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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파란자전거님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이이다. 서로의 글에 댓글도 달고 감동받은 글에는 애드온 적립도 해주는 그런 블로그 친구사이인데 파란자전거님이 시인이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는 이수님 이벤트로 만난 너무 반갑고 귀한 배연수 시인님의 첫 시집이다.
택배봉투를 열자 '매일 매일 행복하세요'라는 쪽지가 붙은 강한 보랏빛의 시집과 초콜릿이 보였다. 시집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마음 한귀퉁이가 서서히 온기로 물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함께 보내주신 달콤한 초콜릿은 내 마음속 냉기까지 빼앗아가버렸다.
모든 시가 촉촉하고 따스하다. 파란 자전거님의 블로그 글을 보았을때 세상의 작고 낮은 것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많은 분으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상상했던 대로 배연수 시인님의 시는 물기를 머금은 따뜻한 글이다.
배연수 시인은 남보다 먼저 느끼고, 세상의 쓸모를 위해 더 많이 준비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시를 읽어보면 시인을 더 가까이 알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에 실린 시들로 파란자전거님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봄-
한 걸음 앞서서 차 문을 열어주는 일
바람이 매화꽃을 열듯 아무것도 아닌 일
어쩌려고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네
당신의 어깨 위 나비가 되어
앉을까 앉을까 떨리는 수평
-우리가 흩어졌을 때-
그때 네가 몸에 자꾸 멍이 든다고
푸른 자국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부주의를 보는 것 같아서 가리게 된다고 말한 적 있었다
그때 나는 달아나는 시간을 쫓기 바빠서 네 목소릴 잘 듣지 못했다
네가 보는 것을 내가 못 보기 때문에 우리는 차츰 소원해졌다
젖은 나비는 꽃잎도 없이 혼자 몸을 떨었다
점성이 사라진 밥알처럼 우리가 흩어졌을 때
내 몸에도 푸른 멍이 들었다
아무리 잘 살피고 다녀도 모르는 사이 그랬다
이 시집은 선물로 받았으니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에 선물받을 사람을 정하지 않은 채 시집을 한권 샀다. 누구에게 줄까 곰곰히 생각해보고 선물한 다음 다시 사서 또 다른 이에게 선물할 것이다. 평소 시를 잘 읽지 않는 사람이 읽기에도 편한 시집이어서 다행이다. (난해한 시면 어쩔까 싶어 걱정했다 하하하)
배연수시인이신 파란자전거님, 이벤트해주신 이수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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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시집의 제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겠지만 마음에 남는 날은 흐린 날 일게다. 삶을 살면서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오늘에 집중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머리가 시킨 일이다. 가슴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현실의 나를 살펴보게 만든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연계시킨다. 그래서 먼저 표제작을 읽고 싶었다. 시집의 목차를 보면서 찾아보지만 동명의 시가 없다. 한참을 뒤적인 끝에 <흐림>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 발견했다.
어제 쨍한 햇볕에 나를 말리고 오늘 흐린 날씨에 젖어버린다
옥상에 올라가면 눈을 막는 산/좋을 때 나는 눈물이 흐른다//지금 안전해 보이는 이 생활도/풀린 올 하나 때문에 변형되는 옷처럼/작은 틈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이 질문은 바람이 어디로 부는가를 묻는 것 같다/바람이 제 가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듯이/너무 크게 울지는 말자//사랑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가족, 친구, 그와 그녀들/서로 얼굴도 모르는 먼 사람들/두 시간 먼저 비가 내린다
이 걸음도 언젠가 멈추겠지만 여기까지 온 가장 적당한 말이 뭐냐고 누가 물어준다면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흐림> 전문)
요즘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 - 정찬주작가의 [법정스님 인생응원가]나 류시화작가의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등 - 이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라고 머리에게 시키지만, 시인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파고든다.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가올 날들마저 가슴 속에서 털어낼 수는 없다. 어제와 오늘을 살아온 나의 일상이 바로 내일의 나이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은 머리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일게다. 시인은 바람이 제 가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듯이 우리 역시 어디로 가는지 너무 크게 염려하지 말자고 하지만, 두 시간 먼저 내린 비 때문일까? 시인은 오늘까지 살아온 날들을 흐림이라 대답하겠다고 한다.
