델테스트의 그 벡델입니다. 작가 본인도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로, 비주얼 노블, 즉 만화작가입니다. 펀 홈은 즐거운 집이 아니라 사실 funeral home, 장례식장업을 하는 집을 앨리슨과 형제들이 멋대로 줄여부르는 이름입니다. 앨리슨의 아버지이자 만화 펀 홈을 그리게 된 계기인 브루스 벡델은 고등학교 영어교사이자 장의사입니다. 그리고 클로짓 게이입니다. 게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정상가족 신화이 집착하지만, 또 스스로의 성향을 압박하는 것에 반발하여 가족을 두고도 밤마다 나돌기도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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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같은 건 거의 안 읽는 편인데 기존 제 독서 취향에 질리기도 했고 즐겨듣는 김하나님의 책읽아웃에서 추천이 있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약간은 유쾌하고 주로 우울한 분위기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어요. 주인공들이 각자 읽고 있는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좀 아쉽지만, 각주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어느정도 커버가 됩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고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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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델 테스트'로 유명한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개인사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김하나 작가님이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글과 그림은 물론 번역까지 훌륭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제목인 <펀 홈(fun home)>은 '장례식장(funeral home)'과 '재미있는 집(fun home)'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저자의 아버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영문학 교사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장의사로 일했다. 저자의 집이 장례식장이었기 때문에 저자와 남동생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장례 일을 거들곤 했다. 아버지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었다. 저자가 '여자아이'처럼 굴지 않고 '남자아이'처럼 굴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를 매우 싫어했다. 어서 빨리 자라서 아버지 곁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침내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부모 품을 벗어난 저자는 도서관에서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 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런데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아 저자의 아버지가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저자는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은 것 같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그동안 감쪽같이 숨겨온 '진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라는 인간을 다시 보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저자와 아버지가 함께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다. 저자와 아버지는 같이 사는 동안 거의 내내 불화했지만, 책을 읽을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잘 통했다. 시골 학교의 영문학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저자는 그 어떤 학생들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수제자였고, 하루빨리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저자에게 아버지는 새로운 세상을 안내해 주는 멘토이기도 했다. 마침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저자의 삶과 그러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이 교차되는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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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학생공연으로 펀홈 뮤지컬을 접하게 된 후 원작(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최근에 있었던 더뮤지컬 특강에서 해당 작품이 언급됐단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꼭 원작을 읽어봐야겠단 생각에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처음 알았을 때는 하드커버판만 있었으나 그 사이에 페이퍼백판이 나와 좀 더 휴대하며 읽기 편하게되어 좋았다. 이 책은 작가인 앨리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레즈비언으로서, 또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펀 홈이라 불리는 집과 가족들 사이의 관계, 특히 작가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였으나 여러가지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친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짚어 봄으로서 풀어내고 있다. 고대 신화, 방대한 영문학 지식이 있다면 아마 작가가 이야기 속에 숨겨놓은 의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쪽 지식이 빈약한 점이 스스로도 아쉬웠다. 하지만 번역가분의 꼼꼼하고 상세한 주석과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작품 구절, 편지 해석 등을 통해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어 좋았다. 읽으면서 앨리슨과 어머니의 관계에도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때마침 그런 후속작(?)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번역되어 나오길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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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 홈》은 미국의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 노블이다. 펀 홈Fun Home은 그의 집안이 장례식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벡델의 가족들은 장례식장Funeral Home이기도 한 그들의 집을 줄여서 펀 홈이라고 불렀다. 죽음과 유머를 변형시키면서 결합시키니 충분히 그로테스크하다. 만화라는 형식을 띠고 있으나 이야기는 꽤나 무겁게 흘러간다. 납득을 바라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그래서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단점을 주줄이 늘어놓을 수 있는데도 아버지에게 계속 화를 내긴 어렵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 또 어머니보단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바가 적기 때문일지도... 어머니가 날 씻겨 준 횟수는 수백 번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뇌리에 가장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가 보라색 금속 컵으로 씻겨준 기억이다... 좋은 아버지였냐고? 글쎄, 적어도 곁에 있어 주긴 했지, 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버진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가 자살한 건 내가 스무 살이 다 돼서긴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가 함께 있었던 모든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팔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사라진 부위에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 것과 정반대의 경우일 것이다...” (pp.28~29)
전개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와 아버지가 있다. 나는 스무 살에 자신의 성 정체성이 레즈비언임을 아버지와 엄마에게 알린다. 나의 선언을 전달받은 엄마는 반대로 너의 아버지가 사실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나에게 알린다. 나는 커밍아웃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을 벌였지만 그것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게이 혹은 양성애자였음을,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젊은 남성과도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 웃음도 반드시 부적절한 반응만은 아닐 것이다.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 아닌가.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다.” (p.53)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죽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나의 동성애 성향을 알리고 나서 사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길에서 트럭에 치어 숨졌는데, 나는 그것이 혹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아니었는지 의심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퀴어한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는 커밍아웃이라는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이어야 했으나, 아버지가 그 비극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새로이 닥쳐온 참사가 아니었다. 기나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벌어진 ‘오랜 참사’였다.” (p.89)
이성애자가 아니다, 라는 점에서 나와 아버지는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나의 엄마이자 아버지의 아내였던 자리에 있는 헬렌 아우구스타 폰타나이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의 성향을 알았고,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 중 한 명이 레즈비언이라는 전갈을 보내는 순간, 자신의 남편의 성 정체성을 자신의 딸에게 폭로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녀는 교육자였으며 연극배우였다.
“네 엄마는 네가 선택을 열어 두길 바라는 것 같구나. 나도 그 입장에 동의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다를 거다. 물론 핑계처럼 들릴 테지만 누구를 위해서 그러겠니? 입장을 두둔하는 건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야.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몇 번인가, 나도 앞으로 나설 걸 그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단다. 하지만 젊었을 땐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어. 사실 서른 전에는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때는 세상이 지금과 달랐던 게 사살이지 않냐. 마흔넷이 된 지금에 와서 젊을 때 그랬다고 해도 뭔가 좀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p.217)
나는 이 그래픽 노블이 나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이자 아내였던 한 여인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아슬아슬하였던 한 가족이 알면서 모르면서 보낸 각자의 스무 해에 대한 기록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던 그 시간들을 무사히 통과한 작가 자신의 소급 적용된 어두운 성장기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것이 절망과 좌절의 기록으로 읽히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앨리슨 벡델 글 그림 / 이현 역 / 펀 홈 : 가족 희비극 (FUN HOME : A Family Tragicomic) / 움직씨 / 238쪽 / 2018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