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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지킬 권리 한때 사람들과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힘들었을때 남들 처럼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는데 남이 아닌 나의 기준에 맞춰 살자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예요.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나다움을 지킬 권리' - 강원상 지음 입니다:)
한창 스트레스도 많고 힘들었던 시절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고, 불행따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삶은 내 뜻대로 되지않고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 왔다. 팀프로젝트, 개인 과제를 진행 하면서 내 몸은 내 뜻대로 안되고 할 수 있는 역량에 비해 완성해야하는 기간은 짧고 이런 스트레스에서 조금 더 무리를 하다가 곧 사람간의 스트레스로 변하게 되었다. 4년동안의 나의 대학생활을 주변에서는 너가 세상에서 만날 또라이는 다 만난거 같다 라는 말을 해준적이 있다. 그정도로 남들 눈에도 힘든 대학생활을 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 읽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보면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살다 보면 원치 않더라도 한 번쯤은 악마의 탈을 쓴 사람을 마주한다. 꼭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군대나 회사처럼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곳에는 어김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이다.'라는 구절이 나오게 된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너무나 큰 공감을 하게 되었다. 아마 대학만 들어오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기 쉽고 나역시 그런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있었다. 그사람들 입장에서는 악마의 탈을 쓰고 싶지 않았겠지만 아니 원하지도 않았지만 상황과 환경의 여건 상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너무나도 버겁고 힘들었다. 이 부분을 읽고 '어떤 사람'이라는 부분을 읽었는데 마지막 구절에 '당신에게 난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변에서 나를 착한사람 이라고 많이들 말해줬다.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정말 싫어했다. 나를 호구로 보는거 같았고, 나라는 사람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부탁을 하면 다 들어줄 것 처럼 생각한다고 느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 사람간의 관계가 제일 힘들었던 나는 왠만해서 안 부딪힐려고 먼저 손해를 보는 입장을 항상 취했는데 남들을 위한 배려가 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졌었다. 과연 나는 그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지는 글이었다. 어설픈 위로보다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과 글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 적이 별로 없었던거 같다. 이책은 읽으면서 힘들고 지쳤던 나를 감정을 호소하는 어설픈 위로가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말을 건네주는 존재로 다가와 더 따뜻해진거 같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나만이 가지는 나다움을 잃지 않을 때, 각자가 선택한 것을 누릴때,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이 가장 평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어설픈 위로로 나의 자존감을 깎아 내린 것이 아닌 나를 더 생각하고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책이라 많은 분들이 읽으면 좋을거 같아 추천해요. 나다움을 지킬 권리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니체의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 제품은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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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 걸까? 그냥 평범한 삶, 아니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 어쩌면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렇다면 그건 내 삶일까, 아니면 타인을 위한 삶일까? 나이를 들어가면서 점점 깊어지는 고민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담은 공감 에세이 『강원상』의 『나다움을 지킬 권리』(경향BP 펴냄)은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바로 평범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평범함의 반대말은 화려한 게 아니라 바로 나다움이며, 오직 나만이 가지는 나다움을 잃어갈 때 우리는 평범해진다는 것이다. 누구든 각자가 선택한 것을 누리 때 보다 특별해지며, 흔한 어떤 비슷함에 매몰되려 할 때 가정 평범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가장 중심에 두는 것이 자존감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자존감을 되찾고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 불편한 것을 거부할 때 자존감은 확인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가슴으로 다가오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지위, 명예 아니면 내가 지키고 있는 가족이라는 틀, 무엇이 되었든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무거운 중량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이 무게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직장에서는 호전적이고 남들이 원하는 예스맨이 되어야 하고, 가정에서는 부드럽고 자상한 구성원이 되어야 하며, 밖에서는 거미줄 같은 관계망 속에서 상대방이 원할 것 같은 모습을 만들어서라도 실오라기 같은 관계의 끈을 유지해야만 한다.』
"분명 나는 나인데 내가 아니다."라는 말이 왜 그리 가슴 아프게 하는걸까?
