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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경험을 엿본다는 건 짜릿한 일이다. 이국환 작가의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청춘을 방황하는 친구이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픈 아들이기도 하다. 교정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의 책이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들과 마주했다. 책이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하겠는가!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에게는 작가의 문장이 남는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해가 거듭되며 속세의 것을 따르다보니 청춘의 순수함을 잃고 있는 듯했다. 현실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나이 먹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러나 가정이 있고 번듯한 직업도 가지고 있는 ‘어른’인 작가는 여전히 순수함을 지닌 문학청년 같다. 그것을 보고 있을 때면 ‘그래, 청춘은 청춘이지!’ 라며 아직 젊은 방황 속에 있다고 생각하며 아직 괜찮다, 라고 혼자 되뇌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 속에서 ‘꽃중년’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원숙한 노년을 고민하는 작가를 보면 ‘아, 청춘이 지나가도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이 겹치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하나 무의미한 것이 없다.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사소한 생각에도 의미를 더해준다.
인간은 종종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느끼고, 사소한 일을 크게 여기며, 그런 일을 자신만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고통을 키운다. 작가 역시 자살을 결심하고 여행을 떠날 만큼 불안함에 허덕이는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을 마주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았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독자는 희망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고, 위로받는다. 책을 읽는 과정은 삶에 지쳐 힘들 때,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문학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시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사랑하며, 기타 연주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가 청춘일 때 품었던 의문들, 그리고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들에 문장들로 답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해지기 힘든 우리를 대변해주기도 하지만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배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도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작가와 연대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끌벅적 떠들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도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 늘려갈 때도 있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생활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그 흔적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난다. 존 레논이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예술이라고. 그 자취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 책이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랑과 고통을 배우며 한걸음 나아간다. 여학생이 김춘수의 <꽃>이 적힌 종이를 건네줄 때의 설렘과,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아이를 가랑이 사이에 숨겨주었을 때의 긴장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처럼. 우리가 겪었을지도, 혹은 아직 겪지 않았을 일들을 미리 배운 것처럼. 살아가는 힘이나 이유가 필요할 때, 위태로운 우리는 책을 통해 연대하며 낭만을 꿈꿀 수 있다. 읽을 문장들이 남은 만큼 우리 안에 두텁게 쌓여갈 것들이 많다. 문장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삶의 의미를 하나씩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내 청춘은 어떠한 문장으로 기록될까. 아직 책 한권으로 이야기들을 묶어낼 만큼 사유가 깊지도, 많은 경험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열심히 살아도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요.” “행복해질 거란 기대가 없어요.” 라는 물음들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우리를 기다리는 문장이 있는 한, 아직도 살아갈 희망이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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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에 강사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입니다. 얼핏 보기엔 자기 계발서 같아서 보지 않았던 책이죠. 하지만 책의 서문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과 흥분이 온통 나를 채웠죠. 이 책을 읽는 오전은 오후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동아대학교 한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문학과 아내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책으로, 아내를 만난 후에는 사람으로 세상을 배웠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책과 영화, 음악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울적할 때는 기타를 연주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고민이 있을 때는 글을 쓴다고 해요. 텔레비전에서 <다시 책이다>, 라디오에서 <이국환의 책 읽는 아침>을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소개했습니다. 남은 생도 책을 읽고 쓰며 살아가고 싶다고 해요.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그래도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에 예술과 철학에서 찾는 삶의 가치들이라는 부제가 있어요. 2부는 그래도 안다는 것이라는 제목에 책을 통해 얻는 앎의 가치들을 말하고 있고, 3부는 그래도 견딘다는 것, 고통과 불안 속에 버티는 삶의 가치들을 보여줘요. 물론 자신이 만난 책과 함께요. 마지막으로 4부는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 연결된 삶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글에 최소 하나 이상의 책이 나오고 어떤 글은 영화와 함께 나오기도 합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배웠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고르고 고른 문장처럼, 고르고 고른 단어처럼 매끈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그의 책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기억은 사진첩 속의 사진처럼 펼쳐 보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한 파편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기억은 결국 의지의 산물이며, 존재하지 않고 창조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간뇌의 편도체에서 유발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비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전뇌의 영역들이 편도체를 통제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한다. 그것이 용서다. 용서는 나를 상처 준, 너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기억의 선물이다. (p59) 밑줄을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 많이 그었습니다. 오랜 시간 책과 함께 사색한 저자만의 개념 정의가 좋아요. 기억과 용서에 대한 이렇게 아름답지만 확실한 정의를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글자만을 따라 읽다가 다시 돌아와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요. 그렇습니다. 기억은 사진첩처럼 펼쳐보는 것이 아니에요. 무질서한 파편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과정이죠. 좋았던 기억도 오늘의 관점으로 새롭게 다시 저장하듯 음미하고, 부정적인 것들과 상처받았던 것들도 그날 그 감정 그대로 무한 반복하듯 입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상처받고, 점점 더 상대를 놓아주지 못하고 상대에게 구속당해요. 억울한 감정이 크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내 억울함을 말할 수 있게 상처를 새롭게 능동적으로 기억하고는 했습니다. 언제 누가 물어도 상대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잊을 만하면 다시 기억하고 다시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을 느꼈죠. 그러다가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는 일에 나만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 억울해서 용서를 다짐하지만 쉽지 않았어요.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것. 기억이 나에게 주는 선물을 이용해 봐야겠습니다. 파괴하는 감정과 상대에게 휘둘리는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요. 저자의 말처럼 원숙한 늙음으로 가는 연습을 해 봐야겠습니다. 기억을 재구성하여 타자를 용서하는 삶이며, 그리하여 상처 입은 자아와 화해하는 것이 원숙한 삶이라고 해요.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봅니다. 그때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일들이 보일 수도 있고, 정말 별것 아닌 것에 혼자 오해하고 상처받았을 수도 있어요. 차근차근 기억을 재구성하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줘야겠습니다. 이렇게 보니 용서가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 과정을 경험하지 않아서 일까요.
