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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때문에 흐릿했지만 갑판에서 손을 흔드는 오빠들이 보였다. 나는 외쳤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소리를 마냥 질렀다.'라고 표지에 붙어있다. 가족의 나라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며 실화이다.
일본 오사카 출생이자 재일교포 2세인 양영희씨가 쓴 책으로 작가이 가족의 역사가 담겨있다. 나라가 분단되고 국가와 사상이 갈리며 세 오빠가 조총련 '귀국사업'으로 북한으로 간다. 그 일이 그녀가 7살 무렵이었다. 북한에 사는 세 오빠와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 그리고 강인하게 가족을 지탱하는 어머니, 오빠와는 다르게 선택을 할 수 있었던 '혼자 남은 영희'의 이야기다.
형제가 많은 나에게는 그녀의 가족사를 들으면서 마음이 더욱 아팠다. 역사책에서 보던 이야기이며 자세한 그 내면을 알지 못했다. 실화를 읽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그 이면을 보게 된 것이다.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야기는 어렵고 힘들다. 유복하거나 행복하기만 한 가족은 적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가족과 함께이기도 하지만 흩어지거나 결국엔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가족은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가족이란 관계는 희생과 사랑, 봉사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애틋하고 그리우며 나를 편히 쉬게 하는 집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아프고 힘들며 고통을 나누기도 한다.
" 인생에 '만약'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하고 만다 " 가족의 나라 中
'만약'이란 말은 과거를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후회로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과거는 지나갔고 내가 사는 시간은 현재이다. 책을 읽으며 아이러니와 모순 덩어리인 세계를 보고 울분을 터트리고, 비극에 마음이 아팠다. 책의 후반부에 갈 수록 감정적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고통과 마주하기에는 나는 약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가족의 나라>와 같은 책은 잘 읽지 않았던 나였지만 마주 본 그녀의 세상은 쉴 틈도 없이 내게 다가 왔다. 지인의 책 선물로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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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는 재일교포 2세인 작가 양영희의 가족이 지난 수십년간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일본에서 현재 재일교포 연극단의 스탭인 주인공 나 ‘영희’에게 어느날 프로젝트 작품 참여의 제안이 들어온다. 조선대학교 시절의 친구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해온 ‘나’에게 북한과의 합작 영화 출연을 의뢰한 것. 1970년대에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세 오빠를 모조리 보낸 영희의 특출난 가족사로 인해 주목을 받아 선택되었다. 조국의 빈곤하고 어려운 실상(實像)을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막상 실제로 영화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보니 안타까움을 넘어 웃음까지 났다. 김정일 장군이 영화를 애호하기에 영화인들은 폐쇄된 사회에서나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현실은 이방인 영희의 눈에 적나라하게 발각된다. 합작 영화라서 일본에서 제작비를 조달하였지만, 그 중의 일부마저도 장군의 업적과 체제를 찬양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로 빠져나갔을 거라며 자조하는 영희. 영희와 오빠, 부모님들 사이에서 있던 많은 일들이 그 어떤 영화와 소설에서 보고 듣지 못했던 사건들이 많았다. 의외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의 날카로운 묘사에는 감탄하기도 하고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Still 영희가 비록 북한의 부조리함을 고스란히 비판하지만 가족의 나라인 그 곳을 이해하는 면모는 곳곳에 나온다.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북한 관리들을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알므로 묵묵히 동조해 줬다. 겉으로는 외국인, 방문자들을 위해 고상한 사회주의 국가의 실현을 자랑하고 내세우지만, 만나고 겪어 온 이들을 통해 북한의 내부를 알아온 영희는 혼란스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인정한다. ‘매일같이 마주치는 이 나라의 모순. 여긴 오빠들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모순은 그대로 오빠들이 일상적으로 껴안고 있는 모순과 겹쳐진다.’ (p.100)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큰 오빠 건오가 정신병으로 갑자기 죽고, 이 사실을 편지로 안 영희가 엄마에게 아들 소식을 알리지 못해 며칠을 고민하는 장면은 <가족의 나라>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렸기에. 영희도, 엄마도 각자의 처지가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슴이 미어졌다. 죽을 때까지 북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아버지, 각기 다른 형태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세 오빠들, 80대인 지금도 여전히 딸을 지지하는 어머니와 온 가족의 선택을 옆에서 지켜봐온 딸까지. 일단은 분단현실 자체에 한탄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는 한명 한명에게 ‘당신들은 잘못되고 나쁘게 살았다’고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가 도저히 없다. 누가 그분들의 생애 전체를 위선이라거나 이기적이었다고 매도할 수 있을까? 양영희의 소설을 통해 알고 나니 그들의 길도 진리의 이면(裏面)이었음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는 사람이 우리에겐 있어야 한다. _은령써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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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금방 읽고 난 참인데도, 이 책 제목이 <나의 조국>인줄 알고 검색을 해버렸다. 그러자 줄줄이 나오는 것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관련 음반뿐. 엉? 나의 조국이 아니었어? 그 비슷한 거였는데? 그럼 뭐지? 라면서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가족의 나라>란다. <나의 조국>과 <가족의 나라>라, 어감상으로 온도 차이가 현격하다. 어쩜 바로 그것이 이 작가가 이 책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조국에는 내가 들어가 있지만 가족의 나라엔 내가 없다는 것. 내가 진심으로 선택한 내 나라가 아닌, 내 가족들의 당신들 나라라는 뜻으로 말이다. 아마도 그런 언어적인 뉘앙스 때문에 제목도 저렇게 지어졌겠지 싶다. 이렇게 보면 말이라는게 참 오묘하다. 똑같은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는 두 문장이지만서도, 실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제목만으로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우리를 자신의 인생속으로 초대를 한다. 과연 작가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하, 뭐 이런 기구한 인생이 있나 싶지만서도. 그리고 이렇게 꼬인 인생들이 있나 싶지만서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또 안타깝게도 우리 동포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고 안타까웠다. 