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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Grace or American Dis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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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 교회에 다니고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50년간 벌어진 몇 가지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에 교회의 보수성이 강화되면서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이로 인해 교회의 보수성이 더욱 강화되는 순환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교회가 보수 일색으로 변하고 이에 환멸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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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 교회에 다니고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50년간 벌어진 몇 가지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에 교회의 보수성이 강화되면서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이로 인해 교회의 보수성이 더욱 강화되는 순환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교회가 보수 일색으로 변하고 이에 환멸을 느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무종교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기독교인은 창조론을 믿는다. 생물학적 진화론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사회적 진화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진화론에 대한 거부는 사회진화론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옹호하는 경제 보수주의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종교적 믿음과 정치적 신념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All men are created equal.”을 부르짖으며 인권운동을 벌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야말로 진정한 기독교 믿음의 실천가였다고 할 수 있다.

 

<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로버트 퍼트넘이 데이비드 캠벨과 함께 아메리칸 그레이스 American Grace라는 또 한 권의 역작을 발표했다(원서는 2010년에 출간됐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방대한 양의 설문조사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주요 데이터는 2006년과 2007년 미국 전역에서 3,000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신앙문제조사(Faith Matters survey)를 바탕으로 하였다. 이밖에도 보완적으로 종합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 전미선거연구(National Election Studies), 종교와 공공 생활에 관한 조사(Pew Religion and Public Life surveys) 등을 이용하여 비교의 준거로 삼는다. 그리고 양적 연구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저자들은 참여관찰 및 심층면접을 통해 각 종교, 종파별 특성을 살펴본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들은 미국 종교의 현황을 주로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본다. 특히 1960년대 반문화운동의 충격이 이후 미국에서 어떻게 종교성의 강화 혹은 약화에 기여했는지 분석하는 4장은 매우 흥미롭다. 교세의 변화가 종교 자체보다는 사회변동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종교를 사회와 함께 분석해야 한다는 점이 정당화된다.

후반부에서는 종교 및 종교성에 따라 정치, 사회적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루고 있다. 가톨릭, 주류 개신교(mainline Protestant), 복음주의 개신교(evangelical Protestant), 무종교 (not religious) 등으로 종교의 범주를 나눈다. 이 분류에서 주의할 점은 미국에서는 무종교가 무신론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무종교 미국인은 신을 믿으며 극소수만이 자신을 무신론자로 규정한다.

흑인 개신교와 몰몬교도 비중있게 다루어지는데, 흑인 개신교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서 매우 특별한 케이스로, 몰몬교는 종교와 시민활동 및 인간관계에서 특별한 케이스로 소개된다.

각 종교 내에서의 종교성의 정도에 따른 차이에도 주목한다. 여기서 종교성은 교회 출석 빈도, 식사기도와 감사기도 빈도 등으로 측정된다.

 

저자들이 발견한 사실들 중 어떤 것은 무척 새롭고 어떤 것은 우리의 상식과 직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예컨대 이 책의 곳곳에서 설명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매우 흥미롭다.

 

-          미국인의 1/3에서 1/2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한다.

-          미국인 중 약 1/3은 종교를 바꾼 적이 있다.

-          흑인 개신교는 높은 종교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평등에 찬성하는 예외적인 사례다.

-          최근 미국에서 모든 종교의 신자 수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이 선전하는 것은 남미 이민자의 유입(합법, 불법을 모두 포함하여) 덕분이다.

-          요즘 미국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보다 동성애에는 더 관대하지만 낙태에는 더 부정적이다.

-          정치적인 설교는 보수주의 교회보다는 자유주의 교회에서 더 빈번하게 행해진다.

-          종교인들은 사회활동과 기부에도 더 많이 참여한다. 종교인의 높은 사회활동은 높은 종교성이 아니라 촘촘한 종교적 사회연결망(e.g. 교회 친구의 많음)으로 설명된다.

-          유대교는 다른 종교인들이 가장 너그럽게 봐주는 종교다. 몰몬교는 다른 종교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종교지만, 몰몬교인들은 다른 종교들에 대해 가장 관대하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미국 종교의 특성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책은 미국의 종교, 그리고 종교와 사회, 정치와의 관계를 다채롭게 해석한다. 이 책은 이 주제에 관해서 가히 독보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데이터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데이터를 통해 일반화를 추출한 저자들의 노력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여기서 다룬 설문지와 연구대상을 그대로 이용하여 앞으로 수십 년 간 데이터를 축적한다면 미국의 종교뿐만 아니라 보편 개념으로서 종교와 사회현상과의 관계를 더욱 잘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단점도 있다.