반드시 사수해야 할 자존감은 무엇보다 먼저 흔들리고, 인정받지 못한 시선에는 깊게 상처 입으며, 수확의 계절을 맛보기도 전에 금방 시들어 버린다. 나의 감정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금심은 점차 타인의 시선에 의해 숨죽이고 매몰된다. 저자는 이럴때일수록 스스로 자존감을 확인해야 하며, 나 그대로를 인정해 줄 사람들을 반드시 가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불편한 것을 거부할 줄 아는 거절만큼 스스로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고, 수준 낮은 상대를 거부할 줄 아는 거절만큼 괜찮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좋은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내가 잃을 수 있는 것들로부터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떠나지 않은 생각 중 하나다.
착하게 살지 말자라는 말에 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다운 나를 착이 위한 긴 여정 속에서 단단한 나로 영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경험과 시련이 필요했다. 특히 '착한 사람'이란 타인들이 만든 이미지은 어쩌면 내 모습들 중 가장 피동적인 모습이었다는 저자는 말에 공감을 간다. 어려서부터 우린 어른들이 바라던 착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으며, 특히 이런 '착한 가면'을 시간이 지나서도 필사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나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무엇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첫째,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선택은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며, 둘째, 잠시 힘들어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확신이 있다면 묵묵히 가던 길을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든다. 나만큼은 나를 포기하지 않을 때, 심화되는 관계 속에도 나를 잃지 않을 때 비로소 '나'란 결정체를 지킨 채 자존감이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는 나이는 지나갔기에 '나'라는 말을 중심에 두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서도 다른 부분 중에 사랑과 이별의 달리기는 중년을 넘어선 우리에게도 공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사랑과 이별은 같은 트랙 위에서 자신만만하게 이길거란 확신에 차 있었다. 둘은 출발선에서 달릴 준비를 했고, '땅'하는 굉음과 함께 사랑은 재빨리 뛰어나갔는데 정작 이별은 출발선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사랑이 안도하는 순간 이별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전력으로 달려 골인 지점에 먼저 도착했다. 허망한 채 사랑은 이별에게 다가가 물었다. "천천히 걷던 네가 어느 순간 전력으로 달리던데 대체 언제부터였니?" 이별은 친절히 답해주었다. '네가 계속 달려야 하는지 의심하기 시작하고부터 ···."』 - 본문 중에서 -
한평생이 하께 한 이들이 이별을 선택하는 것도 다르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소중한 것을 애틋하게 여기고 존중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이 가정은 억지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힘들다면 곁에 두고 한번씩 손에 든다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 순간을 넘기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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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이라는 자존감 뿜뿜 넘치는 단어에 잠시 멈칫 거린다. 나 잘난 맛에 산다고 자부했지만 이리 활자로 마주하고 보니 역시 만만찮은 녀석이 바로 '나다움'이 아닌가. 속된 말로 "니 꼬라지를 알아야지"라며 뒤로 웃어 젖힐 녀석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연민, 동정, 위로, 공감 그리고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시와 에세이로 풀어낸다. 공기처럼 현시대에 필요하지만 부유하는 감정의 부스러기들.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설픔'에 대한 의미가 내 삶이 된지 꽤 오래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중에서도 동정은 연민이 순수함을 잃은 상태다. 문제를 어떻게든 자의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끌어 내려고 노력할 때 생긴다. 그 선행적 도움이 오히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데 지극히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p5 대가 없는 동정이나 연민이 온정주의로 포장될 때 우리는 선행이 '베푸는 행위'에서 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몸을 닦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을 찾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보여주는 선행은 상대방에게는 치욕이고 폭력이지만 우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행에 집중하는 경우를 종종 마주한다. "어설픈 위로는 자신만의 창으로 바라본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창을 통해 객관적인 입장으로 최대한 견지해 보려는 통합적인 노력이다. 