저물어 돌아가야 할 시간
보이지 않아도 흐르는 것들이 저마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중략)
늘 그랬듯이 기억나지 않을 하루가 떠났다 (<바람이 지나간 뒤> 부분)
아마, 시인은 그래서 ‘흐림’이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가 저물어 돌아가야 할 시간임에도 기억나지 않기에. 어젠 날씨가 맑더니만 오늘은 잔뜩 흐리다. 일부러 때를 맞춰 이 시집을 읽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시속의 언어가 일상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시집을 읽으면서 평범한 말들도 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생각들이 시인의 언어와 만나면서 마음으로 스며든다. 시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기에 그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읽고, 음미하지만 어렵지 않은 말들이라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유난히 ‘어머니’에 대한 시들이 많아 가슴을 시리게 하지만, 그것 또한 “흐림‘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가도록 하는 것 같다. 시인의 첫 시집을 읽으며 또 다른 일상의 언어들도 또 다른 시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흐림>의 첫 연이 마음에 남는다. 마침 어제와 오늘의 날씨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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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때때로 온마음을 쏟아부어 투명해진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또 어쩐지 그냥 좋기도 하지만 특히 묘하게 끌리는, 매력적인 구절을 발견할 때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쩜 이런 단어를, 문장을 생각해낼 수 있는지 신기하고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되뇌여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넘 대단하고 무척 멋지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시'가 가득 담긴 오묘한 빛깔이 매력적인, 흐림을 닮은 '보라빛'을 품은 근사한 시집을 만났다.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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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가 아주 많았다. 만나는 순간 좋아질 수 밖에 없는 시들이다. 언젠가 읽은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에서 김연수 작가가 한 추천사에 그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시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랄까...? 헌데 그럼 안될 테다. 나 역시 널리 알리고픈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의 시를 읽고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했으면...하고 바래본다. 그래서 다음 시, 또다른 시집으로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음 좋겠다.
하나같이 다 좋아서 선뜻 고르기 힘들었지만 정말 빠져들어 감탄을 거듭한 시를 몇 편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울한 기분을 따서 넣으면
곁눈질만 하고 있는 내게
그리고 보았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나요?
늦은 저녁은 꼭 그만큼
낡은 상자를 앞에 놓고
만나자 마자 일생을 다 살아버릴
스스로 갇힐 우물을 파고 있는 당신은
이럴 때 왜 나는 기꺼이 바위를 내지 않는가
당신에게 빈 주먹을 맡긴 그날처럼 울지 않는가
작아진 삼각형 안에 내가 갇혀 있었다
세발자전거가 삼각 안에서 반짝거렸다
아무리 접어도 모양을 바꿀 수 없었던 삼각형 안에서
내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던 사람이 있었다
등은 바라보는 것보다
지금
자신의 등이 붉다는 것을 와락...안아주고픈 기분이 드는 시랄까. '등은 바라보는 것보다 서로 기댈 때가 좋다' 이 구절은 예전에 우연히 발견하고 너무 좋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감탄을 했었는데 '시'였다니!!! 무척 넘 반갑고 기쁘고 좋다.
달아,
나를 안고 젖을 먹였을 엄마는
밥 먹어야지, 배고플라
지금 엄마랑 밥 먹고
밥은 기억 못해도
엄마의 몸 안에는 보름달 하나가
달을 보며 불러보는
바람아 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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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챘을까? 그렇다. 제목부터 '흐림'인 이 시엔 시집의 제목이 등장한다. 나는 보자마자 시집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고 어딘가에 이 문장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역시 있었다. 흐림. 햇살 쨍한 맑음도, 주룩주룩 내리는 비의 중간 같은 구름으로 가득한 참으로 애매한 날씨, 흐림. 여전히 햇살이 좋은 나이지만 어느덧 아주 가끔은 흐림도 좋은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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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 흐림.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비가 내린다. 출근시에는 흐렸지만 일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맑은 날도 좋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 좋다. 내가 뱀파이어도 아니면서, 먹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을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밖으로 향한다. 우산을 튕기는 빗소리, 대지를 적시며 피어오르는 비냄새를 좋아한다.
