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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것은 아니였는데 나란히 두 권의 책을 놓고 보니,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속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울컥한 마음도. 힘들고 아픈 상황 속에 시가 줄 수 있는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엮어 낸시집이라고 했다.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럼에도,혹은 ~그래서.그러니까의 마음으로 자신을 토닥일수 있는 시들일거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리고,목차를 살피다 '봄' 이란 제목이 들어간 시들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순간 김영랑의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에 끌려 읽게 되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돋혀오르는 아침 날빛이/빤질한 은결을 돋우네/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64쪽
'동백'이 등장하지 않는다...'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로 알고 있었던 시의 원래 제목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이였다는 사실을 알았다.차탄천을 걸으면서 도른도른(도란도란의 전라도 사투리) 했던 마음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나서,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내 마음 속 강물을 해석해 보기도 하고...그러다 동백꽃 툭 떨어지듯 떠올려본 생각은...마음 속 감정들을 꾹꾹 담아 두지 말라는 말은 아니였을까..흘러가게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란 제목이 들어가지 않았어도 봄을 노래한 시들이 있을테지만 콕 찝어 봄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거나 봄을 떠올리게 할 시는 9편. 이성부'봄' 정지용 '춘설' 김동환'강이 풀리면' 이상'꽃나무' 최하림'춘분'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손로원 '봄날은 간다' 황금찬'매화에 부치는 편지' 김구용 '제비 알고 있는 시보다 모르는 시가 대부분이였다. 이성부시인의 봄은 ("봄이 오면 겨울은 망하는가 그렇지 않다.봄은 그 겨울에조차 봄인 봄이다.겨울이 깊어 묻어둔 씨앗에조차 움을 틔우는 봄이어야 한다"/81쪽 '_시도 좋지만 해석해 놓은 글도 좋았다. 이상의 '꽃나무'는 처음 읽어본 시였다. 해석의 도움을 받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다. 봄과 거리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봄에 읽어야 할 시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환창한 봄을 즐기는 건 아닐테니까 말이다.그리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읽게 된 두 편의 글(난중일기와 허난선헌)을 읽는 순간 할 말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했다. 부모의 통곡 앞에서 할 수 있는 위로란 것이 ...있을까...'자식의 복을 입고'(이순신) "14일(신미) 저녁에 천안에서 사람이 와 집안 편지를 전하다.대충 겉봉을 뜯고 본즉 겉에'통곡' 두 글자가 쓰여 있어 면의 전사를 알다.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하고 통곡하다. 하늘의 어질지 않음이 어찌 이러한가.슬프다 내 아이야,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내 죄가 많아 네게 미친 것인가.울부짖을 뿐이다.하룻밤이 일 년 같다"/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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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손로원(1911-1973)-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 p182. - 이 낯설지 않은 언어의 시는 처음 만난 건 내재율이 아니라 5선지의 가락이었다. 엄마의 최애곡이었다. 눈만 호강하는 것 같아 귀에게 민망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오래간만에 듣는 노래들에는, 지금의 고인이 된 이팔청춘의 꽃 처녀[백설희]가 부르는 아주 명랑하고 경쾌한 아주 오래된 노래였지만, 늦깎이 백발의 소리꾼[장사익]이 부르는 것에는 닳고 닳은 인생 역정이 주름마다 자글자글하게 푹푹 담겨서 흘러나왔다. 모든 것을 담아서 느리고 느리게 흐르며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가락은 원래는 내재율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반가움에 다시 소리로 들으며 읽어보게 한다. 그러면서 봄날이 다가는 것을 허무하게 만 바라만 보고 옷고름 씹었을 성황당 아래의 옥동댁을 생각해 본다. 시는 어렵다. 너무나도 짧은 가락에 모든 것을 담아냈기에, 쓰는 사람도 고역이겠지만 읽는 사람도 고역이다. 그런 시들을 모아서 나의 영감으로 체화하는 것에는 멍하니 쳐다보며 빠져야 한다. 상상의 속으로. 심장과 뼈와 기억이 안녕하고서는 도저히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남의 나라에서 너무나 쉽게 시를 쓰는 윤동주보다는 못하겠지만 자꾸 쉽게 쓰인 것으로만 보이는 시에 너무나 많이 보이는 여백은 너무나 꽉 찬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한다. 시집 한 권을 두고도 보고보기를 일주일째 하고 있지만, 노(老) 교수가 정성으로 골라서 평(評)을 첨부한 글을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과 육체로 담기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다. 시만이 시가 아니라 모든 절실하고 애쓴 언어들은 시에 준한다(p9)고 생각에는 어떤 글들이 담겼을지 가히 상상하기 쉽지 않다. 