통계에 기초한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사실 추상적인 종교성이라는 변수(독립변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부터가 어떤 의미에서는 넌센스일 수 있다. 저자들도 이 점에 대해서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다. 비단 이 문제 때문이 아니라도, 저자들의 설명 방식이 다소 우유부단한 것도 문제다. 거의 모든 쟁점에 대해서 저자들은 변수들간의 상관관계만을 조심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추상적인 변수를 계량화했을 때 부딪칠 수밖에 없는 한계일 것이다.

게다가 저자들이 통계를 활용하는 방식도 의심스럽다. 통계라는 것이 진실을 말해주기보다는 자기가 생각하는 진실을 강화해주는 방편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저자들이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 다소 의외의 통계 결과가 나왔을 때 거기에 대해서 비통계적이고 직관적 설명을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치는 것은 아쉽다.

 

또 하나 한국 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 책이 미국 종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특수성이 항상 보편성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퍼트넘의 전작 <Bowling Alone>도 비록 미국을 사례로 다루었지만 거기서 쓰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이 이후 한국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었는지를 생각해보면(물론 사회적 자본이란 개념이 한국에서 맥락없이 오남용된 점이 없지 않지만) 특수성에서 보편성을 추출해내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아메리칸 그레이스는 저자들도 인정하듯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수한 미국의 종교 상황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Bowling Alone>과는 달리 이 책의 쟁점들을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덧붙임]

 

1. 이해를 돕기 위해 그래프가 많이 이용되고, 책의 전반부에 연구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나와서 연구 결과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고, 딱딱하고 어려운 책일 것 같은 인상을 갖게 될 수도 있지만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다. 오히려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책이다.

각 챕터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흥미를 끄는 챕터를 골라서 읽어도 무방하다. 다만 전반부에서는 좀 더 큰 이야기들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각론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만 염두에 두면 된다.

 

2. 번역에는 문제가 아주많다. 챕터가 넘어가면서 아무래도 오역인 것 같은 문장이 많아서 원문과 일일이 대조를 해가면서 읽었는데, 많은 오역들이 발견됐다. 읽기에 무난했던 앞쪽 챕터들은 의역이 너무 많아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챕터들은 매끄럽지 못한 번역은 물론이고 역자들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치명적인 오역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단어의 1차적 의미만 고집한 어처구니 없는 번역이라든지, 철자가 비슷한 다른 단어와 착각해 전혀 엉뚱한 문장으로 번역을 한 경우 등이 있다. 오탈자를 비롯해 오역이 너무 많아 정리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해 트랙백할 예정이다).

여기에선 치명적 오역 두 가지만 예로 들어보겠다.

 

- 596쪽 둘째 줄의 ~한다는 신념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다.

역자가 ‘문외한이라고 번역한 outlier는 통계용어로서 비정상적으로 극단에 치우친 값을 일컫는다. ‘극단치등으로 번역해야 한다.

- 808쪽 58의 줄에 나오는 응집 승계는 ‘코호트 계승으로 바꿔야 한다.

코호트는 동일한 인구학적 특성을 지닌 집단을 가리키는 통계 용어이다. 마땅한 번역은 없다. 역자는 cohort coherent 관련된 어떤 단어라고 짐작하고 번역한 같다.

 

네 명의 역자들이 모두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통계용어조차 몰랐다는 것은 큰 문제다. 백번 양보해 용어를 모를 수 있다 하더라도,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사전 한 번 찾아보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건 게으름의 소치이고 번역가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역자가 네 명이나 되다 보니 균질하고 일관성 있는 번역이 나오지 못한 것 역시 문제이다. 역자들이 번역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은 티가 너무 많이 나서 원저자에게 미안할 정도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13.10.01. 신고 공감 2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미국 사회와 종교의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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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보다가 우연히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한 각주가 있어서 후다닥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보게 되었고, 덤으로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또 다른 신작인 "우리 아이들"까지 같이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퍼트넘 교수의 유명한 책 "나 홀로 볼링"을 무척 흥미롭게 읽은 데다가 미국의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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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보다가 우연히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한 각주가 있어서 후다닥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보게 되었고, 덤으로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또 다른 신작인 "우리 아이들"까지 같이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퍼트넘 교수의 유명한 책 "나 홀로 볼링"을 무척 흥미롭게 읽은 데다가 미국의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다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라 그 흥미가 배가되었다. 신자는 아니지만 가톨릭과 기독교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기에 지금껏 그 종교가 그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세 가지 장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와 종교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매번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얻고 선서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2008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경선 후보로 출마했던 침례교 목사 출신인 마이클 허커비가 언급했던 예수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그 중에는 예수님이 자신이 러닝 메이트라던지, 예수님은 너무 똑똑 하기 때문에 공직 선거에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 교회에서 추도사 도중에 찬송가로도 잘 알려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일이다.