좋은 글은 인간미와 온기를 지닌 에토스가 핵심이며, 에토스는 글쓴이의 의식과 의식을 넘나들며 힘을 얻는다. (p105)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요? 가장 자기답고, 감동이 있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글은 당장은 멋져 보일 수 있지만,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일기를 늘 써왔고, 글을 쓰는 것에 부담도 별로 느끼지 않았어요. 하지만 막상 글을 써보려고 하니 어려웠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하나에서부터 무슨 내용을 써야 하는지 망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어떤 사람은 이 글이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글이 좋다고 합니다. 도대체 좋은 글이 무엇인지 몰라 책을 읽고, 첨삭을 받고, 고민을 했어요. 이 책을 만나고는 선명해집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요. 진정한 감동을 주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진정한 감동은 내 몸과 영혼이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라고 해요. 어떤 감동을 주면 몸과 영혼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까요? 정말 한자도 쓰지 못하겠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가장 최상위 버전을 알았으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비슷하게 닮아라도 가지 않을까 위로해요. 글쓴이의 생애 그 자체인 에토스! 에토스를 통해 운명을 바꾸는 글쓰기에 도전해 봅니다. 날마다 스스로를 확인하고 깨닫게 되어 힘들더라도 에토스, 운명을 바꾸는 글쓰기를 향해 조금 더 고민하고 단어를 골라볼게요.
낭만과 글쓰기, 정직한 사람, 용서, 사랑에 대한 저자만의 정의가 깊게 와닿았습니다. 니체의 낙타, 사자, 어린이에 대한 부분도 쉽게 이해가 되었고요. 소설을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보는 법도 배웁니다. 한 권의 책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감탄하고 밑줄 치고, 다 읽은 책을 쉽게 책장에 꽂지 못해요. 눈이 닿는 곳에 두고 한 번씩 펼쳐 봅니다. 밑줄 그은 부분을, 한 챕터를 읽어요. 역시 좋은 책이라고 감탄하면서 또 책을 가까이 둬요. 독서 모임의 회원 중 한 분은 처음으로 필사를 생각한 책이라고 했고, 다른 한 분은 처음으로 책에 밑줄을 그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감동적이고, 생각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책이었죠. 다른 책으로 만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는 반갑고, 처음 듣는 시나 소설은 낯설지만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성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말도 인상 깊었고, 그 말을 읽고 제 사랑을 돌아 보기도 했어요. 남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봤죠. 무언가를 자꾸만 해주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놀라기도 하면서요.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가는 것이 앎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르헨티나 상류층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남미 하층민들의 삶을 위해 투쟁한 체 게바라도 만났어요. 혁명을 완수한 뒤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다시 혁명의 현장으로 떠나는 사람이라니 너무 대단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모르고 살았던 제가 부끄럽기도 했고요. 책을 읽고 만나는 사람들이 깊이 다가와 친구가 되는 경험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느낌이 들었죠. 열심히 읽어야겠다, 열심히 써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잘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흉내라도 내는 사람, 좋은 책이라는 말 말고 더 잘 표현할 수 있기를 욕심내 봅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 뭐라 설명하기 어렵네요. 직접 읽어보시는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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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곱씹어 읽으면 한 문장 한 문장 버릴 것이 없다는 걸 곧 알게 된다.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독서 역량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의 삶의 경험 속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책을 읽다 나의 어린 시절, 대학 시절 등 여러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되뇌어 보기도 했다. 저자의 감성적인 글과 논리적인 글은 나의 감정과 지성을 만져주기도 했다. 또한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을 반증하듯 글 곳곳에 저자가 인용하는 수많은 책 속의 이야기는 또다른 독서의 묘미를 맛보게 했다. 고리에 고리를 걸듯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저자가 읽은 수많은 책을 간접 경험하며 내가 읽어야 할 독서 목록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느끼게 되고, 작고 사소한 일들도 소중하게 여겨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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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
시시포스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신의 형벌을 받는다. 이 바위는 자체의 무게로 인해 산꼭대기에 도착하면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나는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읽으며 동시에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에 대해 떠올렸다. 시시포스는 산 위로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아니면 주어진 숙명을 묵묵히 끝까지 행하여 나가야 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에 비하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졌고, 현대 기술문명은 과거 1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매 순간 찾아오는 불안과 이로 인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사회생활에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사회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높아졌다.