어설픈 동정이 마치 상대를 피보호자 즉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를 한 명의 인격체로서 끝까지 존중하려는 인간적 태도다." p8 너도 나도 힘겹기만 한 이 시대는 공감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하지 않느니만 못한 공감을 너무 많이 하는 데 있으며, 그런 이가 자신을 누군가를 위로했다는데 전력을 다한다는 데 있다. 가족이건 친구건 직장이건 우리는 어디에서건 위로를 건네려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함께여서 행복했지만 다시는 마주치기 싫은 사람." p274 그런 사람이 있을까? 애증의 관계일까? 연민의 관계? 문장에서 영화 '5 to 7'이 떠올랐다. 우연히 만난 남녀의 불꽃 튀는 눈빛에서 숨이 멎을 듯 심장이 요동친다.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도 또 그래야 한다는 '사랑'과 '불륜'의 두 감정에서 나는 무엇이었을까. 아니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만 알고 남은 모르는 그래서 더 은밀하고 로맨틱한 관계에서 지속은 가능한 걸까? 그래서 행복했지만 만나서는 안 되는 관계.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멈춰야 하는. 참 아련한, 나는 애증이 아닌 연민을 읽는다. 읽다 보면 프롤로그에서 보여주는 비장함은 다소 옅어지기는 하지만 사랑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단상이 담긴 이 책은 빠르게 넘어간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는 다르게 많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아 좋다. 특별히 자존감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타자화하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이 담겼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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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착하다 라는 칭찬 안에 틀어 갇힌 채 성인이 된 지금도 그 가면을 벗어내지 못하고 있다. 나다움을 지키지 못한 채 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 그것으로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롤 모델로 삼고있는 사람이 한 명 쯤은 있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는 삶도 살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 같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점차 나다움을 잃고 롤모델을 따라가게 되는 것. 어느 순간 '나는 누구였지?' 라는 혼돈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다움을 지켜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억지로 연극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혼란스러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나다움을 찾고, 지키는 것 아닐까. '그 누구에게도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을 되찾는 것' 강원상 작가님의 #사랑을알수있다면 이후 두 번째로 접하는 나다움을 찾을 권리. 전작 때에도 작가님이 풀어놓은 사랑에 대한 고찰을 감탄을 하며 읽고, 리뷰로 써내려가기가 참 힘들었다. 이번 작품은 더더욱 그랬다. 읽는데에도 참 많은 시간이 걸렸고, 리뷰를 적어내려가기도 진심 기획서 쓰기보다 더 힘들었달까^_ㅠ 작가님이 사랑에 대해 파고들고 풀어낸 글들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수많은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 안에서 알 수 없는 소용돌이를 헤쳐간다. 서로가 달라서 라는 생각의 기준 안에서 상처를 주고받지만, 정확히 무엇때문에 상처를 주는지 또는 상처를 받는지 알 수 없다. 단순히 나다움을 지켜내야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다움을 지킨다면 관계라는 원 안을 지긋히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조금은 생기고, 그로인해 내 마음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참 얕은 사람이구나를 늘 느낀다. 언제쯤 깊은 내공을 지니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의연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조금만 더 글을 잘 쓰고 싶다. 생각하는 것이 글로 표현이 안 되어 답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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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3. 강원상 『나다움을 지킬 권리』 : 경향BP 과연 ‘나다움’이란 무얼까.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이덴티티, 정체성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의미하는 정체성은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나다움을 지킬 권리』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의 나열이 먼저 눈에 띈다. ‘나다움’ ‘지키다’ ‘권리’ 이만하면 제목은 성공적이지만 역시나 제목에서 풍겨오는 이미지는 최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란을 독식하는 흔한 위로 에세이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참 아쉽게도 강원상 작가는 전작 『사랑을 알 수 있다면』에서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랑이란 테마로 에세이를 풀었고, 신작 『나다움을 지킬 권리』에서도 딱히 반갑지 않은 ? 읽기 전의 생각이니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대로라면 ? 테마로 또 한 편의 에세이를 펴냈다. 