고양이가 와서 빈둥거리기 좋은 크기의 빈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우울한 기분을 따서 넣으면 짙은 보랏빛으로 안전하게 시들어갈 수 있는 깊이입니다
(중략)
낡은 상자를 앞에 놓고 고양이를 기다립니다
만나자마자 일생을 다 살아버릴 늙은 연인을 기다립니다 (14~15페이지, 「빈 상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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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구매하며 또 한 권의 시집과 소설 세 권을 함께 구입하였다. 최근 보라에 빠져있어선지 몰라도 다섯 권의 책이 모두 보랏빛을 띄었다. 책을 받아보니 그랬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놓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를 열고 그 다음 장을 읽으니 「빈 상자」라는 시가 나온다. 빈 상자를 보면 무언가를 담기 좋겠다 생각했지, 그 속에 마음의 찌꺼기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한다. 우울한 기분을 따서 넣으면 짙은 보랏빛으로 안전하게 시들어갈 수 있는 깊이입니다, 라고. 감정 같은 거 내가 버리기전까지 어쩌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시인에게 배운다. 더불어 우울한 기분일랑 아무 상자를 꺼내 그 속에 담으면 될 것을. 그리하여 보랏빛으로 시들어 가버릴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의 집 앞에도 저런 안내판 있어서 어떤 날은 '맑음' 또 어느 날은 '슬픔' 있는 그대로의 너를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57페이지, 「떡, 있습니까」 중에서)
사람들은 때로 타인의 감정 때문에 힘들다. 내 마음도 다스리기 힘든 법인데, 타인의 마음을 신경 써야 한다. 너의 마음이 흐린지, 맑은지 혹은 슬픈지 몹시 궁금할 때가 많다. 어느 떡 집의 안내문처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쨍한 햇볕에 나를 말리고 오늘 흐린 날씨에 젖어버린다
옥상에 올라가면 눈을 막는 산 좋을 때 나는 눈물이 흐른다
지금 안전해 보이는 이 생활도 풀린 올 하나 때문에 변형되는 옷처럼 작은 틈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 질문은 바람이 어디로 부는가를 묻는 것 같다 바람이 제 가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듯이 너무 크게 울지는 말자
사랑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가족, 친구, 그와 그녀들 서로 얼굴도 모르는 먼 사람들 두 시간 먼저 비가 내린다
이 걸음도 언젠가 멈추겠지만 여기까지 온 가장 적당한 말이 뭐냐고 누가 물어준다면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114~115페이지, 「흐림」 전문)
시집의 제목만 보고서도 좋았다. 시가 가진 감성이 그대로 느껴져서 였다. 혹은 직접 뵌 시인의 조근조근한 말씨와 조용한 미소와도 맞아떨어졌다. 시를 쓰는 사람은 감정의 많은 것을 꼭꼭 숨겨두고 한 번에 터뜨리는 법이다. 응축된 시어로 표현하기 마련. 그래서 시를 쓰는 이의 문장이 가슴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숨겨둔 마음이 조금 엿보여서. 조금쯤 표현한 그 문장들에서 수줍은 마음이 엿보여서다.