어쨌든 이 책의 제목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아니라 "아메리칸 그레이스"이다. 원제목인 "AMERICAN GRACE: How Religion Divides and Unites Us"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50년간 종교가 미국 사회를 어떻게 분열시키고 또 통합시켰는지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역자들이 쓴 후기에서 이 책을 주관적 참여와 객관적 성찰이 조화를 이루며 사회과학을 인문학적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칭했는데, 퍼트넘 교수의 책들은 모두 정량적인 설문 조사 연구와 정성적인 질적 연구, 그리고 메타 분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사회과학 방법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게 특징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미국 사회와 종교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큰 그림을 보여준다. 종교적으로 크게 분열적이지 않았던 미국 사회는 1960년대 성적 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분열되기 시작했는데, 성적 금욕을 이상으로 삼는 보수적인 종교,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의 성장을 이끌어 내었고, 정치 영역에서 복음주의 신자들이 더 많은 문화적 주도권을 가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어서 신학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가 합류하면서 종교적 주제들이 국가적 정치 문제로 떠올랐고, 종교는 공화당 노선과 점점 더 깊이 연관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결국 더 많은 미국인들이, 특히 보수 정치를 싫어하는 젊은 세대가 종교를 떠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 사람들을 복음주의 개신교인, 주류 개신교인, 흑인 개신교인, 카톨릭 신자, 유대교인, 모르몬교 신자, 기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 무종교인으로 분류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2006년 현재 미국 인구대비 약 30% 정도가 복음주의 개신교들이고, 23% 정도는 카톨릭 신자이며, 17% 정도가 무종교인이라 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보면 흑인, 노인, 남부에 사는 사람이 백인, 젊은이들, 북부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종교적이라고 하는데, 가장 종교적인 미국인은 미국 남부 지역의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나이 든 흑인 여성이고, 가장 비종교적인 사람은 미국 북동부 대도시에 사는 젊은 아시안계 남성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미국 교회들의 현재 모습이 어떤지 현장 방문과 심층적인 인터뷰를 한 이야기들이 전개되는데, 사례 연구로서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개인적으로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 가 보았던 보스턴 트리니티 감독교회의 이야기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초대형 교회인 새들백 교회가 비교되고 있는데, 혁신과 성장보다는 과거 전통과 역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교회와 소비자 중심으로 접근한 결과 매우 현대적이고 전문화된 교회 운영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분위기를 선사하는 복음주의 교회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3,300개 이상의 소그룹 모임이 교회 성공의 핵심이라는 새들백 교회가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소그룹을 통해 사람들의 재능과 열정이 활용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의지하고 보살필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신학적인 교육이나 훈련보다 사람이 모여서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의 중반부는 앞서 언급한 미국 사회와 종교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시대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선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에서 종교적 참여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라고 언급한다. 특히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젊은 남편과 아버지가 된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교회에 가장 많이 출석했는데, 이 당시 교회 참여에는 어떤 정치적 당파색도 없었고, 오히려 냉전 시대에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종교가 애국심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주제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 베트남 전쟁, 히피, 여성해방운동, 반전운동 등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종교 조직도 심각할 정도로 신뢰와 자신감을 잃었다고 한다. 1960년대 전체 종교에서 일어난 예배 참석 감소의 상당 부분은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가톨릭 교단 때문이며, 흑인 청년들 사이에 교회 출석률 하락폭이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이렇게 1960년대 혼돈의 시기가 휩쓸고 지나간 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종교적 보수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종교 조직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1960년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전통적인 성 규범이 무너지면서 도덕 문제에 대해 몹시 우려했고, 그런 사람들 중 상당수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복음주의 교회로 몰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종교와 보수주의가 함께 가게 되면서 대중의 눈에는 종교와 보수주의가 종교 우익 운동과 동일시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공적 영역에 영향력을 미치는 데에 불만이 심해졌고, 이 때 전국적으로 무종교인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1990년대에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이 동성애와 마리화나에 대해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으로 바뀌게 되었다는데, 그렇게 방향이 바뀐 시점이 절묘하게도 새로운 무종교인들이 등장한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이를테면 동성애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은 어떤 종교적 정체성도 거부하는 사람들과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적 스펙트럼의 가장 보수적인 극단에서 복음주의자가 성장했고, 1990년 이후 가장 자유주의적인 극단에서 무종교인이 성장한 것은 온건하고 중도적인 종교를 축소시키면서 종교계의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종교적인 사람은 정치적 보수를, 비종교적인 사람은 정치적 진보를 추구하는 식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 상황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추세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20세기 동안 종교 간 결혼에 대한 규범과 실제 종교 간 결혼 유형은 종교 간 개방성과 통합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는 종교적으로 닫혀 있던 세대가 더 개방적인 세대로 대체되면서 일어난 변화라고 설명하는데, 20세기 후반에 성인이 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으며, 그 확률이 종교별로 거의 유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적 혁신은 종교 공동체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종교공동체를 선택할 때 신학과 예배를 주된 기준으로 삼지만, 종교 공동체에 계속 머물게 되는 요인은 공동체 안에서 구축된 사회적 관계망이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부흥하는 종교 공동체를 만들려면 우선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르침과 예배를 제공하여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하며, 종교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을 연결시켜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미국 종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과 같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개혁과 평등을 촉진해왔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대각성운동, 기독교 사회주의 등을 언급하며 불평등에 반대했던 많은 급진적인 대중주의자들은 열정적인 복음주의적 개신교도였다고 말한다.