주제에 대한 불안감에도 내가 이 책을 펼쳐들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저자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전작 『사랑을 알 수 있다면』을 읽고 나 같은 사람도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이토록 재미있게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안겨준 몇 안 되는 작가다. 그러니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돌아온 강원상을 읽어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저자가 말하는 ‘나다움’의 정의에 대해 알고 싶었다. 천천히 집중하여 백 페이지 즈음 읽었을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무조건 싫음으로 배척하는 것은 다양성을 파괴시키며, 더 나은 관계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의 변화되어야 할 것들을 위해 변함없어야 하는 것들도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게 바로 나의 존재를 의미하는 나다움이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저자의 문장이 좋다. 전작에서와 같이 『나다움을 지킬 권리』도 펼치는 순간부터 그냥 읽게 된다. 템포는 적당하다. 굳이 빠를 필요 없이 여유 있게 나의 템포를 유지하며 책을 넘긴다. 에세이를 읽으며 집필 당시 저자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저자로서는 성공적인 일일 테고, 독자로서는 기쁨이다. 전작 『사랑을 알 수 있다면』이 사랑이란 주제를 철학적 관점과 저자의 논리로 풀어냈다면 신간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보다 감성적인 느낌의 에세이로 변모되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나다움’과 ‘사람다움’은 회색빛으로 변해가던 단단한 내 마음의 용매제가 되어준다. 나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이 아스팔트 위를 거닐며 점점 더 나다움을 잃어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우리는 누구누구의 엄마나 아빠로,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할 뿐 정작 독립적 존재였던 ‘나’는 빛바랜 사진처럼 그 색을 잃어만 간다. 강원상의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사회에서 주목 받기 위해 무엇이 옳다거나 무엇이 그르다고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내가 갖은 색이 시대의 흐름에 맞거나 혹은 맞지 않더라도 그 색을 지켜 가는 것, 그리고 상대의 색을 지켜주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을 다 읽고서야 다시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에세이의 곳곳에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인다. 내가 읽은 저자의 두 번째 책임에도 그에게 ‘사랑’이 꽤나 중요한 주제이며, 향후 신간을 읽게 된다면 더없이 확실해질 테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움’을 지킨다는 것은 ‘너다움’을 지켜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그 지킴에 ‘권리’라는 단어까지 붙였으니 사랑에 대한 그의 시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로그를 인용하자면 “어설픈 위로는 자신만의 창으로 바라본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칭하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창을 통해 객관적인 입장으로 최대한 견지해 보려는 통합적인 노력이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나다움을 지킬 권리』가 어설픈 위로 대신, 마음 깊이 공감을 이루어냈다는 점에 저자 강원상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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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도 수벌처럼 평생 단 한 번만 교미한다면 [서평] 『나다움을 지킬 권리』(강원상 저, 경향BP, 2019. 12.18.)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바로 평범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나’에게 쓰는 편지이자 에세이 형식이다. <비로 인해 피울 수 있던 꽃잎도/ 비로 인해 쓸려 가 버리듯이// 사람으로 인해 살 수 있던 용기도/ 사람으로 인해 좌절하게 된다. -95p> 나다움, 이것은 타인에 대한 나의 시선과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모두 포괄하여 이루어진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을 할 때 우린 가장 나다워질 수 있다고. 사랑에는 이별도 포함이 되는데 그만큼 다양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만 열심히 좋아하면 될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나만 좋아할까 봐 걱정하고 있고,// 당신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 왔는데/ 혹여 당신은 나만으로 부족할까 봐 두려워하며,// 처음부터 너 하나만 바라보고 걷자 시작했는데/ 괜한 불안들로 정작 내가 걷던 길을 잃어버렸다.// 이렇게라도 너만 잡고 있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결국 당신은 지쳐 먼저 떠나고 나만 남겨졌다.- 35p> 자신을 ‘호구’라고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들이 대다수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당신은 호구가 아니다.’ 속이기 좋고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을 뜻하는 호구는 남들의 감정과 기분을 들여다볼 줄 아는 선함과는 엄연히 다르다. 분명한 건 그가 선하게 산다고 해서 호구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해서 그를 호구로 여겨선 안 된다.