단단한 각오로 82개로 이루어진 미지의 세계에서 그가 그리는 나라를 하나하나 찾으러 한 발 움직여야 할 듯하다. 우리의 저자는 ‘슬픔 없는 나라로’라는 표제를 달고서는 온갖 그리움이 점철된 슬픔의 언어들을 담아서 읽게 하고 있다. 2017년을 맞이하면서 촛불로 뜨거웠던 시절에 ‘서정’의 그릇에 ‘참여’를 담았다. 위안부 소녀상과 세월호를 생각하는 데서 시작하여 막내아들을 그리워하는 이순신의 일기, 고려가요 동동, 현행 헌법의 전문까지 가히 나 자신의 역량을 생각하게 하는 데까지 담았다. 그저 원초적인 낭만의 간정으로만 흥얼거리면서 읽어나가기 어렵게 하고 있다. 거기에서 참 시를 보며 참 문학을 찾고 참 나를 맞는다. 원초적 질문으로 돌아온다. 시란 무엇인가? ‘서정’과 ‘참여’라는 논쟁은 이미 고려장의 오래된 유물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순수’라는 것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밟지 않고서 일어서기는 쉽지 않다는 무언의 표현은 종래 운율만을 추구하는 것은 편협하고 우리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시이고 노래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한다. 시는 순수와 현실을 두 바퀴로 삼아 굴러가며 우리 맘을 달래준다. 그 달래줌의 경지는 그 누가 함부로 정할 수 없다는 경계에서는 눈물을 왈칵 쏟게 한다. 너희는 슬픔이 없는 나라로 가라고 하고서는 슬픔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얄궂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슬픔이 없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그 곳에는 뭐가 있을까? 김광섭의 ‘나의 사랑하는 나라’로 첫발을 뗀 순수의 세계에는 남북 분단의 누더기를 넘어서 거룩한 날을 기다리게 한다.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서. 겨울이 강철로 된 육사의 ‘절정’에는 온전한 공동체의 운명이 있다. 십구문반(十九文半) 신발의 가장에게서는 미소가 빠질 수 없다. 이성선의 ‘별을 보며’는 별은 우리가 쳐다볼 수 있는 최소한이며 그 찬란함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었다. 별은 누구의 삶에나 있으며 순수와 부끄러움의 기준이 되어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을 보낸 배부른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천상병은 우리의 나날이 고달플수록 생의 근원을 향한 본래적인 감각은 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단단히 버티고 서서 자신과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저자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나라에는 ‘그리움’이 가득하였다. 저녁 눈에 말집 호롱불, 여물 써는 소리, 을씨년스러운 변두리 공터를 그리게 한다. 귀여운 아들과 딸을 떠나보낸 허난설헌의 피눈물 울음소리,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는 이용악의 북쪽 고향. 연 날리고 쥐불 돌리고 오곡밥 먹는 대보름날의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구전 가요. 저자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었다. 분단이라는 조국의 이별, 죽음으로 인해 자식과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 역사와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고향과의 이별은 매 순간을 그리움 속에서 살게 하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그 마음을 담아 읽는 이를 애달프게 하고 있다. 헤어짐이 만드는 그리움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 쌓여만 가는 과거의 흔적이다. 그 흔적은 머리에, 가슴에, 심장에, 뼈에 남아 있다. 특히 눈, 비 오는 날에는 더 쎄고 자극적으로 남는다. 부족했던 자신만이 생각나서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지게 만든다. 그런 과거의 나를 이어서 현재의 나를 바라보며 미래의 나를 보기가 민망해진다. 현재와 현실에 버티고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무기력한 나를 만들지만 때로는 그 힘으로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주기도 한다. 비를 타고 유리창에 내리는 그리움은 천지신명께 얼마나 빌고 빌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주도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았을 것을 생각하면 참 나의 생의 간절함은 더 커진다.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p80). 슬픔이 없는 나라는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자연의 봄과는 다르다. 인간의 봄에는 그 뭔가가 필요하다. 모자이크로 적나라하게 벌려 놓은 슬픔이 없는 나라는 이별이 없어 살과 살이 닿을 수 있는 온전함 속에서 너와 내가 있다. 그곳에는 당연히 네거리에 떠 있는 종이연이 만드는 풍경은 당연하다. 어느 것 하나가 버려져서는 안 된다. 과거를 밟고 백년 뒤를 쳐다보며 숨 쉬는 현재 공간에 자신의 춤 선을 그릴 수 있는 그런 나라. 그런데 과연 그런 나라가 가능할까? 작가 유시민은 모 방송에서 역사상 근래 50년이 가장 평화의 시대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 그리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저자의 간절함이 그저 누군가는 울고, 웃고, 죽어가는 엄숙한 시간의 풍화작용을 고스란히 맞아가는 그런 가치가 아니기를 기원한다. 우주의 한 별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시간에 살아온 기적은 살아갈 힘이 되어, 정치 지도자가 부끄럽지 않는 나라에 내 마음의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 슬픔이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 -문학동네에서 제공받아서 작성된 리뷰입니다.- |