우리를 둘러싼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관계 때문에 힘들지만 또 관계 때문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내가 했던 어떠한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을 아프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의 시에서 위로를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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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하는 말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개울에서 건져 온 돌 하나를 보고 있다 이 돌이 말하지 않아도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다 돌의 이야기가 아닌가 시간의 어느 자락 그 바닥에 누웠던 생각들 알뜰히 새겨 온 것 아닌가 켜켜이 쌓인 돌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내 몸에 새겨진 이야기 쳐다보는 시선 느껴져 시치미를 뗀 채 살아가던 마음이 화들짝 일어선다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의 시가 참 좋다. 그 중에서 '돌이 하는 말'이 제일 좋고, 다음으로 '면접'이 좋다. 이 따스한 시들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아무리 감추어도 내 몸에 새겨진 것들은 나를 고스란이 드러낼터인데, 내가 어떠하길래 어린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2월 28일 혼자 지내던 내부 기숙사에서 나와 한 지붕 아래 셋이 지내는 빌라로 들어왔다. 스물 초입 아이가 하나, 서른 중반을 넘어선 아이가 하나, 그리고 쉰을 바라보는 내가 산다. 이들을 삼 개월이 못되게 봐온 것이다. 선입견은 지운 채로 서로에게 기회를 주며 말이다. 가운데 애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싱크대를 난장판을 해놓고 치우지를 않는다. 내가 저녁 먹고 난 후, 가운데 아이가 어지른 것까지 함께 치운다. 이게 반복이 되니 내 마음이 상처를 받는다. 엄마는 왜 해주냐고 하시고, 나는 눈뜨고 못보니까 치우는 거고... 그런데 3개월을 못채우고 내 마음의 문이 닫힌다. 이제 열어놓았던 내 방문도 꼭꼭 닫고 내 방에서만 생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한낱 돌덩이도 가만히 바라보면 그 삶이 어찌 흘러왔는지 지금의 네 모습이 왜 그러한지 느껴지는 데... 나를 한없이 무르게만 본다는 게 한심스럽다. 선입견이 아닌 그들의 바탕은 이제 볼만큼 본 것같다. 에구 리뷰를 써야 하는데 내 하소연만 한다. 시인은 일상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 시인의 일상성이 좋다. 이 안에는 사람도 있고, 자연도 있고, 삶이 있다. 삶은 '어제 쨍한 햇볕에 나를 말리'다가 오늘은 흐림에 젖는다는 시인의 말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쨍할 수는 없는 이 날씨는 내 의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언제나 맑음이라면 좋겠지만, 이십대 때는 그렇게도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돌아보는 삶은 구름에 해가 걸쳐있는 그림이 떠오른다. 이 시집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면접>을 소개한다. 면접 사월이 되자마자 제비 한 마리 찾아왔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중이었는데 마음 급한 제비는 대뜸 집부터 둘러봅니다 현관 앞과 옥상 처마 아래까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나는 공연히 마음이 찔려서 취업준비생처럼 눈치를 살핍니다 얼떨결에 면접을 보는 꼴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별일 아닌 척 마당 위 전깃줄에 앉아보고 창고 지붕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지만 제 새끼들 키울 둥지 귀하게 여겨줄 사람 그릇 보러 온 것 아니었을까요 마시던 커피 내려놓자 제비에게 면접 당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빤히 보는 듯합니다 하던 대로 하라고 꾸미려 할수록 드러나는 게 제 바탕이라고 훈수 두는 듯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작년에 같은 일로 탈락 경험이 있기에 여간 주눅 든 것이 아닙니다 면접자 사정을 일일이 봐줄 수 없는 제비는 볼 거 다 봤다고 높이 날아갑니다 흑백 주사위 하나가 공중에 던져진 모양입니다 '꾸미려 할수록 드러나는 게 제 바탕'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나인채로 좋은 것이다. 그래야 서로가 편하다. 꾸며 봐야 하루이틀 보고말 사이가 아니면 드러나고 만다. 3개월도 못채우고 넉다운 되지 않았는가? 그래도 선입견은 갖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잘 보이려 한 게 나쁜 것은 아니잖아... 하는 생각도 들고... 아직은 내가 멀었는갑다. '중국드라마'라는 시도 좋다.황제를 사이에 둔 비빈들의 암투는 황제가 없더라고 일어나는 듯 하다. 마지막 행에 '암투와 격정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광장에서 집으로 자리를 옮긴 구경꾼들이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라는 행에 내가 비춰진다. 나는 함께 사는 두 어린 친구들을 어찌해볼 열정이, 에너지가 없다. 그들은 아직 열정이, 에너지가 넘친다. 뒷방늙은이는 조용히 뒷방늙은이로 자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의 시는 순간순간 나를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른 다음에 읽으면 또 다른 나를 비춰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라는 시집이 나는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