![]() 평범함의 반대 말은 나다움이다 책은 사랑을 이성적으로 분석하였다. 감성적인 분석이 아니기에 머리로 이해를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만큼 깊은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을 빛과 어둠으로 표현한 장이 있는데 기억에 유난히 남았다. <모든 빛에는 어둠이 필요했듯 왠지 그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 같다. 나의 따스함으로 그 어둠을 감싸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 반대였다. 내가 얼마나 따뜻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나도 충분히 괜찮은 여자란 걸 당신을 통해 알게 되어 버렸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깨닫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저자는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예로 상대방에게 무조건 적으로 맞추거나,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받으려는 자들을 들 수 있다. 어딘가 나에게 맞춰주는 사람이 존재할 거라는 바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바꾸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언제라도 내 감정, 내 생각, 내 판단만으로 헤어지겠단 쉬운 이별다짐이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여전히 갈망하는 나이만 먹은 어른들의 사랑은 스스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 부모 같은 사람만을 평생 찾고 갈구할 뿐이다. 보고 싶단 말에 주저 없이 달려오는 사람, 무엇을 갖고 싶다고 흘린 말에 고민 없이 달려가 사 올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배고픔과 힘듦을 언제라도 우선적으로 돌봐 줘야 하는 사람으로 여길 뿐이다. 이러한 사랑은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고 파멸시킨다. 문구들은 서술이면서도 시적이다. 또한 위트와 유머를 가장한 비유 문장들도 많았다. <수벌은 여왕벌과 교미 후 자신의 정액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페니스까지 남긴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진 뒤 탈수증으로 수 시간 내에 죽는다. 만약 인간 수컷도 수벌처럼 평생 단 한 번의 성관계만 가능하다면 조금은 자신의 도구를 쓰는 데 신중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서 걱정하지만, 간섭한다. 또 믿는다면서, 끝까지 구속한다. 또 위로한다면서, 처지를 동정한다. 또 들어 준다면서, 약점을 발설한다. 또 약속한다면서, 일찍이 파기한다.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 부지런해보지 못한 자는 평생 누군가가 준비했던 그 수고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직 그 호의가 지쳐 멈출 때 평가 내려진다. “그럼 그렇지 너도 변할 줄 알았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은 여러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삶의 이면에 숨은 의미를 곱씹으며 과연 무엇이 올바른 인간관계인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주장한다. 평범함의 반대말은 화려한 게 아니라 바로 나다움이라고. 오직 나만이 가지는 나다움을 잃어 갈 때 우리는 평범해진다. 누구든 각자가 선택한 것을 누릴 때 보다 특별해지면, 흔한 어떤 비슷함에 매몰되려 할 때 가장 평범해지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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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다움을 지킬 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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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지킬 권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심하다고 말한다. 근데 이게 좋은 개인주의가 있고 나쁜 개인주의가 있는데 저자는 후자에 속하지만 우리에게 어줍잖은 위로보다 제목처럼 나다움을 지킬 권리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속에서 배려하듯 말해준다.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영업사원이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남기는 작가 강원상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보여준다. 잠시 멈추어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진정 누구이며 왜 사는 건지에 대한 처방을 찾는 방법중 하나가 바로 독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에세이는 사람에 대해 말해주고 일상과 관계에 대해 말해주며 글쓴이의 생각속으로 들어가 함께 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에세이를 나는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이 책은 나 자신을 찾고, 만나며,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해 나다움을 발견하게끔 도와주고 그렇게 살도록 말해준다.
나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한 명 뿐임을 우리는 늘 잊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불안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스트레스와 우울증과 허무함이 밀려와 인생을 망가뜨린다. 현대인의 불안을 얘기하며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이 책은 그래서 소중한 독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우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지만 세상이 가는대로 불안과 공허함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나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인연이 있다 한들 모두 허상이다. 홀로그래픽 같은 요소들일 뿐이다. 나는 나로서 살다가 가야 하는 나 만의 인생이다.