불행히도 현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변혁시킬 힘이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시시포스처럼 바윗돌 같은 운명을 짊어지고 나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삶은 이미 정해진 잿빛 그림 속의 풍경일 뿐일 걸까.
이러한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저자는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통해 단순히 물질문명의 척도로 가늠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에 대해서 말한다.
책 속의 저자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예술에서, 오랜 성인들이 찾아낸 철학에서, 책을 통해서, 심지어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산다는 것의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고 전한다.
"예술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며 무의식을 의식하게 한다. 예술 창작은 세계를 모사하거나 언어로 베껴내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깨어나게 하는 과정이다. 예술은 재현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것과 현실에 가려 보지 못했던 가치를 다시 보게 하며 운명에 맞서 우리를 구원한다." (p20,21)
저자는 작가의 의도가 개입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감성을 통해서 예술작품이 우리 삶의 한 장면과 중첩되는 그 순간이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예술과 철학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좀 더 쉽게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책은 어떤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기들의 기능적 뛰어남이 사용자의 세상을 향한 인식, 태도에 영향을 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으뜸가는 일이 독서라고 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내면을 정화해 나간다. 책을 통해서 가보지 않은 세계를 탐험하고,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간접적인 경험에 그칠지라도 책 읽기를 통한 외연의 확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위와 같은 방법을 통해 삶을 가치롭게 보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더라도 매 순간 찾아오는 고통과 불안이라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게 삶의 진리다. 책의 표지에도 등장하는 '우리는 불안한 자의 후예'라는 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심리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간은 온갖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불안이라는 감정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이 불안이라는 것이 현대에는 학업 불안, 취업 불안, 주거 불안, 고용 불안, 승진 불안, 노후 불안이라는 형태로 현현하고 있지만 인간은 이러한 불안에 적절히 대처하며 변화해가고 성장한다. 불안에 잠식당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강구하며 불안이라는 터널 끝의 반짝이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가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과도 같이 느껴진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안에서 찾아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에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서 가장 큰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인 '가족'의 실상은 모순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사춘기 시절이 되면 찾아오는 부모님과 자녀의 반목, 통과의례가 사라진 사회 속에서 중2병이라는 독특한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기의 아이들, 육아하는 부모는 언젠가는 독립해 떠날 자녀에 대한 상실감등을 대비해야 하는 등, 복합적인 현실에 놓여있다.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노력해야 하는 점들에 대해서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년 봄에 열리는 지역사회의 가족음악회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툴지만 하나의 악기를 맡아 한 곡의 합주를 위해 함께하는 시간이라든지,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모습에서 현대 사회 속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절절히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10년 전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15주 차로 구성된 인문학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의 교수님이기도 한, 저자의 유년시절 성장담과 오랜 시간 쌓아온 인문학적 삶의 성찰의 태도를 아낌없이 책에 녹여냈기에, 한 권의 책이 아닌 한 학기 강의를 듣는 듯 한 기시감을 맛볼 수 있었다.
이번 글을 시작했던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책을 보면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데, 카뮈는 시시포스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력을 다해 밀어 올린 바위가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질 때 시시포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까? 아니다. 그는 바위의 주인이 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들판으로 굴러간 바위를 향해 다시 걸어간다. 그 순간부터 바위는 그의 것이다.
시시포스의 바윗돌은 어쩐지 우리의 현재와 닮아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시시포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시시포스가 한 것처럼 자신을 쓸모없고 희망 없는 과업으로 내밀었던 신들에게 운명을 내던지지 않고 바위의 주인이 되기를 자청함으로써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의 숭고함을 부여하며, 짧을지언정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쁨을 만끽함으로써 운명을 의식하고 극복하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생의 의지를 저버릴 것이 아니라 찰나의 시간에서조차 삶의 숨어있는 가치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고, 다가올 오후조차 위대한 미래로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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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전체적으로 독백하는 듯한 어조로 쓰인 에세이 모음집이다. 하지만 자기 할 말만 한다는 느낌은 딱히 들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라면 으레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주관적이면서도 공감 가도록 쓴 글이라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게 든다. 내용 자체는 교훈적인 부분도 꽤 있는데, 훈계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사처럼 느껴지게 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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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강의를 듣고 감명받아 바로 주문했어요. 읽어보니 너무 좋아 지인에게 선물하려고 두권 더 주문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 보시길 부탁드려요. 삶이 참 만만하지 않아 상처 받는 일이 많아 힘들었는데 이 책에서 위로 받고 있어요. 책 속에서 소개하는 도서나 영화도 보고싶어요. 불안하지 않은 삶은 죽은 삶이다. 불안을 끓어 안고 우리는 뚜벅뚜벅 나아가야한다. 너무나도 공감되는 글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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