재일 조선인인 저자의 아버지는 조총련 간부로 일하면서 북한에서 선전하는 모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북한 귀국선에 아들 셋을 몽땅 실려 보내고 만다. 이십대에서 열 네살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서 더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덜컥 김일성 부자의 은혜로운 손 아래에 떨여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일곱살때 오빠 셋과 생 이별을 하게 된 저자는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그토록이나 큰 피해를 끼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낙원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아니 마음 놓고 협력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동포들과 함께--이상을 실현하고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들을 몽땅 북한에 보내고 난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북한에 대한 안좋은 소리에 귀를 닫고 살았던 저자의 가족들은 결국 진실과 맞닥뜨리고 만다. 북한은 절대 낙원이 아니며, 그보단 오히려 탈출이 허용되지 않는 거대한 사이비 정치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 부모도 없이 적응해야만 했던 저자의 오빠들은 서서히 인생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큰 오빠는 조울증을 앓다 정신줄을 놔버리고, 둘째 오빠는 미인 아내에게 버림 받은 후 자식들을 챙기는 삶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게 된다. 북한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세째 오빠는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면의 고통을 감출 수는 없어 괴로워 한다. 그런 오빠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 오빠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북한 체제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자신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던 책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라에서 삶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하다는 말에 욱했다가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엔 없는 그들에 연민을 느끼고 , 더 나아가 아무리 자신이 고통스럽고 분하다 한들 살고 있는 사람들만 하겠는가 라는 미안한 마음이 골고루 들어가 있었다. 어쩌다 이 가족의 인생은 이렇게 구구절절해졌는지, 그것이 다른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도 아니고 아들 셋을 몽땅 , 당신의 조국이라지만 아들들에겐 전혀 낯선 곳인 북한에 그렇게 선뜻 내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정말 가슴을 쳐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고, 그런 비뚤어진 과거를 살아내야 했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운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왜 다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시대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들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순한 양처럼 단순했던 그들은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고 말이다. 과연 이제와서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정작 그런 일들을 기획하고 조종했던 사람들은 전혀 앞으로 나서지 않는 마당에 말이다. 아, 북한이 이런 사회였구나. 정말 끔찍스럽군. 이란 생각을 아니할 수 없게 만들던 책이었다. 그리고 6.25를 겪고 분단된 나라에 사는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 사는 재일 한국인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해주었다. 사실 놀라웠다. 일본이라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부자인 나라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이렇게 고루한 사상에 젖어서 가족을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해버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그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들 입 다물고 있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서도...누군가 자식들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당시엔 --70년대--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었었다고 한다. 역시나 인간은...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인가 보다 싶다. 가장 극단이 오히려 진리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북한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도.... 이제 연로하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큰 오빠마저 죽은 지금, 저자는 예전에 만들었던 북한 체제 비판 다큐로 인해 북한에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정말 이제는 북한이 <가족의 나라>가 되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쓰면서도 저자는 조금은 북한이 변화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쓴 이런 책이나 영화, 다큐가 거기에 도움을 주었음 좋겠다는 바람이었을 것이고. 왜냐면 북한이란 나라는 그녀가 저버리기엔 너무도 질긴 인연의 나라이니 말이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혈육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신경을 끄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녀는 오늘도 피터지게 말한다. 북한은 이렇다고...거긴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과연 누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우리가? 글쎄...소름끼치도록 답답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리고 내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산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하게 만든 책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는 북한이 어떤지 과연 알고 싶을까 라는 생각에. 북한에 사랑하는 오빠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카도 없는 북한에 대해 과연 우리가 진실을 알고 싶어할까? 그리고 그들의 변화가 어서 빨리 오기를 저자처럼 기도하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어쩜 가족의 나라는 분단의 나라보다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가족들의 비극이 한시바삐 사라지길 기도하면서 언젠가는 그 가족들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 풍경을 기대해본다. 아니면 적어도 저자의 조카 세대에서만은 저자같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보다 개방된 사회에서 살게 되기를...적어도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니 만큼, 변화의 바람만 조금만 불어준다면 금세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