우선적으로 자꾸 가면을 쓴 내모습에 매여 진짜 내 모습을 볼 수 없고 내면의 나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스스로의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나답게 사는 길로 나아가야 자기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사람들의 고민을 말해주면서 거기에 대한 시선들을 날카롭게 때론 용기를 주어 만들어가기에 귀한 가르침 같은 에세이가 된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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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궁굼했었던 책인데요. 그러면서 나다움을 지킬 권리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아마 나다움이란=주체적인삶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은데요. 저자의 표현에 의한 나다움이란?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되찾는 것, 바로 나다움을 지킬 권리다.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바로 평범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다.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 언제부터인가 '착하면 호구된다.'라는 말은 '따뜻함'이란 선함까지도 호구로 변질시켰고, 그 누구도 믿지말고 먼저 경계부터 해야 한다는 '불안'을 당연시 했다. 분명한건 그가 선하게 산다고 해서 호구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해서 그를 호구로 여겨선 안된다. 모든 것에는 실체와 그림자가 있듯이 분명 사랑에도 진짜와 가짜는 있기 마련이다. 진짜 사랑은 인간이 가진 결함을 양쪽이 인정하는 상태이다. 서로 완벽한 사람들이 만난 것이 아닌 각자가 평생 내적 성장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가진 주체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주며 혼자일때보다 둘이 될때 점점 더 완숙한 인간으로 나아간다는걸 믿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반면 가짜 사랑은 상대성의 인정보다 '의심'의 전환이 익숙한 사람들의 사랑이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야 매번 우리는 상대에 대한 '실망'과 '처음과 다름'이란 이유로 스스로 떠나가야 할 이유를 쉽게 찾곤한다. 하나 한번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랑에는 분명 먼저여야 하는 순서는 있을지언정 높고 낮은 서열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을 잘한다.'는 건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아는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상대에게 믿음이란 묘목을 심고, 평생 알아가는 마음으로 신뢰란 열매를 맺으려는 농부의 마음과 같다. 현재의 내 모습은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결정체다. 나를 꾸준히 성장시킨다는 건 내가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는 조건이자 나다움이라는 가치를 키울 수 있는밑거름이다. 저물지 않는 태양은 없듯이 기울지 않는 달도 결코 없다. 중요한건 저물거나 기울지 않으려는 꼿꼿함이 아니라 다시 떨올라 얼마나 걸리더라도 밝디 밝은 저 보름달을 만들어 가는 끈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비록 가진 빛이 잠시 희미하더라도 잃진 않았기에 해는 그대로 해가 되고, 달은 여전히 달이 되었다. 그래서 나다움을 지킬 권리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건 니체의 '네 운명을 사랑하라'란 아모르파티다.그 누구에게도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을 되찾는 것. 바로 '나다움을 지킬 권리'다. 선택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린 주인공이다. 있으면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없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은것. 그것이 꿈의 필요성이다. 삶과 사랑의 공통점 갖고싶은 것을 원하는 고통 갖게 되었지만 언제든 잃어버릴 것 같은 고통 잃어버린 뒤 부재에 대한 고통 자신의 경험에 갇힌 사람들 경험이란 문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나를 막기도 하지만, 반면 밖과 소통하도록 다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닫힌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서는 나의 경험을 말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이 중요하다. 그렇게 내 앞에 존재하는 오직 하나였던 문은 점차 늘어나서 넓은 세계로 확장되어 꼰대를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는 여행을 위해 이 별에 왔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당연히 겪게 될 경험들보다 중요한건 스스로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할때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경험들과 마주하고 오랫동안 인식하게 된다. 분명한건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는 경험이 아닌, 질문하는 여행을 위해 이 별에 왔다는 사실이다.작은 변화를 갖기위해 떠난 한 발자국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사진 속 한 장면이 아닌, 그날 모든 풍경속에 나란 사람의 체온을 채우는 진정한 삶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차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차이는 나를 대하는 차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혹여 할 수 없다면 포기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만, 부자들은 설사 내가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나누는 그것에 대체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자존감'이다.무엇보다 중요한건 누구에게나 소중했던 그 자존감을 한때 얼마나 큰 걸 갖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여전히 지키고 있는가였다. 자존감은 누군가의 수업과 배움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에 대한 괌심과 존중을 필요로 했다. 평범함의 반대말은 화려한게 아니라 바로 나다움이었다. 오직 나만이 가지는 나다움을 잃어 갈때 우리는 평범해 진다. 누구든 각자가 선택한 것을 누릴 때 보다 특별해지면, 흔한 어떤 비슷함에 매몰되려 할 때 가장 평범해 진다. ![]() 처음 이 책을 읽어 내려 가는데 어? 이상하네? 사랑 관련된 에세이였나? 이상하다 싶어 다시 목차를 들여다 보았다. 근데 왜 첫사랑 이야기가?... 책의 첫머리에 사랑이야기, 진짜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된건 아마도 나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진심을 다해 사랑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지 않을까? 서로 많이 사랑을해 결혼을 한 부부들도 현실에서는 행복할 수 만은 없는 것같다. 그 이유는 삶은 현실이기 때문일텐데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듯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임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이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엄마인 나의 자존감이 중요한데 여전히 나의 자존감은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해본다. 나의 삶에 있어 꾸준히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살아가야겠다. 너의 꿈은 뭐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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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비를 맞고 걷는 이에게 우산을 받쳐주면 위로가 되고, 우산을 손에 쥐여주면 동정이 되지만, 함께 비를 맞아주면 공감이 된다. 저자는 공감이란 상대의 창을 통해 객관적인 입장으로 최대한 견지해 보려는 노력이며, 상대가 충분히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곁에서 함께할 줄 아는 이성적 기다림이라 말한다. (p8)
이 책은 각기 제법 긴 제목을 단 전체 6개의 장으로 나뉘었다. 길어야 세 장을 넘지 않는 짧은 수필과 산문이 주를 이루고 간간이 자작 시를 곁들여 읽는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사랑의 경험과 본질을 드러내 주는 초반부 글의 느낌은 15세기 영미 시인들의 감미로운 낭만 시 같기도 하고 통찰과 해학, 성장통이 함께 녹아있는 인생 소설 혹은 부담 없이 읽히는 철학책 같기도 하다. 각 장의 독특한 제목과 함께 받은 느낌으로 간략히 주석을 달아보았다.