또 흥미로운 추세 중 하나로 1970년대와 1980년대 복음주의의 성장은 중상 계급에 집중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못 가진 자, 특히 빈곤한 남성들이 종교적 제도와 연결이 약화되어온 것처럼 보인다면서 말이다. 또한 아주 종교적인 미국인들은 일반인들에 비하여 빈곤과 불평등을 다루기 위한 공공 정책을 지지하지 않으며, 공적 행위에 비하여 사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더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좀 더 커다란 평등과 사회 정의를 위하여 정열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했던 과거의 종교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불평등의 성장을 저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기부 활동과 특히 사회적 서비스를 위한 자발적인 봉사 활동은 사적인 제공에 대한 그들의 강조와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동성애와 낙태 문제이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종교성과 정치적 당파성을 함께 묶어주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제 동성애 결혼에 대한 태도는 급속하게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낙태에 대한 태도는 더욱 더 보수화되고 있다면서 흥미로운 설명들을 이어가고 있다. 낙태에 대한 인식은 여러가지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를테면 낙태 반대론자들이 완벽한 금지 달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점진적인 접근 방법을 수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젊은이들이 낙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자궁 안 초음파 사진이 널리 퍼지고 미성숙한 아이들이 점차 자궁 밖에서 생존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란 해석도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의 대가로서 저자의 혜안이 담겨있다. 우선 정치와 종교가 연결되는 하나의 수단으로 교회에서의 친구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즉, 신앙적 공동체가 신앙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종교적인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보다 넓은 공동체에서도 더 관대하다고 말한다. 종교적인 미국인들은 세속적인 미국인들보다 두 배에 이를 정도로 시민 활동에 보다 적극적이라면서 말이다. 종교에 바탕을 둔 사회연결망은 사람들을 교회 내로만 이끌지 않고 기부와 자원봉사, 그리고 시민활동참여에 있어서 보다 넓은 세속적 공동체로 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종교적인 미국인들은 사람을 더 신뢰하고 상대로부터 신뢰도 더 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이렇게 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 즉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용도가 떨어진다면서, 종교적인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드러내는 높은 수준의 사회 참여와 낮은 수준의 관용도의 묘한 조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과 막역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세 명 중 두 명은 다른 종교를 가진 확대 가족을 가지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적어도 두 명의 다른 종교와 연루된 친구를 지니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두 가지 비유를 언급한다. 선행을 베풀며 성인을 의미할 정도의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종교 배경이 우리와 다른 사람인 수잔 아주머니, 취미가 같아서 호감을 가지며 사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나와 다른 특정 종교 집단 출신인 내 친구 알에 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수잔과 알이 결국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선호한다는 흥미로운 설문 결과를 내놓는다. 원칙적으로 종교에서는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미국 사람들은 종교적 다양성을 잘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인들은 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선한 미국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이 높은 정도의 종교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종교적인 사람들 또한 국가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환영 받고 있다면서, 미국인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이웃하여 살아가고, 친구가 되고 결혼을 하게 됨에 따라 그들의 겹쳐지는 사회적 관계는 종교 간 적대감을 지속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다른 많은 신앙체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맞물려 있는 인간적인 관계망의 창조, 이것이 바로 미국의 축복이라면서 말이다.



d****o 2020.06.2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