1장 사랑을 할 때 우린 가장 나다워질 수 있다 =타인을 사랑하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먼저 충만해야 한다.
2장 남을 바라보는 시선을 돌려 나를 들여다보다 =외부의 요인으로는 자신의 빈 자리가 채워지지 않으니 스스로 차올라야 한다.
3장 선택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린 주인공이다 =자기 일은 자신이 주인으로 선택하고 책임진다
4장 당신과 멀어지고 나와 가장 가까워졌다 =관념의 대상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객체가 된다
5장 넓게 바라볼 때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6장 좋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에 드는 대상 찾기에 매몰되지 말고 상대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나다움이란 외부의 기준과 영향에 의해 자신을 타자화시키지 않으며 생각하는 힘과 질문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며,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무감각해져 나를 잃어버리기에 십상인 세상에 휩쓸리지 말라고 한다.
평범함을 뜻하는 ordinary의 어원은 베틀 위에 같은 간격으로 놓인 줄을 뜻하며, 나의 줄이 양쪽 다른 줄 사이에서 얼마나 질서 정연한지가 중요했다. 즉 모든 기준은 내가 아닌 주변에 놓인 나였다. 내가 그들과 일치시키면 지극히 평범해지는 것이며, 내가 그들과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이상해지는 것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바로 평범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다.’(p295)
책 표지에 보이는 에필로그의 일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신의 색깔대로 살아가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신다움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느 집단에서건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자마자 과거 내 주변에서 나다움을 지킬 권리에 집착하여 집단에는 별반 도움을 주지 못하던 좋지 않은 사례가 떠올랐다.
나 그대로를 인정해 줄 사람들을 반드시 가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불편한 것을 거부할 줄 아는 거절만큼 스스로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고..(p82)
어느 조직이든 그 구성원은 조직의 존속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낼 것을 요구받기 마련이고 또 구성원은 대개 그 기대에 호응하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한데 이 사례의 주인공인 그 선배에게는 현재의 불편을 거부하는 거절의 기준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의 권리에는 충실했지만 이에 따르는 책무는 잊어버리는 아주 세상 편한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업무상 기본적으로 자신에 주어진 몫조차도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며 거부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가 거부한 업무는 마땅한 제제가 없다는 강렬한 인상과 함께 동료와 후배의 몫으로 돌아갔다.
상식선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해지는 걸 죄악시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도덕성 의심스러운 흐린 윗물이 아랫물 보고 맑아지라 하니 역한 감정이 들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회의 석상에서 왜 선배가 후배에게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느냐는 등 업무협조 거부 의사를 밝히며 하도 자존심을 거론하길래, 도대체 그놈의 잘난 자존심은 당신에게만 있고 우리에게는 없어서 우리가 ‘평범’한 오류를 범하는 거냐고 들이받았다. 이후 그 선배는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존중의 대상에서 멀어져갔음은 물론이다. 그가 생각했던 자신다움의 권리는 평범함에 대한 거부를 잘못 이해한 데서 생겨난 아집으로 보였을 뿐이다.
나다움의 권리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배의 선장과도 같은 존재다.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빨리 또는 천천히 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라는 배의 선장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